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내전
▲ 개요
스리랑카는 1948년 2월 영연방내 자치령 세일론으로 독립하였으나, 다수 불교계 싱할리족(75프로)이 소
수 힌두계 타밀족(18프로)에 대한 차별정책을 구사한데 대한 반발로 분리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정부
군과 반군(1989이후 LTTE로 통합)의 잔악성 및 주민에 대한 엄격한 통제로 인해 인명피해가 매우 크다.
힌두계 타밀족은 수세기 동안 인도로부터 세일론으로 이주·정착해왔기 때문에 인도가 스리랑카 문제에
개입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으며, 힌두 타밀/LTTE는 인도 동남부 타밀 나두주(인구 5천만) 및 외국으
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으며, 해상 전투력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인도, 파키스탄, 중국 등의 외국무기는
정부군과 반군 양측에 제공되고 있다.
싱할리족과 타밀족간에는 인종, 문화, 종교적 차이가 있으나 타밀족이 분리를 추진하게된 것은 1965년
이며, 1975년 이후에는 간헐적인 충돌도 발생하였다. 그러나, 타밀족의 분리투쟁이 본격화된 것은 1983
년 7월 이후로서, 동 월 타밀족의 본거지인 자프나(Jaffna)반도에서 몇 명의 정부군이 사망하였는데, 이
로 인해 싱할리족의 타밀족 대학살(약 1천명)이 전국적으로 발생하였고, 동년 타밀엘람해방호랑이
(LTTE)가 결성되었다. 1986년 LTTE는 유사 타밀 무장조직인 TELO의 지도자를 모두 살해하고, 1989년
에는 모든 타밀 무장조직을 통합하였다. 이같은 LTTE의 조직력 및 자금 조달능력으로 인해 1980년대에
는 대정부 전투에서 대부분 승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는 스리랑카 정부의 요청으로 1987년 6월 평화유지군 성격의 인도군(IPKF)을 파견하였으나, 1989
년까지 2,500명의 희생자를 낸 후 철수하였다. 1989년 6월 프레마다사 대통령 정부와 LTTE간 평화협상
으로 일시 휴전이 성립되기도 하였으나, 1990년대에도 무장충돌 및 폭동·테러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예
를 들어 프레마다사 대통령(1993년 5월), 위저라튼 국방장관(90.12), 디사나야케 대통령 후보는 모두
LTTE에 의해 암살되었고, 1995년 9월과 1997년 5월 LTTE 본거지에 대한 정부군의 대규모 작전과 이에
대한 LTTE의 반격으로 인해 각각 50만, 20만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이외에도 1995년 10월 수도 콜롬보
에서 발생한 LTTE의 대형 유류저장소 파괴로 수백만불의 피해가 발생하였고, 정국의 지속적인 불안으
로 인해 관광수입의 감소는 물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인도(1993년), 미국(1997년 10
월) 및 스리랑카 정부(1998년 1월)는 LTTE를 불법단체로 규정하여 자국내 활동을 금지하고 있으나, 스
리랑카 정부의 LTTE 불법화로 인해 평화협상은 사실상 무산된 상태이다. 1998-99년 현재에도 매 월 수
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고, 1998년 8월 쿠마라퉁가 대통령은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2000년에 들어서도 정부군-반군 간의 전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1999년 12월에 6년 임기의 대통령
에 재선된 쿠마라퉁가는 타밀족이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하고 있는 8개 주에 대한 자치권 확대와 연방국
가 창설 등을 골자로 하는 평화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야당의 협조가 관건이다. 13년간의 오랜 전쟁으로
정부군이나 반군 모두 병력 증원에 고심하고 있고, 특히 반군측은 17세 이하의 소년병까지 동원하고 있
다. 1만명 이하로 추정되는 반군이 12만명에 달하는 정부군에 대항하여 거의 대등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
는데, 이러한 전쟁수행능력은 해외거주 타밀족 단체의 후원자금과 캄보디아 등지로부터의 무기 밀수입,
그리고 실효적 지배하에 있는 북부 및 동부지역에서의 세금 징수 등에 연유된다. 최근 스리랑카 정부는
반군을 압도하기 위해, 러시아, 이스라엘, 파키스탄, 우크라이나 등으로부터 다량의 신형 무기를 도입하
고 있고, 국방비도 작년에 비해 50프로 증액하였다. 내전 종식을 위한 노르웨이의 외교적 노력이 결실을
보아 금년 안에 정부-반군간 평화협상이 열릴 전망이다. 평화협상에 대해 반군 측은 적극적인 자세를 보
이고 있는 반면, 정부측은 다소 소극적이다. 주변국들은 스리랑카 정부가 평화협상에 임하도록 압박하
고 있는 상황이다.
▲ 의미 및 영향
스리랑카 내전은 섬이라는 지형적인 이유로 인해 역내 파급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으나 인도의 타밀 나두
주와의 인종, 종교, 역사적 유대로 인해 인도에 대한 영향이 크고, 이로 인해 인도의 스리랑카 개입을 야
기하였다. 1996년 한국과 스리랑카간의 교역액은 4억불이고, 스리랑카에 진출한 기업수나 체류자(약 1
천명)도 많지 않은 편이다. 스리랑카 내전은 동·서남아 분쟁의 주요 원인인 다민족·다종교 문제의 대표적
인 사례로 볼 수 있으며, 동 원인은 냉전의 종식이후에도 지속적인 갈등요인으로 존재하고 있다.
▲ 추후 전망
스리랑카 정부와 LTTE반군간의 충돌사유, 반군에 대한 국내외 지원 상황 및 1990년대 이후 분쟁강도를
감안할 때, 향후 양측이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 지난 30여 년간의 분쟁으로 총 8만 이상
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분쟁의 형태는 폭동·테러 및 게릴전이 지속되는 가운데 간헐적으로
일방에 의한 보다 대규모의 국지전 성격을 띄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정부는 1993년 LTTE를 불법화하
고 소탕작전을 전개하였으나, 이는 타밀 나두주민과 스리랑카 타밀족간의 유대로 인해 크게 실효를 거
두지 못하였다. 미국정부도 1997년 10월 LTTE를 외국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정치모금을 포함한 미국
내 활동을 금지시켰으나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더욱이, 1998년 1월 스리랑카 정부
는 LTTE를 불법단체로 규정했기 때문에 양측간 평화협정 가능성은 사실상 배제되었다. 현 찬드리카 쿠
마라퉁가 대통령은 2000년 8월까지 스리랑카를 연방국가화하여, 타밀족에 대한 자치를 허용하는 노력
을 전개하고 있으나, 정부내 반발, 그리고 LTTE는 자치가 아닌 완전 독립을 추구하고 있어 그 전망이 매
우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