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강해 (시편 7편)
찰스 스펄젼
[개 요]
주제-이 시의 머리말은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대하여 여호와께 한 노래”이다. 성경에서 이 시편을 제하고는 유일하게 식가욘이란 구절이 붙은 하박국 3장과 비교해 보고, 또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참조하면 “식가욘”이란 말은 ‘가변곡’을 말하는 듯하며, 이 노래에는 위로와 기쁨이 포함되어 있다. 인생을 노래하는 시편에는 가변적인 구절들로 점철되어 있다. 한 연이 승리의 찬가를 부른다면, 또 다른 연은 고통 중에 탄식을 노래한다. 여기에는 낮게 깔리는 베이스음이 들어 있다. 우리들의 인생 여정은 영국의 날씨만큼이나 가변적이다.
이 시의 머리말에서 이 노래를 지은 상황을 알 수 있다. 베냐민 사람 구시는 사울에게 다윗이 왕위를 도전하며 반역을 꾀한다고 모함을 했을 것이다. 사울 왕은 이 모함을 사실로 인정했을 것이다. 사울 왕은 다윗에 대해 질투를 느끼고 있었으며, 또한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인 사울 왕과 베냐민 사람 구시(혹은 기스) 사이에는 어떤 인척 관계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보다는 왕과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왕의 신하에게 큰 해를 끼칠 수 있는 법이다.
이 시는 “모함받은 성도의 노래”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억울하고 불행한 상황이 시편이 나오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인생의 쓰라린 비극을 노래의 주제로 삼아 원수들을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일인가!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다윗은 시를 지었다. 우리도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며 우리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 마귀를 대적하자.” 우리는 루터의 말에서 교훈을 얻어야겠다.
구성-이 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1-2절 : 위험한 상황에 대한 묘사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3-5절 : 시편 기자가 자신의 무죄를 맹세함.
6-7절 : 여호와께서 심판하실 것을 간구함.
8-9절 :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께서 모함을 받은 자의 간구를 들으심.
10-13절 :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보호하시고, 악인들을 위협하심.
14-16절 : 다윗을 무고한 자가 자신의 머리에 스스로 저주를 부름.
17절 : 다윗이 그의 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시련에서 벗어남.
이 시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너를 치려는 어떤 무기도 성공할 수 없으며, 너
를 치러 일어나는 사람들을 네가 심판하리라.”
[강 해]
1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2건져 낼 자 없으면 저희가 사자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1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반역을 꾀한다고 자신을 모함하는 자에게서 구원해 주실 것을 탄원한다. 다윗이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고백으로 이 시는 시작된다. 우리가 어떠한 급박한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그 상황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여호와 내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우리와 언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 언약은 예수의 피로 맺어졌으며, 이 언약으로 내가 그분과 하나가 되었다. 다윗처럼 급박한 상황에서도 나는 "주께," 그리고 "주께만" 피해야 한다. 나는 흔들리지만, 내게 피난처가 되신 그분, 반석이신 그분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잘못된 것이며, 그분을 신뢰한다는 것은 어느 때든지 결코 헛되지 않다.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이제 다윗은 언약을 맺은 그분께서 힘을 주실 것을 믿고서 간절히 소망하는 바를 여호와께 아뢴다. 그를 추적하는 자들은 너무 많으며, 누구든지 잔혹한 마음으로 그를 삼키고자 한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 "모든" 사람에게서 구원해 주실 것을 부르짖는다. 우리의 "모든" 죄와 원수들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을 간구하기 전에는 우리의 기도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를 구하소서"라는 기도는 그들의 덫에서 구출하고, 그들의 모함을 막고, 나를 해하는 시련에서 진실되고 공의롭게 구원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기도이다. 다윗은 그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고 분명히 말했다. 우리도 은혜의 보좌에 나아갈 때에 무엇을 간구해야 할 것인지 분명히 알고 나아가자. 기도하기 전에 잠시 동안 생각을 정리하여, 어리석은 자의 제물을 드리지 않도록 하자.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확실히 파악하여 더욱 열심히, 그리고 분명하게 기도로 우리의 필요를 알려 드리자.
2절. "건져 낼 자 없으면." 다윗을 위협하는 사자는 맹렬하고 잔혹하다. 다윗을 건져 낼 자가 없으면 이 원수는 다윗을 찢고 뜯을 것이다. 이 모습은 목동 생활을 했던 다윗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맹렬한 사자가 무방비 상태의 양을 덮쳐 잡게 되면, 사자는 양을 갈기갈기 찢고 모든 뼈를 부수어 먹어 치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목자가 거기 없어서 맹수로부터 양을 보호하거나 구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양의 모습은 사탄에게 던져진 사람의 모습과도 같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가 이런 위험에 처했을 때 잠잠히 있을 수가 없다. 그분은 결코 사랑하는 자녀가 사자의 이빨에 찢기는 것을 볼 수 없다. 급히 일어나 사자의 입에서 자녀를 구출하실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이처럼 파멸을 당하지 않도록 구원해 내실 것이다.
"저희가 사자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원수들에 대한 두려움이 혼합되어 있다. 다윗의 원수 중에는 다른 원수들보다 강한 자가 하나 있었다. 그는 위엄과 힘이 있고, 맹수처럼 맹렬하여 "사자" 같은 존재이다. 다윗은 이 원수에게서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긴박하게 간구한다. 어쩌면 바울은 사울 왕을 지칭하여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우는 사자처럼 우리 주위를 돌아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원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를 악한 자에게서 구원해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그를 모함하는 자들에게서 이런 위험을 당했다. 다윗은 그가 당한 시련을 과장해서 표현한 것이 아니다. 칼로 생긴 상처는 쉽게 치료된다. 그러나 혀로 인해서 생긴 상처는 육체에 생긴 상처보다 더 깊게 파헤치고 들어가서 쉽게 치료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모함은 그것이 거짓으로 판명되어도 치욕이 남는다. 터무니없이 거짓된 명성도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믿는다. 사람들이 나쁜 말을 퍼뜨리면, 그것을 다시 없애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노송이 잘리우면 다시는 잎을 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의 명예가 한번 손상되면 다시 회복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의 푸르름과 신선함은 쉽게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선한 사람의 명성에 칼질을 하는 것은 얼마나 혐오스럽고 치사한 일인가! 그러나 악마와 같은 증오심으로 싸우는 곳에는 어떤 체면도 염치도 없는 법이다. 이런 일은 우리에게도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일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에덴의 정원에서 하나님이 모함을 받았다면, 이 죄인들의 땅에서도 우리를 욕하는 자들이 분명히 생길 것이다. 부활의 자녀들이여, 허리띠를 조이라. 이 불 같은 시험이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3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것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았거든 5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고 내 영광을 진토에 떨어뜨리게 하소서(셀라)
3, 4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이 시의 둘째 부분에서 시편 기자는 자신의 무죄함을 강변한다. 사람들이 모함하는 죄를 정말 지었거든, 심판을 내려도 좋다고 했다. 그가 결코 반역할 의도를 가졌던 것도 아니다. 또한 그와 화목한 친구에게 복수를 하지도 않았다.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았거든."(한글 개역 성경과 RSV 역본은 이렇게 번역했으나, KJV에는 "그러나 까닭없이 내 대적이 되었던 자를 내가 구하였도다"라고 번역하여 괄호 안에 넣었다-역자 주.)* 다윗은 원수를 꼼짝없이 죽일 수도 있었는데 그저 살려 보냈던 것이다. 그는 두 번이나 사울을 살려 주었다. 한 번은 아둘람의 굴에서 살려 주었고, 또 한 번은 사울이 잠들고 그를 지키는 병사들도 모두 잠들어 있을 때에 사울의 진에서 죽일 수도 있었으나 살려 주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이렇게 하나님께 호소하며 맹세할 수 있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의 저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저주하며 맹세한다는 것은 정말 삼가야 할 일이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해서는 안 된다. 은혜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맹세를 삼가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7)고 하셨다. 우리가 하는 말을 신뢰할 수 없다면, 우리가 하는 맹세도 역시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진실된 성도들은 단순한 말도 다른 사람들의 맹세처럼 신실해야 한다.
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이 말을 들으시오. 여러분은 맹세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데비지스에 있었던 한 여인의 이야기를 기억하시오! 그녀는 동업자와 함께 구매하기로 한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면 죽어도 좋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빠져 죽었는데, 그녀는 지불해야 할 돈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5절. "셀라." 다윗은 "셀라"라고 말하며 시의 진행을 잠시 정지한다. 하나님의 법정에 항고한다는 것은 엄숙한 일이다. 다윗은 이렇게 잠시 정지하면서 엄숙한 마음을 증가시킨다.
이 구절들을 보면서 중상과 비방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무죄한 사람도 악한 자들의 중상과 비방에서 보호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윗은 사울을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부르며, 그에게 반역한다는 모함을 받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조심해도 거짓말하는 자들이 그를 모함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실체가 있으면 그림자가 따르듯이, 선한 것에는 질투가 따르게 마련이다. 사람이 돌팔매질을 해 대는 것도 열매가 많이 열린 나무 아래서 하는 법이다. 우리가 모함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려면 천국에 이르기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은혜로운 사람을 괴롭히는 유언비어를 믿지 않도록 주의하자. 거짓말을 믿는 사람이 없다면 거짓의 시장은 한산할 것이고, 훌륭한 사람들은 안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악의를 품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좋게 말하는 법이 없다. 죄인들은 성도들을 향해 악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성도들을 향해 좋게 말할 것을 기대하지 말라.
6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이다 7민족들의 집회로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이제 다윗의 맹세에 근거해서 새로운 기도가 시작된다.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지만, 그렇게 늘 기도하지는 못한다. 우리의 마음이 진실되다면, 실이 바늘을 따라가듯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게 될 것이다.
6절.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다윗은 슬픔 가운데 재판관 되신 여호와께서 심판의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것을 보았다. 오직 믿음만이 여호와를 움직이고, 성도들을 위해 원수들에게 심판을 내리게 할 것이다.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다윗은 여호와께서 권세를 행하시고 심판주의 자리에 앉으실 것을 안절부절하며 간절히 바란다. 오, 하나님이여! 일어나소서! 그들보다 높은 곳으로 임하사 당신의 공의가 악한 자들 위에 임하게 하소서.
"나를 위하여 깨소서." 다윗은 담대하게 이렇게 외쳤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활동을 아니하신다는 것뿐만 아니라 주무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말할 때는 지극히 제한적인 의미에서만 말할 수 있다. 그분은 결코 주무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악인이 성행하고, 성도들이 땅의 티끌처럼 압박을 받을 때는 그분께서 종종 주무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나님의 침묵은 오래 참으시는 인내이다. 하나님의 침묵을 견디기 어려울 때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 죄인들이 회개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즐겁게 인내해야 한다.
7절. "민족들의 집회로 주를 두르게 하시고." 여호와여! 당신의 성도들은 그들의 불평을 쏟거나 당신을 크게 환영하며 당신의 재판대로 몰려올 것입니다.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KJV에는 "그들을 위하여 높은 자리에 오소서"라고 번역되었다. 히브리어 "알레하"<hyl[>는 '그 위'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그를 위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그"는 집합적으로 "민족들의 집회"를 말한다-역자 주.) 재판관이 순회 재판을 돌 때면,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사건을 들고서 재판정으로 몰려들어 사건을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 이처럼 의로운 자들이 여호와께로 몰려올 것이다. 다윗은 만일 여호와께서 심판의 보좌에 오르시면 그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성도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며 간구하는 것이다. 주여, 내가 못나서 주께서 나를 기억하실 수 없다면 "그들을 위하여," 당신께서 택하신 백성을 향한 사랑을 인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소서. 당신이 은밀히 거하시는 곳에서 나오사 성문에 앉으시고 당신의 백성 가운데 공의를 실현하소서. 내가 간구하는 것이 의로운 사람들이 모두 소망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속히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그 택한 자를 신원하여 주시지 않겠는가?"
8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 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이제 다윗은 그의 마음의 눈으로 여호와께서 심판의 보좌에 앉으신 것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는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새롭게 소송을 올린다. 6, 7절에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일어나실 것을 간구했다. 이제 여호와께서 일어나셨다. 다윗은 주를 둘러싼 "민족들의 집회"와 함께 여호와께 나아갈 준비를 한다.
8절.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의 재판이 이제 개시되었다는 소식을 엄숙하게 알린다. 다윗은 즉시 일어나서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외친다:"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 그는 정직한 가슴에 손을 얹고 의로운 재판관을 향해 외친다. 왕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를 보고서, 다윗은 여호와를 둘러싼 그분의 백성들과 함께 외쳤다:"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이것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언제나 이 소돔 사람들의 더럽고 추잡한 대화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나 메섹의 더러움과 게달의 검은 장막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9절.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KJV에는 "심장"을 "심장과 신장"으로 번역했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신장이 번역되지 않았으나 히브리어로 "켈라오트"<twylk>라는 단어가 나타나며, 이는 사람의 장기로서 신장을 뜻한다. 히브리 사람들은 신장이 감정의 근원이 된다고 생각했다-역자 주.) 이것은 진정 엄숙한 진리이다! 하나님은 깊은 곳을 다 아신다! 그분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정확하시고, 깊이 숨겨진 것까지도 감찰하신다. 그분은 "심장"을 감찰하시며 우리의 숨겨진 비밀한 생각을 아시고, 또한 "신장"을 감찰하시고 내면에 있는 애정도 다 아신다.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10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은 화전이로다
10절.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재판관은 박해받던 고소인의 말을 다 듣고서 죄 없는 자를 죄 없다고 선고하시고, 그를 무고히 모함하던 박해자를 큰 소리로 책망하셨다. 여호와께서 판단하시는 재판정에 가까이 나아가 거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자. 억울하게 무고를 당하던 자는 수금을 손에 들고서 공의의 여호와께 찬송을 돌린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심을 큰 소리로 노래하며 기뻐한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아! 진실되고 정직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마음이 구부러진 죄인들, 그들이 아무리 계교를 부려도 마음이 정직한 자를 이기지 못한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입은 흰 옷에 묻어 있는 더러움은 오래 가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섭리로 이것을 씻어 버리시기 때문이다. 경건한 자에게 더러운 오물을 던졌던 자들은 이것을 보고서 뼈가 떨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원을 들어 주시는 날, 그날은 우리에게 해가 뜨는 날이고, 죄인들에게는 영원히 해가 지는 날이다. 진실은 기름과 같아서 항상 물 위에 뜨는 법이다. 우리의 원수들이 모든 힘을 다한다 해도 그것을 물 속에 빠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나팔 소리에 죽은 자들이 깨어나는 날, 우리는 그들의 모함을 이겨 낼 것이다. 그날이 되면 거짓말을 일삼던 입술은 부끄러움을 당하고, 우리는 영광 가운데 빛날 것이다. 오, 성도들이여! 원수들이 네게 행하는 그 모든 행위와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나무는 어떤 바람도 해할 수 없는 것이다.
11절."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그분은 원수들의 입술로 당신이 저주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당신의 원수들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이 생명책에서 당신의 이름을 지울 수도 없다. 하나님은 그분의 시간에 그들에게 보수하실 것이다.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그분은 죄를 싫어하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죄에 탐닉하는 자에게 분노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감정이 없고 무감각한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너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 참회하지 않는 죄인들아! 우리 하나님은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매일 매일 너희들을 향해 분노하신다. 죄인에게는 가장 좋은 날이라 해도, 그들에게 저주가 임하는 날이다. 죄인들에게 축제의 날이 계속될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안전한 날은 하루도 없다. 태초로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이 뜨겁게 달구어지지 않은 때는 한 시간도 없었다.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은 악한 자를 불사를 준비가 되어 있으며, 악인이 불살라지는 날에 그들은 그루터기만 남게 될 것이다.
12, 13절.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하나님의 길고 높이 들린 손으로 후려치는 심판을 견딜 자 누가 있겠는가! 우리가 매일 행하는 악은 악의 숫돌을 돌리고, 하나님은 그 위에 칼을 갈고 계신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그 칼은 우리를 속히 조각 조각 자를 것이다. 죄인은 회개하느냐, 아니면 불에 타느냐, 두 가지 중 선택해야 한다. 다른 선택은 없다.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지금도 그 화살은 목말라 한다. 그래서 박해자의 피로 목을 적시고자 한다. 활은 당기어졌다. 목표물은 정해졌다. 오, 죄인들아! 이제라도 화살이 활을 떠나 네게 날아온다면! 하나님의 화살은 결코 목표물을 비켜 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 화살은 "죽이는 기계"라는 것도 기억하라. 심판이 더딘 것 같으나, 결코 지체하지 않는다. 헬라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간다. 그러나 그 맷돌은 그 속에 있는 것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14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잔해를 잉태하여 궤휼을 낳았도다 15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그 잔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이 세 절의 묘사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 자들의 역사를 볼 수 있다.
14절.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해산의 고통을 겪는 여인이 첫번째 비유에 나타난다. 악인의 배는 죄악으로 가득 찼다. 이제 죄악을 더 이상 배에 담고 다닐 수가 없어서 그것을 행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는 해산의 고통을 겪다가 마침내 악한 의도를 행한다.
"잔해를 잉태하여." 이것은 그가 맨 처음 했던 추한 행동이다. 그는 마귀와 교제했고, 악의 세균에 감염되었다. 이처럼 불경건한 수태로 생긴 자손을 보라. 자식은 아비를 닮았다. 그 아비의 이름이 "거짓의 아비"였더니, 그 자식은 과연 아비를 존중했다. 악인이 낳은 자식은 '거짓'이었던 것이다:"잔해를 잉태하여 궤휼을 낳았도다." 첫번째 비유는 이렇게 결론이 났다.
15절.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그는 교활하게 계획을 세우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는 허리를 굽혀서 땅을 파는 더럽고 힘든 일을 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손에 흙이 묻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다른 사람이 빠지기만 한다면 구덩이에서 일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악한 사람들은 경건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기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다. 그들은 경건한 사람들이 마치 맹수나 되는 것처럼 사냥을 나섰다. 아니, 이것도 아니다. 그들은 토끼나 여우를 사냥할 때 쫓아다니는 것처럼, 경건한 자들을 쫓아다니지 않았다. 이런 방법으로는 경건한 자를 따라 잡는다거나 화살을 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몰래 덫을 놓고서 그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다. 우리 원수들은 우리를 대면하여 보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를 멸시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장면을 보자.
15, 16절.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아! 이것이 그의 마지막 운명인 것을! 그는 얼마나 실망했을까? 우리는 이것을 보고서 웃지 않을 수 없다. 보라! 바로 그 자신이 야수와도 같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사냥한 것이다. 그가 무엇인가 쫓아 다니더니, 정말 합당한 것을 희생 제물로 삼았다. 하 하 하!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 모두 이곳에 와서 덫에 걸린 사냥꾼을 보라. 즐겁지 않은가. 다른 사람을 물어뜯으려 하더니 자기 자신을 물어뜯었구나. 그를 불쌍히 여기지 말라. 이런 자비는 쓸데없는 낭비다. 자신을 제물로 삼아 값을 치렀으니, 이것은 공의롭고 당연한 일이다. 그의 입으로 악을 내뱉더니, 그 자신의 가슴에 떨어졌구나. 이웃집에 불을 놓으려고 횃불을 들고 다니더니, 자기 집을 불태웠구나. 불길한 새를 내보냈더니, 자기 집으로 돌아왔구나. 그가 높이 들었던 매로 자신의 등을 후려쳤구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았더니, "자기 머리로 돌아왔구나." 돌멩이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 내던졌더니, 그것이 "자기 정수리에 내렸구나." 저주는 병아리와도 같은 것이다. 그 병아리들은 결국 집에 돌아와 알을 낳는다. 재는 그것을 뿌리는 사람의 얼굴로 돌아오는 법이다.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시 109:17). 고대의 역사나, 현대사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던가! 이웃에게 누명을 씌우려던 자들은 결국 자기 손에 불을 질러 대는 것이다. 이런 일이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결국에는 일어나고 말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나봇의 포도원에 개를 보내셔서 아합의 피를 마시게 하지 않으셨던가. 조만간에 박해자들의 악한 행위는 결국 그들의 품으로 뛰어들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마지막 날에도 일어날 것이다. 사탄이 쏘았던 그 모든 불화살들은 사탄의 심장을 꿰뚫을 것이고, 그를 따르던 자들은 그들이 뿌렸던 씨앗을 추수하게 될 것이다.
17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17절. 우리는 이 시편의 결론에 도달했다. 여기에는 이 시의 서두와는 대조적으로 즐거움이 나타난다. 모든 시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시편은 의인이 복되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악인의 비극과 대조되어 더욱 빛이 난다. 빛나는 보석은 검은 박편을 배경으로 반사될 때에 더욱 반짝이는 것이다.
찬양은 경건한 자가 하는 일이다. 이것은 그들이 영원히 행할 일이며, 현재 누리는 기쁨이다. 찬양에는 노래가 따른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모함을 받던 자가 이제는 노래를 부르는 자가 되었다. 그는 잠시 동안 수금을 연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아름다운 곡조로 노래하며, 삼층천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보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