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라 3시간 조금 넘으면 뉴질랜드 최대의 도시로 인구 약 140만인 북 섬 오클랜드에 내릴 수 있고, 남 섬 크라이스트처치로도 갈 수 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60만 인구에 남 섬 최대의 도시다.
한국 면적의 1.5배인 남 섬의 총 인구는 100만 정도다. 60만이 모여 사는 크라이스트처치는 우리 시각으로는 별것 아니게 생각할지 모르나 고층건물을 찾아보기 힘들고 가로세로 길들이 넓은 지역에 죽죽 나있어 도시의 면적만은 끝이 어딘지 모르게 넓다.
호주 인구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지만 한반도의 1.2배(한국의 2.5배)정도는 된다. 이 나라도 호주의 역사와 비슷하며 뉴질랜드라는 명칭은 네덜란드 사람이 자기 고향 질랜드와 비슷하다하여 앞에 "뉴"자를 붙여 뉴질랜드라 부르게 되었다하나 주로 영국인들이 이주하였다. 호주와 약간 다른 것은 호주에는 죄수들을 보냈고 뉴질랜드에는 정치범들을 보냈다고 한다.
공산품으로는 볼펜 한 자루도 못 만드는 나라지만 1차 산업인 농업 목축업은 세계최고라 여겨진다. 무엇보다 청정지역에서 나는 모든 식품은 신선도가 높아 유기농이니 무 농약이니 하는 말이 필요 없다. 값도 우리 물가의 3〜5배정도 싸다. 도시를 아무리 달려도 먼지를 느낄 수가 없다. 물이 깨끗하여 지하수거나 빗물을 그대로 마셔도 탈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시드니 관광을 마치고 오후 늦게 타스만을 건너간 뉴질랜드의 첫날은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잠만 자게 된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버스를 탄다. 관광도시 퀸스타운까지는 470km나 되는 거리로 고속도로가 없는 이 나라에서는 9시간도 넘게 타고 가야 한다. 현지 가이드 주갑성씨는 13년 전 부산에서 집단이민 케이스의 교민으로 이제 완전히 자리 잡고 성공한 분이다. “그죠, 그죠” 하는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에 쉴 새 없는 현지의 숨은 이야기들을 토해낸다.
“중머리 뽀글머리”
남섬 총인구 1백만 중 60%가 크라이스트처치에 모여 살고, 우리교민도 3천여 명이 살고 있는 남 섬 최대의 도시다. 이 곳에 12년 전 3백여 세대가 집단 이민을 왔는데 견디지 못하고 50여 가구는 한국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언어장애 즉 말이 안통해서였다. 그때 어려웠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이 나라도 호주처럼 땅은 넓은데 인구는 부족하니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기술을 가진 사람이었다. 미용사, 배관공, 목수 등의 기술을 가진 사람이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으나 그런 저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무엇부터 어떻게 할 줄 몰랐다. 먼 곳에 소풍 나온 사람들처럼 날마다 만나서 술이나 마시며 그럭저럭 세월을 죽이고 지내다보니 눈치 없는 머리는 어김없이 많이들 길었다. 이발을 하고 싶어도 한국에서 같은 이발소가 없으니 고민이었다. 그렇다고 계속 길어만 가는 머리를 그냥 둘 수도 없고 하여 현지의 이발소를 찾아갔는데 말이 안 통하기는 이발사나 교민이나 마찬가지.
머리 모양이 3가지가 있는데 “원, 투, 쓰리”하고 묻더란다. 영어에 자신이 없는 교민은 자신 있게 “넘버원”했다고 한다.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발사의 오케이 소리가 나더니 바리캉으로 단숨에 밀어버렸다. 우리네 이발 기계처럼 생긴 바리깡이 아니고 양털 깎는 기계라서 훨씬 넓적하고 날카롭고, 군대 훈련병 머리 깎듯 서너 번 휘둘러버리니 순식간에 머리털은 하나도 없이 사라져버렸겠다. 고민 고민에 걱정을 하면서 집으로 간 그 사람
“당신이 누군데 남의 집에 들어 오냐고 몰라 볼 정도” 아이들은 “아빠는 무슨 죄를 졌기에 이런 일을 당했는가” 야단이 났겠다. 영어 못해 그랬다는 말은 못하고 지혜를 짜서 나온 아빠의 변명
“우리 어언 몇 개월 지나도록 허송세월 보냈으니 이제부터 새로운 각오로 무언가 결심을 강하게 굳힌다는 뜻으로 일부러 깎았다”고 하는 변명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다음날부터 외출을 못하고 집안에만 있다가 궁리 끝에 모자를 눌러쓰고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교민을 만나고 보니 모자를 눌러 쓰고 다닌 교민은 자기뿐 아니라 점점 숫자가 늘어나 서로들 상대 얼굴 마주보고 웃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여자들은 어떻게 했을까? 한국인 미용실이 없어 그들의 미용실에 갔는데 다행스럽게도 머리 모양의 모델 사진이 전시되어있고 그 그림을 가리키면 그런 모양으로 해주니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파마가 문제였다. 파마를 하겠다고 어렵게 부탁했는데 빠글빠글 흑인들 라면 머리 볶듯 엉망으로 망쳐놓았다.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은 중머리 감추기 위해 모자 쓰고 살고 아내는 빠글빠글 튀긴 라면머리라 서로들 손가락질하며 살아가는 교민들 그때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고국에서 전문 미용사 한 분이 이민 온다는 소식이었다. 공군 중령 부인인데, 남편은 항공기 조종사 하셨고 퇴직하게 되어 살기 좋은 뉴질랜드로 이민 온다는 소식이었다. 조종사를 하신 남편은 영어를 잘 하고 공군 장교에서 민간 항공기 조종사까지 하셨으니 고급인력에 후일 교민 회장까지 맡아 교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셨던 훌륭한 분이었다. 이런 분의 사모님이 미용기술자라니 교민들의 기대는 크게 부풀었다. 기다렸던 사모님이 오던 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만나고 보니 소문은 약간 실망이었다. 실무 기술자가 아니고 심사위원을 하셨다나 그러다가 더 자세히 알고 보니 그 방면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란다. 미용에 관심이 많아 그 방면에 잘 안다는 수준일 뿐 기술자는 아니라고 실토를 했지만 학수고대 기다렸던 교민들은 이미 소문난 여론 그대로 몰고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미용 실기를 시작한 것이다. 가게도 없이 집에서 평소 실력으로 해 주다 보니 저절로 기술은 늘어가고 진짜 기술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남자들도 이 분에게 머리를 맡기는데 자기 남편 군인머리 스타일로 기술은 한가지뿐이어서 모든 교민 남자들은 똑 같은 군인머리로 변해가고 있었으니 밖에 나가면 머리만 보아도 한국교민임을 알 수 있었다한다.
돈도 안 받고 김치나 기타 반찬, 고기 등 먹거리로 보답하는 등 그러다가 모임을 소집하여 “이, 미용 요금 책정 협의회”라는 회합을 몇 번 가진 끝에 남자는 10불, 여자는 30불로 책정하였고 남자 요금은 지금까지도 그대로고, 여자는 50불까지 올랐다고 한다. 지금은 7곳 정도 정식 업소가 성업 중이고 그때 그 사모님 내외는 돈 많이 벌어 이사하여 고급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
“전복(全鰒)사건”
바다에 나가면 물 반 고기 반으로 낚시를 담그기 바쁘게 월척이 넘는 고기들도 줄줄이 올라오니 낚시질이 아니라 건져 담그기 바쁘단다. 고기뿐 아니라 전복도 많다. 청정한 바다 속 눈에 보이는 바위 돌에 무시로 붙어있는 전복을 주워 담기만 하면 되는 일, 할 일 없는 교민들 날마다 전복 건져다가 술 안주에 실컷 즐겼다.
하루는 세 집 식구들 함께 나들이 겸 전복 따러 가자고 마음먹고 준비하고 갔겠다. 준비해 간 자루에 전복을 가득가득 담아 집에 가져왔는데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들은 전복자루를 마당에 쏟아 놓고 낱낱이 자로 재고 사진 찍고 기록을 하더니 그대로 두고 가더란다. 이웃집에서 신고를 한 것 같은데 경찰이 그대로 두고 가니까 다시 주워 잡수셨겠다. 한 달 후쯤 무슨 편지가 배달되었는데 벌금 납부 통지서였다. 우리 돈 1억 2천만원정도의 벌금형이 내려진 것이다. 한 집에 4천만 원씩 내라는 것이었다. 이 소문이 교민 사회에 톱기사로 등장하여 야단이 났고 당사자들은 돈을 못 내면 추방을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국으로 되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이민 간다고 재산 정리하고 친척들에게 인사까지 하고 왔는데 되돌아간다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경찰들은 12cm이하 것을 자로 재서 몇 마리인가를 기록하였던 것이다. 전복을 잡되 12cm 이하 것을 잡으면 벌금형에 처한다는 내용이 바닷가 현장 팻말에 적혀 세워져 있었으나 영어를 모르니 아무도 모르고 닥치는 대로 새끼전복까지 잡았던 것이다.
“생선튀김”
이민 온 교민 중에 한 낚시 광이 있었다.
할 일 없이 날마다 바다낚시 다니는 재미로 살고 있었다. 물 반 고기 반이라 낚는 게 아니라 담그기 바쁘게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니 술안주 감으로 생선회 떠서 신나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분은 낚시만 잘 하는 게 아니라 회를 뜨는 기술이 프로급이어서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의 입을 매일 즐겁게 해주었다. 그렇게 날마다 낚시 인생을 살아가니 돈 벌이해야할 가장이 마누라 걱정을 시키게 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무엇을 해서 먹고사나 고민하다가 자기 취미와 연관 있는 생선튀김을 하면 어떨까 하여 본국으로 연락을 취해 허름한 중고품 튀김기기를 한대 구입하였다. 이 나라는 요리 기술이 미숙하여 밀가루에 버무려 튀긴 생선 맛을 보더니 뿅! 가더라는 것, 사업성에 불이 붙더니 그 수요가 날마다 늘어갔다. 장사는 잘 되고 엄청난 수요에 공급이 딸려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손님들은 날마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잘 되었다.
이 소문을 듣고 어느 날 신문 기자 한사람이 취재하러왔다. 이런 기술로도 돈벌이가 잘 되는 것을 거울삼아 무엇인가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기사를 썼는데 그 일이 엄청난 광고 효과를 몰고 와 손님은 더 많이 밀렸다. 이 소식을 들은 교민들은 순식간에 너도나도 생선튀김 가게를 열어 예닐곱 집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처음 시작했던 그 집만 돈을 벌었을 뿐 거의 다 문 닫고 말았다. 이유는 맛과 기술 속도 어느 것 하나 그분을 따라갈 수 없었고 무작정 차리고 보자는 무모한 용기 때문에 점포 수는 너무 늘어나고 넘치는 공급에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고 균형을 잃었다.
“식품검역과 무공해 사과”
호주도 그렇지만 뉴질랜드 공항에 내리면 세관원보다 훨씬 강한 검색을 하는 사람은 농수산청 직원들이다. 과일이나 외부 음식물 애완동물 같은 것을 철저히 검색하여 밝혀낸다. 들여오는 일에 철저히 엄격하다는 말이다. 자국에서 나오는 농산물이나 과일 등의 청정원형 보전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
남섬 남부의 관광도시 퀸스타운으로 가던 도중에 휴식을 겸하여 한 과일가게에 들렀다. 한 길가에 휴게소처럼 지어져있는 20여종이 넘는 전문과일 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과일들은 다 있는 것 같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빨간 사과가 한 자루씩 담겨있다. 나는 8개 든 봉지를 들고 값을 물었다. 우리 돈 3천원 정도였으며 국내 값으로 계산하면 개당 1500원짜리 정도였다. 싱싱하고 깨끗하여 오지랖에 쓱쓱 문질러 그대로 먹어도 되는 무공해 과일, 우리나라에서 같으면 유기농과일이다. 이 나라는 유기농이나 농약이라는 용어가 아예 없다. 모든 농산물이 무 농약에 유기농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식품에 대한 관리가 얼마나 철저하든지 누구든 식품사범으로 걸리면 종신형을 선고한다고 한다.
사과를 좋아하는 나는 덥석 한 봉지를 샀다. 차에서도 먹고 호텔에 가서도 후식으로 먹으면 되겠지 하는 계산이었다. 버스에 올라보니 동행 가이드는 포대 째 두 자루를 샀다. 그날 밤 호텔에 오자마자 1인당 5개씩 공짜로 가져가란다. 나는 내 것 먹으랴, 주는 것 처치하랴, 즐거운 고민이었다. 이 과일들은 뉴질랜드 안에서 다 소비해야지 절대로 타국에는 가지고 갈 수 없다고 한다. 공항에 나가면 농수산청 직원이 가차 없이 보따리를 속속 뒤지니 각별히 주의하라고 누차 얘기한다. 내가 과연 2박 3일 동안 어떻게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아침마다 호텔식당에 나가면 과일들이 십여 종씩 풍족하게 나와 있기 때문에 어느 시간에 먹을 틈이 없었다. 공항을 거칠 때는 작은 주머니칼도 다 압수당하고 마니 칼이 없어 별 수 없이 맨입으로 툭툭 베어 먹어야 하나 그러기에는 내 치아가 신통치 않아 더욱 고민거리였다.
시드니를 가기 위해 오클랜드 공항을 출발하기까지 어찌 어찌하여 나는 다 처치하였다. 동행 가이드는 또 다시 짐 보따리 확인하시라고 당부한다.
“과일이나 식품은 절대 안 됩니다.”
몇 번이나 들었는지 귀가 시끄러울 정도였다. 입국신고서류에 과일이나 식품이 있나 없나를 표시하게 되어있고, 모두 없다고 하면 그냥 통과시키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걸리면 신용불량에 벌금에 난처한 일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시드니 공항에 내리니 검역원이 아무것도 없냐고 묻는다. 가이드는 일행 25명 모두가 완벽하게 없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뒤에서 보따리 검사를 하더니 난리가 났다. 목사님 내외가 두 쌍 오셨는데 한 사모님의 휴대용 작은 가방 속에서 사과 한 개가 발견된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생겼는가. 그토록 당부했건만. 허탈해하는 가이드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 뒤 사람부터는 전원이 모두 가방을 풀어놓고 정밀검사를 받는 곤욕을 치렀다. 가이드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고 향후 1년 간 투어신용불량 리스트에 오르고 벌금도 물었고 밤늦도록 말없이 담배만 피워대고 술을 마셨다고도 한다. 그러나 필자가 민 가이드에게 직접 확인 한 바로는 벌금은 물지 않았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가방 속에서 사과 나온 그 분의 태도다. 그러고도 반성하는 말 한마디 눈빛하나 보여주지 않자 목사까지 한 부인의 인격이 저 정도냐고 일행들이 앉으면 수군거렸다. 신도들이 돈 5만원씩 거둬주었다며, 그 신도들도 참 딱하지, 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행 다니며 제 앞가림도 잘 못하는 노인들이 젊은 사람보고 돈이 어디서 나와 젊은 나이에 여행들 왔을까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젊은이 입장에서 보면 노인들이 아까운 외화 낭비하며 옆 사람들 속 태우고 다니는 주책이나 부리고 다니니 나라 망신이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여행! 무엇인가 남기는 장사가 못되고 깃발부대 틈에 섞여 제 앞가림도 잘 못 하며, 제 힘으로 끌지도 못하는 큰 가방 가지고 다니며, 그 속에는 갈아입을 옷만 잔뜩 들어있고,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질 좋은 물건 많이 있는데, 외제상품 이것저것 잔뜩 사서 넣고 다니는 사람들. 눈요기나 하고 다니는 여행객들 그들도 할말은 있다. 내 돈 주고 내가 다니는 여행 누가 뭐라 하냐고, 자기가 평생 모았다 다니는 것인지 자식들에게 손 내밀어 부담 시켜 다니는 병적인 여행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양(羊)들의 번식과 이용”
뉴질랜드는 뱀이나 맹수가 없는 나라다. 2백여 년 전 영국인들이 상륙하였을 때 끝없이 너른 초원을 보고 양을 기르면 좋겠다 하고 이민선박에 사람과 함께 양을 싣고 와서 번식시킨 것이 양들의 살기 시작한 역사일 것이다.
양의 수명은 20~25년까지 살 수 있다 하나 목장에서 인간들에게 의도적으로 길러지는 양들의 평균 수명은 8년이란다. 더 이상 키우면 부가가치가 상실된다는 목적에서 그렇다.
양들이 새끼를 낳아서 3개월이 되면 숫양들은 모조리 식용으로 팔리는데 50마리에 한 마리 꼴로 종자 양을 골라낸다. 암놈과 교배용으로 우수한 품종을 골라서 별도 사육하고 나머지는 모두 도살하여 털, 가죽, 식용으로 팔린다.
50:1로 숫양 구실을 하게 된 양은 또다시 암양 75:1의 비율로 우리에 넣어 신방을 제공받게 되는데 그 기간은 2개월이며 시기는 2,3월이 적기다. 한 우리에 넣어주면 숫양 한 마리를 신부 양 75마리가 빙 둘러서서 성은을 기다리고 있는데, 하루에 2~3마리의 신부만 받고 남은 시간은 휴식을 취해야 이튿날 새 신부를 받을 수 있다. 가끔 5마리 정도의 암양을 받아 정력과시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다가는 그 이튿날까지 잠을 자며 그만큼 휴식을 길게 취한다.
신방을 마치자마자 농장 주인의 할 일은 머리통에 유색 스프레이를 뿌려서 우리 밖으로 몰아내게 되는데, 수놈 성기 주위에 빨간 물감을 떡 칠해 놓으면 암놈 꽁무니에 물감이 묻어졌으면 일이 끝난 놈으로 인정받고 밖으로 나오는데 수시로 색깔을 바꾼다. 날짜를 기록해두어야 5개월 후에 새끼를 낳을 수 있다는 기준을 삼기 위해서다. 간혹 신방을 두 번 차리는 경우가 있는데 농장 주인이 미쳐 가려내지 못 한 틈에 한 번 더 들어가서 재차 교미에 응하게 되는데 그 사실은 빨간 물이 묻어있는 꽁무니에 또 파란 물이 묻어있으면 들통이 난다는 것이다. 그 암양은 정력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머리가 둔하여 했는지 안 했는지 망각하고 다시 들어가 실수를 한 거란다. 새끼로 태어난 후 1년 6개월 정도 자라면 어미가 되어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이 나라에서 길러지는 양은 27종이 있으며 가장 우수한 품종은 메리노란다. 몸집이 크고 털도 많이 나와 단연 우수품종으로 인정받는다.
양털 이불은 양 한 마리를 깍은 양으로 이불 한 채를 만들 수는 있으나 상품(上品)인 등 털만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몇 마리 분이 들어가야 하며 목털이나 짧은 배털 등은 질이 나빠 건축 단열재로 쓰이는 석면이나 스티로폼 대신으로 쓰인다. 양털 이불은 13만 원 대부터 있으며, 우수품종인 메리노 털의 이불은 값이 두 배 이상 비싸다.
가장 비싼 것은 “알파카”라는 털인데 알파카라는 낙타과의 동물로 양과 사슴과 당나귀가 혼합된 듯한 모양으로 생겼다. 털의 빛깔이 고울 뿐만 아니라 기르기가 까다로워 마리당 값이 400만원정도란다.(보통 양 한 마리는 3~4만원, 소80만원) 알파카 털로 만든 이불은 100만 원 이상 간다.
양털의 특징은 수분 흡수력이 좋고 따뜻하고, 사철 덮어도 온도조절이 잘 되며, 인체에 해가 없다고 한다. 알파카 털이 특히 고급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절대 염색이 안 되고, 때가 안타며, 정전기 발생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미세한 털을 현미경으로 관찰해 보면 수많은 공기구멍이 숭숭 나 있어 수분 흡수력이 뛰어나며, 증발도 저절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난방을 하지 않은 방에서 덮어도 우리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신기함을 체험할 수 있었다.
“관광도시 퀸스타운으로”
남섬 최대의 도시이자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크라이스트처치는 우리 교민이 3천 명 정도이며 서울의 절반정도 면적으로 되어있다. 이 도시의 첫 인상은 영국의 오래된 한 도시의 거리를 걷는 기분이 든다. 해글리 공원 안을 흐르는 개천 같은 곳을 에이번 강이라 하며, 영국인이 영국인을 위해 영국보다 더 영국적인 공원의 도시로 만든 정원의 도시라고 말하며, 남 섬 총인구의 60%가 모여 사는 곳이다.
아침 8시반경 이 도시를 출발 남쪽으로 약 470km의 버스길이 시작된다. 퀸스타운을 향해 2차선 도로를 달리는 켄터베리 대평원은 끝없이 푸른 목장들로 이어지며 양떼, 소떼가 무더기무더기 모여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소 한 마리의 법정 면적이 1200평이라니 감옥같이 좁은 우리에 갇혀 사는 한국의 젖소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끝없이 너른 들이 몽골 대평원을 연상케도 하지만 이곳은 사막이 아니라 푸르디푸른 싱싱한 들판이라는 점이 다르다. 우측으로는 2천미터급 서든 알프스 산맥으로 하얀 지붕의 만년설이 아스라이 전개된다.
퀸스타운으로 가는 길에 푸카키 호수와 데카포 호수가에서 잠깐씩 쉬었다. 마운트쿡 산맥에서 빙하가 녹아내려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호수들로 푸카키 댐을 만들어 발전을 하는 곳도 있었다.
퀸스타운은 남섬뿐 아니라 뉴질랜드 전체로 보아도 가장 큰 관광도시다. 와카티푸 호수의 아름다운 경치와 어우러진 말 그대로 여왕의 도시에 인구 5만정도가 4철 북적거린다. 아름다운 천혜의 비경, 빙하의 전설이 살아있는 밀포드 사운드를 가기위한 정착지이기도 하지만 퀸스타운 자체로도 주변에 사철 즐길 수 있는 세계적인 스키장이 두 곳이나 있고, 수상 레포츠 번지점프 제트보트와 래프팅을 즐길 수 있어 레포츠와 휴양을 위한 최고급 관광 도시라 할 수 있다.
퀸스타운에 도착한 시간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저녁시간이다. 아름다운 와카티푸 호수가에 펼쳐진 밤 풍경의 퀸스타운은 천혜의 자연 경관이 조명과 함께 어우러져 관광도시다운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세계 자연유산 밀포드 사운드”
세계최대의 국립공원은 스위스 알프스, 캐나다 로키, 뉴질랜드의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이다.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은 남 섬의 서남쪽에 위치하며 남극에 가장 가까운 곳이다. 약 1만2천년 전 빙하에 의해 형성되어 태곳적 웅장한 원시림의 모습을 보유한 세계 최고의 국립공원이다. 지구의 진화역사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원시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천혜의 비경이자 인류의 고귀한 자연유산이다. 2천 미터 급 산 정상에는 4철 만년설이 쌓여 그 녹아내리는 물이 실 폭포를 이루고 있으나 말이 실 폭포지 큰 것은 길이가 나이아가라의 3배가 넘는 것도 있다.
밀포드 사운드는 이 국립공원 안에 있는 비경 한 곳을 관광객에게 개방한 관광 상품이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한 시간 넘게 에니타 만을 돌아오는 코스다. 유람선 갑판 위에서는 사진기 셔터 돌아가는 소리 요란하다. 양옆으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푸른 바위 산들, 요소요소로 하얀 실핏줄처럼 흘러내리는 폭포, 구름이 내려왔다 갔다, 실비가 뿌렸다 그쳤다, 폭포수는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데 바위틈에 쉬고 있는 물개들 유람선에 태워진 우리 인간들을 구경한다.
이 국립공원 안에는 밀포드사운드 같은 코스가 15개나 더 있고, 규모가 밀포드 보다 두 배가 넘는 곳도 있으나 관광 시설이 안 되어 당장 들어가 볼 수는 없다. 관광시설 미비로 아직은 개방을 할 수 없지만 이 밀포드만 보게 되는 것도 행운이란다. 날씨가 변덕이 심하여 운이 없으면 고생만 하다 되돌아간다 한다. 길이 나쁘고 외길 터널도 지나야 하기 때문에 눈이 쌓이거나 비가 많이 와도 못 보게 된다.
“반지의 제왕 촬영지”
켄터베리 대평원이 끝나고 퀸스타운이 가까워지자 길 양편으로 산들이 쑥쑥 솟아나고 계곡에는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양쪽 산세가 심상치 않다 싶게 느껴진다. 풀은 있으나 나무는 없고 조용한 정적이 흐른가 싶더니 괴기한 느낌 마저 드는 산 잠시 후 43m높이의 카와라우 다리가 나온다. 번지점프의 원조, 십여년 전 시작된 이곳 최초 번지 점프장에서 한국 연예인들의 촬영도 있었단다. 양옆 산세는 반지의 제왕 1편에 나오는 촬영 장소였다는 산줄기가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시켜주는 듯 하다.
퀸스타운에서 1박하고 밀포드 사운드로 가기 위해 30여km지점 테아나우 호수(352㎢로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 큰 호수)가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반지의 제왕 3편 촬영지 테아나우 호수 주변은 하루에도 순간순간 4계절이 공존하는 곳이다. 연6000mm의 세계최고 강수량 때문에 매우 습한 지역이다. 2천미터급 주변의 산 정상에서 태곳적 빙하가 녹아내려 호수를 이루고 쌀쌀한 바람 습한 공기 자연이 자연으로 살아가는 테아나우 주변은 푸르고 수목이 우거져있으며 비, 이슬, 바람, 무지개가 함께 어우러져 그야말로 싱싱한 자연으로 살아간다. 이날 따라 호수는 잔잔하지 않고 가볍게 출렁거린다.
퀸스타운에서 밀포드까지는 120km, 험난한 산세와 호머터널을 지나고도 20km 쯤 더 가야 최종 목적지 밀포드 사운드다. 호머터널은 외길 도로다. 산세가 험하나 경치는 독특하여 반지의 제왕 2편을 여기서 찍었다는 세계적인 뉴질랜드 출신 영화감독 피터잭슨은 반지의 제왕 세 편을 한꺼번에 다 찍고도 1년에 한편씩 크리스마스 때만 방영했다. 영화가 히트하는 바람에 이곳 관광지에는 평소보다 수십 배 관광객이 폭주하여 5백만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왔고 주변의 집 값 땅값도 엄청 올랐으며 그래서 피터잭슨 감독은 뉴질랜드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추대되었다.
“녹용이 왜 좋은가”
녹용이라면 서양 사람들은 별 관심 안 두는데 동양사람 중에도 특히 한국인이 많이들 좋아한다. 그래서 한국에 가장 많이 수출한다. 뉴질랜드 산 진품만 사면 다행인데 북미, 러시아산을 속여서 팔아도 대부분의 소비자는 구별할 수가 없다.
맹수와 뱀이 없는 이 나라에는 양떼와 소떼들만 보인다. 사슴도 많이 기른다. 세계 녹용 시장 70%이상을 점유하고 사슴 연구소까지 갖춘 나라다. 사슴은 녹용이 주 생산 목적이며 식용으로도 쓰인다.
사슴의 품종은 20여종인데 그중 세 품종에서만 녹용 채취가 가능하다. 뉴질랜드가 녹용 생산국으로 유명한 이유는 춘하추동 청정 기후와 정부의 철저한 관리 감독이 있고 세계적으로 사슴연구 기관을 정부기구로 두고 있는 것도 품질 좋은 녹용생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다. 세계 44개국에 통관 허가증까지 받아두고 있기 때문에 정품을 사면 공항에서 무난히 통과된다.
녹용은 성장 호르몬 덩어리라고 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 먹을수록 좋다. 녹용을 먹였더니 몸만 너무 크고 바보가 되는 수가 있다는 말도 있다. 정량을 규정대로 먹이지 않고 욕심껏 먹이다가는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성장 호르몬이 다량 함유된 녹용은 노소불문 아무에게나 좋다는 것이다.
등급이 높은 진품은 생강, 대추, 당귀 등 다른 한약재를 섞지 않고 녹용 한 가지만 달여 먹여도 좋다.
자라서 녹용이 되는 것은 수놈의 뿔이며 45~50일간 자라고 1년에 두 번 잘라낸다. 하루에 2~3cm씩 자라며 반드시 50일 이내에 잘라야 한다. 인삼이 6년 지나면 약효가 떨어지듯 녹용도 50일이 지나면 단단한 뿔로 변하고 나중에는 저절로 빠져 버리며 잘라봐야 녹각밖에 안 된다. 녹각은 약효도 거의 미미하고 값도 안쳐준다. 진품 녹용 조각을 보면 융단처럼 잔털이 나 있고 약간 말랑말랑하여 녹각이나 뿔과는 다르다.
“동굴 속에 은하수가”
북섬 오클랜드에서 남서방향 24km를 내려가면 와이토모 동굴이 나온다. 세계 8대 불가사의인 반딧불이 동굴이라고 하나 어느 지역에 가면 7위니 8위니 하는 불가사의 순위를 나는 잘 믿지 않지만 특이한 현상인 것만은 사실이다.
물의 힘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성된 석회종유동굴이다. 버스길 3시간정도에 푸르고 청정한 낯 선 지역을 본다한들 여유시간은 많다. 마이크를 잡은 현지가이드 이윤기 씨는 거침없는 특유의 달변을 쏟아낸다.
오클랜드는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140만의 도시로 한국에서 9500km떨어진 곳입니다. 우리나라와는 무비자국이며 우리 교민 1만4천이 살고 있고 5대 수입국입니다. 지난 월드컵 때 여기서도 뒤집어졌습니다. 빨간 옷 입고 시청 앞 광장에 모인 후 온 시내를 누비고 난리였습니다. 옷이 없는 사람은 빨간 내복만 입고 나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국 교민의 위상은 하늘을 나르듯 붕붕 떴습니다.
한국 대통령으로는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 두 분이 오셨는데 김대중 대통령 오셨을 때 교민 회장단 말석 총무자리에서나마 이 사람도 악수를 하였습니다.
중국 교민이 약 10만으로 제일 많고 다음이 일본계인데 일본과 한국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44:11로 싸운 적이 있었지요. 패싸움에 놀라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고 야단이 났는데 일본 대학생 25명이 앰뷸런스에 실려 갔고, 한국학생 11명은 다 도망 가버려 한 명도 못 잡았답니다.
한국에서 수입하는 품목은 전자제품, 자동차, 선반(쇠 깎는 기계), 기계 등인데 삼성전자제품은 일본의 소니보다 값도 비싸고 가장 높은 진열대에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 쇠고기 맛 중 최고는 한우지요. 그러나 사료에 항생제를 섞어 먹이는 게 문제다. 소 한 마리는 인간의 400배 환경오염 시킨다. 뉴질랜드에는 총인구의 두 배인 약 7백만 두의 소가 있어도 한 마리가 1200평의 면적을 차지하므로 38일만에 제자리에 돌아와 보면 배설물은 지렁이와 미생물에 의해 완전 자연 분해 되어버린다.
한국인 관광객이 청정지역 꿀은 당연히 좋을 것 같아 꿀을 사려고
“꿀이 진짜냐? 가짜냐?” 하고 물으니
“진짜도 없고, 가짜도 없다.”
“그냥 꿀이 있을 뿐이다.” 라고 대답했다. 뉴질랜드 상인은 다시 묻기를
“왜 그렇게 진짜 가짜 가르려고 하느냐?” 하니 한국인 대답하기를
“미안합니다. 일본인들은 꿀에 설탕을 섞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라고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 가이드의 말은 다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지만 여행자들을 즐겁고 신나게는 해준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와이토모 동굴 앞까지 왔다. 시골이었다. 동굴이 발견되고 부터 주위에 집들이 제법 늘어나고 땅값도 올랐다지만 1백여 년 동안 관광객 수백만을 끌어들였다는 소문에 비하면 아직도 한참 시골스러운 분위기였다.
동굴 입구에서 가이드의 주의 사항을 듣는다. 보트를 타고 들어가며, 절대 조용해야 하고, 침묵으로 감상만 하란다. 동굴 내부를 어둡고 조용하게 두는 이유는 반딧불이의 빛을 보려면 어두워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연보존을 최우선으로 신경 쓰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동굴 천정에 덕지덕지 엉겨 붙어있는 수 만 마리의 벌레들이 내는 찬란한 빛은 밤하늘 은하수를 보는 듯 자연의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로토루아 유황온천”
로토루아는 뉴질랜드에서 7번째 큰 인구 약 6만 5천의 관광 도시다.
이 곳은 원주민 마오리족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로 호수 온천 유황의 도시로 백여년 전만 해도 화산이 폭발했던 곳이다.
화산이 언제 또 터질지 모르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에 일시 불안감이 감돈다.
“위험하지만 목숨 걸고 관광은 해야지 어쩝니까” 가이드의 천연덕스러운 안내방송이 다시 열기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로토루아 (두 번째 큰 호수란 뜻)는 마오리족의 본거지이자 지금도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원주민 마을이기도 하다. 그들이 혀를 쑥 내미는 이유는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일종의 겁주기 모션이다. 그러나 여자가 혀를 내면 안 된다. 구애의 뜻이란다.
마오리족의 피부가 유난히 좋은 이유는 로토루아의 유황 온천 때문이 아닌가 싶다. 팥죽처럼 부글부글 솟아오르는 진흙은 그대로 몸에 바르기만 하면 피부가 고와지며 질병 치료효과도 크다. 그래서 값비싼 화장품 원료로 쓰인다. 노천에 흐르는 물이 유황성분에 뜨거운 물이어서 자연 상태로 담그기만 하면 온천욕이 된다. 온도가 따뜻하여 월동준비 걱정도 없다. 그런 연유로 마오리족들은 위험을 알면서도 자연환경조건이 좋아 그대로 살아가는 듯 하다.
로토루아는 15만 년 전부터 용암이 들끓어 불과 1백 년 전만 해도 화산 폭발이 있었다. 해발 297m에 위치해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온천 휴양도시로 해마다 도시 인구 열 배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와이토모에서 로토루아로 가고 있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의 마이크는 쉬지 않고 계속 바쁘다.
이민의 개념도 옛날과는 다릅니다. 지금은 먹고살기 위해 돈벌러 가는 게 아니라 자식 때문에 이민 갑니다. 교육환경, 문화, 복지환경이 좋아서 갑니다.
남북 섬 통틀어 한국식당 200개정도 됩니다. 한국식당도 점점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한국음식이 주로 발효식품이어서 뱃속이 편해 한 번 먹고 나면 또 먹고 싶어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빠르게 번져가고 있습니다.
오클랜드에는 떡집도 한군데 생겼습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떡을 살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명절 때는 웃돈을 준다 해도 떡 사먹기 힘듭니다.
뉴질랜드에서 이혼 당하면 남자는 큰 일 납니다. 여자의 나라입니다. 현 수상도 여자, 전 수상도 여자였습니다. 여자에게는 과부 수당도 있는 나라입니다.
4백만 인구에 골프장이 260개정도, 한국은 4천만이 넘는 인구에 250개정도 아닙니까. 이곳은 여러 민족이 모여 살다 보니 인종차별이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 단일민족이라 인종차별 있는 편이지요. 한 택시 기사가 흑인 두 명을 태우고 김포공항으로 가던 도중 친구에게 전화를 받습니다. 친구가 “지금 뭐 하냐” 물으니 “연탄 두 장 배달 간다” 고 했겠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택시미터기에 4만4천원의 요금이 나왔기에 요금을 알려주니 860원 주었데요. “왜 이것만 주냐”고 하니까 연탄 한 장 430원이면 2장에 860원 아니냐고 하더랍니다.
정신집중 가이드의 설명을 듣다보면 금세 목적지에 다 온다. 로토루아에 도착되자 폴리네시안 풀에서 온천욕을 즐긴다. 수영복 없는 사람은 4천원 주고 빌려 입고 탕에 들어갔다. 실내에 있는 탕은 물이 목까지 차올라 수영도 할 수 있었다. 유황냄새가 진동하여 많이 못 참고 일찍 나가는 이도 있었다. 야외에 노천탕 서너 개가 더 있는데 무릎정도도 안 되는 얕은 물이지만 자연 상태로 김이 무럭무럭 나는 뜨거운 물이었다. 땅 밑이 화산이었고 지금도 불덩이가 살아있다는 상상 쉽게 할 수 있다. 나는 평소 해수욕을 해보지 않은 탓인지 수영복들은 착용했지만 남녀가 혼탕으로 들어 가 보기로는 처음이라 몸매 좋은 이성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양털 깎기 쇼”
양이 많은 나라이니 양을 이용한 관광 상품을 하나 만들어 양털 깎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실내체육관처럼 큰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양의 배설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 교회 신도들이 앉아 예배보는 의자처럼 나무의자에 앉아 쇼를 진행하는 사회자를 주시한다. 정면에는 목사님의 설교 테이블처럼 만들어진 단이 여러 개 준비되어있다.
“메리노” 라는 양을 가장 먼저 끌어들여 맨 윗자리에 잡아맨다. 이어서 양쪽으로 한 마리씩 19마리가 찰 때까지 사회자의 양 소개는 계속된다. 양도 종류에 따라 값이 다르다. 메리노가 가장 비싸다. 보통양털 이불은 13만원부터인데 메리노 양털 이불은 25만원부터란다. 양털로 이불을 만들 때는 등 털만 쓰고 목털이나 뒤 털은 단열재로 쓰인다. 양털 깎기는 보통은 하루에 250마리이나 잘 깎는 사람은 4~5백마리 씩도 깎는다. 마리 당 1.2불(N$)이니 1일 수입이 우리 돈 4~5십 만원은 될 듯싶다. 양털 깎기 대회도 열리는데 720마리를 깎아 오랫동안 기록을 보유했는데 작년에 851마리를 깎는 사람이 나타나 기록이 바뀌었다고 한다. 양털은 1년에 두 번 깎는다.
양털 깎기 쇼가 끝나면 관광객은 밖에 나와서 넓은 잔디마당에 빙 둘러서 있고, 개가 양몰이 하는 시범을 보여준다. 째려보는 개와 큰 소리로 짓는 개 두 종류가 있다. 개는 사람이 호각 신호를 보내는 대로 양 3마리를 몰고 다닌다.
트렉터를 타고 목장 안으로 들어가 본다. 양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거들랑 각별히 지뢰를 조심하라고 일렀으나 냄새나는 지뢰를 나만 빼고 다들 밟은 것 같다. 냄새가 좀 나겠지만 기념은 되겠네(?)한마디 남겼다.
목장에 직접 들어가 양, 사슴, 타조, 소들을 가까이서 보았는데 특히 생전 처음 “알파카”를 볼 수 있었다는 일은 큰 추억으로 남는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동물 알파카는 얼핏 사슴처럼 목이 길고 당나귀의 모습을 풍기지만 본적은 낙타과의 동물로써 남미의 칠레 페루 볼리비아 등 안데스 산맥 표고 4천-4800m정도 산악지대가 본산이다. 흑색,갈색,백색 등으로 무늬가 있는것도 있으며, 그 털이 엄청난 고가(高價)이다 보니 몸집은 작아도 소 5마리 값이란다.
“레드우드 수목원”
산림욕을 경험해보기로 한다.
도보로 40여분 레드우드 숲을 거닐어 본다. 아름드리 메타세코야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나무의 키가 보통 50m이상이고 큰 것은 70이 넘는 것도 있다. 일명 캘리포니아 소나무라고도 하는 메타세코야는 나무 속이 붉다. 그래서 레드우드라고 부른다. 백여 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가져다가 심었다고 하며 가장 큰 72m짜리는 104년 되었다. 보통 한 그루에 2천만 원을 호가한다. 이런 나무 하나로 현지에서는 2층집 한 체를 넉넉히 지을 수 있다.
“마오리 민속쇼와 항이디너”
로토루아는 마오리 문화의 중심지로 마오리 문화의 꽃을 피워왔다. 음악 목공예 등 마오리 문화의 전당으로 자리 매김 해왔다. 화산지대라는 지역 특성을 이용한 음식문화도 발달해 지열로 돼지고기 양고기 같은 육류와 감자를 쪄내는 마오리 특유의 항이 요리를 만들어낸다. 항이 요리와 함께 마오리 민속쇼를 즐길 수 있는 식당도 많다. 우리 호텔에서도 저녁식사를 겸한 디너쇼라 할까 민속쇼 공연을 체험하였다.
특이한 민속복장을 한 여자 사회자 옆에서 반라로 배가 튀어나오고 눈이 부리부리한 마오리족의 전사 모습을 한 남자가 기다란 막대를 들고 혀를 쭉쭉 내민다. 잠시 후 남녀 5~6명이 합세하더니 특유의 민속 노래를 부른다. 여성 중심의 포이댄스와 막대기를 던지면서 노래 부르는 스틱댄스, 전투에 참가하기 전의 의식인 하카춤으로 이어진다. 혀를 내밀며 상대방을 위협해서 기선을 제압하는 하카를 통해 마오리족의 독특한 의식을 느낄 수 있다.
“요트시티 오클랜드와 에덴동산”
식민지시절 뉴질랜드의 수도였던(현재의 수도는 웰링턴) 오클랜드는 세계적인 요트의 메카이다. 인구 140만인 이 도시에 요트가 35만대 이상이라면 평균 4인당 1대의 요트를 소유할 정도로 요트의 천국이다. 집과 자가용 요트 중에서 요트를 가장 먼저 갖고 싶어하는 것이 이들의 소망일정도로 요트의 열정이 대단하다.
북섬 북쪽에 위치한 오클랜드는 뉴질랜드(총인구약420만) 최고의 도시다. 복잡하게 얽힌 리아스식 해안선 자연 지형을 잘 살린 이 도시에는 가파른 언덕길이 많아 전망 좋은 집은 100억대를 넘는 것도 보통이다. 시드니처럼 아파트도 고층건물도 찾아보기 어렵고 숲 속에 묻혀있는 단층집들뿐이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도시이기도 한 이 도시 주변의 항구에는 언제나 수많은 요트가 정박해있으며 주말이면 바다로 나가기 위해 모든 요트에 돛이 일제히 올려지는 장관을 볼 수 있으니 이 도시에서는 요트가 이제는 부자들의 특권만은 아닌 것 같다.
요트시티라는 오클랜드, 그들에게 요트가 자동차보다 더 많을까. 파란 바다 위에 놓인 수많은 요트와 흰 돛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요트의 항구도시 오클랜드, 시내의 전경과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에덴동산으로 가본다. 196m의 높은 지역 그곳은 오클랜드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화산분화구였다. 이 도시에는 50개의 분화구가 있는데 그 중 가장 높고 전망 좋은 곳이며 시내 중심 가 남쪽에 위치해있다. 성산 일출봉 분화구보다는 작지만 개미귀신처럼 생긴 역 원뿔형 분화구의 흔적을 또렷이 볼 수 있다. 이 산에는 파스(pas)라 불리는 마오리족의 성채가 있었다. 파스는 12세기경 3천명의 마오리족이 살았을 정도로 큰 성채였다. 이곳은 오클랜드 시내가 가장 잘 보이는 전망대로 마오리족이 외부적과 싸울때는 적군의 동태를 살폈을 것이다.
오클랜드 시내 중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미션베이는 요트를 즐기는 현지인 산책이나 수영, 한적함을 즐기는 연인들로 가득 차있다. 모두가 단층집이어서 인지 우리나라의 거리만큼 복잡하지는 않다. 교통지옥의 주범은 고층빌딩이다. 외국에 나와 보면 서울이 왜 그리 복잡한지 알 수 있다.
미션베이에 내려 잠시 산책을 하며 비둘기 먹이도 주고 사진도 찍는다.
푸른 바다 잔잔한 물결 끝없이 이어지는 출렁거림으로 아름다운 해안 녹색 잔디 위의 연인들 느릿느릿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 오클랜드는 분명 아름다움으로 세계적인 항구 도시다.
“여행은 행복이다.”
여행의 3대 조건은 건강, 시간, 돈이다. 그런 조건을 갖춘 사람은 여행 아니라도 행복할 것인가. 돈으로 아무리 부자라도 시간이 바쁜 사람은 여행을 못할까. 나는 세 가지 조건 중 두 가지는 갖췄다고 생각된다. 넉넉한 건강, 날마다 놀아야 하는 시간, 그러나 통장에 남아있는 돈은 항상 마이너스다. 집이나 차를 팔지 않고도 은행 빚만 다 갚으면 가겠지 하고 3년을 기다렸다. 좌석버스 보내고 일반버스 타다 그것도 보내고 마을버스를 탄다. 마을버스도 아까워 2km를 걸어서 시장 보러 다녔다. 그렇게 3년이 지나도 은행 빚은 줄지 않았다.
천만다행인 것은 은행이자를 잘 갚아서인지 신용이 좋아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할 수 있었다. 그 힘으로 3년 동안 4번이나 외국에 나갔다. 마이너스통장 이자가 훨씬 비싼 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짓일까(?) 은행 빚을 끝내 못 갚는다면 내 집이 경매로 넘어갈 수도 있다. 그래도 아직은 이자 내고 살만하다.
아직도 가야할 곳이 너무 많이 남았는데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관광회사 직원이 되고 싶다. 건강하니까 지금이라도 해보고 싶지만 호적이라는 발목 잡는 귀신 때문에 놀 수밖에 없다. 국내여행만은 아무 때고 갈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고 자위해본다. 바보 같은 착각일지 모르지만. (2005.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