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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강의 25. 제 4 보살품 : 미륵보살/수기
四 菩薩品
於是에 佛告彌勒菩薩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彌勒이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我不堪任詣彼問疾이니다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我昔에 爲兜率天王과 及其眷屬하여 說不退轉地之行이러니 時에 維摩詰이 來謂我言하되 彌勒이여 世尊이 授仁者記하사대 一生에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시니 爲用何生하 得受記乎아 過去耶아 未來耶아 現在耶아 若過去生인댄 過去生은 已滅하고 若未來生인댄 未來生은 未至하고 若現在生인댄 現在生은 無住라 如佛所說하야 比丘야 汝今卽時에 亦生亦老亦滅이라하시니 若以無生으로 得受記者인댄 無生은 卽是正位라 於正位中에는 亦無受記며 亦無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어늘 云何彌勒이 受一生記乎아 爲從如生하야 得受記耶아 爲從如滅하야 得受記耶아 若以如生으로 得受記者인댄 如無有生이요 若以如滅로 得受記者인댄 如無有滅이니 一切衆生이 皆如也며 一切法이 亦如也며 衆聖賢이 亦如也며 至於彌勒도 亦如也라 若彌勒이 得受記者인댄 一切衆生도 亦應受記니 所以者何오 夫如者는 不二不異니 若彌勒이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인댄 一切衆生도 皆亦應得이니 所以者何오 一切衆生이 卽菩提相이니라 若彌勒이 得滅度者인댄 一切衆生도 亦當滅度니 所以者何오 諸佛이 知一切衆生이 畢竟寂滅하야 卽涅槃相이라 不復更滅이니 是故로 彌勒이여 無以此法으로 誘諸天子니 實無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며 亦無退者니라
부처님의 10대 제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기존의 사상을 좀 개혁한다고 할까 기존의 불교상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또 그리고 구각을 탈피하는 그런 어찌 보면 지극히 아주 현명적이고 아주 개혁의 의지가 있는 그런 내용들로 가득 차였습니다. 뭐 여러 가지 불교교리에 대한 것도 우리가 그동안 묻어오고 알아오고 또 그것이 불교의 태생의 가르침이라고 이렇게 이해했는데 그것이 사실은 어떤 아집라든지 어떤 독선에 떨어져가지고 보다 더 대승적이고 대중적이지 못했다 하는 그런 꾸중을 유마거사의 입을 통해서 우리가 쭉 들어왔습니다. 그 속에는 기존의 틀을 깬 의미도 있지만은 보다 한 차원 높은 불교에 대한 이해 또 삶에 대한 높은 차원의 이해 이런 것이 유마거사의 기존 가르침이었다. 이렇게 이제 이해를 해야겠죠.
불교를 한 차원 높였다 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불교라고 하는 것은 결국 뭐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대한 사람이 사는데 대한 문제거든요 사람이 사는 데는 어떻게 사느냐 하는게 문제고 어떻게 사느냐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은 그 사람의 소견, 그 사람의 생각, 그 사람의 지혜에 달렸거든요 그러면 그 소견과 생각을 좀 한 차원 높여준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질을 그만치 높인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뭐 우리가 요즘 생활의 어떤 질이라든지 삶의 질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좀 어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고급스러운 그런 물질을 사용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유마거사의 말은 그것이 아니죠. 우리들의 어떤 생각이 차원이 달라짐으로 해서 인생을 보는 견해가 달라지고 인생에 대한 견해가 달라지면 그 사람의 삶의 질이 정말 달라진다. 높아진다고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보살품은 거기에서 또 한걸음 더 나아간다고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간은 10대제 자들은 어디까지나 성문이에요 성문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어떤 자기의 삶의 길을 정하고 또 수행이라고 하는 것도 부처님의 가르침에만 의존하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존해서 공부하는 그런 입장이라면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그대로 누구에게 뭐 배운다. 깨닫는다. 이런 차원보다는 스스로 어떤 보살행을 또는 부처로써의 어떤 삶을 실천하는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그런 사람들을 보살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배우고 아는 그런 차원은 벌써 뛰어난 거죠 배우고 아는 차원 다시 말해서 성문이나 연각의 차원을 넘어서 자기가 몸소 실천하는 보살행을 보여주는 그런 차원이다 보니까 우리가 사성을 이야기할 때 사성이라면 성문, 연각, 보살, 불 이렇게 이제 치는데 그중에서도 성문과 연각보다도 높은 차원이 바로 보살의 차원이고 보살은 불교의 어떤 이상입니다 불교의 이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불교를 공부해서 어떤 삶을 살 것이냐? 뭐 성불한다고 하지만은 성불해서도 결국은 그 사람의 행동과 어떤 표현은 보살행으로 나타나야 된다고 하는 것이 불교의 일반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성불해도 결국은 뭐 할 거냐? 다리 뻗고 낮잠 자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위해서 구제활동 하는데 중생을 위해서 구제활동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서 보살이라고 하거든요 그런 차원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서 부처님이 또 유마거사에게 문병을 가라고 그렇게 이제 부탁을 합니다. 여기도 많이는 등장하지 않고 모두 네 분이 등장을 하죠. 쓸 때에 보면 32만 보살이 모였다라고 그랬던 가요. 그랬는데 여기는 삼만이천보살이 모였었는데 그중에는 이제 그분의 덕은 어떻다 해가지고 쓸 때에서 아주 굉장히 장황하게 보살들의 능력과 덕과 지혜 이런 것을 쭉 소개를 했습니다. 그중에서 네 분만 이제 뽑아가지고서 대표가 되겠지요. 삼만이 천중에서 네 분만 뽑아가지고 문병을 보내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역시 형식은 제자 품에서와 꼭 같이 누구보고 가라고하면 그 보살은 과거에 유마거사와 이러 이러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감히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형식입니다 그러면서 법문이 쭉~ 말하자면 연결이 되죠. 역시 그것은 그 보살이 옛날 유마거사를 만났을 때 이러이러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하는 그런 말하자면 보살 한 사람 한 사람 입을 통해서 유마거사의 사상과 유마거사의 어떤 법의 경지를 들어내는 것인데 보다 더 차원 높은 불교고 불교의 궁극적인 그런 가르침이다 이렇게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於是에
그때에 於是에 이에
십대제자가 이제 다 못 간다고 하니까 그래서
佛告彌勒菩薩하사대
미륵보살에게 말했다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그대가 유마에게 가서 문병하라 그랬어요.
미륵보살이라고 하면 누구입니까 우리가 알고 흔히 경전에서 56억 칠천만년 후에 말하자면 이 세상에 나타나서 석가모니의 대를 이어서 성불하고 그리고 이제 중생을 제도할 것이다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이분은 여기도 나오겠지만 일생보처라 그래요 보처 보좌하는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이다 이 말입니다 석가모니를 보좌하는 입장에 있다가 그 다음에 그 바통을 잇는 거죠
예를 들어서 대통령 다음 대통령 나올 사람이 현재 대통령을 예를 들어서 보좌를 한다든지 아니면 거기에 준하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 다음 대통령이 유력시 될 수 있듯이 모든 모임에도 역시 안 그렇겠습니까? 부처님의 대를 잇는 일도 역시 그렇습니다. 왕의 대를 잇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미륵보살은 일생만 다시 말해서 금생만 부처님의 보좌역을 하면 그것으로 보살의 기간은 끝입니다. 그 다음부터 다음에 오면 바로 성불을 하는 거죠 그렇게 미륵상생경이라고 하는 그런 경전의 학설에 의해서 그렇게 알려져 있는 분이 바로 미륵보살입니다 그리고 미륵보살은 또 한 가지 의미는 미래의 부처님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게 증명합니다. 나중에 56억 칠천만년 후에 성불해서 이 땅에 오느냐 마느냐하는 것은 지금으로써는 크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고 혹 미륵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지금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때가 지났고 3000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미륵교를 믿어야 된다 해서 미륵불시대가 이제 도래했다고 벌써 도래했다라고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 알고 그래요 경전 상으로는 56억 칠천만년 그러니 석가모니가 성불한 이후 56억 칠천만년 후니까 기껏해야 3000년 지났어요. 실컷 계산해봐야 3000년 지났고 보통 남방에서 계산하는 것으로는 2540년 금년에 그렇게 되는데 아직도 얼마나 남았는지 몰라요 그런데 3000년 설은 잘못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잘 몰라서 하는 말이고 햇수로 따진다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의 부처님 미래라는 말은 바로 우리들의 이상 꿈이다 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이상 불교의 꿈이 바로 부처님 미래의 부처님이다 하는 것인데 우리가 앞으로 성불한다고 하는 것도 결국은 미래의 부처님 아니겠습니까? 미래에 성불할 것이다 앞으로 성불 할 것이다 이렇게 수행해서 끝내 성불할 것이다 성불 그 자체가 불교의 이상이여 그런 불교의 모든 이상을 미륵부처님이 대신 어떤 상징적으로 한분을 등장시킨 것예요
이분이 실제 해서 결국 56억 칠천만년 후에 성불해서 중생을 제도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은 차치하고 현실적으로는 당장에 말하자면 우리 모든 사람이 미래에 성불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표상으로써 말하자면 미륵부처님을 이렇게 내세웠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그러면 미륵이라는 말은 뭔 말이냐 자씨(慈氏) 자비로운 분이라는 뜻입니다 자씨慈氏 미륵은 Maitreya라고 범어고 이것을 번역하면 자비로운 신분 어떤데 보면 자씨(慈氏) 미륵존불이라 그랬죠. 이런 성씨 못 보았죠. 미륵부처님이 번역하면 자씨라 김씨 박씨는 보았어도 자씨는 못 봤죠. 미륵부처님이 자씨 번역하면 그대로 자씨 그러니까 자비로우신 분 이 뜻이에요 씨자가 자비로운신 어른 그러면 우리가 부처가 되어서 뭘 할 거냐? 그 해답이에요 자비실천이 바로 부처되어서 할 일이야 미래의 꿈 불자의 앞으로 해야 할 일 우리가 성불해서 해야 할 일은 결국 자비실천이다 하는 뜻입니다 이게 중요해요 불교는 바로 이것입니다
56억 칠천만년 아니 내일이 어떻든 간에 설사 미륵부처님이 온다 하더라도 미륵부처님이 할일 결국 뭐겠습니까 결국 자비실천이에요 미륵부처님도 할일이 자비실천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불 세계, 미래의 불 세계 부처님이 와서 부처님의 세계를 연다. 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자비의 실천이고 이 땅에 우리의 삶의 현장에 자비가 흘러넘치는 그 일이지 그 외 다른 것이 아니다 하는 것 그게 불세계고, 불 국토고, 극락세계인거죠 염화세계고요 그때는 이제 염화세계라고 그래요 뭐 미륵부처님 오는 세계를 용화세계 지금 석가모니부처님 계시는 세계를 뭐라고 사바세계 그러죠 사바세계 그때는 용화세계 그래요 용화세계라고 하는 것은 자비가 이 땅에 흘러넘치는 그런 세계다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그러나 또 액면대로 우리가 일단 살펴보면 이분은 일생보처미륵불보살이라고 그래요
한생만 일생으로 한생만 말하자면 부처님에 보답하는 그 다음에는 바로 보살은 졸업하고 부처가 된다하는 그런 불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미륵보살을 통해서 일생의 문제, 수기의 문제, 진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멸도, 열반에 든다. 번뇌를 다 소멸한다 하는 그런 문제, 보리 깨달음 이죠. 도라고도 하고 참 보리라는 말은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낱말인데 부처님의 깨달으심을 바로 보리라고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런 중요한 의미가 진정 무엇인가, 무엇이 보리인가, 무엇이 수기인가, 무엇이 진여가, 무엇이 멸도 열반인가, 또 일생이라고 하는 일생보처라고 하는 일생이라고 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 일생은 미륵보살이 일생보처노릇을 하고 보살로써 졸업한다 하는 그 말로 인연을 해서 우리 모두의 일생 이생이라고 하는 그런 어떤 시간관념을 여기서 또 분석해보는 그런 내용도 있습니다.
彌勒이 白佛言하사대
미륵보고 문병하러 가라 그러니까 미륵이 또 부처님께 고해말하기를
世尊하 我不堪任詣彼問疾이니다
저도 저분에게 나아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히 할 수가 없습니다.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所以者何오
까닭이 무엇인가
憶念하니
기억하거니 기억해서 생각하니
我昔에
내가 옛날에
爲兜率天王과 及其眷屬하여
도솔천왕하고 그들의 권속을 위해서
도솔은 지족이라고 번역하죠. 지족 만족한 줄을 안다
도솔암 이라고 하고 지족암 이라고도 하고 같은 말로 씁니다. 만족한 줄을 안다 그러니까 도솔천이 아주 높은 하늘인데 그 높은 하는 그러니까 저기 천상 말하자면 어떤 종교의 이상으로 찾는 불교에서도 상당히 선행으로 많이 지어야만 갈 수 있는 그런 높은 천상인데 거기에는 가면 어떤 일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이 만족하다 부족함이 아무것도 없다 이 뜻이에요 그러면은 바로 현재 여기서 우리가 만족할 줄 알면 그대로 도솔천에 사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해석을 합니다. 어째거나 그분들과 그들의 권속 도솔천을 믿는 무슨 어떤 종교단체 이렇게 보아도 좋아요 여기는 도솔천왕과 그들의 권속들을 위해서
說不退轉地之行이러니
불퇴전에 대한 지에 대한 행을 말했었다. 설명했었다 이 말이여
불퇴전의 지라고 하는 것은 다시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러니까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가? 미륵보살이 당신이 이제는 물러서지는 않습니다. 타락하는 일은 없어요. 금생만 보살노릇만 하면 그다음은 보살행 졸업하고 부처가 되니까 이분에게는 물러서는 일이 없어요. 그래 불퇴전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자신이 그래서 자기가 불퇴전의 경지에 있으니까 불퇴전에 대한 물러서지 않는다고 하는 그런 경지에 대한 실천 그런 경지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떤 행 이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時에 維摩詰이
그런데 마침 유마힐이
來謂我言하되
와 가지고 나에게 말하되
彌勒이여 世尊이 授仁者記하사대
미륵이여 세존께서 인자에게 기를 주시되
인자는 미륵을 보고하는 소리죠. 어지신분 또 당신 상대를 높여서 하는 말이죠.
그대에게 수기를 주시되
一生에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시니
마땅히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는다.
말하자면 이 일생만 지나면 바로 마땅히 아뇩다라삼막삼보리 깨달음을 이룬다. 얻는다고 그렇게 수기를 주었다는 이거여 금생에 얻는다. 한생으로써 그것이 완전히 보장이 된다 이 말이여 완전히 보장이 된다. 그 말은 이제 수기라고 하는 낱말은 법화경에서는 참 수기라고 하는 예화가 많죠 뭐 구체적으로 부처님의 제자 사리불이 수기를 받고 목련이 수기를 받고 가섭존자가 수기를 받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는데 이것은 뭔 말 인고 하니 석가모니부처님이 미륵에게 너는 앞으로 얼마 후에 부처가 되어서 미륵이라고 하는 그런 부처로써 이 땅의 중생들을 교화 할 것이다. 라고 하는 그런 기록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라고 그래 기록할 기자 그런 기록을 준다. 준다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인정해주는 것, 예언 해주는 것을 수기를 준다. 그래요 나중에 성불할 것이다 수기는 반드시 그래요 성불할 것이다 그런 기록을 주는 것을 수기인데 부처가 되겠다고 하는 수기는 이 세상에서 어떤 수기보다도 좋죠. 나중에 뭐 판사가 될 것이다 검사가 될 것이라고 하는 그런 수기하고는 비교가 안 되죠. 부처가 될 것이다 이 세상에 제일 위대한 성자의길 그것을 말하자면 부처님으로부터 인정받는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미륵보살이 그것을 받았는데
爲用何生하야 得受記乎아
무슨 생을 사용을 해서 수기를 얻음이 되느냐
과거생, 미래생, 현재생이냐 이 말이여
생도 전생도 있고, 금생도 있고, 후생도 있고 내후생도 있고 전전생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간단하게 세 가지로 말하자면 과거생이 있을 것이고, 또 미래생이 있을 것이고, 현재생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은 그대가 수기를 받았는데 그러면 어느 생을 가지고 일생이라고 하느냐 이것을 따지는 거예요 미륵보살이 그동안 앞으로 수기를 받았으니까 부처가 될 것이다 한생에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고 해가지고 굉장히 수기 받는 그런 형식적인 일에 들떠있었다고요 그런 형식적인 일에 그런데 여기 유마거사가 나타나가지고 미륵보살의 어떤 꿈이라고 할까 허황된 꿈을 깡끄리부셔 버리고 진정 아뇩다라삼막삼보리 도가 무엇인지를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들어내보이는 그런 말씀이에요 보면 일생이라고 하는 것 어떤 생이 있어 가지고 수기를 얻느냐
過去耶아 未來耶아 現在耶아
과거냐 미래냐 현재냐
若過去生인댄
만약 과거 생을 가지고 수기를 주었다면
過去生은 已滅하고
과거 생은 已滅이라
과거 생은 지나간 거니까요 이미 멸했다
과거는 없잖아요 지나갔으니까 어제는 없어요. 다시는 어떻게 끄집어낼 수가 없다고요. 이미 멸했다
若未來生인댄 未來生은 未至하고
만약에 미래라고 할진댄 미래 생이다 그러면 미래 생은 미일이여 아직도 안 왔다 이 말이여 내일은 아직 안 왔잖아요. 내일 누가 알아 내일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 아는 사람도 없어요. 와봐야 아는 거지 와 봤을 때는 그것은 미래가 아니야 현재지
若現在生인댄 現在生은 無住라
만약 현재 생을 가지고 일생이라고 한다면 現在生은 無住라
현재, 현재 하지만은 현재라고 하는 것도 머물지 안 해, 1초,1초 지나가고 말이죠. 1초는 좀 서서 길다고 하면 요즘 백만분의 일 마이크로초라고 그러죠 그런 짧은 시간 예를 들어서 내가 짧은 시간 할 때 이미 수만 마이크로초가 지나간 거죠. 그래서 1초, 2초, 3초가 지나가서 머물지 안 해요. 현재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꼭 집어서 요 부분이 현재다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오늘하면 오늘 새벽1시부터 저녁 12시까지는 오늘이라고 할 수는 있죠.
그런데 은밀히 따지면 여기서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니까 현재라고 하 것은 당장 지금 이 순간이거든요. 오늘이라는 뜻이 아니고 당장 이순간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당장 이 순간 할 때 이미 이순간은 지나가버렸어 과거가 되어버렸고 아니면 오지 안 했거나 이 순간이라고 할 것은 없어 자만은 계속 흘러가 버렸어 백만분의 일초가 흘러가도 이미 흘러가서 아무리 짧은 한순간을 집어넣으려고 해도 집을 때 딴 시간이고 또 집어넣을 때 이미 딴 시간이고 그러니까 無主야 머물지 않는다 이 말이여 머물지 않아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거든요
如佛所說하야
부처님이 말씀한 봐와 같아서
比丘야 汝今卽時에
그대가 지금 바로 이 순간에
亦生亦老亦滅이라하시니
또한 태어나기도 하고 또한 늙기도 하고 또한 멸하기도 한다.
한 순간 예를 들어서 뭐 세포만 하더라도 계속 새로운 세포가 생기고 새로운 세포가 변해가고 그래서 또 없어지고 말이죠. 그리고 있잖습니까? 하루에 그게 얼마나 많은 변화를 합니까? 사실은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흘러가거든요 지금 이 순간에 당장에 생노멸 이것이 계속 그야말로 창문을 이렇게 뚤어놓고 이렇게 있는데 아주 빠른 말이 문틈 사이로 순식간에 지나가는데 말이 지나갔는지 뭐가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이제 빨리 흘러가는 것이 마치 우리 시간이 삶의 시간이 인생의 무상함이 마치 그와 같은 것이다 그렇게 경전에서 표현하거든요 빛은 젊음이 마치 달리는 말과 같다 그것도 말을 들판에 달리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고 문틈사이로 보는 문틈사이로 보는 조그마한 문틈사이로 보는데 휙~ 지나갔다 이거여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죠.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 시간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이 그런 말씀을 했다 이거여 그래 부처님 말씀까지 유마거사가 인용을 해가면서 그렇게 하는 거죠
요즘 금강경에도 왜 그런 말이 있죠 과거생불가득 현재생불가득 미래생불가득 똑 같은 내용이죠. 뜻은 똑 같습니다 과거 생을 얻지 못한다 이거여 과거마음 이미 지나갔으니까 우리가 취할 수가 없죠. 왜 그리 과거마음이다 안되는 거여, 내가 그전에 그랬었다. 그것 아무리 꺼내봐야 꺼내집니까. 안 되는 거여 과거에 그랬었다. 말 뿐이지 과거에 그랬던 그 마음은 없다 이거여 그럼 미래에 어떻게 할 것이다 그것은 오지도 안은 일이기 때문에 그것도 못 믿는 거여 절대 누가 믿어요. 그걸 그대로 되는 수가 있습니까? 변한다고요 변하고 그대로 전혀 안되는 되는 수가 있고 현재 마음은 무주거든요. 머물지 안 해
그래서 과거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미래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현재의 마음도 얻지 못한다, 얻지 못 한다 잡아내지 못 한다 요것이다 들어 보이지 못 한다 찾지 못 한다 취할 수 없다 무슨 말이라도 다 해당 되죠. 꺼낼 수 없는 거여 그렇게 순식간에 흘러가고 변모해 가는 것이 마음이다 과거생불가득 도저히 잡아낼 수가 없죠.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이야기인데 그래서 지금 汝今卽時에 바로 이 순간에 生, 老, 滅이 그야말로 몸이 너무너무 빠르게 반복되고 있다 흘러가고 있다
若以無生으로 得受記者인댄
그래서 만약 무생으로써 그러면 무생 과거생, 미래생, 현재생 아무것도 취할 수가 없으니까 그럼 무생으로써 수기를 얻었다. 기를 얻었다. 기를 받았다라고 할진댄
無生은 卽是正位라
正位 무생이 여기서는 상당히 말하자면 최고의 어떤 경지, 생사가 없는 그런 경지 그렇게 보아도 좋겠네요. 무생, 생사가 없는 의식 그 걸로써 수기를 받았다고 할진댄 수기 무생이라고 하는 것은 卽是正位라 그랬어. 바른 지위라고 그러는데 바른 지위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정말 제자리에 서있는 그 자리를 정위 바른 지위다 제자리라고 하는 것은 부처의 지위다 이 말입니다 사람은요 제값을 하고 살려면 부처가 되어야 제대로 제값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값을 하는 거예요 부처노릇 하기 전에는 제값을 하고 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 우리 값은 본래 부처니까 우리는 본래 물건이 부처이기 때문에 그 물건값을 다하려면 부처노릇을 해야 우리가 갖고 있는 우리들의 값을 다하고 사는 거예요 그래 되어있다고요
그런데 우리는 부처를 가지고 부처라고 하는 물건을 가지고 영 형편없는 그런 것 지옥, 아귀, 축생 그런 육도의 어떤 값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순간순간 부처나 보살로 살아라. 그랬을 때 조금이라도 제값을 하고 산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뭐 중생이 부처노릇 했다고 상당한 일을 한게 아니에요 비로써 제값을 한거에요 비로써 제값 것이라고요 그래 안 하면은 아~이 우리가 그래 못하면 제값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거지 정말 좋은 재료를 가지고 영 형편없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 같이 지금은 우리가 그렇게 산다 이거죠
그래서 正位가 바로 부처의 지위다 이런 말입니다 생사 없는 그런 경지죠
於正位中에는
바른 지위 중에서
亦無受記며
바른 지위 제값을 하는 자리 그것은 부처자리다
그 자리에서는 수기가 있을 수가 없어 뭐 네가 언제 나중에 부처 된다 그것이 없다
그것은 못난 사람들끼리 하는 사람들이지 무슨 법을 증득하고 바른 지위에 있고 부처의 지위에 있고 제값을 하는 인간의로써 제값을 하는 그런 자리에 있다면 수기가 필요 없다 이거여 亦無受記라 수기가 없어
亦無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어늘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얻는 것도 없어
수기를 받는게 있어야 뭐 보리를 얻는 게 있지
云何彌勒이 受一生記乎아
미륵이 어째서 일생에 말하자면 수기 받는 것, 기 받는 일생이라고 하는 것이
일생에 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그런 기록 받을 수 있겠는가? 받음이 되겠는가.
그것은 안 맞다 이 말이여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래 그런 위대성에다 비추어보니까 미륵보살이 수기를 받는다. 아~ 일생에 말이지 보살으로써 어떤 일을 다 끝낸다. 졸업한다. 그래서 나중에 부처된다. 그것이 다 어둡잡는 소리고 덜떨어진 소리다 이거여 내가보니 그것 돼먹지 않은 소리다 이 말입니다
爲從如生하야 得受記耶아
그리고 무생의 이치로써 이야기 따져봐도 그렇고 그다음에
爲從如生하야 得受記耶 그러면은 여는 진여라는 말입니다 진여로부터 진여의생으로부터 수기를 얻는 게 되느냐 진여가지고 얻느냐 진여는 뭐입니까 우리 근본마음자리죠 마음자리는 누구에게나 다 있으니까 그래서 진여로부터 수기를 얻느냐 진여의 생, 진여, 그자체가 생입니다 진여가 지니고 있는
爲從如滅하야 得受記耶아
그다음에 진여의 멸로 부터 수기를 얻는게 되느냐
若以如生으로 得受記者인댄
만약에 여생으로 진여의 생으로부터 수기를 얻는 것이라면
如無有生이요
진여는 생이 없다
저기 그러니까 일생 하면 생하면 벌써 멸이니까 그래서 여기서 말도 같지 않는 말을 진여생, 진여멸, 여생, 여멸이라는 말을 써니다 일생에 수기를 얻는다고 했으니 진여는 진여가 생하는 것으로써 수기를 얻느냐 아니면 진여가 멸하는 것으로써 수기를 얻느냐 일생 하면 멸이 따르니까 그래서 이런 억지 물음을 물었을 거예요
만약에 진여의 생으로부터 수기를 얻는 것 이라면 如無有生진여는 생하는 것이 없다
진여가 어디 생 하나요 진여는 영원불변 하는 것이고 불생불멸하는 것이 진여인데 진여는 무불 생이에요. 진여는 생이 없다
若以如滅로 得受記者인댄
만약에 진여가 소멸하고 다른 진여가 또 생긴다. 다음 생에 진여가 생긴다. 이런 것을 가지고 수기를 얻는다 할진댄
如無有滅이니
진여는 생기는 것이 아니니까 소멸도 없죠.
우리의 본래의 마음은 불생불멸이라고 하잖아요. 반야심경만 하더라도 불생불멸 불생불멸 하는데 진여 바로 이 자리라고요 우리 본래심, 우리의 진나라, 참나, 참나는 불생불멸이니까 여라고 하는 것이 진여를 말하는 것이고 참 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는 멸이 있음이 없다 멸이 없다 이거여 그럼 뭐여 이 진여는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 이렇게 되는 거여 미륵 너만 있나 이거여 일제 중에 다 있다 이것입니다 부처도 다 있고 그 진여의 입장에는 부처나 중생이나 미륵이나 누구나 등도 하지 않느냐 그래서 나온 말이
一切衆生이 皆如也며
일체중생이 다 진여여
모두 곳에 개여야 진여라 말이여
一切法이 亦如也며
일체법이 다 진여 속에 있어
一切法이 亦如也 또한 진여여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一切衆生이 皆如也며 一切法이 亦如也며
衆聖賢이 亦如也며
온갖 성인과 현인들이 다 진여여
진여의 마음, 자리야 말로 평등하죠. 누구에게나 다 동등한 평등한 자리니까
일체 성현이 다 진여여
至於彌勒도 亦如也라
미륵에 이르러서도 미륵 당신도 역시 진여다 이거여
일체중생이 진여데 뭐 당신 미륵이 진여 아닐 택이 있나 이거지
또한 여라
若彌勒이 得受記者인댄
만약 미륵이 진여의 입장을 가지고 그대가 수기를 얻었다고 한다면
一切衆生도 亦應受記니
일체중생도 또한 응당히 수기를 받아야 된다 이거여 안 그러겠어요.
제일 중요한 것이 진여인데 마음자리인데 그것 가지고 그 조건가지고 수기를 받았다면 미륵당신만 받을게 뭐 있냐 이거여 모든 중생이 다 받아야지
所以者何오 夫如者는 不二不異니
진여라고 하는 것은 不二不異 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진여는 평등하니까 하나여 또 미륵이나 중생이나 부처나 유마거사나 다르지도 안 해
그래 不二不異이여 참~ 이 대목 글이 멋 떨어진 글이라고 옛날 사람들이 칭찬을 했어요.
若彌勒이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인댄
만약에 미륵이 아뇩다락삼막삼보리를 얻을 설진댄
유마거사의 말씀이 능수능란한지 말할 수가 없어요.
그야말로 여병유수라 병에서 그냥 물을 쏟아 붓듯이 폭포가 쏟아 붓듯이 그냥 거침없는 무애병재을 갖춘 것을 볼 수가 있어요. 아뇩삼막삼보리를 얻을 설진댄
一切衆生도 皆亦應得이니
미륵이 아뇩삼막삼보리를 얻었다면 일체중생도 다 또한 응당히 얻을 것이니 꼭 얻어
미륵보다 못한 게 아무도 없다 이거여 어떤 중생도 미륵보다 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특히 근본자리 제일 중요한 진여의 입장에서 진여는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야 만약에 미륵이 얻는다면 미륵이 얻는 그 순간에 모든 중생이 같이 얻는다 이거여 왜냐 다르지 않으니까 둘이 아니니까 미륵하고 우리중생하고 둘이 아니니까 미륵하고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이거여 그러면 미륵이 우리 잘라내고 지 혼자 얻을 수도 없는 것이고 미륵이 얻으면 일체중생이 다 얻는 거다 이거여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죠.
所以者何오 一切衆生이 卽菩提相이니라
일체중생이 곧 보리의 모습이다 깨달음의 모습이다
참~ 아주 결정적인 말이죠. 왜 그러냐? 미륵이 수기를 얻는데 왜 일체중생이 다 얻느냐 일체중생이 곧 보리의 상이다 보리의 모습이다 이거여 깨달음이다 전생이 그대로 아뇩다라삼막삼보리다 이거여 미륵이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으니 일체중생이 아뇩다라삼막삼보리 얻어 얻게 되어있어 만약이 아니라 본래 얻게 되어있어 그래서 일체중생은 보리의 모습 그대로 다 깨달음의 모습 그대로 다 보리상은 뭐겠어요. 그대로 다입니다 도, 다 그대로여 일체중생우리 중생 중생하죠. 중생은 깨달음 그 자체여 중생은 도 그 자체라고요 삶 그 자체다 살아가고 있는 삶 그 자체다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면 보리가 그대로 삶이요 도가 그대로 삶이다 진리가 그대로 삶이고 진여가 그대로 삶 그대로 자체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같은 말입니다 일체중생이 보리의 모습 깨달음의 모습 도의 모습 그대로다 삶이 그대로 보리요 도요 깨달음이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若彌勒이 得滅度者인댄
만약 미륵이 멸도를 얻을 설진댄
멸도 이것은 이제 번뇌를 소멸해서 제도를 얻는 것 그 말이거든요.
미륵이 멸도를 얻을 설진댄
一切衆生도 亦當滅度니
일체중생도 또한 응당히 멸도를 마땅히 멸도 할 것이다
번뇌를 소멸하고 말하자면 제도를 얻게 될 것이다
所以者何오
왜 그러느냐
왜 미륵이 멸도를 얻는데 중생이 멸도를 얻느냐
諸佛이
다 안다 이 말이여 뭘 아는 고 하니
知一切衆生이 畢竟寂滅하야
일체중생이 철저히 끝까지 궁극적으로 적멸이야
아무리 우리가 번뇌 망상을 일으키고 탐진치 삼독 아니라 팔만사천번뇌를 일으키더라도 그 궁극자리 그 근본마음자리 일심자리에는 끝내 적멸한자리라 적멸해서
卽涅槃相이라
열반모습그대로다
거기에는 아무런 탐,진,치 삼독도 번뇌 망상도 팔만사천번뇌도 없는 그 자리 적멸한 열반한열반의 그 모습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거여
不復更滅이니
다시 소멸할 것이 없어
뭐 번뇌, 망상 소멸하고 탐, 진, 치 삼독 끊고 무슨 업장전부 녹이고 다시 그럴 것이 없는 자리를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완전무결한 자리를 중생들은 다 가지고 있다 그게 畢竟寂滅 한 자리여 궁극적으로 적멸한 자리 그 깊은 자리는 畢竟寂滅이라는 말은 그 깊은 중생의 속마음 아주 깊은 그 자리에는 본래 완전무결한 자리야 다시 탐, 진, 치, 삼독 번뇌도 없고 팔만사천 번뇌도 없고 뭐 번뇌 무명 온갖 우리가 수행하는 과정에서 중생의 때라고 생각을 하고 죄업이라고 생각을 업장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아주 구질이 하고 떨쳐버려야 할 그런 것들 그것 굳이 떨쳐버리려고 하지 마라 본래 없는 자리가 있어 말끔히 본래 없는 자리를 우리가 다 가지고 있다 있는 것은 뭐냐 바람에 의해서 물결치는 거여 업의 바람에 의해서 물결치는 거다 바다가 말하자면 위에 파도친다고 밑에 까지 파도치는 것은 아니야 물론 아주 밑에 흐름이 있다고 하지만은 위에 파도치는 것하고 밑에 것 하고 전혀 별개 것이라 보통바다는 요 밑에는 조용하고 위에만 물결 출렁거려요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도 겉만 육식의 어떤 의식작용만 그렇게 물결치고 파도치지 속마음 저기 칠식 팔식으로 들어가서 본래심, 진여심 자리에는 전혀 파도가 없습니다. 물결도 없고요 바로 그 자리가 완전무결 한자리야 그걸 우리가 아는 것이 중요한거죠.
거기는 일체 죄업이 없고 일체 허물이 없고 일체업장도 없는 그런 자리다 畢竟寂滅이라는 자리가 그것입니다 그런 것을 안다 모든 부처님은 諸佛이 모든 부처님은 아신다. 무엇을 知一切衆生이 畢竟寂滅하야 卽涅槃相이라 일체중생이 필경에 적멸해서 곧 열반의 모습 그대로라 不復更滅다시 더 소멸할 멸도할 번뇌를 소멸할 것이 없는 줄 아신다.
부처님이 보기에는 우리가 참 ~ 가관일거요 본래 소멸할 것이 없는 번뇌를 소멸하려고 바동바동 애를 쓰고 목이 터져라고 뭘 불러쌓고 말 이죠. 졸음 쫓아쌓고 그 다 놓아버리면 편안한 것을 보낸 물건 안 하면 보낼 것이 없는데 본래 보낼 것이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편안한데 그것을 모르고 그냥 환상에 속아가지고서 번뇌, 망상이니 하는 것도 결국 환상이거든요 실제 하는 것이 아닌데 그 환상에 속는 거죠. 거기에 속아가지고 보내려고 아등바등 애를 쓰는 것입니다 상당한 차원의 가르침이죠. 이것 섣불리 들어가지고는 말 넘기 맞춤 좋게 되었어요. 겁 먹으면 곤란하죠. 보십시오. 십대제자들의 어떤 수준을 넘어서고 또 여기는 보살의 어떤 수준을 넘어서는 그런 경지의 가르침이니까 불교로써 어떤 궁극의 지견내지 소견을 여기서 펼쳐 보인다고 그래 이해를 해야 되겠죠. 일체중생이 필경에 적멸해서 그대로 열반이라 다시 더 열반할 것 다시 더 소멸 열반이라고 하는 것은 뭡니까 번뇌가 다 소멸한 그 자리 소멸한 그 자리 그 모습이다 다시 더 소멸할 것이 없는 줄을 부처님은 아신다.
是故로 彌勒이여
그런 까닭에 미륵이여
無以此法으로 誘諸天子니
이법을 가지고 당신이 아는 그런 법을 가지고서 모든 천자들을 꼬이지 말라 유혹하지 말라 모든 천자들을 유혹하지 말라
實無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며 亦無退者니라
아주 더 이제 강한 훨씬 더 강한 표현이지
實無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발할 것도 없어 우리가 보리심 봐라 뭐 소 보고도 발보리심 하라 돼지보고도 발보리심 하라 발보리심 하는 것이 어지간히 좋은 것 같지만은 보리심 발할 것도 없다 이 거여 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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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一切衆生이 皆如也며 一切法이 亦如也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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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切衆生이 卽菩提相이니라... _()()()_
감사합니다
一切衆生이 卽菩提相이니라...수고하셨습니다.._()()()_
知一切衆生이 畢竟寂滅하야 卽涅槃相이라 ...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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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도솔,,, '知足'이라는 뜻, 우리가 만족할 줄 알면 바로 이 娑婆가 곧 도솔천! 畢竟寂滅 卽涅槃相,,,어떠한 消滅해야 할 煩惱나 業障이란 것이 없는, 원래로 淸淨해 完全無潔한 本性品인 眞理當體의 그 자리가 곧 우리들 涅槃의 모습 그대로임을 알아야만 하느니라,,, !
一切衆生이 卽菩提相, _()_
감사합니다~
一切衆生(일체중생)이 皆如也(개여야)며 一切法(일체법)이 亦如也(역여야)라.ㅡ 일체중생이 다 진여며 일체법이 다 진여 속에 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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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순간 부처나 보살로 살아라. 正位 = 부처의 경지.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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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유마힐소설경 나무유마힐소설경 나무유마힐소설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