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 이준관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꽃밭이 내 집이었지
내가 강아지처럼 가앙강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마당이 내 집이었지
내가 송아지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녔을 때
푸른 들이 내 집이었지
내가 잠자리처럼 은빛 날개를 가졌을 때
파란 하늘이 내 집이었지
내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내 집은 많았지,
나를 키워 준 집은 차암 많았지
오는 길 / 피천득
재잘대며
타박타박
걸어오다가
앙감질로 뛰어오다가
깔깔대며
베틀베틀
쓰러집니다.
* 앙감질 : 한발로 뛰는, 비슷한 말. 깽깽이걸음.
여름에는 저녁을 / 오규원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 위에느
멍석
멍석 위에는
환한 달빛
저녁을 먹는다
숲속에는 바람이 잠들고
마을에서는
지붕이 잠들고
들에는 잔잔한 달빛
들에는
봄의 발자국처럼
찬란한
풀잎들
마을도
달빛에 잠기고
밥상도
달빛에 잠기고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밥그릇 안에까지
가득 차는 달빛
아! 달빛을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나무 / 박두순
해마다
조금씩
조금씩
뒤꿈치를 들어
키를 높여요
별을 긷지요 / 김종상
우물에 가라앉은
하늘 한 자락
저녁 노을 사라지고
별이 뜨지요
퐁당퐁당
물무늬 속에
영이의 두레박이
별을 긷지요
종종걸음 돌아가는
작은 동이에
별들이 찰랑 찰랑
담겨 가지요
'그 여자'도 이따금 물을 길어 동이 가득 이고 고샅길로 종종걸음을 쳤다. 똬리 끈을 입에 물고, 동이 가득한 물이 남실거리다가 동이에 물이 넘쳐 흰 이마로 흘러내려 긴 속눈썹에 걸리면, 그 여자는 한 손으로 이마 위 머리칼에 맺힌 물방울들을 거두어 뿌렸다. 그 여자의 흰 손을 떠난 그 작은 물방울들이 산으로 날아가 꽃으로 피어났다. 자운영꽃이 되기도 하고, 하얀 눈이 되어 나무 위에 얹히기도 했다. 그 희고 고운 손길 끝에서 피어나던 꽃은 때로 별이 되어 내 이마에 떨어졌다.
찔레꽃 / 이원수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남 모르게 가만히 먹어 봤다오
광산에서 돌 캐는 누나 맞으러
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하얀 찔레꽃 따 먹었다오
우리 누나 기다리며 따 먹었다오
집오리 / 권오훈
우리 속에
날 왜 가둬
왜
왜
왜
왜
문 열어주면
넓은 세상 빨리 가자
갈
갈
갈
갈
연못에 뛰어들어선
어, 시원하다
어
어
어
어
수양버들 / 김영일
수양버들
봄바람에
머리 빗는다
언니 생각난다
벚꽃축제 장원 시
벚꽃(초 1)
벚꽃이 참 예쁘니다
벚꽃을 보면 이모 생각이
남이다
벚꽃축제 장원 시
언니 / (초 1)
언니가 쿨쿨 코를 고라요
코굴코굴 참 시끄러워요
숨이 팔딱팔딱 뛰어요
동시를 안 쓰고 잤어요 언니가요
꽃씨 / 최계락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면서 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 떼가 숨어 있다.
목장 / 로버트 프로스트
목장의 샘을 치러 나갑니다
가랑잎을 긁어내기만 할 거예요
물이 맑기까지 기다릴지도 모르죠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함께 가실까요
어린 송아지를 데리러 나갑니다
어미 소 옆에 서 있는 게 너무 어려서
어미가 핥아주면 비틀거리죠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함께 가실까요
로버트 프로스트, 로버트 캐내디 대통령 취임식장에ㅔ서 시를 낭송해서 더욱 유명해진 시인. 그의 시중에서 나는 이 시르 제일 좋아한다. 물론「가지 않은 길」도 있지만, 「목장」은 전원시의 전형이다.
송아지는 어미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일어서서 걷는다. 어렸을 때 외양간에서 소가 새끼 낳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송아지가 어미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비칠비칠 일어나 걷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란 적이 있다. 송아지가 파란 강변에서 뛰놀며 강아지들과 장난하는 모습은 참으로 평아로운 풍경이었다. 개가 송아지를 쫒다가, 다시 송아지가 개를 쫒는 소리, 욕하는 소리가 선천을 쩌렁ㅉ렁 울렸을 것이다. 그 중에서 무지무지 욕을 잘하는 위리 뒷집 할머니는 송아지가 자기 욕을 알아듣든 말든 송아지와 송아지 주인을 싸잡아 벼락치는 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어찌나 큰 소리로 욕을 하던지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송아지가 우뚝 서서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함께 가실까요'는 이 시가 빛을 발하는 구절이고, 우리 삶이 환한 꽃처럼 빛날 수 있는 말이다. 소와 강아지가 장난을 치고 있는 너른 강변으로 소를 가지러 가고 싶다.
봄편지 / 서덕출
연못 가에 새로 핀
버들 잎을 따서요
우표 한 장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작년에 간 제비가
푸른 편지 보고요
대한 봄이 그리워
다시 찾아 옵니다.
일제 강점기에 쓰인 이 「봄편지」를 나는 초등학교 때 배웠다. 이 시를 가르친 선생님은 '새로 핀 버들 잎' '제비' '푸른 편지' '대한 봄이 그리워' 라는 말이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우리 민족의 '해방'을 노래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흔들리는 마음 / 임길택
공부를 않고
놀기만 한다고
아버지한테 매를 맞았다
잠을 자려는데
아버지가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는 턱
눈을 감고 있으니
아버지가
내 눈물으 닦아 주었다
미워서
말도 안 할려고 했는데
맘이 자꾸만 흔들렸다
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나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드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께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오우가 / 윤선도
배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빛이 맑다 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이 많다
맑고도 그칠 때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른 듯하다 누렇게 되나니
아마도 변치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구천에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밤중의 생명이 너만한 게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십 리 절반 오리나무 / 봉산 지방 전래 동요
십 리 절반 오리나무
열아홉에 스무나무
마흔아홉에 쉰나무
아흔아홉에 백자나무
방구꿨다 뽕나무
아이 없었다 자작나무
꾹찔렀다 피나무
에라, 그럼 너는 너도밤나무, 거짓말하지 마라 이놈아, 참나무, 찔레 먹다 찔려 아이쿠 피 나네 찔레나무, 배고파 밥 생각나는데 이팝나무, 산이낳은 산딸나무, 잘못했다 사과나무, 너무 높다 딸 감나무, 너무 낮다 며느리 감나무......
길을 가다 / 이준관
길을 가다 문득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다가가 그 곁에 가먄히 서 보고 싶다
잎들이 다 지고 하늘이 하나
빈 가지 끝에 걸려 떨고 있는
그런 가을날,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내 어깨와
아기새의 그 작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디든 걸어 보고 싶다
걸어 보고 싶다
먼 길 / 윤석중
아기가 잠드는 걸
보고 가려고
아빠는 머리맡에 앉아 계시고
아빠가 가시는 걸
보고 자려고
아기는 말동말똥
잠을 안 자고.
어머니는 언제나 / 엄기원
어머니는 언제나 그러셨어요
내가 어렸을 적에
따뜻한 아랫목엔
나를 재우고
어머니는 윗목에
누우시면서
"나는 시원한 데가 좋단다"
어머니는 언제나 그러셨어요
내가 어렸을 적에
구운 생선 살코기는
나만 주시고
어머니는 뼈다귀만
빠시면서
"나는 생선뼈가 맛있단다"
이 시를 읽었다면 지금 바로 시골 어머니께 전화하라. "엄마! 엄니! 어무이! 어메! 별일없제, 나 잘 있어, 걱정마."
험난한 세상 세월을 견디며 살아오신 저 산천을 닮은 어머니, 우리 어머니,
지게꾼과 나비 / 신영승
할아버지 지고 가는 나무지게에
활작 핀 진달래가 꽂혔습니다
어디서 나왔는지 노랑나비가
지게를 따라서 날아갑니다
아지랑이 속으로 노랑나비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따라갑니다.
비, 다음에 꽃 / 김용택
날아가는 나비
저기 어디선가 깜박 꺼지네
눈을 비비며 저기 붉은 산당화 꽃 한 송이
피네
바람이 길을 묻나 봐요 / 공재동
꽃들이 살래살래
고개를 흔듭니다
바람이
길을 묻나 봅니다
나뭇잎이 잘랑잘랑
손을 휘젓습니다
나뭇잎도
모르나 봅니다
해는 지고
어둠은 몰려오는데
바람이 길을 잃어
걱정인가 봅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폴 발레리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오늘 아침 창문을 여니
멀리 잿빛의 도시 위로
하나 가득 몰려든 비바람
문을 닫고 돌아와
따뜻한 난로 옆에 앉는다
아, 나의 앞에는
얼마나 거친 시간들이
준비되어 있는 것일까
누군가가 말했듯이
바람이 분다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