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9회차 지리종주 만복대구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하는 날,
함양휴게소에 닿으니 01시다.
오늘따라 유명기기사님 애마가 신들린 듯 날개를 단 듯하다.
휴게소 넓은 광장은 대형화물차량으로 가득하고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있다.
하늘은 흐린듯 별빛이 보이질 않는다.
88고속에서 지리산IC진출해 인월사거리 5분후 부산팀 2명이 합류한다.
깊이 잠든 지리산 며칠 전 내린 빗님 덕인지 뱀사골 구르는 물소리가 제법이다.
달궁을 지나고 곡예하는 손놀림이 아슬아슬 길타기에 부산하다.
03시가 채 안되어 섬삼재에 닿으니 많은 차량들이 가득하다.
벌써 산행준비와 출전 선위에 서있는 산객들이 잔뜩 찌푸린 하늘아래 지리 산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반대 방향인 만복대구간으로 되돌림을 하여 오늘을 열고 있다.
숭고한 마음으로 입산을 한다.
비온 후 촉촉한 땅기운이 매우 상쾌하다. 숲에서 풍기는 녹음과 자연의 숨결이 미풍 속에 은은한 향기를 발한다. 표현하기 어려운 향기로운 감각!...
어디에서 왔을까? 아주 먼 곳에서 왔을까? 아니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왔을까?
삼섬재를 출발 만복대-정령치로 향하는 대간 열차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선 제등행렬이다. 밤하늘에 별들이 일렬로 늘어서 봉을 넘고 숲 터널을 빠져나오고 완만한 능선을 가로질러 파도치듯 오르내리는 반짝이는 밤 열차는 누구나 한번쯤 승차하고 싶은 백두대간 야간제등열차다.
전방에서 보이는 불빛하나 차츰 가깝게 다가온다. 묘봉치를 4-500m 남긴 지점 전방의 불빛이 근사치다. 스치는 찰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이대용대장이다. 솔로로 태극종주를 하고 있다. 이대장은 인월에서 덕두-바래봉-고리봉-만복대를 경유했고 나와 대우건설 백두대간종주대는 성삼재출발해 이곳 묘봉치 부근에서 해후한 것이다. 서로 헤어져 불빛이 멀어지며 무사히 태극종주 종료하고 복귀하기를 기원한다.
거센 숨을 토하며 능선을 오른다. 오늘도 어김없이 잿빛 울상인 하늘이건만 세상은 어둠을 물리치고 자연스레 밝아온다. 하나 둘 계속해서 만복대에 오른다. 사방으로 거침이 없다. 우리는 오늘 만복대에 아침을 열고 맞이하며 새 역사를 기록한다. 오늘구간 중 만복대는 제왕이며 제왕인 만복대에 오르니 기분 또한 제왕이다. 허나 없어진 탑은 오늘도 돌아올 줄 모르고 제왕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서부지리산! 지도상 분배를 한다면 벽소령 기점으로 천왕봉을 위시한 동부 지리산과 반야봉의 서부 지리산으로 나눌 수 있다. 지금은 노고단 아래 성삼재 까지 도로가 개설되어 편리한 지리종주를 쉽게 계획하고 실행하나 화엄사 또는 심원지역에서 거슬러 올랐던 기억이 옛 일로 잊히고 있다. 서부지리산 속에 성삼재에서 이어지는 만복대-정령치-고리봉-고기리의 대간과 세걸산-부운치-팔랑치-바래봉-덕두산으로 떨어지는 서부권역 남북능선이 있다. 만복대는 이 지역 대들보이며 민둥 위에 솟구친 힘이 맏형다운 믿음이 역력하며 제일의 억새군락지로 정평 되는 곳이다. 성삼재(性三峙)는 각기 세 성 밭이 장군이 주둔하여 지켜다하고 정 장군이 파견된 정령치! 병사 8명이 수비했다하여 팔랑치! 그 아래 심원의 달궁(達宮)은 마한 왕조의 후손이 궁전을 짓고 살아다 한다. 대간 능선 남으로 산동골은 대규모 온천랜드가 들어서 있으며 철쭉제가 열리는 세걸산-팔랑치-바래봉은 연분홍 화사함이 무색하리만큼 인산인해다.
만복대를 뒤로하고 싱그러운 잎으로 갓 치장한 숲길을 내려온다. 바람이 일며 가는 빗소리가 나뭇잎을 흔든다. 적당한 곳에서 비옷을 입고 자동차가 다니는 지방도 정령치에 닿으니 우리 앞서가던 3인이 휴게소 정문 아치아래에서 아침을 서두르며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비는 계속 뿌리고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이 일사 분란하다. 계속된 회차에 준비하는 것도 대비하는 것도 차츰 익숙해져 간다. 그렇게 아침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우리를 성삼재에 내려준 우리의 애마가 정령치에 출현이다. 우리는 산행을 하고 유기사는 성삼재 내려와 적당한 곳에서 잠을 청한 후 날이 밝아 이동 중인 것이다.
☞정령치:서산대사 화령암기 기록은 기원전84년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에게 성을 쌓고 지키게 하였다 한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침을 정령치에서 마치고 화사하게 피어 있는 철쭉의 안내를 받아 고리봉에 서있다. 가랑비는 뿌릴 듯 말듯 변죽을 울린다. 부산미녀와 헤어져 가파른 능선 미끄럼을 주의해 자연소나무 군락지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고기삼거리 선유산장앞에 떨어지니 우리의 애마가 문을 활짝 열고 대기하고 있다.
우리는 60번도로를 종행한다. 끊어질듯 민족의 길이 아니 백두대간 하늘길이 수난을 맞이한 한곳이다. 산허리는 잘리고 파헤쳐 개간한 땅이요 도로이다. 그래도 이곳 고기리-덕치는 예쁘게 봐줄 수 있는 곳이다. 이제 우리는 아픔에 신음하는 우리의 친구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보고지고를 할 것이다.
양쪽 논 모내기를 마친 중앙 도로에서 동은 낙동강이요 서는 섬진강임을 일러주고 덕치리 노치샘 가득 담은 파아란 샘물을 들이키며 지난 2회차 수정봉-고남산 구간 흰 눈을 생각하니 웃음이 가득 피어오른다.
☞가재마을당산:마을뒷편 아름드리 五松과 堂位가 있다. 마을의 안위와 시화풍년을 비는 곳이다. 석축과 화강석으로 천룡인(天龍亻垔)토지신위(土之神位)가 새겨있다.
노무현(盧武鉉, 1946년 음력 8월 6일(양력 9월 1일) ~ 2009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법조인으로,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이다. 본관은 광주(光州).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출생하여 사법고시 합격 후 판사생활을 하다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였다. 정치에 입문해 부산과 서울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전임 김대중 대통령 임기 동안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하고,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4년 3월 국회로부터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탄핵 소추를 당해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었으나 같은 해 5월,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돼 대통령 직무에 복귀하였다. 2008년 2월 25일, 5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고향인 경상남도 김해시의 봉하마을로 돌아갔다. 2009년 노건평 등 일가친족이 연루된 뇌물수수 사건이 발생하여 검찰이 수사에 나섰고, 2009년 4월 30일 서울에 올라가 검찰 조사를 받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3번째로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게 된 인물로 기록되기도 했다. 2009년 5월 23일 컴퓨터에 유서를 남기고 사저 뒷산에서 투신,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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