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5일 PM 7:30
이제 여행의 시작..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혼자서 떠나는 첫여행. 설레임과 약간의 두려움이 나를 흥분하시켰다. 근처 서점에 들려 여러 여행기 책자중 '남도해안 2000리'길 이라는 책을 들과 서울역으로 향했다.
#PM-9:00 고속철도 때문에 새롭게 단장한 서울역-공황같은 분위기 .
예매한 표를 찾아도 2시간 반이나 남는 시간이다. 근처 오락실에 들려 내 특유의 솜씨를 뽐낸후 PC방에 들려 전라도 여행이라는 까페에 들어갔다. 소록도 외의 여행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간략한 여행일정과 숙박시설등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PC방을 나와 포장마차에서 국수 한그릇으로 요기를 한 후. 열차에 올랐다.
#서울->순천행 PM 11:50분 기차
시간이 흐르고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출발... 이렇게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열차에 타서 바라본 차창 밖의 서울역 플랫홈
#출발할때의 설레임에 가득찬 나.
자다 깨다가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순천역에 도착한지도 모른채 잠이 들어 있었던 나는 AM 5:27분 까지 정차한다는 말에 잠에서 깨어 허둥지둥 기차에서 내렸다.
#못 내렸으면 진주까지 가게 됐을 수도...
#AM 5:30 기온 0도, 진눈개비가 휘날리는 날씨의 순천역
커피 한잔과 담배 한 모금으로 기분전환을 하고 근처 편의점에 들려 여행용 비누, 샴푸 세트를 산후(사실 여행끝날때 까지 쓰지 않았다), 녹동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새벽같이 이른 시간인데도 차안은 여러 여행객들로 가득차 있었다.
1시간 30여분 갔을까.. 어느덧 버스는 종착지인 녹동항에 들어서고...
도보로 200M거리에 있는 녹동항에 도착하였다.
#아름다운 바다와 춤을 추고있던 선박이 보이던 녹동항
#녹동항에서 바라본 소록도의 모습
여러 선박들이 고기잡이를 위해 달려나갈듯 파도위에서 춤을 추며 정박해 있었고 갈매기들이 손님 맞이에 한참이었다. 황금식당이라는 곳에서 밥 2공기를 든든히 먹고 나서 배에 몸을 실었다.
#소록도로 향하는 배.
#배위에서 바라본 소록도의 모습
소록도에 도착하여 바라본 녹동항과 주위의 바다는 또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소록도에 서 바라본 바다
서서히 찌들어 가는 내 몸의 때를 저 바다에 씻어버리고 싶다.
저 끝없는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내 안에 품고 싶다.
소록도 산책로에 들어서자 마자 안내도가 보인다.
산책로 길을 따라 올라 가니.. 강아지 세마리가 멀리서 온 손을 맞이한다.
#소록도 유일의 금융기관인 우체국.
#평온한 모습의 천주교 성당
#성당에서 바라본 바다.
#저 멀리 보이는 거금도.
얼마나 올라갔을 까.. 소록도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국립 소록도 병원이 보였다.
#한센병 환자들이 주로 치료받고 있는 국립 소록도 병원-야자수 비슷한 나무가 눈길을 끈다.
그곳에서 진료에 열중이셨던 일반외과 전문의 양석민 선생님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국립소록도병원 일반외과 전문의 - 양석민 선생님
-소록도 병원에 오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양:나라에서 보내주어서 오게 됐지요.
-오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양: 한 10개월 정도 되었나 봐요.
-이 곳 일반외과에는 어떠한 환자분들이 오시나요?
양: 손,발, 신경이 손상되면 겨울철에 특히 궤양, 봉와직염, 화상을 입은 분들이 오지요. 입원환자는 150명 정도 되는데. 반정도가 정신과 환자고 나머지 내과 외과 환자가 많아요.
-일반외과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양: 저는 전주에 있는 예수병원에서 수련을 받았는데. 의료 선교가 꿈이었어요. 어디서나 통할수 있는 과가 일반외과라고 생각해서 하게되었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수술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내과가 더 필요한 과 같다고 생각해요.
-가장 보람을 느끼셨을 때는?
양: 환자들중에 신경이 없으신 분들은 아프지 않아서 상처에 대해 무방비 상태가 되죠. 잘 낫지도 않고요. 20년된 상처가 제가 치료해서 좋아졌다고 하실때가 가장 보람을 느낄 수 있어요.
-애로사항이 있다면요?
양 : 지금 정형외과 의사가 없어서 뼈가지 손상된 환자를 제대로 치료를 못하고 있어요. 또 소모병원이기 때문에. 즉 국가에서 100억원을 주고 이 내에서 모든 것들을 해야하기 때문에 환자들을 위해서 좀 더 나은 진료를 하는데 한계가 있네요.
-근무시간 외에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양 : 애기가 둘 있는데, 여기 소록도 병원 유치원에 있거든요. 애기들 보살피고...취미생활로는 스케이트 보드를 타기도 하고 그렇지요..
-마지막으로 막 인턴이 되는 햇병아리 의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양: 이제 곳 많은 환자를 접하게 되고 치료하게 될텐데, 100명의 환자를 치료해 보면 10명은 전혀 낫지 않고, 10명은 늦게 좋아지고, 10명정도는 완쾌되기도 하고 ..하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치료하는게 중요하고, 또 잘 낫지 않는다고 너무 낙담하지 않았으면 해요.
소록도 병원을 뒤로 한 채...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소록도 중앙공원으로 향했다.
#소록도 추모비
#한센병 기념관
#한센 박사
#소록도 중앙공원
#시인 한용운의 '보리피리'
#구라탑
#소록도 중앙공원을 나오면서 돌아가는 길의 바다
#소록도 해수욕장
중앙공원에서 내려워 소록도 해수욕장으로 발걸음을 돌려 해변의 아름다움과 갈대의 슬픈 몸부림에 정신이 빠져 한동안 멍해 있다가 올라오는 길에 차 한대가 내 옆에서 멈춰섰다.
"어디까지 가는가?"
"항구로 나갈려구요"
이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광주로 가신다는 그는 소록도 초등학교에 소사로 일하고 계시는 김규종 이라는 분이었다. 첫 인상이 탈렌트 백일섭씨가 떠오랐던 그분.. 차안의 대화속에서 그분의 그릇의 크기와 풍유를 엿볼 수 있어 이것도 큰 배움이거니 생각하고 일정을 바꾸워 광주로 향했다. "범사에 감사하라!" 라는 명언과 처음 보는 나에게 마음을 열고 진솔한 이야기를 해 주시는 그분. 광주까지 함께가면서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가 즐거웠다.
광주에 도착하여 곱창과 소주2병, 산사춘2병을 마시고 더 이야기를 나눈뒤 누님집에서 자구 내일 가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분 곁을 떠나 광주역으로 향했다.
-인간관계에 있어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따뜻하게 정을 주면 그 결과 역시 내게로 돌아와 나를 얽매이게 한다. 기대감이 클수록 실망도 커지는 법. 환자에게 너무나 큰 기대감과 정을 준다면 그 후의 상심도 너무나 커져버리게 될 것이다.
광주역에 도착하니 서서히 내리던 눈발이 더욱 거칠어진다. 술은 이내 머리까지 오르고 있었고 아무 생각없이 PM 11시 50분 서울행 열차를 끊었다. 시간은 PM 8:30분. 시간이 넘아 건너 보이는 PC방으로 발걸음을 돌려 인터넷을 하다가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새벽1시가 넘어가는 시간...
하는 수 없이 AM 4:00차를 바꿔타고 서울로 올라 올 수 밖에 없었다.
#광주역에는 이렇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기차안의 조금 지친듯한 나.
이렇게 짧은 여행이 끝이 났다.
소록도의 고요한 풍경들과 만났던 좋은 사람들을 뒤로 한 채 다음에 또 오리라는 기대감을 남기고...
차안에서 여러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조금은 성숙해 진 듯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댓글 몇달전 다녀온 소록도의 전경이 생각납니다.혹 흰사슴은 보지못하셨나요? 물론 전 사슴가족을 봤답니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싶었습니다.. 취미라구 하기엔 넘 잘 잡으신건 아닌지요.. *^^* 감상 무지 잘했구여..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할애가 되었다면.. 저희 소사모 캠프 가족이 되었주셨음 더 좋았을 듯 싶네요.. 아마두 앞으론 더 좋은일들이 마니 생기지 않을까 하는..... 빠빠시~~
멋진 한편의 드라마랄까? 다큐랄까?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