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강
그러니까 자기가 애착하는 애착심이 있을 때 자기의 권속이든 자기의 자식이 됐든지, 자기의 가까운 사람이 됐든지 그런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情’이지 ‘자비’가 아니지 않습니까? 상당히 애지중지 위하죠. 자기 생명까지 버리면서 자식을 위하는 것 아닙니까? 그건 정이지 자비의 차원은 아니라고요. 그런데 어떤 경지를 넘어서 역시 또 그러한 ‘정’보다 더 열렬한, 강한 자비가 나와야 되겠죠.
只爲他了達三祗劫空(지위타요달삼기겁공)하야 生死涅槃(생사열반)이 俱寂靜故(구적정고)니라
只爲他了達三祗劫空(지위타요달삼지겁공)하야 生死涅槃(생사열반)에
다만 저것은 삼지겁이 공한 것을 요달해서, 삼지겁을, 삼아승지겁을 지내야 성불한다하는 그 이론입니다. 이 한 말 속에 삼아승지겁을 보살도를 실천하고, 뭣을 실천하고, 실천한 뒤에사 비로소 성불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하는 이론. 그런데 그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에서 생겼느냐? 이거야. 삼지겁을 지난 뒤에 성불한다고 하는 건 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그건 깨닫지도 못한 사람들의 소리다 이거지. 그런데 너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못 알아듣는 사람, 그리고 물러가는 사람들이 너무 아까와서 그래서 엉터리 불법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해서 그런 근기들을 좀 건지고, 달래서 근기를 좀 상승시켜서 나중에는 제대로 된 할 소리를 하기 위해서 그런 이야기도 있어요. 불교 안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삼아승지겁을 닦아야 성불한다는 그런 이야기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진실이 아니죠. 삼지겁이 텅 비어서 공하다는 사실을 요달해서, 공하다면 시간이라는 건 없는 거죠.
生死涅槃(생사열반)이 俱寂靜故(구적정고)니라
생사열반이 함께 적멸한 까닭이니라.
旣未到遮箇田地(기미도자개전지)인댄 切不可被邪師輩(절불가피사사배)의 胡說亂道(호설난도)하야 引入鬼窟裏(인입귀굴리)하야 閉眉合眼(폐미합안)하고 作妄想(작망상)이어다
旣未到遮箇田地(기미도자개전진)댄
그랬잖아요? 이미 이러한 전지에 이르지 못했을진댄
切不可被邪師輩(절불가피사사배)의 胡說亂道(호설난도)하야
이런 전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런 전지에 이르렀다면 문제없지만, 만약에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간절히 삿된 스승 무리들의 호설난도-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고, 경우 따라서 별별 소리 아주 어지럽게. ‘호’는 오랑캐들이 막 떠드는 소리, 저 변방에, 예를 들어서 우리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뭐라고 떠들어 대는 소리를 호설이라고 해요. 한나라 사람들은 이 오랑캐들의 말소리를 한 마디도 못알아들으니까 ‘저거들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식으로 취급할 때 호설. 그래요. 난도도 아주 어지럽게 말한다. 그 삿된 스승 무리들이 그렇게 엉터리 이야기들을 하는 소리를 입어서
引入鬼窟裏(인입귀굴리)
귀신 굴속에 들어가서 캄캄한, 귀신들은 아주 컴컴한데, 귀신 나올 것 같은, 귀신이 어디 있다, 없다 하는 그런 망상 부리니까 우리가 보통 눈에 ‘저기는 꼭 귀신이 나올 것 같다.’ 라고 하는 걸 상상하면 돼요.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그런 굴속에
떠억 앉아서, 마음이 그런 상태로 되어서
閉眉合眼(폐미합안)이라
눈썹을 닫고, 눈을 감고 그래서
作妄想(작망상)
망상을 짓지 말지어다. 제발 좀 그렇게 묵묵히 쉬어가고, 쉬어가라. 휴거헐거. 그리고 생각 드러내고 드러내라. 조용히 있으라. 눈을 딱 감고 아무 생각도 없는 그런 상태로 있으라 하는 그런 공부 좀 제발 하지 말라 하는 거죠.
邇來(이래)에 祖道衰微(조도쇠미)하야 此流_如麻似粟(차류_여마사속)하니 眞是一盲(진시일맹)이 引衆盲(인중맹)하야 相牽入火坑(상견입화갱)이라 深可憐愍(심가연민)이로다
邇來(이래)에 祖道衰微(조도쇠미)하야
근래에 도가 자꾸 쇠퇴해져서
此流_如麻似粟(차류_여마사속)이라
이러한 류가, 이렇게 공부 지도하는 사람들이 말하자면 삼대와 같고, 삼 알과 같다 해도 좋아요. 삼밭을 본 사람이 없으니까 참 문제네. 어릴 때 삼밭을 보면 빽빽한 게 정말 못자리 해놓은 것 같습니다. 그건 본래 모종을 그렇게 하죠. 삼밭과 같고 조와 같다. 조는 아주 알이 작은 곡식 아닙니까?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류들이 불법 문중에 많으니
眞是一盲(진시일맹)이 引衆盲(인중맹)하야
이것은 참으로 한 맹인이 여러 맹인들을 이끌고
相牽入火坑(상견입화갱)이라
마치 불구덩이로 이끌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
深可憐愍(심가연민)이로다
심히, 가히 불쌍하고, 애석하도다. 아마 그 당시 그렇게 불법을 지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에요.
願公(원공)은 硬着脊梁骨(경착척양골)하야 莫作遮般去就(막작자반거취)어다
願公(원공)은 硬着脊梁骨(경착척양골)하야
척양골을 바짝 세우고, 정신을 차려서 이런 뜻입니다. 척양골 세우라는 말은 어깨 축 늘어지게 하고, 등이 구부정하게 있으면 졸기 딱 좋지, 공부하는 사람 자세가 아니거든요. 척양골 딱 세우고 있으면 그건 정신 차려져 있다 하는 뜻이니까 정신을 바짝 차려서
莫作遮般去就(막작자반거취)어다
이런 짓 하지 말라 말이야. 앞에서 이야기한 사사배들이 가르친 이런 짓들 좀 하지 말라. 이런 거취, 이런 짓 하지 말라.
作遮般去就底(작자반거취저)인댄 雖暫拘得箇臭皮袋子住(수잠구득개취피대자주)하야 便以爲究境(편이위구경)이나
作遮般去就底(작자반거취저)
이런 짓을 한다면
雖暫拘得箇臭皮袋子住(수잠구득개취피대자주)하야
이것은 비록 잠간 구득한다. 얽어 묶는다 이거여. 냄새 나는 가죽 주머니, 이 몸뚱이를 구속해서, 앉아있긴 잘 앉아 있는다. 몸뚱이 조복 받아 잘 앉아 있는 것을
便以爲究境(편이위구경)하야
곧 그것을 최상의 법이라고 여기나
而心識紛飛(이심식분비)호미 猶如野馬(유여야마)하야 縱然心識(종연심식)이 暫停(잠정)이나 如石壓草(여석압초)하야 不覺(불각)에 又生(우생)하나니
而心識紛飛(이심식분비)호미
잠에서 깨거나 그 상태라 하더라도, 몸은 그렇게 앉아있다 하더라도 심식분비야, 우리의 의식이 아주 어지럽게 이리 날고 저리 날고 하는 것이
猶如野馬(유여야마)
마치 야마, 아지랑이와 같아서
縱然心識(종연심식)이 暫停(잠정)이나
비록 우리의 의식이 잠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如石壓草(여석압초)야
마치 돌로써 풀을 누르는 것과 같다. 풀을 아무리 돌로써 무거운 걸로 눌러 놓았다 하더라도 봄 되면 저 옆으로 비죽이 노란 싹을 비집고 나오지 않습니까? 또 돌을 들춰보면 그 안에 노란 싹이 햇빛을 못봐서 있어요. 그대로 그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거야. 그와 같이 비록 생각을 쉬어서 거친 망상은 없어졌다 하더라도 속에 알음알이, 망상이 근본이 끊어지지 아니해서 그대로 그 속에 뒤엉켜 있는 거죠. 마치 흙탕물을 맑히려고 가만히 가둬 놓는 것과 같은 거야. 그러면 그 흙이 오래되면 가라앉지 않습니까? 지장수 만들어 마시죠? 지장수 만들 때처럼 그렇게 흙탕물을 휘저어 놔두면 한참 있으면 가라앉는 거요. 불교 공부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얼른 불교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건 참 크게 잘못 지시하는 거예요. 그렇게 가라앉혀 있으면 어떡해? 조금만 누가 출렁거려버리면 그냥 흙탕물이 또 뜨잖아요? 그런 엉터리 공부가 어딨어요? 세상에. 그건 공부도 아니에요. 그런 공부를 했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공부라고 할 것도 없고, 불교 공부가 어떻게 하는지도 전혀 모르는 거죠. 이게 그 얘기 아닙니까? 심식이 분비하는 것이 마치 야마와, 아지랑이와 같아서 비록 마음이 잠간 이렇게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여석압초야.
不覺(불각)에 又生(우생)이라
몰란결에 또 거기서 생겨. 자꾸 나나니
欲直取無上菩提(욕직취무상보리)하야 到究竟安樂處(도구경안락처)면 不亦難乎(불역난호)아
欲直取無上菩提(욕직취무상보리)하야 到究竟安樂處(도구경안락처)면
무상보리를 직취, 바로 취해서 구경, 결정적인 안락처에 이르는 일이
不亦難乎(불역난호)아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근본적인 해결이 안된다는 거야. 물 잠간 가라앉혀서 조금만 흔들어버리면, 돌 하나 던져 버리면 그냥 바로 흐려지니까.
某亦嘗爲此流(모역상위차류)의 所誤(소오)러니 後來(후래)에 若不遇眞善知識(약불우진선지식)이런들 幾致空過一生(기치공과일생)일러니라
某亦嘗爲此流(모역상위차류)의 所誤(소오)하니
또한 내가 일찍이 이러한 류의 그르친 바를 입었다. 그르친 바를 당했다. 오랫동안 이 대혜스님이 아주 절치구심 이런 문제를 바로 잡고자 하는 이유가 있어요. 여기 일찍이 이러한 무리들에게 잘못 지시함을 입어서 여러 해 허송세월을 보냈다.
後來(후래)에 若不遇眞善知識(약불우진선지식)이런들
뒤에 만약에 참다운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던들
幾致空過一生(기치공과일생)이라
일생을 헛되이 보낼 뻔 했다. 정말 생사를 던져서 출가를 해서 이 일을 해치우겠다고 그렇게 결심하고 나선 사람이 스승 잘못 만나서 잘못 지시해준 것 입어가지고는 일생을 그르쳤다면 정말 천추의 한이야. 세세생생 한이 쌓였을 것입니다. 여기보면 대혜스님같이 이렇게 깨달으신 분이 이 문제만 들고 나오면 그만 중생심이 발동하는 거야. 이런 표현이 대혜스님께는 참 미안하지만, 정말 중생심이 발동할 정도로 열을 올린다고. 아주 열 받아 버려. 대혜스님이 이 문제만 나오면.
每每思量(매매사량)컨댄 直是尀耐(직시파내)로다 以故(이고)로 不惜口業(불석구업)하고 力求此弊(역구차폐)리니 今稍有知非者(금초유지비자)니라
每每思量(매매사량)컨댄
매양매양 사량컨댄, 생각해볼수록,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直是尀耐(직시파내)로다
참을래야 참을 길이 없더라. 그래서
不惜口業(불석구업)하고 力求此弊(역구차폐)라
구업을 아끼지 않고, 내가 구업 때문에 지옥 가는 한이 있더라도 힘써 이런 폐단을 구제했더니
今稍有知非者(금초유지비자)
요즘 와서 조금씩 조금씩 그런 공부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있더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공부 잘못하면 괜히 헛 공을 들이게 되니까 그래서 이런 이야기 나오면 열을 받아서 전혀 선지식 같지도 않고, 도인같지도 않게 열을 바짝 내어서 자기 표현을 이렇게 합니다. 어떤 데는 이보다 더 심한 표현도 있어요. 구업을 아끼지 않고 온갖 이야기를 다해가면서 한다는 거죠.
若要徑截理會(약요경절리회)인댄 須得遮一念子(수득자일념자)를 爆地一破(폭지일파)하야사 方了得生死(방료득생사)하리니 方名悟入(방명오입)이니라
若要徑截理會(약요경절리회)인댄
만약 경절, 바로 질러서 이해하기를 요할진댄
須得遮一念子(수득자일념자)를
이 한 생각, 최초 한 생각이라고 할까? 최초 한 생각이나 최후 한 생각이나 오로지 한 생각에서 천 가지 생각, 만 가지 생각이 일어나니까, 근본 망상 일념이야. 근본 망상 일념이라고 할 수 있겠네. 그것을
爆地一破(폭지일파)
‘팡!’ 터트려 한번 깨트려서
方了得生死(방료득생사)하리니
바야흐로 생사를 마칠 수 있다. 생사 문제를 끝낼 수 있다. 그래야 바야흐로 이름을 오입,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다.
然(연)이나 切不可存心得破(절불가존심득파)어다 若存心在破處則永劫(약존심재파처즉영겁)에 無有破時(무유파시)하리라
然(연)이나 切不可存心得破(절불가존심대파)어다
그런다고 해서 내가 깨달음이라는 말, 쓰기 싫은데 이쯤 와서 안쓸 수도 없어서 쓰긴 쓴다만은 그렇지만 간절히 존심대파, 마음을 두어서 말하자면 폭지일파 한다는 그런 깨트리는 것을 기다리지 말라. 깨달음을 기다리지 말라. 그것도 깨달음을 이야기하니까 또 깨달음을 기다릴까봐 염려가 되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그러면 이야기 하다가 병을 하나 더 얹어주는 게 되는 거야. 병을 제거하려 약을 줬는데 그 약 때문에 또 병이 되어 버리는 거죠. 깨달은 사람의 안목에서 보면 이걸 말할 수도 없고, 참 안할 수도 없고. 하면 또 그 말에 쫓아가버리니까.
若存心在破處則(약존심재파처즉)
만약에 마음을 두어서 깨트린다고 하는 그곳에다가 둔다면
永劫(영겁)에 無有破時(무유파시)하리라
영원히 깨트릴 데가 없을 것이다.
但將妄想顚倒底心(단장망상전도저심)과 思量分別底心(사량분별저심)과 好生惡死底心(호생호사저심)과 知見解會底心(지견해회저심)과 欣靜厭요底心(흔정염 저심)하야
但將妄想顚倒底心(단장망상전도저심)과
다만 망상해서 전도하는 그런 마음과
또 사량 분별하는 그런 마음과
好生惡死(호생오사)하는 마음,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보통 우리 중생들의 상정이죠. 그런 마음과
知見解會底心(지견해회저심)
알음알이로서 이해하려는 그런 마음과
欣靜厭욕底心(흔정염욕저심)
고요한 것을 좋아하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서 공부할 때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어떤 심리적 현상들이죠. 그런 것을 모조리 가지고
一時(일시)에 按下(안하)하고 只就按下處(지취안하처)하여 看箇話頭(간개화두)호대
一時(일시)에 按下(안하)
일시에 눌러 내리고. 눌러 내린다고 하지만 눌러 내리는 작업이 따로 있는 건 아니예요. 그것 돌아보지 말고, 무시하고 이런 말입니다. 여기서. 꼭 뭐 무거운 돌로 풀을 눌러 내리듯이 그렇게 상상하면 곤란해요.
只就按下處(지취안하처)
그걸 무시한 바로 그 자리에 나아가서
看箇話頭(간개화두)호대
그 화두를 보대. 여기 토가 ‘호대’라고 되어 있으니까. 간개화두. 그 화두.
僧(승)이 問趙州(문조주)호대 拘子(구자)도 還有佛性也無(환유불성야무)닛가 州云無(주운무)라하니
僧(승)이 問趙州(문조주)호대
조주에게 묻되 개도 또한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州云(주운) 無(무)니라
‘무’라 한 것을 간, 볼지니라. 토를 그렇게 해야 돼요. 간개화두, 그 토 빼버리고, 승이 무조주호대 구자도 환유불성야무닛가 주운무니라. ‘무’라 한 것을 볼지니라. 간하라. 이 ‘간’은 사물을 보듯이 그렇게 보는 거죠.
이걸 한국의 참선하는 사람들이 이 <서장>의 영향을, <서장>의 영향은 800년 전 보조 지눌 스님께서 이 <서장>을 보시다가 깨달은 바가 있고 해서 그 후 정혜결사를 하시면서 대중들을 모아놓고 그 당시 공부를 공부답게 한다고 하는 곳이 그래도 송광사, 정혜사예요. 몇 년 동안 방을 붙여서 공부에 뜻이 있는 사람을 모았으니까. 그래서 정말 공부에 뜻이 있는 사람을 모아서 제대로 보조스님이 지도를 할 때 당신이 힘을 얻은 이 <서장>을 교재로 안했을리라곤 상상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서장>은 그때부터 교재로 썼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서장>은 최소한도 800년간 우리 한국 불교를 지도해온 수행지침서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최소한 <서장>은 그래요.
왜 그런고하니 지금 법맥으로, 인맥으로 볼 때는 태고 보우 스님이 틀림없어요. 그러나 그 영향력으로 볼 때는, 후대에 끼친 그 영향력으로 볼 때는 보조스님의 영향력이 훨씬 큽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인맥으로 보우스님이 정상적으로 임제 법맥을 이어내려 왔다. 이것에 대해서는 감히 내가 말할 수는 없으나 최소한도 보조스님이 그 당시 공부할 사람을 전국적으로 몇 년간 불러 모아서 정혜사에서 공부를 할 때는 최소한도 정말 공부에 뜻있는 사람들이 모였고, 거기서 지도받은 것을 전국에 퍼져서 그 영향으로 말하자면 수행이 체계화되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조선시대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도 그래도 꺼질듯 말듯한 선법이 지금까지 내려와서 근래에 다시 활기차게 하긴 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입장에서 보면 보조스님께서, 여기 스님들께서 태고 보우 스님에 대한 영향력, 뭐 시를 잘 아시니까 시 몇 수는 알지 몰라도 그 스님의 주의주장이라든지, 학인을 제접한 공부 방법이라든지 이런 것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솔직하게 없어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만치 그 분의 수행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어요.
그런데 보조스님은, 걸핏하면 보조스님이야. 화엄론을 간략히 산문으로 묶어서 화엄사상을 편 일 이라든지, 또 <진심직설>같은 세계적인 명저거든요. 보조스님의 저서 중에서 <진심직설>을 최고로 칩니다. 세계적인 명저 속에 들어 간다구요. <진심직설>은. 그 외 <보조어록>이 전해 내려오면서 상당히 큰 영향을 공부한 사람들에게 끼쳤습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서장>이 거기에서 힘을 입어 지침서 역할을 틀림없이 했으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선원에서 화두를 드는 스님들, 이건 설문 조사를 한 것은 아닌데, 내가 그래도 10여년 선방으로 다니면서 이런저런 몸으로 부딪혀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한 80%는 “구자무불성하”를 해요. 이야기를 해보면 그래요. 이 화두를 많이 한다구요. 이 <서장>의 영향이라. 800여 년 동안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쳤으니까 왜 안그렇겠습니까? 사실 그만치 많이 해요. 80%가 넘을 거예요. 어쩌면. 그런데 이 화두를, 이거 하나 챙길 줄 알면 <서장>공부 거의 한 거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제일 “구자무불성하”를 많이 권했거든요. <서장>에서. 이걸 어떤 느낌으로, 최소한도 우린 감정이죠. 일단 중생들이니까. 한 생각 떨어진 입장이 아니니까. 이걸 어떻게 드는 것이 과연 제대로 ‘무’자 화두를 드느냐? 이게 처음 나왔잖습니까? ‘무’자 화두 드는데 대해서 처음 나왔잖아요? 이걸 어떻게 들어야 제대로 드느냐?
그러니까 僧(승)이 問趙州(문조주)호대 拘子(구자)도 還有佛性也無(환유불성야무)닛가 州云無(주운무). 여기까지라구요. 딱 한 줄이네. 요 한 줄이 말하자면 ‘무’자 화두를 제시한 거라. 그래서 이 밑에 보면 此一字子(차일자자), 이 한 글자는 뭐예요. 無. ‘무’거든요. 乃是摧許多惡知惡覺底器仗(내시최허다악지악각저기장)이라. 모든 악지악각, 그러니까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생각들, 상념들, 그런 번뇌 망상들을 다 꺽어버리는 무기다. 그랬어요. 이것을 싹 쓸어가는 무기다. 그래놓고 그 다음에 문자10종병, 소위 문자10종병이라고 하는 것을 나열하는데. 여기서는 여덟 가지 밖에 소개 안됐습니다만 흔히 선방에 많이 떠도는 문자 10종병, 또 문서화 되어서 돌아다니는 것도 있고 그런데 여기서 8가지를 들었는데. 물론 병 생각할 것 없고, 일단 僧(승)이 問趙州(문조주)호대 拘子(구자)도 還有佛性也無(환유불성야무)닛가 州云無(주운무). 이걸 어떤 마음 상태로 화두를, 흔히 든다, 의심한다, 화두를 의심한다 그러는데 뜻은 같죠. 어떻게 들어야 제대로 드는 것이냐? 이게 문제야. 사람들이 천차만별이거든요.
나도 사실은 선방에 갈 때 명색이 엉터리 이력이라도 이력 배우고, 범어사에서는 그 때 강원 분위기를 보면 9시 삼경 치고서 누우면 한 5분 있다가 일어나 앉는 사람이 열 명에 7~8명이 됐어요. 거기는 또 묘하게 선찰 대본사라서 그런지 그 때 성호스님이라고 아주 선지가 밝은 스님이 강사로 계셨어요. 본래 신선되려고 절에 들어왔다가 나중에 불법을 정상적으로 만나서 선지에 아주 뛰어난 안목을 가지신 분인데. 이 분이 <선요>를 가르치고, <서장>을 가르쳤다고. <선요>, <서장>은 누구 안맡겨. 당신이 가져갔어. 그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하여튼 그랬어요. 그렇게 하면서 나는 처음에는 그 스님에게서 <선요>를 배우고 <서장>은 나중에야 제대로 눈을 뜨게 되었는데, 어쨌든 그런 세월로부터 졸업할 때까지 거기서 배운 식으로 삼경 치고 나면 최소한도 배운 식으로 다시 한 시간 쯤 앉았다가 다시 자고 세월을 이런 식으로 보내면서 내~ 이 ‘무’자 화두로 씨름을 한다고 제일 많은 시간을 그렇게 했는데. 이걸 어떻게 드느냐? 하는 게 제일 문제더라구요.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해보고, 물어보고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사실 다른 사람들이 소위 그 당시 선지식에게 가서 화두를 탄다 하지 않습니까? 화두를 타온 이야기도 많이 들어보고, 옆에 있어보기도 하고, 나도 줘보기도 하고 그렇게 했지만 이걸 제대로 하는 방법을 일러주는 이야기는 누구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건 의심이 가버려야 돼. 자기가. 그래버리면 끝나는 건데, 의심이 이런 말 속에서 가는 사람이 솔직하게 몇 명이나 있어? 부처님 말씀에는 유정무정이 개유불성이라 했는데 어떻게 해서 조주스님은 ‘無’라고 했는가? 옛날에 어떤 조사스님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야. 그래서 의심이 들어간다는 거야. 조주스님이 개가 불성이 없다고 하는데 대해서 ‘나는 도저히 납득이 안간다. 조주를 내가 의심할 수도 없고, 부처님을 의심할 수도 없다. 그러면 여기에는 틀림없이 큰 함정이 있을 것이다. 저의가 뭐냔 말이야.’ 그렇게 해서 저절로 의심이 들어갔단 말이야. 거기서 생긴 말이 석가모니 부처님은 유정무정이 개유불성이라 했는데 조주는 인삼도무고. 왜 무라고 했느냐? 옛날 조사스님이 그랬다구요. 뭣 때문에 무라고 했느냐?
첫댓글 ~()()()~^^
()()()
부처님 말씀에는 有情 無情이 皆有佛性이라 했는데 어떻게 해서 조주스님은 ‘無’라고 했는가? ... 불퇴지님! 감사드립니다... _()()()_
_()()()_
_()()()_
須得遮一念子를 爆地一破하야사 方了得生死하리니 方名悟入이니라 ....근본 망상 일념을 팡 한 번 깨뜨려서 바야흐로 생사를 마칠 수 있으리니 바야흐로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니라...불퇴지님! 수고하셨습니다.._()()()_
_()()()_
若存心在破處則(약존심재파처즉) 永劫(영겁)에 無有破時(무유파시)하리라. 만약에 마음을 두어서 깨트린다고 하는 그곳에다가 둔다면 영원히 깨트릴 데가 없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삼배 올립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감사합니다.()
_()()()_
_()()()_
감사합니다
切不可存心得破,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