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 인도(印度)에 아유타국(阿喩陀國) 이 있었다. 이 나라에 딸이 있었다. 왕은 이 딸을 사랑한나머지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신랑감을 구해 주고자 하였다. 이러는 가운데 나이가 열여섯살 이팔청춘 시집가기에 알맞는 시절이 되었다.
여기저기 사위감을 구하던 왕이 하루저녁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나는 하늘나라 상제니라 저 동쪽 먼 곳에 가락국이라는 나라가 있고 거기에 하늘에서 내려와 왕에 오른 수로왕이란 분이 있으니 아유타국 공주를 그리로 보내도록 하라. 내 말을 어기지 말지어다" 왕이 꿈이야기를 하였더니 왕비가 깜짝 놀라며 자기도 그런 꿈을 꾸었노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항해 경험이 많고 일찌기 동방에 와 본적이 있는유능한 뱃사공15명이 선발되었다. 그리고 왕이 가장 신임하던 신하 두 명을 시종케 하였다. 그 이름은 신보(申輔)와 조광(趙匡) 이었다. 또한 이들의 처(妻)는 공주의 유모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비중에서 충직한 자 20명을 선발하였다.
한편 가락국에서는 서기 48년 7월 27일에 아홉명의 중신들이 궁으로 들어가서 수로왕을 뵙고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아직 아름다운 배필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신(臣)들의 규수 가운데서 걸맞는 낭자를 가려서 궁에 들이고자 하오니 왕후로 삼아주옵소서" 하니, 왕은 "내가 이 땅에 내린 것은 하늘의 뜻이니라. 그대들의 염려할 바가 아니라"하면서 유천간(留天干)에게 영을 내려 망산도(忘山島)에서 기다리게 했다. 그때 갑자기 바다 서남쪽에서 검붉은 깃발을 펄럭이면서 북으로 떠오르는 배가 있었다.
유천간등이 망산섬에서 그것을 보고 엉겁결에 횃불을 올리니 배에 탔던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뭍으로 오르려하였다. 신귀간이 급히 궁으로 달려가서 이 사연을 수로왕에게 아뢰니 왕은 매우 기뻐하였다. 이에 왕은 아홉 중신들을 마중 보내며 아름다운 키(배의 방향을 조절하는 방향타)와 화려한 돛으로 꾸며진 배로 궁에 모셔들이도록 일렀으나 그 배에 타고 있던 공주는 따라 내리지 않았다. "나와 그대들은 익히 아는 처지가 아니니 어찌 함부로 따를수가 있겠는가" 고 하자 다급한 유천간등이 왕에 이 사연을 아뢰니 왕은 뒤늦게 시종들을 거느리고 궁의 서남쪽 산기슭으로 나가서 휘장을 두르고 그 속에 기다렸다.
이윽고 산자락 끝 별포진에 배를 대고 공주는 뭍으로 올라 높직한 언덕마루에서 한숨 돌리면서 입고 있던 비단 바지를 벗어 그것을 폐백으로 삼아 산신령에게 바쳤다. 얼마후 공주가 왕이 기다리던 자리로 가까이 다가오자 왕은 몸소 공주를 휘장 속으로 맞아 들이고 따르던 일행은 댓돌 아래서 절하고 곧 물러 났다.
그런데 왕과 더불어 침전에 든 공주는 "저는 본디 인도에 있는 아유타국의 왕녀로서 성은 허가요 이름은 황옥으로 올해 나이 16세이옵니다. 지난 5월 본국에 있을 때 부왕께서 어머니와 함께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가락국의 수로왕은 하늘이 내려 왕의 자리에 앉게 된 성스러운 인군으로 새로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으나 아직 배필을 얻지 못하고 있으니 그리로 가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사연으로 저는 바다를 건너서 이곳에 와서 아녀자의 몸으로 이렇게 뵙게 된 것이옵니다." 라고 말했다.
왕은 이에 답하기를 "나는 나면서 성스러운 사람으로 미리 왕녀가 먼 곳으로부터 찾아 올 것을 알고 있었으며 신하들의 간택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소. 이제 아리따운 그대가 몸소 찾아 들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소" 라고 하면서 2박 3일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이윽고 8월 1일 본궁으로 들어갈 때 왕과 공주는 한 연(가마)을 타고 궁에 당도하게 된 것은 정오였다. 왕후를 맞은 수로왕이 그로부터 나라의 옛 제도를 새롭게 고치고 나라 안을 잘 다스릴 뿐만 아니라 백성 사랑하기를 아들처럼 하여 그 교화가 엄하지 않았으면서도 위엄이 따르고 그 다스림은 너그러우면서도 잘 이루어졌다 한다. 왕과 왕후의 금실은 흡사 하늘이 땅을, 해가 달을 그리워 하고 밝음이 어두움을 짝짓듯 했다고 전한다. 왕후는 아들 10형제와 공주 자매를 두고 189년 3월 1일에 이승을 떠났다.
백성은 땅이 꺼진 듯한 크나큰 슬픔 속에 구지봉(龜旨峯) 동북 언덕에 장사 지내고 그녀가 백성을 사랑했던 은혜를 저 버리지 않고자 처음 배에서 내린 도두촌을 주포촌으로, 비단바지를 벗었던 높은 언덕을 비단고개로, 그리고 검붉은 깃발을 휘날렸던 바닷가를 기출변으로 고쳐 부르기도 하였다.
지금의 김해지방에는 허황옥(許黃玉) 왕후가 도착하여서 김수로왕과 혼인한것이 수 많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한다. 이들 사이에 왕자 열명과 공주 자매가 있었는데 맏아들은 제2대 왕이 되었고 두번째와 세번째 왕자는 허 왕후의 성을 따라 허씨(許氏)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그리하여 서로 형제간이라 할 수 있는 김해김씨(金海金氏) 전부와 양천허씨(陽川許氏).태인허씨(泰仁許氏). 하양허씨(河陽許氏). 김해허씨(金海許氏) 그리고 허씨로부터 분관되어 나온 인천이씨(仁川李氏)는 서로 혼인(婚姻) 하지 않는다. 허(許) 왕후의 후손이 현재 70대(代)에서 80代 사이인데 그 촌수(寸數)가 150촌 친외가가 되는데도 동성동본(同姓同本)의 금혼(禁婚)을 시키는 것이다.
출처 양천허씨대종회
출처 : 왕실과 황실의 역사▶역사지식Cafe | 글쓴이 : 지 기ノ인 현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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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6가야 설은 고려 초의 전승이고, 실제로는 10여 개국 이상의 가야소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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