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온 세상이 하얗습니다.
족두리봉 설경을 보니 내 마음은 어느새 산속을 달리고 있었지요.
오전에 헬스장 다녀오고,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섭니다.
"또 산에 갈라꼬예? 조심해서 댕기오이소." 물가에 내놓는 아이 마냥 미끄러운 겨울 눈산행
나가는 영감이 영 불안한 모양입니다.
오후 3시경.
이북5도청을 지나 청운양로원 길로 접어드니 순식간에 눈앞 경치가 바뀝니다.
온 산은 백색으로 화장을 했고 나무들은 눈 무게를 못이겨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주택가도 눈속에 파묻혀 완전히 침묵의 세상입니다.
늘 산행을 서둘다 지나치기만 하던 '연화사'도 오늘은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향로봉을 배경으로 흰눈을 어리에 인 법당엔 인기척도 없습니다.
연화사를 나와 조금 오르니 '금선사 목정굴' 표지석이 서있습니다. 궁금합니다
오늘은 바쁜거 없으니 들어가 보지요.
카다란 바위굴 앞에 유리 문을 단 이곳이 '묵정굴'인 모양입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스님도 없고 신도도 보이지 않고 돌부처님만 홀로 외로이 앉아 계십니다.
굴 뒤쪽 바위에서는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굴 속을 지나 좁은 계단을 올라가니 금선사 대웅전이 나타납니다. 역시 조용~
절을 나와 산길을 오릅니다. 한발자국 옮기면 나타나는 절경, 두발자국 옮기면 또 나타나는
절경에 카메라 셔터 누르기 바쁘고 자연히 발걸음이 늦어집니다.
오늘은 앞에 숨가쁘게 쫒아가기 바쁜 조설모도 없고, 엉덩방아 찧을까봐 마음 졸일 완주도 없으니
무슨 걱정이랴. 호젓한 나홀로 눈산행은 이래서 좋습니다.
능선 너머로 족두리봉이 꺄꿍 하면서 고개를 뾰족 내밀고 반깁니다.
그런가 하면 우람한 향로봉이 오늘은 아주 조용하기만 합니다.
눈앞에 나타나는 물개 한마리. 오늘은 물속에서 나와 흰눈을 이불삼아 덮고 졸고있네요.
그런데 조금 더 윗쪽에서 보면 영낙없는 곰이네요. 물개가 됐다가 곰이 됐다가 조화를 부립니다.
북한산관리사무소에도 이 사진이 걸려있길래 물어봤더니 '곰바위'라고 부른답니다.
드디어 비봉능선에 올랐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능선에 서니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옷깃을 여미고 모자도 귀까지 내립니다.
비봉엔 아무도 없네요. 옆에서 누가 말리지 않았다면 나라도 오른뻔 했습돠.^^
비봉능선에 왔으니 우리 화백들의 점심식사 자리를 지나칠 순 없지요.
잠시 쉬면서 전에 짬송이 준 사탕을 하나 입에 넣고 다녀간다는 증거로 '영역표시'를 했습니다.
다음 산행때 눈이 녹으면 냄새가 좀 날려나?
눈을 돌리니 사모바위와 문수봉, 보현봉이 눈속에 아련하게 모습을 나타낸다.
또 뒤를 돌아보면 비봉, 치마바위 그리고 470봉도 보입니다.
사모바위. 벌써 시간이 4시가 넘었습니다. 여기서 U턴 해야 겠네요.
승가사 방향으로 하산을 합니다.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네요.
무슨 전설이라도 깃들었음직한 바위지요.
바로 이런 전설이.....
이름하여 '바위의 전설'
옛날에 어느 마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는 바위가 있었습니다.
이바위의 특징은 소원을 과거형으로 빌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뻐지고 싶으면 <이뻐져라>가 아니고 <이뻐졌네>하고 빌어야 하는거였지요.
이마을에 좀모자라는 사나이가 살았는데 소원을 빌러 산에 갔습니다.
바위앞에서 외쳤습니다 "슈퍼맨이 되어라" 하지만 변할리가 없지요.
목소리가 작아서 그런가? 이사나이는 더욱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슈퍼맨이 되어라~ 변할리가 없지요.
다른것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스파이더 맨이 되어라.
후래쉬 맨이 되어라.
배트맨이 되어라.
안 변하자 종일 악을 쓰다 집에 가려고 뒤돌아 서며 말했습니다.
.
.
.
.
.
.에이, 완전히 ㅈ됐네...
그래서 이 바위앞에는 조그마란 바위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어느정도 흐른 후 어느날, 그 조그만 바위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좀 모자라는 사나이의 자손들이 '가문의 치욕'으로 알고 몰래 캐내서 어디다 묻어버렸던 것입니다.
묻으면서 하던 말....
에이, 조까치......
그래서 후세에 '거시기'라는 후손이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믿던가 말던가.
믿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니...
하여간에 구기계곡의 설경도 너무 멋졌습니다.
눈덮인 계곡엔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들렸고요.
<끝>
첫댓글 설경 만끽한 시몽 부럽습니다. 나도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자격 미달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많았었다는 거.
혼자 갔능겨? 번개 산행 모으지 않고스리? 눈 덮힌 산이 크리스마스 카드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