동진강은 태인쪽에서 흘러오는 태인천과 정읍쪽에서 흘러오는 정읍천이 예 동에서 만난다. 두 강줄기가 만나기 전에 태인천에는 팔왕보(八王洑)라는 보가 있었고 정읍천에는 예동보(禮洞洑)라는 보가 있었다. 바로 이 예동보 가 배들을 적시는 보로 일명 만석보라 불렀다. 배들은 1년에 벼가 만석이나 난다는 넓은 들이었고 그래서 동진강을 가로막아 이 들판에 물을 대주고 있 는 보를 만석보라 하였다. 만석보는 국유였으나 이미 몹시 심하게 파손되어 조병갑이 역부 수만 명을 동원하여 개수사업을 일으켰다. 이때 농민은 물을 사용할 권리와 함께 의무 를 지니게 되는데 수세는 보의 관리 외에 직접, 간접으로 관개사업과 관련 된 경비에 충당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조병갑은 거둬들인 수세를 모두 착복 해 버린 것이다. 전봉준 공초(供招)에 이렇게 해서 거두어들인 수세가 해마 다 700석이라고 했으니 신보를 수축한 뒤 백성들로부터 갖은 명목으로 늑탈 (勒奪)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태인 현감을 지낸 자기 부친의 공덕 비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수천 냥의 돈을 다시 늑징(勒徵)했으니 그 원성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현재 태인 피향정내에 조규순 불망비(縣監 趙侯奎淳 永世不忘碑. 뒷면 癸巳 2月 日 以子秉甲古阜郡守建閣改竪)가 서 있다. 이 곳 만석보에는 겨울이면 매섭게 몰아치는 눈과 함께 칼바람 소리가 사람 을 주눅들게 한다. 비문은 전주의 서예가 강암 송성룡 선생이 쓴 것이다. 4309년(1976) 4월 2일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