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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추억과 그리움, 그리고 애향의 노래
-이명흠 시집 『어머니의 바느질』을 중심으로
강 경 호
(문학평론가, 계간《시와사람》 발행인)
이명흠 시인은 장흥의 현역 군수로 거의 유일한 군수 출신 시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문학특구로 만든 장본인이다. 이러한 그의 이력은 이명흠 시인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짐작하게 한다.
오늘날 21세기는 문화와 예술의 시대라고 자주 말을 한다. 그럼에도 그 말에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명흠 시인은 문화·예술 중에서도 특히 문학을 다양하게 콘텐츠화 시키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 행정가로서의 새로운 면모화 함께 문단현장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며 시를 창작하고 있으니 행정가와 문화예술인의 모범을 실천하고 있는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서정시, 즉 재래적 서정시는 자연과의 교감, 향토성의 수용, 인간성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 동양적 정신주의의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특징들이 빚어내는 효과를 이형기는 ‘부드러움’이라고 요약했다. 그 부드러움은 인간 심성의 순화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점에서 전통적 서정시의 생명력을 지탱하는 핵심적인 요인으로 평가될 수 있다. 또한 전통적 서정시의 특징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세계, 즉 향수를 자아내는 세계이다. 향수에 젖어 그려보는 고향은 긍정적인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서정시는 상처와 소외의 그늘을 극복하는 치유의 힘을 보여주기도 하며 불화와 모순, 그리고 부조리를 화해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이명흠의 시는 지극히 이러한 서정시의 범주에서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이명흠 시인의 처녀시집 『어머니의 바느질』은 제4부로 꾸며져 있다. 이는 작품의 경향별로 나누어진 것인데, 그의 시적 관심사를 들여다보게 한다.
제1부는 주로 유년의 기억을 더듬으며 궁핍한 시절의 순수함과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환기시키고 있다. 제2부는 아내를 잃은 지아비로서의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아프게 그려내고 있다. 제3부는 그의 고향 장흥의 역사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애향심을 노래하고 있다. 제4부는 감수성을 통해 자연과 사물에 대한 서정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명흠 시인의 시세계를 보도록 한다.
제1부는 ‘가난한 유년의 모습’을 담담히 회고하고 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궁핍하고 외로운 소년의 모습을 통해 아들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어머니의 모성이 아프게 그려져 있다. 6·25전쟁 때 행방불명 된 아버지,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를 오직 한 장 남은 단체사진에서 바라보며 그리워한다. 또한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광주로 이사하여 바느질하며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한 어머니의 모습을 애잔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그러나 편치 않은 삶의 질곡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 ‘가난’과 ‘소외’를 극복하는 소년의 꿋꿋하고 긍정적인 대견스러움을 독자들에게 따스하게 전해준다.
단체사진 찍을 때마다
기억 속에 없는 아버지 생각난다
일본군 해군훈련소에서 기념촬영한
단체사진 속의 낯선 얼굴,
생각날 때마다 자주 들여다 보며
그리움 삭혔던 사진 속 아버지
학교 소풍가서 단체사진 찍을 때
수학여행 가서 단체사진 찍을 때
졸업사진 찍을 때마다
등산가서 단체사진 찍을 때
공직에서 단체사진 찍을 때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나를 닮은 얼굴 떠오른다
단체사진 속이라
워낙 작아보이는 얼굴
이제는 침침해 잘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아니, 어디에 놔두었는지 알 수 없는 사진
그러나 내 생각속에 각인된 흑백사진 속
나보다 더 젊은 앳된 훈련병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나는 단체사진을 많이 찍으며
6·25 때 행방불명이 된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단체사진」 전문
인간에게 유년의 정서적 사건은 평생을 두고 작용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특히 이명흠 시인의 시 속의 화자는 대부분 화자가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 자신이 체험한 정서를 화자의 입을 통해 독자들에게 들려줄 뿐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화자는 독립된 개체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위의 「단체사진」도 시인 자신의 생체험을 시화한 것이다.
화자는 단체사진을 찍을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이 세 살 때 6·25 전쟁 와중에 행방불명 되었기 때문에 기억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나 감정이 없다. 철이 들어 “일본군 해군훈련소에서 기념촬영한/단체사진” 한 장만 달랑 남겨 놓았기 때문에 화자가 아버지를 만나는 일은 구체적인 기억이 아니라 “단체사진 속”에서 뿐이다. “생각날 때마다 자주 들여다 보며/그리움 삭혔던 사진 속 아버지”인 것이다. 사진 속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화자는 자신이 아버지를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을 것이고, 아버지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아버지가 계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쩌면 성냥개피 꼬투리만한 단체사진 속의 작은 얼굴을 통해 아버지의 부재와 자신의 존재를 오랫동안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체험을 간직한 채 화자는 “학교 소풍 가서” “수학여행 가서” “졸업사진 찍을 때” “등산 가서” “공직에서 단체사진 찍을 때” 자신을 “닮은 얼굴 떠”올리곤 했던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 화자 자신보다 “더 젊은 앳된 훈련병의 모습을 그리워” 한다. 비록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이지만 자신의 존재와 근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이명흠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사진을 소재로 한 또 다른 작품 「흑백사진」이 있다. 이 작품도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유년의 모습을 통해서 옛날을 반추한다. 광주로 이사 가기 전에 같은 반 아이들과 찍은 사진이다. 그 속에는 몇몇 친구들과 이름이 생각 안 나는 친구들의 얼굴이 있다. 오늘날 친구들 중에는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여지껏 화자는 옛 친구들을 마음 속에서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세월이 많이 흘러 “친구들도 늙어가고” 보리처럼 새파랗던 친구들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희끗희끗 해지고 있”는 격세지감을 토로하고 있는 내용들 담고 있다.
다음 작품 「어머니의 바느질」은 홀어머니와 광주에 와서 궁핍하게 살면서도 모자의 정을 따스하게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편이다. 어렵게 살았지만 삯바느질 하면서도 아들을 잘 키우겠다는 어머니의 열정도 함께 느껴진다.
바느질 솜씨가 좋은 어머니는
한복집에 나가 일꺼리와 품삯을 받아 오셨다
동명동 셋방에서 살 때였다
어머니는 금동시장 한복집에 가시고
집에 혼자 남은 나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우산을 들고 찾아가려 했다
빗물이 넘쳐 집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더욱 어머니가 걱정되어 우산을 들고 집밖으로 나갔다
넘쳐나는 물 때문에 갈수가 없어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비를 다 맞고 밤늦게 돌아오신 어머니를 보자
나는 또 다시 엉엉 울어버렸다
어머니는 내가 잠이 들자
잠든 나를 바라보시며 눈물을 훔쳤다
당신은 옷소매가 터지고
버선이 닳아지고
허허롭게 마음에 구멍이 새어도
찬바람이 새는 아들의 바지를 기우고
터진 아들의 밥그릇을 기우고
찢어진 아들의 고무신을 기우고
낮이나 밤이나
어머니는 내 생을 튼실하게
한땀 한땀 바느질 하셨다.
-「어머니의 바느질」 전문
이명흠 시인의 어머니가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기 위해 광주 동명동에 셋방을 얻어 살던 때의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그때 금동시장 한복집에 삯바느질 하러 가곤 했나보다. 그런데 비오는 날 어머니가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시지 않자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화자는 우산을 들고 마중을 가려 한다. 그러나 빗물이 넘쳐 나가지 못한다. 안절부절 하던 화자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우산을 들고 집밖으로 나갔다” 그런데도 “넘쳐나는 물 때문에 갈 수가 없어/울어버렸다” 그날 “비를 다 맞고 밤늦게 돌아오신 어머니를 보자” 화자는 “또 다시 엉엉 울어버렸다” 어머니를 걱정하는 화자의 모습이 눈물겹게 아름답고 안쓰럽다. 어머니는 울다가 잠든 어린 아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다. 참으로 뜨거운 모정이 느껴진다. 그런 어머니는 “옷소매가 터지고/버선이 닳아지고/허허롭게 마음에 구멍이 새어도” “아들의 바지를 기우고/터진 아들의 밥그릇을 기우고/찢어진 아들의 고무신을 기우”셨다. 오직 아들이 잘 되기만을 일평생 소원으로 삼은 것이다. 화자는 어머니와 같이 살던 때를 추억하며 아프게 유년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러한 어머니의 모성 때문에 자신이 오늘날 흐트러지지 않고 인간답게 살고 있다고 인식한다. 즉 “낮이나 밤이나/어머니는 내 생을 튼실하게/한땀 한땀 바느질 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 시집 『어머니의 바느질』의 제1부는 주로 유년의 자전적인 일화를 시로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어머니와의 정서적인 체험을 시화시킨 경우들이 많은데 다음 작품은 서당에 처음 나간 날의 생체험을 통해 오늘날 학교 교육의 모순, 또는 예절을 모르는 요즘 아이들을 꾸짖는 내용을 담아내고 있어 의미있게 다가온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서당에 다녔다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서당에 가던 날
서당 근처 산모퉁이에서
서당 훈장님께 절하는 방법을
외사촌 이재이 형님이 가르쳐줬다
처음에는 어색한 절하는 법에
점차 익숙해져
훈장님께 넙죽 절을 드렸다
하늘 천 따지를 배우기도 전에,
글자를 배우기도 전에
처음 배운 절하는 방법
두 손 땅바닥에 모으고
항복하듯이 온몸을 굽혀
머리 숙여 하는 절,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그것도 모자라 학원에서 과외를 받아도
머리 꼿꼿이 세운 채 멀뚱멀뚱 바라만 본다
당당해 보이지만
어쩐지 노려보는 것 같다
가을 논길을 가다가
고개 숙인 여문곡식들이
마치 절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곡식들을 보면
마음이 착해지고 순해지고
서당에 처음 나간 날처럼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우러난다.
-「서당에 처음 가던 날」 전문
시인의 어머니는 아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서당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사람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어머니는 아들을 서당으로 보낸 것이다. 아들이 서당에 처음 가던 날, 서당 근처 산모퉁이에서 “서당 훈장님께 절하는 방법을/외사촌 이재이 형님이 가르쳐” 준다. 장유유서(長幼有序)와 스승과 제자 사이의 분별을 가르쳐 줌으로써 예의있는 사람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예부터 스승을 공경하는 마음을 심는 교육의 해왔겠지만 오늘날 스승과 제자 사이를 생각하면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대목이다. “처음에는 어색한 절하는 법”이었지만 “점차 익숙해져/훈장님께 넙죽 절을 드렸다” 지식을 배우기 전에 인간의 예의를 먼저 배운 셈이다. “두 손 땅바닥에 모으고/항복하듯이 온몸을 굽혀/머리 숙”이는 일은 결코 ‘항복’하는 일이 아니다. 낮아지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머리를 숙임으로서, 낮아짐으로써 더 높아지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그것도 모자라 학원에서까지 공부를 하지만 “머리 꼿꼿이 세운 채 멀뚱멀뚱 바라만 본다” “어쩐지 노려보는 것 같”은 것이다. 그러면서 화자는 사람이 아닌 “고개 숙인 여문곡식들이/마치 절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어 “그 곡식들을 보면/마음이 착해지고 순해지고/서당에 처음 나간 날처럼/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우러난다.”고 고백한다. 이 작품에서 화자는 곡식보다 못한 요즘의 세태에 대해 반성하게 하고 어른을 공경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제1부에서는 유년에 가난했지만 굴하지 않고 꿋꿋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주된 메시지인데 이밖에 「눈길」에서는 이청준의 소설 「눈길」을 모티브로 하여 어머니에 대한 사모의 정을 보여주고 있어 이채롭다.
제2부는 이명흠 시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과 그리움의 정서를 토로하고 있다. 시인의 아내는 비오는 날 절에 갔다 오다가 교통사고가 나 불행하게 세상을 하직하였다고 한다. 아내의 부재에 대해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시편에서 짝 잃은 새처럼 가슴 아파하며 생전에 더 잘해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와 그리움이 시편마다 사무치게 다가온다.
또 다시 장마가 시작되고
세상은 눅눅하게 젖습니다
후덥지근한 장마전선이
차가운 내 몸을 뜨겁게 감쌉니다
당신은 비를 좋아했지만
나는 그 비가 싫습니다
당신이 떠난 그 날도 비가 내렸습니다
당신은 빗소리가 좋아
비오는 날은 아이처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비가 당신을 데려가고
나만 혼자 남아
빗소리를 들으며 당신을 생각합니다
당신이 가고 난 후
내 뼛속까지 비가 스며들고
나는 고통스럽지만
당신 껴안듯이
비를 맞고 있습니다
비는 연일 내리고
내 몸속 혈관 구석구석 적시는데
당신을 향하는 마음으로
뼈를 깎는 아픔으로
그리움과 사랑으로
며칠째 장맛비를 맞고 있습니다.
-「내 몸에 내리는 비」 전문
생전에 화자의 아내는 비를 좋아했나보다. 그런데 아내는 비 오는 날 먼 길을 떠났다. 그러므로 화자는 비가 싫다. 마치 비가 아내를 데려가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화자는 비를 맞고 있다. 장마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비”를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은 두 가지이다. 비가 아내를 데려갔다는 생각 때문에 비가 싫은 것과, 아내가 현현하여 비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에 싫지만 비를 피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를 비를 맞으며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 모순된 태도는 아내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당신이 가고 난 후/내 뼛속까지 비가 스며들고/나는 고통스럽지만/당신 껴안 듯이/비를 맞고 있”다고 진술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살아있는 화자가 저 세상의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까닭이다. 이때 비를 맞는 화자의 마음은 매우 아플 것이다. 그럼에도 그 비를 고통스럽게 맞는 일이 아내를 향하는 마음이며, “그리움과 사랑”을 전하는 형식인 것이다.
현실에서 아내를 사랑한다고 그리워하는 방법을 비를 맞음으로써 고통스러워함으로써 고통과 함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내 몸에 내리는 비」이다.
다음 작품 「당신이 떠난 뒤」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당신이 땅에 묻힐 때
나도 당신과 함께 묻혔습니다
당신의 무덤에 싹이 무성할 수록
우리의 사랑이 푸르릅니다
그러나 나의 몸은 지상에 남아
당신을 그리워 합니다
저녁 무렵 현관문을 열면
미소 지으며 당신이 나를 맞을 것 같은데
나를 맞는 것은 썰렁한 냉기뿐
집안은 너무 넓고 고요 합니다
당신이 앉았던 화장대,
당신이 밥상을 마련하던 주방,
당신의 손길이 거쳤던 것들이지만
어쩐지 낯설게 느껴져 슬픕니다
나의 혼은 이미 당신과 함께 묻히고
수수깡 같은 허우대만 혼자 남아
어찌할 줄 모릅니다
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비를 맞으면 온 몸이 아파오지만
비가 오는 날은 당신이 오는 날,
그 비를 피할 수 없어
홀로 비를 맞고 있습니다.
-「당신이 떠난 뒤」 전문
“당신이 땅에 묻힐 때/나도 당신과 함께 묻혔습니다”라는 화자의 진술은 매우 충격적이다. 이는 부부가 백년 해로를 해야 하는데 아내가 먼저 이승을 떠난 날 저승까지도 같이 가겠다는 화자의 결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결의는 “당신의 무덤에 싹이 무성할 수록/우리의 사랑이 푸르릅니다”는 고백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아내와 무덤까지 같이 갔으니 죽어서도 그 사랑이 변치 않아 더욱 사랑하게 되어 저 세상인 “무덤”에 풀이 무성한 것은 그들의 사랑이 깊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내를 사랑하는 화자의 결의가 그렇다치더라도 현실적으로 화자는 “나의 몸은 지상에 남아/당신을 그리워 합니다”는 고백처럼 실제로 아내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첫 번째 연에서 화자가 아내와의 변치 않을 사랑의 다짐을 보여주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아내의 부재를 떨쳐버리지 못한다. “저녁 무렵 현관문을 열면/미소 지으며 당신이 나를 맞을 것 같은데/나를 맞는 것은 썰렁한 냉기뿐” 아내는 어디에도 없다. 대신 아내가 “앉았던 화장대”와 아내가 “밥상을 마련하던 주방” 등 아내의 손길이 거쳤던 것들 뿐이다. 아내를 따라 저 세상까지 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러나 화자는 “수수깡 같은 허우대”일 뿐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아내의 부재를 확인하고 화자는 여전히 세상에 혼자 남아 쓸쓸히 “비”를 맞고 있다. 비 오는 날은 “비”로 현현한 아내가 오는 날로 쓸쓸히, 그리고 아프게 비를 맞는 것이다.
이승을 떠난 아내를 몸서리치게 그리워하는 시인은 자나깨나 아내에 대한 생각 뿐이다. 그러다가 오가며 길에서 만난 “새”를 아내의 혼령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꿈 속에서 울어대는 새 한 마리
어찌나 슬픈지 꿈에서 깨어나
꺼억꺼억 울었습니다
몸을 비틀며 통곡 했습니다
아침에 길을 가다가
잠시 장동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길가 나무에 새 한 마리 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그 나무를 바라보니
여전히 그 새 한 마리 앉아있었습니다
꿈 속에서 만난 그 새 같았습니다
이승에서 못한 사랑을 위해
길가 나뭇가지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새가 눈에 밟혔습니다
며칠 동안 그 새가 내 꿈속으로 날아 왔습니다
이제 하늘을 나는 새
나뭇가지에 앉은 새
세상의 새를 보면 당신 생각이 납니다
당신은 육신의 옷을 벗고
자유로운 새가 된 것일까요
여행 한번 같이 못간 지아비를 원망하며
훨훨 하늘을 날다가
내 생각이 나면 내 꿈속으로 날아왔다가
내가 가는 길목에 앉아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는 것일까요
이제 내 머릿속에는
아주 어여쁘지만
왠지 슬퍼보이는 새 한 마리 들어앉아
나를 골똘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새 한 마리」 전문
아내를 잊지 못하는 화자는 꿈속에서조차 아내를 생각한다. 꿈 속에서 만난 것은 슬프게 울어대는 새였다. 그래서 화자는 꿈에서 깨어나 “몸을 비틀며 통곡”한다. 그런데 “아침에 길을 가다가/잠시 장동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나무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를 본다. 돌아오는 길에서도 여전히 나무에 앉아있는 새를 발견하며 화자는 “꿈 속에서 만난 그 새”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화자는 그 새가 “이승에서 못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로 현현한 것이라고 믿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뿐만 아니라 며칠 동안 화자는 새를 잊지 못한다. 화자는 다시 꿈 속에 새가 날아오는 것을 체험한다. 그러므로 화자는 세상의 모든 새를 볼 때마다 아내의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화자는 생각이 깊어진다. 아내가 “육신의 옷을 벗고/자유로운 새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내가 새가 된 것은 “여행 한번 같이 못”갔기 때문에 죽어서 새가 되어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며, 그러다가 남편이 생각나면 화자인 남편의 꿈 속으로 날아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제 화자는 머릿속에 새 한 마리가 들어와 있다. “아주 어여쁘지만/왠지 슬퍼보이는 새”인데 화자를 “골똘하게 바라보”는 새이기도 하다.
이 작품 속의 새는 현실적으로 화자와는 아무 상관없는 새일 것이다. 화자가 상상해 낸 새로 화자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한 마음이 반영된 정서 속에 존재하는 아내의 혼령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시인의 상상력이 만든 ‘아내의 혼령=새’라는데 의심하지 않는 것은 화자의 절실함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이명흠 시인의 사부곡(思婦曲)은 다양하게 펼쳐진다. 길을 가다가 쇼윈도우에 진열된 옷을 보면 아내가 생각나고(「당신의 옷」), 아내의 죽음을 알지 못한 사람으로부터 아내의 안부를 전해올 때의 참담함(「여행 떠난 당신」), 그리고 31년을 같이 살다 일찍 떠난 아내에 대한 무정함(「31년 세월」), 아내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만년산(「만년산」), 아내가 없는 세상을 혼자 살아가야 하는 막막함(「세월아, 가거라」) 등이 제2부 곳곳에 아프게 살아있다.
제3부는 장흥의 역사성과 오늘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때로는 장흥의 설화를 통해, 때로는 토요시장이나 천관문학공원, 그리고 석대들, 장천재의 태고송을 통해 시인의 예민한 시적 촉수가 번득이는 서정을 아름답게 풀어내고 있다.
먼저 장흥의 설화를 시로 형상화한 작품을 읽는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스님의 말씀도 잊은 채
살려달라는 고약한 시아버지가 안잊혀
뒤돌아보다가
어린아들을 업은 채
억불산 바위가 된
슬픈 며느리바위 사연
박림소, 옛마을을 바라보는
며느리와 개동이를
장흥사람들은 잊지 못하여
며느리바위 바라보며 마음 아파 한다네
갑자기 날씨가 궂을라치면
홍수에 휩쓸려 갈까 걱정되어
순박한 장흥 사람들은
혹시 지은 죄 없나 생각하다가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또다시 다짐을 한다네.
-「며느리바위 전설」 전문
장흥읍내 북동쪽에는 산이 둘러쳐져 있다. 억불산, 제암산, 사자산이 그것들이다. 모두가 설화가 깃든 산들로 오랫동안 장흥을 굽어보며 장흥사람들과 함께 해 온 이 산들에 대한 사랑은 장흥사람이면 모두가 각별하다. 그 중 뾰족해 보이는 산이 억불산인데 읍내에서 바라보면 산 중턱 왼쪽이 돌출해 있다. 이것이 며느리바위이다.
고약한 시아버지를 벌주기 위해 노아의 방주처럼 홍수가 났다. 며느리와 그의 아들 개동이가 피신하다가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잊은 채 살려달라고 외치는 시아버지를 뒤돌아보다가 바위가 되었다는 슬픈 전설을 간직한 것이 며느리바위이다. 전설 속에서는 며느리가 살았던 마을이 오늘날 “박림소”라는 곳인데 마치 며느리와 손자 개동이가 옛 마을을 바라보는 형국으로 서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전설의 내용을 알고 있는 장흥사람들은 며느리바위를 볼 때마다 “혹시 지은 죄 없나 생각하다가/착하게 살아야겠다고/또다시 다짐을 한다”는 것이 「며느리바위 전설」의 메시지이다.
전설에는 옛 사람들의 소망과 정신이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며느리바위”에 깃든 장흥사람들의 소망과 정신은 슬픈 전설을 통해 ‘착하게’ 그리고 ‘죄 지음 없이’ 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장흥 출신의 시인으로서 이명흠 시인은 그 오래된 정신을 시로 형상화시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으로 다시금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교훈을 환기시킨 것이다.
전설을 시로 형상화시킨 이명흠 시인의 작품으로는 「천관산」이 있다. 이 작품은 권선징악의 내용은 아니지만 「며느리바위 전설」처럼 비극적이다. 삼국통일을 완성한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사랑했던 여인 “천관녀”와의 비극적인 사랑을 통해 남녀의 애틋하면서도 안타까운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고향의 전설에서 장흥사람들의 정신을 담아내는 시인의 애향심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의 고향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석대들에서」, 「장천재 태고송」, 「청태전」 등의 시편에서는 장흥의 역사성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토요시장 풍경」, 「정남진」, 「물의나라 장흥」, 「봄, 제암산에서」 등에서는 장흥의 서정을 노래하고 있다.
먼저 장흥의 역사성을 노래한 시편을 본다.
갑오년 동짓달
그 해 겨울은 지독하게 추웠지만
참으로 따뜻했네
사창에 수천 명의 장흥농민들이
살만한 세상 만들어 보자고 모여들었네
쇠시렁, 곡괭이 들었어도
총칼앞에 두려울 것이 없었네
섣달 초순, 백새에 들이닥치자
찰방이 뒤도 안 돌아 보고 줄행랑을 칠 땐
가소롭기도 했네
만 명도 더 넘는 농민들이 관아를 점령하고
그 기세를 몰아 강진, 병영을 해방시켜
좋은 세상 오는갑다고 했는데
세상은 뜻대로 안 되는 것인가
섣달 보름날
석대들에서 관군이랑 왜군과 한판을 벌였는데
평화마을, 평장마을 논밭이
온통 피로 물들였네
목숨이 붙어있는 사람들은 모두
척왜척왜를 외치며
총칼 앞에서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네
꽁꽁 얼어가는 육친의 시신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네
120년이 지난 오늘
석대들엔 보리밭만 푸르지만
구교철, 이방언, 이사경, 이인환, 문남택……
할아버지들의 영혼이 석대들 끝에서
동학혁명기념탑에 깃들어
석대들을 바라보고 서 있네.
-「석대들에서」 전문
「석대들에서」는 동학 최후의 격전지로 알려진 장흥 석대들 전투와 외세에 저항한 장흥사람의 정신을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화자는 도입부에서 “갑오년 동짓달/그 해 겨울은 지독하게 추웠지만/참으로 따뜻했”다고 모순된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추웠는데 따뜻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실제 날씨는 추웠지만 농민군들의 ‘살만한 세상’과 ‘척왜척왜를 외치며’ 일본에 대항한 정신이 장하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에는 구체적인 장흥의 지명들이 나오는데 “사창”, “백세”, “평화마을”, “평장마을”, “석대들”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학혁명시 활동했던 농민지도자들의 실명도 등장한다. “구철교, 이방언, 이사경, 이인환, 문남택…”이 그들인데, 이렇듯 구체적인 지명과 인명이 작품 속에 등장함으로써 작품의 리얼리티를 한층 실감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지금도 동학도들의 후손들이 살아있기 때문에 장흥에서 동학은 면면히 살아있는 장흥의 사상과 정신의 기표라고 할 수 있다. “사창에 수천 명의 장흥 농민들이/살만한 세상 만들어 보자고 모여들었”는데 “쇠시렁, 곡괭이”로 총칼 앞에 눈을 부릅뜨고 대적한다. 농민군은 오직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 관아를 점령하고 강진까지 그 세력을 넓힌다. 그러나 훈련되고 신식무기를 든 일본군과 석대들에서 싸워 장렬하게 죽음을 맞게 된다. 그 비극적인 종말은 “평화마을, 평장마을 논밭”을 온통 피로 물들였다. 섣달 보름날의 추위 속에 “꽁꽁 얼어가는 육친의 시신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참담함을 간직한 이 석대들엔 120년 전 그곳에서 흘렸던 농민들의 피가 푸르른 보리밭으로 자라고 있다. 그러니까 “보리밭”의 푸르름은 눈에 보여지는 풍경이 아니라 농민들이 흘린 피의 대가가 오늘 장흥의 빛나는 정신으로 승화되었음은 상징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농민들이 일어선 유일한 혁명으로 빛나는 ‘동학농민혁명’은 봉건에서 근대로 가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 혁명의 종말을 장흥사람들이 맞았음은 장흥사람들의 드높은 기개와 기상이 온 천하에 빛났음을 말해준다. 시인은 이처럼 빛나는 장흥의 역사 속에서 장흥의 정신을 읽어내고 있다.
한편 이명흠 시인은 「천관문학공원」에서 장흥이 우리나라 문학의 중심임을 알리기도 한다.
천관산에
천하의 문장들이 모두 모였다
어린 날 소풍처럼
숲속에서 보물찾기 하듯
나무 사이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찾는가 싶었는데
자세히 바라보니
천국에 가 있는 구상 시인이
“너의 앉은 그 자리가/바로 꽃자리니라” 하고
최근에 이북 고향을 찾아간 김규동 시인이
「희망」을 낭랑하게 낭송한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문병란 시인이
“정다운 대덕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고
소설가 최일남 선생이
대덕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시낭송 소리가 천관산 골짜기에 울려퍼지자
어느새 주변에
김해성, 허형만, 김제현, 차범석, 송기숙, 이성복,
이청준, 한승원, 전상국, 이인화, 양귀자, 박범신 등
전국의 내놓으라 하는 시인과 소설가들이 모여들어
귀를 기울이다가,
돌아가며 밤새 시를 낭송하는 것이다.
-「천관문학공원」 전문
면면히 장흥문학의 전통을 살펴보면 가히 우리나라 문학의 중심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국문학사상 기행가사의 시조인 백광홍을 비롯해 수많은 시인들이 조선시단을 장식했다. 최근까지도 규방가사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왔음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문학에도 이어져 이청준·송기숙·한승원·이승우 등 소설가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이 백여 명이 넘는 것은 장흥의 지세와 환경, 그리고 문학전통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러므로 장흥의 군수인 이명흠 시인이 전국 최초, 전국 유일의 문학특구를 조성하여 장흥을 우리나라 최고의 문학의 텃밭으로 일구고 있는 것이다.
그 문학의 텃밭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천관산에 조성한 “천관문학공원”이다. 이곳에는 전국의 내놓으라 하는 문인들의 작품비가 숲 속에 서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문학관이 자리잡고 한국문학의 미래를 육성하고 설계하고 있다.
천관산에 장흥문학의 산실인 “천관문학공원”이 있다. 시인의 말대로 이곳에는 “천하의 문장들이 모두 모”여 있다. 많은 문학비 중에는 구상 시인과 김규동 시인, 문병란 시인 등을 비롯해 소설가 최일남에서부터 박범신, 양귀자, 이청준, 송기숙, 한승원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작품비가 즐비하다. 이들의 상징은 단순히 문학비가 많이 서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국의 내놓으라 하는 시인과 소설가들이 모여들어/귀를 기울이다가,/돌아가며 밤새 시를 낭송하는 것이”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장흥이 우리나라 문학의 중심임을 암시하고 장흥문학의 희망찬 미래를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밖에도 제3부에서는 장흥의 정신을 나타내는 「장천재 태고송」, 동양명차의 전통을 보여주는 「청태전」, 마음이 둥글어서 착한 사람들이 사는 고장을 나타낸 「정남진」, 토요시장의 풍물과 장흥의 인정을 형상화시킨 「토요시장」을 노래하고 있다. 장흥의 살림살이를 이끌고 있는 수장으로서 장흥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장흥이 살기좋은 고장임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의지가 시편마다 깃들어 있다.
제4부의 작품들은 이명흠 시인이 자연과 사물과의 교감에서 얻어진 정서를 시로 형상화한 것들로 꾸며져 있다.
들판에서 외롭지만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피고 싶은 소망을 들국화라는 꽃을 통해 들려주는 「들국화」, 진실되게 살아야 함을 말해주는 「낮에 나온 달」, 나무가 겨울을 견디기 때문에 아름다운 봄을 맞을 수 있다는 「겨울 스케치」, 권력의 무상함과 욕망의 부질없음을 나타낸 「줄」, 영원한 권력이 없음을 들려주는 「해와 달」, 인간의 욕망을 고발한 「스모그」 등 다양한 시인의 미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을 모르고
그냥
물처럼 흘러가는 마음
원망하지 않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지만
그리운 마음은
당신의 화병 속
꽃이 되고 싶다
오늘은
들이나 야산 외진 곳에서
바람에 흔들거린다.
-「들국화」 전문
정치적·사회적 이념을 담고 있지 않은 이 작품은 사랑에 대한 시인의 관념이 담겨있다. 홀로 바라보는 사랑의 대상이 그 “사랑을 모르고” “물처럼 흘러가”도 화자는 “원망하지 않는다” 화자는 “들이나 야산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에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더욱 외롭다. 그러나 화자는 사랑의 대상이 그립다. 연모의 정이 깊은 것이다. 전통적인 우리나라 여성의 사랑법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차마 사랑을 전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화자의 마음이 소극적인 것이 화자의 사랑법이다. 그런 화자는 “그리운 마음”으로 “당신의 화병 속/꽃이 되고 싶”어 한다. 이 작품엔 “들국화”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들이나 야산 외진 곳에 피어 바람에 흔들거리는 들국화의 이미지를 전통적인 우리나라 여성의 사랑법으로 형상화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다음 작품 「겨울 전나무」는 조선 선비의 올곧고 강인한 정신을 노래하고 있다.
하얀 눈 속에서
우산 쓴 채
기다리는 봄
푸른 향기 머금은
잎 새의 초록웃음
하늘 향해 맺은
솔방울
곧게 뻗은
수려한 용기.
-「겨울 전나무」 전문
겨울 전나무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선비정신의 한 일면을 보여준다. “하얀 눈 속에서/우산 쓴 채” 전나무가 견뎌내는 것은 봄을 맞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추운 겨울이라는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며 “푸른 향기 머금”을 수 있고 “잎새의 초록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토를 넓힐 수 있는 “하늘 향해” “솔방울”을 맺고 있다. 이러한 겨울 전나무의 모습을 뒤틀리지 않고 “곧게 뻗”어 있고 자태는 “수려”해 “용기”있게 서 있는 것이다.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희망’을 상징하는 “봄”이 올 것임을 믿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자신의 삶을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겨울”을 전경화시켜 노래한 시편으로 「겨울 스케치」가 있다. 이 작품 역시 추운 날씨 임에도 불구하고 대나무가 흰 눈을 짊어지고 “푸른 희망의 새싹을 키워 올리기 위해서”이다. 「겨울 스케치」는 “겨울 추위”와 “눈의 무게”를 “수행”과 “단련”의 기회로 삼고 있는데 이 또한 독자들에게 어려운 환경을 딛고 극복할 수 있음을 전하고 있다.
다음 작품은 “행복”에 대한 시인의 인식의 태도를 보여준다.
술 취한 노숙자요
여러분 보시는 것처럼 불행하지 않답니다.
당신도 노숙자 되어
빈 속에 술 한 잔 부어보세요.
아등바등 사는 세상 큰 우주가
얼마나 작아 보이는지
그러니 당신의 잣대로만 평가하지 마세요.
밥 한 끼 잘 먹는 게 무슨 대수라고
히 히……
간섭 하지마 난 행복하니까
내 세상이요, 이제 더 잃을 것도 명예도
없답니다.
오직 버티고 설다리 하나면
족하다니까요
노숙자 당신은 게으름뱅이
그러나 멋쟁이!
-「행복의 차이」 전문
“술 취한 노숙자”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은 노숙자가 ‘가엾다’, ‘게으르다’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흔히 노숙자들은 인생에서 패배한 자들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자는 노숙자에게도 “행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경제적 능력으로 행복을 평가하는 세상 사람들의 기준을 버리고 가난하지만 “더 잃을 것도 명예도/없”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등바등 사는 세상”을 “큰 우주”에서 바라보면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시인의 인생관이 “밥 한 끼 잘 먹는 게 무슨 대수”라는 인식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화자는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행복한 일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오직 버티고 설 자리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 노숙자가 되어 술 취해 있지만 절망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첨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