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것과 화두를 관觀하는 것의 차이점
화두를 참구하는 것과 관하는 것
화두를 참구하는 것과 관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화두에 의정을 일으킨다는 뜻이고 관한다는 것은 화두에 정신을 집중한다는 의미이다. 화두는 참구해야지 그냥 집중만 해서는 진정한 의심이 일어나기 어렵다. 화두는 주관과 객관이 무너져 오직 말길과 생각의 길이 끊어진 상태에서 간절히 참구를 하여 화두와 내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 참구란 오롯이 의정疑情을 이룬 상태에서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인 반면 관이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계속 집중하여 관찰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화두를 관하면 관하는 나와 관찰되는 화두가 서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렇게 주객이 분리된 상태에서 화두를 대상화하여 관하면 그것은 화두를 드는 것이 아니라 화두를 따라가며 관찰하는 것이다. 나라는 주관과 화두라는 객관이 나누어지면 나와 대상, 주관과 객관, 나와 화두가 분리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두를 관한다는 것은 구조상으로 볼 때 상대적 입장에 서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관을 통해서 정신통일이 이루어질 수는 있다. 들뜬 마음을 제거하여 정신을 통일하여 명료한 경지에 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화두와 내가 하나가 되는 화두 삼매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 의식에 투영된 상대적인 경지일 뿐이다. 따라서 그런 경계에서 비추어진 대상은 내 의식 속에 떠오른 대상이지 순수한 모습은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주객을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에 철저하지 못하다.
화두 참구는 주관과 객관, 나와 너라는 모든 이분법적 경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대립적인 분별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다. 백척간두 진일보 百尺竿頭進一步라 했다. 백척이나 되는 긴 장대 위에서 한 발짝 더 내디뎌야 한다. 근원에 이르러 근원마저 뛰어넘어야 자유자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왜 화두를 관해서는 안 되는가?
조사선을 정립한 육조 혜능 선사는 좌선을 할 때 간심看心과 간정看淨을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하였다. 요컨대 돈오견성을 이루어내는 데는 마음을 본다든지 깨끗함을 보는 것조차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일체의 대상화된 관법關法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왜 혜능 선사는 이런 말을 했을까? 그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자.
-선지식들아, 이 법문 가운데 좌선은 원래 마음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고, 깨끗함에도 집착하는 것이 아니고, 말도 아니고 움직임도 아니다. 만약에 마음을 본다(看心)고 말한다면 그러한 마음은 허망한 것이다. 허망함이란 허깨비와 같아 볼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깨끗함을 본다(看淨)고 말한다면 사람의 성품은 본래 깨끗한 것이니 이것은 허망한 생각이다. 진여를 덮고 있는 허망한 생각만 여의면 본래 성품은 깨끗한 것이다. 자기 성품의 본래 깨끗함을 보지 못하고, 마음을 일으켜 깨끗함을 보려 하면 도리어 깨끗하다는 망상이 생긴다.
-善知識 此法問中 坐禪 元不著心 亦不著淨 亦不信動, 若言看心 心元是妄 妄如幻故 無所看也. 若言看淨 人性本淨 爲忘念故. 蓋覆眞如 離妄念 本性淨. 不見自性本淨 心起看淨 却生淨妄 -『六朝壇經』
이렇게 혜능 선사는 마음을 보려 한다거나 혹은 깨끗한 마음을 찾으려 한다면 공연히 ‘깨끗한 마음'이라는 망상을 일으키게 됨을 경계하고 있다. 또한 그 찾으려는 마음 자체가 망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마치 눈동자가 눈동자를 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찾는다면 마음을 찾을 수가 없을뿐더러 그 찾는 마음 자체가 망상이다.
그래서 대혜 선사도 “마음으로 마음을 쉬게 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 마음을 그치게 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 마음을 작용하게 할 수는 없다.”라 했다.
-“豈不是 將心休心 將心歇心 將心用心” 『書狀』「答陳少卿(一)」
그것은 또 하나의 마음을 만들어 대상화하기 때문이다. 만약 깨끗한 마음을 찾으려 한다면 도리어 깨끗한 마음과 허망한 마음의 분별심에 떨어지게 되며, 대상화된 마음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음을 대상화하여 관한다면 혜능 선사의 지적처럼 분별된 마음, 상대적인 마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간화선 수행은 화두를 대상화하여 관하면 안 된다. 대상으로 관하면 나와 화두가 분리되어 타성일편 되지 않는다. 그것은 앞서도 말했듯이 관념으로 화두라는 하나의 허상을 만들어내어 그 허상과 일치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물론 그러한 관을 통하면 정신집중이 되기 때문에 그 힘으로 점차적으로 때를 벗겨나갈 수는 있지만 단박에 확철대오 할 수는 없다. 오직 화두는 철저한 의심을 통해 화두 삼매에 들고 은산철벽을 투과해서 확철대오하는 데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