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와 사회[2003년 10월 16일 기사]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입대 당시 날씨도 그날의 분위기를 아는지 무척 싸늘했고,
연병장은 떨어지는 낙엽에 바람과 비,
그리고 가족들의 눈물이 더해져 입소식은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소식이 끝나고 드디어 훈련소 생활이 시작됐고,
입고 온 옷가지와 물품을 소포로 보내는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 하이라이트였다.
훈련소 생활 중 두 번째 기억에 남는 것은
밤에 불침번을 서는데 전우조인 동준이가
새벽이 되자 갑자기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정성껏 맨소래담을 발라준 일이다.
다음날 괜찮은지 물어보니 동준이는
밤에 꿈을 2부로 꾸었는데
1부는 통나무를 어깨에 메고 산을 등반하는 꿈이었고,
2부는 포탄에 맞았다고 했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주특기 발표 날 이었고
하루 종일 불안에 떨던 동준이는 결국 박격포로 보직을 받았다.
우리들은 그날 동준이가 풀이 죽어 걱정을 많이 해
기분전환도 할 겸 저녁에 동기들과 함께 과자를 먹었다.
그 과자에는 군인병정이 부록으로 들어있었고
신기하게도 동준이의 과자에서 나온 군인병정은
튼튼하고 늠름한 박격포 병정이었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웃을 수밖에 없었고
그 후 동기들과 의기투합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훈련소 생활을 마감하고 나는 집에서
가까운 서울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서울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우리를 환영해 준 것은 ‘서울우유’였다.
이른 새벽 식당에서 비몽사몽간에 본
우유들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런 와중에 “세 번째 우유가 열이 잘 안 맞았군”하는
생각이 들어 내가 점점 군인이 돼감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이제 얼마 후면 전역하게 된다.
군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얻었다.
그중 작업하면서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고로움을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휴가를 나가더라도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지고 받아들여진다.
평범한 일상의 모든 것을 전보다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부대에 적응할 무렵 내가 쉬고 있을 때도
많은 전우가 수고롭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야간에 근무를 서는 사람은 물론
내가 식사를 하거나 목욕탕을 이용할 때라든지,
나와 가까운 PX병 명수가 봉급날이면
PX가 만원이라 몸살을 앓는데 가끔
애처롭고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하나하나 마음을 써가며 살 수는 없지만
주위 사람들의 고마움을 인식하는 삶은
정신을 보다 풍요롭고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신문에서 “군대는 전쟁을 준비하는 곳,
사회는 전쟁을 하는 곳”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군에서 얻고 느낀 많은 것을 검증받기
위해 얼마 후면 사회로 입소한다.
솔직히 처음 부대에 들어올 때와 같이
막연한 두려움이 앞서지만 항상 고생하고 있을
전우들을 생각하면서 작게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크게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