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라 감자생'의 의미
우리 속담에 '묻지마라 갑자생'이라는 것이 있죠.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첫해인 갑자년(甲子年)에 태어난 갑자생(甲子生)들은 대부분 머리가 좋고 역사적으로도 이름난 사람들이 많으며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물어보나 마나, 물어보지 않아도 그 정도는 다 안다는 뜻으로 쓰인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뻔한 질문이나 말을 할 경우 '묻지마라 갑자생이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의미의 변화와 역사적 아픔
하지만 이러한 속담이 아픈 역사를 거치면서 의미가 변질되어 한때 유행하게 됩니다. 바로 일제식민말기입니다. '묻지마라 1924년 갑자생' 이 말이 유행합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게되는 1940년이 지나면서 일본은 태평양전쟁에 온 힘을 쏟아붓게 됩니다. 전쟁에서 싸워야할 남자가 필요했고 전쟁물자를 보급해야할 노동력, 그 남자들을 위로해줄 정신대 등등 갖은 명목으로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터, 일터 등으로 끌고가 자신들의 목적에 사용하게 되죠.
당시 일본의 징집대상이 1924년 갑자생 전후의 출신들이 끌려가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시기였죠. 1924년 출생 전후가 징집대상이었던 겁니다. 어리고 말 잘듣는 하지만 성인처럼 육체적인 힘을 가진 나이죠.
이 세대들은 이처럼 청년시절 일제의 침략전쟁에 끌려갔거나, 아니면 항일무장투쟁의 전선에 섭니다. 뿐만아니라 해방이후에는 서로 좌우익으로 나뉘어 충돌했거나, 6·25전쟁에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세대들이죠. 6·25전쟁을 거치면서 사망한 사람이 전체의 2/3가 넘는 세대가 1924년 갑자생 세대라고 합니다.
따라서 '1924년 갑자생' 이라는 말은 그만큼 우리 역사의 아픔을 같이한 세대라 그만큼 험난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