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평화협정” 조인.
“국제연합 캄보디아 평화유지 선발대”(UNIMAC) 창설
“캄보디아 국가최고평의회”(Supreme National Council of Cambodia: SNC) 결성. 시하누크 공을 의장으로 선임하고 각 정파의 대표자들로 위원을 선임. 대부분 정파의 위원들이 프놈펜으로 입국함.
동일한 시기에 UNIMAC도 캄보디아 입국. 각 정파들 사이의 연락업무 및 질서유지, 휴전상태 유지, 정파별 군대의 무장해제, 37만명에 이르는 난민 귀환작전, 지뢰탐사 등 수행. UNIMAC의 총 인원은 최대 1,200명 정도까지 되었다.
“국제연합 캄보디아 과도행정기구”(UNTAC) 창설. 이 조직은 UN 사무총장 특별대표인 아카시 야스시(일본)가 이끌었고, 기구 내 군 사령관은 존 샌더슨 중장(호주)이었다.
UNIMAC이 UNTAC에 흡수되고, UNTAC이 본격적인 활동. 외국에서 온 군경이 약 2만명, 민간인 직원이 약 2,500명 정도의 규모(총 예산: 15억 달러). 선거를 준비하고 국가재건의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을 함.
크메르 루즈가 수백만 명의 베트남인들이 캄보디아 내에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다면서, 프놈펜 사무소를 폐쇄하고 평화협정체제에서 탈퇴를 선언.
최초의 총선거 실시. 하지만 무장해제에 동의하지 않고 빠져나간 크메르 루즈(KR)는 이 선거를 보이콧해, 자신들의 장악지역(전국의 10-15% 면적, 인구 6%)에서 선거참여를 방해.
전체 유권자 90% 이상이 참여해 성공적으로 치뤄짐. 선거결과는 "푼신펙당"(FUNCINFEC: 이 때는 시하누크의 아들 라나릿[라나리드] 왕자가 이끔)이 45.5%(58석)의 득표율로 제1당, "캄보디아 인민당"(CPP: 훈 센)이 51석을 얻어 제2당, "불교자유민주당"(BLDP)이 제3당이 되었다.
선거에서 당선된 "제헌의회" 의원들이 만든 "캄보디아 왕국 헌법"이 선포됨. 헌법 선포 후 "제헌의회"는 "국회"(국민회의)로 전환되어 임기를 시작함. 시하누크 국왕이 왕국 국왕으로 추대되어 재즉위함. 내각신임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 확보를 위해, 제1당인 FUNCINFEC과 제2당인 캄보디아 인민당(CPP)이 연정을 구성해 집권을 했고, 노로돔 라나릿 왕자(푼신펙 당수)가 제1총리에, 그리고 훈 센(CPP 당수)가 제2총리에 취임해 공동으로 정부를 이끌었다.
UNTAC이 임무를 종료하고 단계적으로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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