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람의 판소리 브레히트 ‘억척가’ 공연모습 |
“지난해에 입소문이 크게 났다. 지난해에 못 구한 분들이 이번엔 꼭 봐야겠다고 하고, 본 분들은 또 봐야겠다고 한다더라. 뮤지컬 ‘서편제’를 보고 호기심을 갖는 분도 많은 것 같다. 기분은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지인들 표를 못 챙기는 건 속상하다.”
-어린 시절 큰 인기를 끌었는데 지금은 판소리와 인디음악이라는, 기본적으로 대중과 거리가 있는 장르에서 대중적 접근을 하고 있다. 힘들지 않나?
“요즘엔 아이들도 연예인이라는 인식이 명확한데 우리가 어릴 땐 아니었다. 내가 예솔이라고 해봤자 교실에선 애들하고 치고 받고 노는 보통 애였고, 평범하게 자랐다. 지금은 누구보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재밌게 살고 있다. 물론 관객이 중요하지만 내 작업들이 대중을 향해 있지는 않다. 단지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들이 정말 보편적인 재미를 가진다면, 내가 사회·주변·사랑·우정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갖고 있다면 대중은 자연스레 따라올 거라 믿는다. 대중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작업을 하는 게 문제인 것 같다.”
1‘억척가’ 공연모습 2 꼬마가수 ‘예솔이’시절 아버지 이규대씨와 함께3 인디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 공연모습 4 뮤지컬 ‘서편제’ 공연모습 |
“취미로 시작했지만 소비하는 대상이 있으니 이제는 취미가 아니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첫 싱글 내고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앨범 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병행한다기보다는 내가 맛있어 하는 음식들이 다양하다. 의도적으로 두 개를 양립시키는 게 아니라 살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재밌는데 그중에 하나가 판소리, 또 하나가 밴드다. 그래서 양쪽 다 잘 해내려고 한다.”
-대중적으로 다시 주목받게 된 계기는 뮤지컬 ‘서편제’를 통해서다. 주종목은 아닌데.
“그래서 서편제는 내가 은혜를 갚아야 할 공연이다. 처음 이지나 연출이 찾아와 권할 때만 해도 무척 조심스러웠다.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상업뮤지컬’이란 표현을 썼는데 초연은 망했다. 내 눈엔 상업뮤지컬인데 뮤지컬계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판소리 뮤지컬이었던 거다. 그만큼 내가 하고 있는 장르의 폭이 협소하다는 걸 알았다. 이지나 연출은 더 많은 사람이 너의 귀한 걸 볼 수 있도록 해줄 거라며 나를 설득했었다. 내 작업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뭔지 이미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믿고 간 거고, 결과적으로 흥행은 몰라도 뮤지컬을 좋아하는 일부 관객이 판소리에 시선을 돌리게 됐다. 내게는 정말 감사한 일이고, 이번 앙코르 공연은 정말 은혜 갚는 마음으로 했다.”
5‘억척가’중에서 6,7,8 LG아트센터에서 ‘억척가’ 연습중인 소리꾼 이자람 |
“음악 하나로도 사람을 저 끝까지 후벼 파는 거다. 10년 이상 연습한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음악적 테크닉은 정말 징글맞다. 하지만 판소리는 음악만으로 얘기할 수 없다. 음악적 테크닉, 리듬적 테크닉, 문학적 테크닉으로 사람의 삶을 노래한다는 것에 공연예술로서의 매력이 있다. 100% 언어로 만들어진 공연예술이 다른 무엇과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깊이 있는 음악적 테크닉으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내가 판소리를 사랑하는 이유다.”
-브레히트는 맹렬한 사회주의자 입장에서 민중 계몽을 위한 서사극을 썼다. 지속적으로 브레히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이유는.
“그는 너무너무 날카롭고 똘똘하다. 사회주의적 작품이라지만 예술 자체로 대단히 잘 쓴 작품들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작품을 좋아한다. 화려한 언변으로 수많은 여성을 혼란에 빠뜨린 그런 나쁜 남자는 싫지만, 작품의 매력은 매우 언어적인 사람이 정확하게 세상을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거다. 그게 부럽고 질투가 날 정도다.”
-‘사천가’는 착하게 사는 것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작품이라고 했다. 왜 그런 고민을 했나?
“사천가를 쓸 때가 처음 판소리창작단체 대표를 하다 그만둘 때다. 20대 중반은 먹고살 것에 대한 고민, 행동과 실천들이 시작될 때인데, 단체를 처음 이끌면서 나는 착한 사람이고 싶지만 그것이 결코 똑똑한 선택이 아님을 알았다. 착한 것이 곧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가 미워할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나 사회 구조라는 걸 발견했다. 왜 우리는 점점 각박해지고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만 많아지는가 하고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사천의 선인’을 만나게 된 이후 권력들이 좀 더 쉽게 비권력자들을 다루기 위해 활용하는 종교나 체제, 혹은 ‘착하게 살아도 똑같다’ ‘저금을 해야지’ 등 우리가 보편적으로 내뱉는 말들이 어떤 구조 속에 갇힌 말들이란 걸 깨달았다. 사천가는 그렇게 내가 보는 20대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됐고,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브레히트의 억척어멈은 주인공이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고 끝나는 비극인데 이자람의 억척가는 비극 가운데 깨달음을 얻고 희망을 얘기하는 건 왜인가?
“브레히트에서 큰 구조를 갖고 왔지만 브레히트를 하는 건 아니다. 우리 이야기를 하려는 건데, 그 옷을 입히는 마네킹이 브레히트일 뿐이다. 사천가 때는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었고, 그래서 끝까지 질문을 던졌다. 신들에게 꺼지라고 소리를 지른다던가. 근데 억척가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은 속시원히 웃거나 울 수 있고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는, 그것이 내가 본 좋은 공연들이었으니까. ‘인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봐야 되는 우리의 숙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한번 사람답게 살아보자면서 어딘가로 떠나는 엔딩인 거다.”
-외국인들은 우리 판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던가.
“일본의 가부키, 노나 아프리카 토속음악이 한국에 온다 했을 때 첫 번째 갖는 관심은 생소함에 대해서다. 안 겪어본 문화를 겪어본다는 지적 충만감에서 환호를 보내게 된다. 그 다음 서울에서 살고 있는 내가 도쿄에서 살고 있는 누군가와 같은 고민을 갖고 있구나 하고 느꼈을 때 그 기쁨은 두세 배가 된다. 프랑스 공연 때 테엔페 극장 홍보팀장이 울면서 고맙다고 하더라. 프랑스에 살고 있는 나의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그녀가 ‘마그마’란 표현을 썼는데, 지구의 마그마와 같은 여자들의 문제, 없어지지 않는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한국의 너희가 있어서 큰 힘을 받았다고 하면서 울었다. 내가 들은 가장 큰 찬사였다. 너의 목소리가 최고, 이런 거 다 필요 없고 우리 작품의 진짜 가치를 봐준 것 같아서 좋았다.”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가 극찬을 했던데.
“아누크 그랑베르라고, '프랑스의 윤석화'다. 일단 통쾌했다. 우선 유럽인들에게,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우리가 아무리 공연을 잘해도 문화적 프라이드가 강한 유럽인들은 ‘월드베스트’란 표현을 안 쓰고 ‘아시아베스트’라고 한다. 아시아인들은 어쨌거나 하위인 거다. 어쩔 수 없는 인종적 우월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해줘서 굉장히 통쾌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판소리가 얼마나 많은 걸 갖고 있는 공연예술 장르인지 모른다. 한국인들이 모르는 판소리의 연극적 힘을 ‘프랑스의 윤석화’가 말해줬을 때, 안타깝게도 우리는 밖에서 말해주면 더 귀 기울이지 않나. 그래서 그의 말을 한국인들이 들었으면 했다. 당신들이 간과하고 넘어가는 판소리가 사실은 이렇게 많은 걸 가진 괴물 같은 장르다. 우린 판소리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판소리의 현대화에 앞장서고 있는 입장인데, 전통 판소리라는 건 있지만 판소리가 곧 전통은 아니라는 얘기를 했다. 무슨 뜻인가.
“음악도, 미술도, 건축도 전통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 판소리는 일제 강점기에 문화재보호법으로 보호되면서 더 이상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하던 것만 계속 하면 먹고살 수 있게 돼버렸다. 그래서 판소리를 잘해내야 하는 목적이 달라져 판소리는 정형화된 무엇으로 전락해 버렸다. 전통에 갇혀버린 거다. 그래서 지금은 누가 해도 똑같은 판소리가 됐다. 경쟁력을 가지려면 다르게 해야 한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오페라가 더 큰 감동을 주듯이 사람이 다르니 다를 수밖에 없는 게 맞다. 그게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문화재법으로 지정되기 이전의 판소리에 집중한 거다. 판소리 본연의 가져야 할 가치와 덕목이란 소리꾼이 동시대인들이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것이고, 그래서 나는 지금의 판소리를 만들려고 하는 거다.”
-젊은 사람들은 여전히 판소리가 낯설다. 감상 포인트를 짚어주면 장벽이 낮아질 것 같다.
“편견만 없으면 될 것 같다. 내가 오페라를 볼 때도 뻔히 상상 가능한 모습들이 있다. 드레스, 조명 색깔까지. 그런 전체적인 뉘앙스가 내 귀를 열어주지 않을 때가 있다. 온전히 저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 올 수 있는 감동을 아, 저거 오페라 카르멘의 뭐지 하면서 들었을 때 뻔히 짐작 가능한 것 때문에 한 켜 싸여서 100% 감동받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가 많다. 판소리도 그럴 것 같다. 관전 포인트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보라는 것 하나다. 그러면 더 많은 재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홍진기창조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금이 많던데 어디에 쓸 건가?
“부모님도 드리고, 박사과정 등록금을 내야 한다. 박사과정 마치는 데 등록금이 총 3000만원 든다.”
억척가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판소리로 재구성한 작품. 이자람이 이끄는 판소리 만들기 ‘자’(예술감독 남인우)의 ‘판소리 현대화’ 작업의 일환으로, 2011년 LG아트센터 기획공연으로 첫 선을 보였다. 당시 공연 2주 전 전회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올 5월 11~13일,16~17일 LG아트센터에서 예정된 앙코르 공연 역시 공연 두 달 전 매진됐다. 유럽의 30년 종교전쟁을 배경으로 한 원작을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적벽가’의 중국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각색했다.
중국 삼국시대, 전라남도 시골의 김순종이란 여인이 소박을 맞은 후 옌볜을 거쳐 중국 한나라로 건너간다. 아비가 다른 세 자식을 둔 김순종은 전쟁의 소용돌이를 거치며 자식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억척스러운 전쟁상인이 되지만, 결국 자본 앞에서 자식의 죽음도 모른 체하는 비정한 어미로 변모해 간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끝내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비극을 그린 원작과 달리 억척어멈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희망적인 엔딩으로 마무리했다. 전통 판소리가 북 한 대로 소리꾼을 뒷받침하는 데 비해 북, 장구, 꽹가리 등 우리 전통악기는 물론 젬베, 준준 등 아프리카 타악기와 기타, 베이스를 활용한 파격적인 음악 구성으로 극의 긴장을 고조시킨다. 전통 판소리 다섯 바탕(춘향가·심청가·흥부가·수궁가·적벽가)의 여러 요소를 변형 삽입해 전작 ‘사천가’보다 판소리의 음악적 재미를 한층 강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