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 저래 일들이 많다보니 지난 번에 올렸던 글과 좀 공백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제 글을 읽으신 님들은 그래도 기억하고 있겠지요,,, 지난 번에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 드렸는지,,,
그랬지요,,, 제가 고등학교에 올라와 고등학교 1학년시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약간은 이성 이야기,
가족이야기도 곁들이면서 또한 후학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조언도 아끼지 않으면서 글을 마쳤지요,,,
물론 영어 공부와는 약간 빗나간 경우이지만서두요,,,
사실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저의 치부를 낱낱이 들춰내는 결과가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저의 학창시절 영어 공부에 대한 관심과 또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의 생활을 진솔하게 기록하고 싶은
마음때문이므로 꼭 영어 공부가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님들의 넓은 양해를 바랄께요.
이번 글에서는 고등학교 시절의 영어 공부를 통해 느낀 중요한 점을 먼저 이야기 해 드릴까 합니다.
영어를 잘 하려면 영어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공부하는 방법과 그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고등학교 시절의 영어공부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 다른 학우들보다는 그래도 나름대로 영어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고 또 영어를 잘 한다고
말을 들었지만, 정작 자신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생각하는 것만큼 나의 실력이 욕심에 차지 않았고 또 정말 모르는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리라,,,
다른 학우들처험 학원을 다녔지만, 가방에 고교기본영어니 삼위일체 영어니 성문기본영어, 성문종합영어를
들고 다녔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정말 제대로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정말 그랬다.
그 당시 학원에 다닐 때는 학원의 회원이란게 있었다.
즉, 대형학원에서 학원생들의 질서를 담당하고 강사님이 강의하러 오시거나 강의가 끝나면 '차렷! 경례!'와 함께
뒤에서 구령을 붙이고, 또 강사분들이 빼곡하게 칠판에 정리를 하면 강의 중간이나 또는 끝나는 시간에 칠판을 닦아주고
그 지우개를 깨끗이 청소하여 정리해 주는 그런 일을 맡았다. 하기사 100명 150명이 함께 모여 강의를 듣던 시절이었으니,,,
그 댓가로 학원비는 무료였다. 지금은 부모님께 정말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지만, 부모로부터는 학원비를 받아
기억도 안나지만, 어디다 그렇게 돈을 다 써 버렸는지,,, 아마 친구들과 삼치기하느라 그랬으리라,,,
난 친구따라 학원을 처음으로 다녔지만, 들리는 소문에 따라 강사가 좋다는 아니 흔히 하는 말로 물이 좋다는(?) 학원으로
이리 저리 옮겨다니며 그렇게 어영부영 공부아닌 공부를 해 나갔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시절 많은 영어책을 사서 학원을 다녔지만, 제대로 영어 책을 끝내본 적이 없었다.
그저 관심만 있었을 뿐 도통 공부하는 방법과 노력하는 끈기가(실천력) 부족했다. 그래서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렇게 고등학교 1, 2학년을 엉뚱하게 보냈지만,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학교 영어선생님이 계셨으니,,,
2학년때 문** 영어 선생님은 나의 담당 영어 선생님도 아니셨지만, 어떤 연유로 그 은사님의 사사를 받게 되었다.
그 책 이름은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초록색의 얇은 책이었는데 독해책이었다. 약 300단어 정도 되는,,,
1주일에 2-3번씩 독해를 하여 교무실로 가지고 가면 선생님이 해석을 수정하여 주셨는데 난 틀리게 해석한 곳을
그냥 놔 두고 계속 넘어가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실력이 늘지 않은 건 당연지사,,,
몇 개월을 그렇게 선생님의 큰 도움을 받아 영어 공부를 하여 난 늘 고마움과 함께 죄스럼을 느꼈다
그래서 대학 시절, 은사님의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댁으로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은 뭐 따로 학원다니며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워낙 정신없이 지나가는 때라,,,
우리 담임선생님은 막 부임해 오신 젋은 총각 선생님이셨는데 얼마나 우리들을 쥐어 잡았는지 반 애들이 모두
혼쭐이 났다. 깜지를 하루에 5-6장을 해 와야 했고 못 하면 장당 5대씩 빠따를 맞았으니 공부를 아니할 수 가 없었다.
정말 어떤 애는 그 두꺼운 각목으로 매일 허벅지에서 피가 나도록 맞았다.
나는 그래도 순종적인 면이 있었는지 조금씩 정신을 차려 그래도 별로 많이 맞지는 않았다. 정말 그 때는 놀 틈이 없었다
저녁에는 보충수업이라 하여 저녁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해야 했고,,,
집에와서는 깜지를 대충 아무거나 막 쓰느라 손가락이 아프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추억이 되어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그렇게 고등학교시절이 끝나가는 무렵, 우리나라 역사에 큰 획을 긁는 대통령 시해 사건이 일어났고,,,,
12월초인가 예비고사를 마치고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 누님 친구 도움으로 난생 처음 어줍짢은 실력으로 영어 과외를
시작하였다. 그래도 학원에도 많이 다니고 또 그렇게 좋아했던 과목이어서인지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5명을 데리고 그렇게 약 2개월동안 과외를 하였는데,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와같이 난 고등학교까지는 나의 갈 길을 정확하게 인지를 못하고 주로 학교에서 원하는대로 그냥 그렇게 따라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해서 난 학교 진학 담당 선생님이 일러준 대로 무턱대고 공대를 들어가게 되었다.
다음 이야기는 대학시절의 영어공부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영어 공부를 하는데 있어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부하는 옳은 방법을 찾아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 하는 게 참 중요하답니다. 그걸 절실히 느낍니다.
보잘 것 없는 긴 글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 늘 희망과 사랑으로 함께 하는 그런 아름다운 생활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쫄망쫄망 드림
첫댓글 쫄망님 대단하시네요. 현재 무슨일을 하고 계시는지는 모르지만, 그 열정이 살아있다면~~~ 암튼 언제 한번 뵙고 싶네요. 감동적인 글 감사 드립니다. 저기 보이는 집은 혹시 ????
먼저 늘 답해주시는 지기님의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예,, 현재 제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 집입니다. 별로 볼품없어요,, 사진만 그럴듯 하게 나왔지요,,, 언젠가 한번 우리 지기니님을 뵐 날이 있겠지요,,, 그럼 오늘도 보람있는 하루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
집이 정말 멋지네요~~~ VOA회원님들 뉴질랜드 가시면 쫄망님께 연락은 필수일 듯~~~
그런가여? 그런데 제가 4월말에 한국에 들어가 잠시 부모님곁에 머물러야 한답니다. 아마 5년 후에는 가능하겠지요,,, 뉴질랜드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게,,, (^*^)
그러시군요. 귀국 환영하구요. 한국에 오셔서도 변함없이 들러 주세요
제가 나중에 한국가서 도움요청하면 들어주실거죠? 아마 그럴 것 같아요,,, 제가 가르치고자 하는 부분이 여기에 많이 있어서요,,, 물론 지기님도 함 뵙고싶구요,,, 즐거운 주말보내시구요,,, 행복하세요,, (^*^)
당연히 그래야죠~~도움은 제가 요청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