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가 말을 배울 수 있을까?
- 『The Language Instinct』 vs. 『Next of Kin』
이덕하
2006-03-07
『The Language Instinct : How the Mind
Creates Language(1994)』
지은이 :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국역본 : 『언어본능 - 마음은 어떻게 언어를 만드는가』
『Next of Kin: My Conversations with Chimpanzees(1997)』
지은이 : 로저 파우츠(Roger Fouts)
『Next
of Kin』.. 1
mentalese. 2
핑커가 『Next of Kin』을 부정하다.. 3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에게 말을 가르치려는 시도는 20세기
초반부터 있었다. 처음에는 음성언어를 가르치려고 했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그 후 ASL(American Sign Language, 수화의
일종)을 가르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여러 편의 논문을 제출했고 텔레비전 쇼에도 출연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Next of Kin』은 그 중 가장 유명한
침팬지인 Washoe에게 ASL를 가르치는 과정을 다룬 책이다.
물론 침팬지가 인간의 언어를 완벽하게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는 없다. 문명국의 평범한
인간이 구사하는 어휘의 수는 10만 개에 육박한다. 파우츠에
의하면 침팬지는 100 단어 이상을 배울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문장의 크기가 이론상 무제한인 반면 침팬지는 10 개 정도의 단어를 연결하여 문장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침팬지의 언어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학자도 침팬지가 성, 수, 격, 시제에 따른
어미 변화를 완벽하게 배울 수 있다거나 관계 대명사나 가정법까지도 모두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침팬지가 주어와 목적어 정도를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사람이 개를 물었다”와
“개가 사람을 물었다”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Next of Kin』에 나오는 어떤 침팬지는
검은색(Black)을 좋아하는데 그 침팬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Black이라고 한다. 예컨대 맛있은 바나나를 주면 그 침팬지는 Black이라고 한다. 어떤 침팬지는 벌레(Bug)라는 단어를 자신이 경멸하는 자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다. 오이(cucumber)라는
단어를 배운 적 없는 어떤 침팬지는 오이를 처음 보았을 때 녹색 바나나(green banana)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런 것들은 침팬지가 단지 훈련을 통해 인간의 언어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추상적인 사고를 언어로 표현한다는
증거이다.
mentalese
『Next of Kin』을 읽은 다음에 『언어
본능』을 읽게 되었다. 나는 두 책의 내용이
서로 잘 부합한다고 보았다. 특히 핑커의 mentalese라는 개념이 눈에 띄었다. 흔히 인간의 정신이 언어의 의해 주조된다고 생각하는데 mentalese라는 개념은 그것을 뒤집는다. mentalese는 “정신어”라고 번역할 수
있는 개념으로 인간의 뇌 속에서 내부적으로 쓰이는 ‘언어’다. mentalese가 먼저고 인간이 보통
쓰는 언어가 나중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먼저고 마네킹이 나중인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이 마네킹을 닮은 것이 아니라 마네킹이 인간을 닮은 것이다.
mentalese가 먼저 진화했고 음성 언어는 나중에 진화했다. 인간의
조상은 말을 하기 전부터 생각을 했다. 현대의 인간 중에 언어를 완전히 박탈 당한 사람(예컨대 수화를 전혀 배우지 못한 청각 장애자)도 사고를 할 줄 안다. 침팬지와 인간의 공통 조상에게도 mentalese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인간의 mentalese에 비하면 더 단순했겠지만 말이다.
침팬지에게도 ‘주어’와 ‘목적어’라는 개념(?)이 있을 것이다. 침팬지도 행위의 주체와 행위의 대상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침팬지가 ASL의 기본 문법
중 하나인 주어와 목적어의 구분을 쉽게 배울 수 있는 이유가 이미 침팬지에게 그 정도 수준의 mentalese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내가 『Next of Kin』와 『언어 본능』의 내용이 잘 부합한다고 본 것은 이 때문이다.
핑커가 『Next of Kin』을 부정하다
그런데 『언어 본능』의 “11장 빅뱅”에서 핑커는 『Next of Kin』의 내용을 완전히 부정한다. 물론 『언어 본능』이 1994년에 출간되었고 『Next of Kin』이 1997년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 책을 직접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핑커는 파우츠의 지도교수인 가드너(Gardner)와 파우츠가 ASL을 가르쳐 준 침팬지 Washoe를 언급한다. 핑커는 침팬지의 언어 습득 사례를 영리한 한스(Clever Hans)의
에피소드 정도로 보고 있다.
100 년
전쯤에 한스라는 말이 있었는데 사칙연산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커다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한스는 발로
땅을 두들겨서 답을 내놓았다. 예컨대 3 * 3 을 칠판에
쓰면 아홉 번 땅을 두들기는 식이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정밀 조사 결과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스는 청중이 답을 알고 있을 때만 답을 맞출 수
있었다. 한스의 전략(?)은 단순했다. 문제를 출제한 다음에 사람들은 기대에 차서 한스의 앞발을 쳐다 본다. 그러면
한스는 발을 구르기 시작한다. 위의 예에서 한스가 아홉 번 땅을 구르고 나면 사람들은 아주 미세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 그것을 눈치챈 한스는 발 구르기를 멈춘다. 이런
식으로 하면 물리학자들 앞에서 심오한 양자역학 문제에 대한 답도 내놓을 수 있다. 답이 자연수라면.
핑커는 여러 가지 근거를 대며 침팬지의 언어
능력에 대한 연구를 부정한다.
첫째,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raw data를 제공하기를 거부했다. 예컨대
가드너 부부는 다른 학자가 침팬지를 담은 자신들의 필름을 연구에 사용하려 하자 고소하겠다고 위협했다.
둘째, Washoe
팀에 참여했던 어떤 ASL native signer(청각장애자임)가 나중에 밝힌 바에 따르면 자신이 보기에 아무 뜻도 없는 제스쳐였는데 그 팀의 연구자들은 그것을 단어(sign)로 해석했다고 한다. 꿈보다 해몽이 좋았다는 것이다. 핑커는 위에서 언급한 녹색 바나나(green
banana) 같은 사례를 연구자의 억지 해석으로 본다. 실제로는 별 의미 없는 제스처에 불과했는데도 연구자가 그렇게 해석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셋째, Nim
Chimpsky라는 침팬지를 연구하던 팀에 방문한 Jane Goodall은 Nim의 제스처가 야생 침팬지의 제스처와 별로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Nim이 사실은 야생 침팬지가 보이는 제스처를 보였을 뿐인데 연구자들이 그것을 ASL로 해석했음을 암시한다.
넷째, 침팬지가
했던 수화는 단조로우며 길이도 짧다. 핑커는 Nim이 했던
수화를 인용한다. 그 일부를 재인용해 보자.
Nim eat Nim eat.
Drink eat me Nim.
Me gum me gum.
Tickle me Nim play.
Joel Wallman의 『Aping Language(1992)』에 이런 비판이 자세히 실려 있다고 한다.
나는 ASL도 모르고 Washoe를 다룬 필름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두 학자의 주장 중 어떤 것이 맞는지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다. 『언어 본능』과 『Next of Kin』이 출간된 지 10 년 정도가 흘렀는데
그 동안 이 논쟁이 어떤 식으로 결말지어졌는지도 모른다. 둘 중의 한 명이 생각을 바꾸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며 논쟁 중인지 여부가 상당히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