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역사에 가장 이야깃거리를 많이 남긴 인물은 바로 ‘헨리 8세’이다. 긴 영국사에서 헨리 8세만큼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왕도 없었거니와 영국 기독교의 역사를 바꾸었으며, 6명의 아내중에서 2명을 사형에 처하는 등 영국 역사에 숱한 뒷이야기를 남긴 헨리 8세, 요즘 드라마로 나왔던 조선대 성종을 연상케 하는 절대군주였다.
1509년, 왕위에 오른 헨리 8세는 18살의 청년으로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는 스포츠맨
이었다. 그의 첫 아내는 이미 죽은 형의 아내, 즉 형수였던 에스파냐 왕의 딸 ‘캐서린 공주였다.
이 결혼은 그가 원해서 된 게 아니라 순전히 정치적 이유 (에스파니아의 덕을 보기위한) 때문에 신하들의 권유로 결혼하여 ‘메리’라는 딸을 낳았는데 ‘메리’는 나중에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을 사형에 처해 ‘피의 메리’라 불리는 여왕이 되었다.
어쨌던 사랑없는 결혼은 오래 못가고 헨리 8세는 까만 눈동자의 시녀 ‘앤 볼레인’을 사랑하게 된다. 이래서 헨리 8세는 앤 볼레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캐서린과 이혼을 했어야 했는데 이혼신청은 로마 교황의 권한아래 있었고 로마 교황은 에스파냐의 압력 때문에 이혼을 거절했다.
독실한 카토릭 신자였던 헨리는 캐서린과의 이혼(이혼의 사유-아들을 못낳는다)과 엔 볼레인과의 결혼을 성공시키기 위해 로마 카톨릭과 단절을 선언하고 영국의 성공회를 탄생시키니 나중에 이 두 종교로인한 피비린내나는 투쟁이 시작된다.
성공회로 종교를 바꾸지 않는 사람을 처형하는 등 나라는 갑자기 공포의 도가니가 되었고, 앤 볼레인과의 결혼에 성공하였으나 앤 볼레인을 통해 딸하나와 죽어서 태어난 아들 까닭에 앤은 왕비의 책임을 못다했다는 죄로 목이 잘리고 말았다. 비극의 왕비 ‘앤 볼레인’의 딸, 이가 곧 엘리자베스 공주로 뒷날 세계 제1의 바다의 왕자 영국 함대의 바탕을 이룩한 ‘엘리자베스 1세’가 된다!
앤 왕비를 사형시키고 며칠후 헨리8세는 세 번째 왕비 ‘제인 시머’와 결혼, 드디어 왕자를 낳았으나 며칠만에 왕자가 죽고 얼마안가서 왕비 ‘제인 시머’도 죽는다. 그리고 헨리 8세는 도이칠란트와의 친선을 위해 무뚝뚝한 도이치 여자인 앤 공주를 왕비로 맞았으나 금방 이혼을 해버리고 다섯 번째로 ‘캐서린 하워즈’를 왕비로 맞았다. 그러나 이 결혼도 왕비 캐서린 하워즈의 외도 때문에 앤 볼레인과 마찬가지로 목이 잘렸고 여섯 번째로 ‘캐서린 파아’와 결혼하였다.............................
영국에서 제작한 Tudors (튜더 왕조의 이야기를 그린 연속극)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던게 생각나서 옮겨와봤다.



Catherine of Aragon (1485-1536)
m. 1509 - 1533 ( 결혼기간 )
아라곤과 카스틸랴 왕국의 공주였던 캐서린
그녀는 헨리의 형 아서와 결혼하지만 왕자는 결혼 5개월만에 요절합니다
그때 캐서린의 나이는 겨우 17살
시아버지인 헨리 7세는 어린 며느리를 고국에 돌려보내지도 않으면서 홀대했고,
헨리왕자는 외국에서 온 공주님에서 형수에서 다시 과부가 된 캐서린을
11살 부터 알게 됩니다
그리고 헨리가 부왕 헨리 7세의 뒤를 이어 헨리 8세로 즉위한 그 해
18세의 헨리와 24세의 캐서린은 결혼합니다
그녀가 아라곤의 공주였기 때문에 정략 결혼을 한 것이었지만
그후로 20년 이상 헨리와 캐서린은 무난한 결혼생활을 합니다
헨리가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중년의 초조함에
휩싸이기 전까지...
캐서린이 40대 중반을 넘어 그녀에게 더 이상 아들을 기대하기 어렵기 전까지...
20여년의 결혼을 종교적으로 법적으로 무효로 하자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인이 있을까요?
더구나 경건한 카톨릭 신자라면 말입니다 .
결혼무효를 받아들이면 그녀의 딸 메리는 공주가 아닌 사생아가 됩니다
그녀는 헨리의 요구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혼당했을 때 캐더린은 48세, 헨리는 42세였지요
그녀는 그 3년 후 병으로 죽지만
그로부터 채 넉달이 지나지 않아 앤 불린 역시 처형당해요
그리고, 캐서린의 소망대로 그녀와 헨리 8세 사이의 딸 메리공주는 훗날
영국의 여왕 메리1세가 됩니다.





마지막 이미지는 드라마에서의 앤 불린의 모습 ( 나탈리 도메르)
앤 불린의 초상에 자주 등장하는 목걸이를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Anne Boleyn (1507?~1536.5.19 )
1533 - 1536 ( 결혼기간 )
Executed (처형됨)
앤 불린이 태어난 해에 대해서는 1500년 설부터 1507년 설까지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녀는 캐서린왕비의 시녀로 눈은 아름답지만,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다는데
헨리는 그녀의 도도한 매력에 빠져듭니다
왕비에게서 왕자를 얻지 못하자
헨리는 왕비와 이혼하고, 앤과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형수와 결혼했었다는 것을 이유로 결혼무효를 주장하지만 교황청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헨리는 앤과 결혼하기 위해 교황청과 관계를 끊습니다.
이것이 영국 국교회의 탄생입니다
앤 불린은 1533년 1월 헨리와 결혼하고 1533년 가을 엘리자베스 공주가 태어납니다
왕자가 아닌 공주의 출생은 헨리를 실망시켰고,
다음해에는 유산, 그리고 1936년1월 앤이 왕자를 사산하자,
헨리의 애정은 싸늘하게 식습니다
앤에게서도 아들을 얻지 못할것 같다고 생각한 헨리는 그로부터 넉달이 지나지 않아
1936년 5월 앤 불린에게 간통의 누명을 씌워 처형합니다
그게 앤 불린을 < 천일의 앤 >으로 불리우게 한 3년간의 결혼생활의 결말입니다.
왕비 캐서린이 헨리에게 이혼당하고 3년만에 병으로 죽은 것이 1536년 1월
앤 불린이 3년의 파란많은 결혼생활끝에
간통의 누명을 쓰고 처형된 것은 그로부터 넉달 후인 1536년 5월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헨리8세가 어떤 인간인지 아시겠지요?

Seymour (1509 - 1537 )
m. 1536 - 1537 (결혼기간)
Died
앤 불린의 시녀였던 제인 세이모어
역시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은 여인이었다고 하는데
헨리 8세는 그녀에게 홀딱 반했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앤불린에게 간통의 누명을 씌워 처형합니다.
앤 불린에 대한 열정만큼 제인 세이모어에 대한 사랑도 뜨거웠고
앤이 캐서린의 가슴을 찢었듯, 앤도 제인 세이모어에 의해 상처받았죠.
헨리가 아내인 앤 불린을 처형한 것이 1536년 5월 19일이었고
제인 세이모어와 결혼한 것은 5월 30일이었어요
그녀는 1537년 첫 아내 캐서린도 두번째 아내 앤도 낳지 못한
헨리가 그토록 열망하던 아들 에드워드를 낳지만
난산으로 인해 에드워드를 낳은지 채 열흘이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납니다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에 나오는 왕자가 바로 에드워드랍니다.
물론 에드워드에게 그런 모험을 겪게한 건 마크트웨인의 창작이지만
에드워드는 10살에 왕이 되지만 16살에 요절합니다.

Anne of Cleves (1515-1557 )
m. 1540 Jan. - July (결혼기간 )
Divorced
클레브스의 앤
클레브스 공작의 누이였던 앤은 독일과의 우호관계를 위한 정략결혼상대였어요
하지만 만나기 전에 들은 소문이나, 보았던 아름다운 초상화와도 다른 외모의 앤에게
헨리는 처음부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1월에 결혼한 앤과 그해 7월에 이혼합니다
무시당하다가 몇달만에 이혼당한 비참한 운명이라도 처형되는 것보다는 나을까요?
그녀는 헨리 8세의 아내들 중 가장 오래 살았습니다.


Kathryn Howard (1520 - 1542)
m. 1540 - 1542 (결혼기간 )
Executed (처형)
클레브스의 앤과 헨리가 이혼한 것은 1540년 7월, 캐서린 하워드와 재혼한 것도
1540년 7월
헨리 8세가 얼마나 격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는지
또한 캐서린에게 얼마나 매혹되었는지 느껴지네요
19살의 어린나이로 헨리와 결혼한 캐서린 하워드는
29세나 연상이었던 헨리에게 무척 사랑받지만,
캐서린은 시종이나 악사, 조카등 여러 남자들과의 불륜을 거듭했고,
결혼전의 문란했던 관계까지 드러나면서
1541년 11월 런던탑에 유폐되었다가
1542년 2월 22살의 어린나이로 참수형을 당합니다 .
그녀의 과거를 알기 전만해도 왕은 그녀를 보석처럼 아꼈다고 합니다.
사랑했던 어린 아내의 문란한 행실은 왕에게는 치욕이자 커다란 상처였죠.
앤 불린에게 간통의 누명을 씌웠던 죄값이었을까요.

Katherine Parr (1512 - 1548 )
m. 1543 - 1547 (결혼기간 )
Widowed
1543 년 7월 31세로 헨리의 여섯번째 아내가 된 캐서린 파 ( 그녀의 나이 역시 여러 설이 있슴 )
캐서린은 헨리와의 결혼이 초혼은 아니었어요
1529년에 어린나이에 첫 남편을 잃고
두번째 남편역시 헨리와 재혼하기 전해인 1542년에 잃은
두 번의 결혼에서 두 번 과부가 되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헨리의 건강을 세심하게 챙기고
헨리의 아이들도 따뜻하게 돌보는 편안한 휴식같은 아내였다고 합니다
1547년 1월 헨리 8세가 죽은 후 캐서린 파는
제인 세이모어의 남동생과 결혼합니다
왜 하필이면 제인 세이모어의 남동생일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헨리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왕자가 바로 제인 세이모어의 아들이지요.
에드워드는 겨우 10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에드워드왕자가 5살 때 왕비가 되어 왕자를 돌봐온 캐서린 파와
에드워드의 외삼촌 토마스 세이모어의 결혼은
어린 왕 에드워드 6세 에게도 도움이 되는 결혼이었을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결혼 다음해인 1548년 8월 캐서린 파는 토마스 세이모어의 딸을 낳고
난산으로 인해 그로부터 채 며칠이 지나지 않은 1548년 9월 세상을 떠납니다


Henry VIII (1491~ 1547.1.28 )
재위 1509∼1547
여섯 아내중 둘이나 처형해서
무시무시한 동화 푸른 수염의 모델이 되기도 했던 헨리 8세
하지만 아내들과 토마스 모어. 토마스 크롬웰 등을 무자비하게 처형한 것에 비하면
위대한 군주이고자 했고, 국민들에게는 폭정을 가하지 않았기에
인기가 나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중년이후 몸집이 불었을 때의 초상화만 보시고 실망하신 분들도 많으신데
18세로 왕위에 오른 헨리 8세는 젊은 시절엔 매력있는
청년왕으로 유럽의 패션리더였다고 합니다.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수십년을 산 아내와 이혼하고, 교황청과 적이 되면서 앤 불린과 재혼하고,
힘들게 결혼한 앤 불린을 처형하고 다시 제인 세이모어와 결혼을 거듭합니다.
그렇게 열망하고, 어렵게 얻은 아들 에드워드에게 왕위를 물려주는데는 성공하지만
병약했던 에드워드 6세 (재위 1547 - 1553)는 왕이 된지 6년만에
16살의 어린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영국의 왕위는 에드워드의 사후 헨리8세의 첫왕비 캐서린의 딸 메리공주에게 가게
되죠 .
그녀가 바로 Bloody Mary (피의 메리)로 불리는 메리 1세 (재위 1553 - 1558)
그리고 메리여왕 역시 재위 5년만에 죽게 되자
25세의 나이로 영국 왕위를 물려받은 것이 딸 엘리자베스 공주였어요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
그녀가 바로 엘리자베스 1세 (재위 1558∼1603) 여왕입니다
헨리는 공주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일을 결코 원하지 않았었지만
영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주로 꼽히게 된 것은
그의 아들이 아니라 그의 딸, 그것도 그가 한 때 뜨겁게 사랑했고
아들을 낳지 못하자 간통의 누명을 씌워 처형했던 여인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였습니다

Elizabeth I ( 1533.~1603.3.23 )
재위 1558∼1603
그녀가 태어났을 때 그 떠들썩한 이혼을 감행하며 왕자의 탄생을 열망했던
헨리 8세의 실망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아기때 어머니 앤 불린은 간통죄로 처형되고,
왕위 계승권도 박탈되고 런던탑에 유폐되기도 했던 힘든 소녀시절을 보냈죠.
하지만 남동생인 에드워드,언니인 메리에 이어
25살에 영국의 여왕이 되어 반세기가 가깝게 영국을 통치한 엘리자베스,
그녀는 그 어떤 아들도 더 뛰어날 수 없는
여왕이 통치할 때 영국이 번영한다는 전통을 세운
영국 역사상 최고의 군주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