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기다리며”
(루가 23:1-49)
김경일 어거스틴 신부/ 광주교회
사순대재절기가 돌아오면 꼭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불안과 긴장이 엄습한다. 한 해도 별 일 없이 그냥 넘어간 적이 없는 것 같다. 올해 사순대재 기간에도 어김없이 사건은 터졌다. 미사가 끝나고 모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거리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던 차가 오른 쪽 옆 부분을 들이받으며 내 차를 20여 미터 끌고 건너편에 가서 멈추었다. 두 차가 다 형편없이 구겨지며 반파가 되었다. 급히 차에서 내려 사고를 낸 운전자를 보니 얼굴이 하얀 앳된 스물 대여섯 나이의 청년이다. 놀라 벌벌 떨며 무조건 자기가 다 책임을 지겠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간밤의 일이 악몽처럼 떠오른다. 차를 폐차시키고 병원에 입원해 누워 있으니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는 게 실감이 난다.
고난주일 본문을 다시 차분히 읽어본다. 예수에게 열광하던 민중들이 맥없이 체포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을 치며 악다구니를 한다. 지도자들도 군인들도 예수를 희롱하면서 남도 살렸으니 너 자신도 살려보라고 조롱한다. 나는 문득 대전교구도 같은 처지에 놓여 있음을 느낀다. 대전교구는 주교선거로 인해 지금 안팎에서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다. 너희 교구에서 결론을 못 내서 전국의회까지 왔으니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냐는 식이다. 타협과 소통을 못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 아니냐는 거다. 일면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과거 대한성공회에서 주교 선거를 치르며 명실 공히 은혜롭게 끝난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던가 묻고 싶다. 성공회는 성직자원 뿐 아니라 평신도원까지 함께 참여하여 일치된 후보를 주교로 뽑는 것이니 교황선거보다 더 어려운 선거이다. 지금의 이 혼란스러운 상황도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엄연히 소통과 일치의 과정이다. 흔히 중 벼슬은 닭 벼슬보다 못 하다고 쉽게 말들을 한다. 하지만 종단의 대표직에 대한 제의를 받고서도 어디서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오느냐는 식으로 초연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사람을 나는 나이 60 먹도록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주교직에 연연해서 그 정도도 하나 양보를 못 하냐고 질타하는 얘기는 인간본성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거나 교회에 대한 애정 없이 함부로 하는 얘기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을 꼭 교회권력에 집착한 탓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평생 몸담고 섬긴 교회의 미래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제라면 언제든지 교구의 부르심이 있다면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서는 게 당연하다. 기독교계 전반이 위축되어가는 교회현실을 딛고 선교의 사명과 책임을 감당해야할 현 시점에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지난 번 전국의회의 주교선거에서 서럽고 슬픈 마음이 되었던 것은 이웃교구에서 후보가 나서서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는 그 분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런 분에게 대전교구의 복잡한 내부를 다 보여주며 공감과 배려를 호소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작금의 현실이 인생의 서글픔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마음의 상처는 컸다. 나는 그 때 나 자신에게 자책하며 물었다. '어쩌다가 대전교구의 화합과 일치를 타 교구 후보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까지 왔는가?'라고. 게다가 대전교구 내부에서 타 교구 사제를 모시기로 결정한 것도 아니고 어떤 특정한 후보를 논의 끝에 선정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선택이 배제된 과정이라는 측면에서도 마음이 아픈 것이다. 내부사정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기대하기 어려운 타 교구 후보에게 무조건 화합과 일치를 맡기라는 타 교구 대의원들의 표심도 가슴 아픈 대목이다.
지난 번 전국의회 선거가 끝나고 의장주교님은 이제라도 대전교구에서 한 사람을 선정해 온다면 밀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너무 고맙다. 아무래도 한 솥밥을 먹던 식구가 교구장이 된다면 내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며 울며 매달릴 여지라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뒤늦은 자각인지 모르지만 다시 한 번 마음을 모아야 한다. 누가 되어도 좋다. 그래서 대전교구 내부의 쌓인 현안을 따뜻한 마음으로 갈피갈피 잘 살펴 줄 지도자를 교구 내부에서 뽑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오래간만에 병원침대에 누워서 안타깝게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며 절벽에 서 있는 심정으로 드리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