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4 - 소설가 조정래, 황홀한 글 감옥에 갇히다

[유담]

소설가 조정래

황홀한 글 감옥에 갇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대하소설을 얘기할 때 박경리의 <토지>와 함께 빠지지 않는 조정래의 <아리랑>. 우리 민족의 애환을 수난과 굴욕으로 묘사하지 않고, 저항과 투쟁의 역사로 부각한 작품이다. 전북 김제 만경평야를 배경으로 수난 시대 농민들이 부른 아리랑의 참의미를 되새긴다.

취재·사진 홍정아 리포터 jahong@naeil.com 도움말 조남주 교사(서울 상계고등학교)·유미경 문화해설사(아리랑문학관) 참고 도서 <해법 문학 - 현대 소설>

조정래 ‘문학 산맥의 완성’ ‘살아 있는 현대사 교과서’ 라는 예찬을 듣는 현존 작가다. 해방 2년 전인 1943년에 전남 승주에서 태어났으며,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1970년 단편 ‘누명’으로 등단. 지금까지 중·단편소설 수십 편과 대하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집필하고,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단재문화상을 수상했다. <아리랑>은 대하소설 가운데 처음으로 유럽 완역판을 출간한 작품. 프랑스 아르마탕 출판사에서 9198년 1부 3권이 나온 데 이어, 2003년 5월 전권이 완간됐다.

그 외 작품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인간 연습> 등이 있다. 중편 ‘유형의 땅’ 을 비롯해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 단편집 <어떤 전설> <황토>,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 <안중근>,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 감옥> 등을 썼다.

수탈에 맞선 민족정신 만나는 아리랑문학관

‘아리랑은 모든 이념과 종교를 초월하는 우리 민족의 정신’이라는 말이 있다. 단순하면서도 애절한 가락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을 극복하며 부딪치고 흘러온 우리 민족사의 강물과 다름없다.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은 1990년 12월 한국일보에 연재를 시작한 대하소설. 부1 ‘아, 한반도’, 2부 ‘민족혼’, 3부 ‘어둠의 산하’ 등 총 3부작으로 구성된 민족 대서사시로 33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5년간 집필하고, 1995년 광복 50주년에 완간해 의의가 더욱 깊다.

<아리랑>은 일제 침략부터 해방까지 한민족이 겪은 수난과 설움, 투쟁을 다룬다. 박제된 민족의 역사에 강인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우리의 뜨거운 숨결과 기상을 되살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역사는 지울 수 없고, 지워서도 안 된다. 식민지 지배를 극복하고 살아낸 그것이 바로 민족 정체성의 뿌리이고 핵심”이라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작품의 배경이 된 전북 김제 만경평야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호남평야의 중심지다. <아리랑>에 ‘징게맹갱외에밋들’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징게맹갱’은 ‘김제만경’을, ‘외에밋들’은 ‘너른 들’을 일컫는 말. 작가는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표현한다. 풍요로운 이 땅은 일제의 첫 번째 수탈 대상이 된 곳. 아리랑문학관은 빼앗김의 고난에 맞선 한민족의 강한 저항 정신을 되새기는 공간이다.

첫 문장에 파지 서른 장, 조정래의 작품 세계

조정래 작가는 집필을 시작하면 세상과 고립된 채 오로지 글쓰기에 몰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터뷰에서 “글을 쓰는 일은 피를 말리는 듯 고통이 따르는 일이다. 하지만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성취감을 주는 것 역시 글쓰기다. 감옥이긴 하되 황홀한 감옥”이라고 표현 할 정도. 소설의 첫 문장을 쓰는 데 원고지 30여 장을 파지로 버릴 만큼 철두철미하다. 첫소절을 쓰기 전 꼼꼼한 현장 취재는 기본. <아리랑>을 구상하려고 스크랩한 중국 관련 자료가 수첩 90여 권, 현지에서 취재한 정보를 기록한 것만 20여 권에 달한다. 중국을 다룬 서적도 80여 권 탐독했다고.

아리랑문학관은 작가가 치열하게 노력한 흔적을 고스란히 담았다. 작품의 줄거리와 배경,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것. 원고 2만여 매와 취재 수첩, 의류, 집필 당시 사용한 필기구 등 작가의 혼이 밴 물품 89종, 350여 개를 전시한다. 눈길을 끄는 건 1층 입구 정면에 있는 육필 원고 탑 전시물.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등 대하소설부 3작을 집필한 원고 5만3천여 장을 쌓아 5m가 넘는 위용을 뽐낸다.

제1전시실은 작가의 집필 원고와 영상 자료를, 제2전시실은 취재 수첩과 노트 등 일상 용품을 전시하고, 제3전시실은 작가의 인간적 면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작품세계를 가까이 접하며, <아리랑>에 담긴 우리 민족의 아픔을 간접경험 할 수 있다.

<아리랑>의 공간 찾아 떠나는 김제 문학 여행

<아리랑>에는 김제의 유명한 사찰 금산사를 비롯해 일본인 대농장 동양척식주식회사, 하시모토 농장, 김제 만경평야, 동진강 간척지 등이 등장한다. 서울 상계고 조남주 교사는 “책이 술술 읽히는 것은 주요 인물의 궤적을 따라 내용이 폭넓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한반도 곳곳은 물론 만주, 러시아, 하와이, 동남아시아 등을 오가며 일제의 수탈과 농민의 저항, 친일파와 일제의 야합, 우리 토착 자본의 몰락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김제 죽산면에 자리한 ‘아리랑문학마을’ 도 작가의 문학 세계를 만나는 명소. ‘문학은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작가의 문학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아리랑>의 배경을 현실적 공간으로 재현한 것이 특징. 주재소와 면사무소, 우체국, 정미소 등 당시 공공 기관 시설은 물론, 내촌과 외리마을, 이민자 가옥, 하얼빈 역사 등을 각각의 특징을 살려 꾸몄다.

“<아리랑>은 우리 민중이 겪은 고초와 암담한 민족 현실, 일제의 수탈과 착취, 반민족 행위를 일삼은 친일파의 만행, 조국을 위해 희생한 애국지사의 삶 등을 풍부하게 담았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고향을 등져야 한 사람들의 애환과 전라도 지역의 향토색을 그려 더욱 값지다. ‘작가는 발로 쓴다’는 말을 증명하듯, 조정래 작가는 김제시 죽산면 내촌마을에 수차례 거주하며 지역민의 고증을 거쳐 <아리랑>을 완성했다. ‘죽을만큼 노력한다’ ‘내가 먼저 감동해야 타인도 감동할 수 있다’ 는 작가의 말에서 독자의 영혼을위로하는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