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위크에 10년간 영문 칼럼을 쓸 정도로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는 한승주 고려대 정외과 교수(전 외무부 장관). 『우리 말보다 영어가 더 유창하다』는 말을 듣는 한 교수지만, 영어를 잘못해 황당한 일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
경기고 재학 시절,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소문나 미국 민간단체의 지원으로 2개월 동안 영어연수를 하기 위해 미국 뉴욕주에 도착한 첫날, 한 교수는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이에 웨이터가 다소 빠른 속도로 질문을 했으나 이를 알아듣지 못한 한 교수는 『Thats all right(괜찮다)』이라며 얼버무리려 했다. 다시 같은 문답이 오고간 끝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주방에 간 웨이터가 가지고 나온 것은 식빵을 뺀 햄과 달걀뿐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웨이터가 식빵을 White bread(흰색 식빵)로 할 것인지, dark bread(짙은 색 식빵)로 할 것인지를 물었는데 이를 알아듣지 못했었다』며 『그 때 실수가 영어 공부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날 실수 이후, 한 교수의 영어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화두가 됐다. 요즘도 매일같이 CNN을 보면서 끊임없이 영어표현을 연습하는 습관은 고교시절 AFKN을 들을 때부터 몸에 뱄다. 고교시절에는 LIFE지를 구해보았고, 요즘은 이코노미스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을 정독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한 교수가 즐겨쓰는 영어 공부 방법은 반복학습과 연상법이다. 『남산 기슭에 있는 미8군 종교휴양소 앞을 지날 때면, 40여 년전에 AFKN방송에서 미국인 DJ가 했던 표현을 한번 떠 올리며 말을 해 봅니다. At the beginning of another day, We extend to you a moment of religious meditation.(또 하루가 시작되는 시점에, 종교적 명상의 시간을 보내드립니다)』 그는 대한극장 앞을 지날 때는 영화 벤허에서 배운 영어대사를 떠 올리고, 단성사극장 앞을 지날 때면 비비안 리가 주연했던 「애수」의 영화대사를 반복하고 있다.
『영어 공부라는 것은 자꾸 영어로 생각하는 버릇을 기르고, 중요한 문장은 통째로 외우고 하다보면, 영어는 자연히 늘게 마련』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 교수가 이렇게 공들여 쌓은 영어 실력은 그가 외무부 장관에 취임한 후 빛을 발했다.
한 교수는 94년 미국을 방문, 앨 고어 부통령과 함께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하는 시기에 대해 논의를 했다. 협상기술상 서로 핵심을 말하기 보다는 빙 둘러가며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1시간쯤 지나 회담이 끝날 무렵, 고어 부통령이 『Have we been ambiguous enough?(이 정도면 우리가 충분히 돌려서 얘기했던 것이죠)』라고 농담을 건넸다. 이 말을 알아들은 한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고어 부통령의 팔을 잡아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한 장관과 함께 국제회의에 자주 참석했던 외교부의 한 간부는 『한 장관의 영어는 미국인들도 높이 평가하는 품격 높은 영어』라며 『한 장관이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소문이 나 있어 업무협의를 할 때 편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수준높은 농담을 알아 들을 정도로 그의 영어실력은 소문났지만 정작 본인은 여행갈 때마다 영한 사전을 넣어다닐 정도로 영어에 대해 겸손하다.
한 교수가 영어를 구사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외국사람을 만나서 영어로 대화할 때 단수형을 복수로 말하거나, 시제가 틀리면, 그냥 넘어가지 말아야 해요. 반드시 이를 다시 교정하고 가야 상대방이 「이사람, 영어 좀 하는구나」라고 인정해주고, 영어 실력도 늘어납니다.』
한 교수는 학생들의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정부가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외국에는 French Immersion School(프랑스어에 풍덩 빠지는 학교) 등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영어를 연수하는 기관이 많이 있다』며 『정부가 기존의 대학시설과 기숙사를 활용해 이런 식의 영어연수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