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오경 모세 오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시작할 때까지 그 백성과 그 백성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에 대해 알려준다.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아내 사라와 함께 메소보다미아 지방의 고향을 떠난다. 아브라함이 그리 한 것은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면서 그로 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창12:1-3). 이로써 '선조들의 시대'가 시작된다. 선조들은 소규모 유목민으로서, 가족을 거느리고, 언젠가는 - 또 하나님의 약속대로(창12:7) - 그들의 자손에게 속하게 될 그 땅을 두루 다닌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가족은 가뭄 때에 애굽으로 피난한다(창37-46장).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이들로부터 한 민족이 생겨난다. 이 민족을 바로가 억누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구원자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다(출1-15장).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율법' 가운데에 자신의 뜻을 자기 백성에게 드러내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다(출19-24장). 가지가지 시험을 거쳐서 이 백성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 경계에까지 이른다(민22:1; 신34:5). 바로 이 백성의 시각에서 본 일종의 인류 '원역사'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 시작되기에 앞서 나온다. 원역사는 하나님이 온 누리와 사람을 창조하심으로 시작되고, 옛적 낙원의 상황에 비추어 현재 세계, 곧 수고와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손으로 붙들고 계시는 세계를 이해하게 한다. 인류는 그 창조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간 반면, 하나님의 부르심 은 단 한 사람 아브라함에게 이른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로 시작하려 하신다. 모세 오경은 서로 아주 다른 여러 종류의 전승이 한데 어우러져 생겨난 것으로, 오늘의 모습으로는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는데, 단지 실용적인 까닭 때문에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졌을 뿐이다. 초기 유대교에서는 그들의 거룩한 글들을 우리가 알고 있는 바처럼 책에 쓰지 않고, 넓게 펴 한데 기워서 두루마리로 보관하던 짐승 가죽 위에 썼다. 이렇게 두루마리로 만든 '책'은 실용적인 까닭 때문에 그 길이를 마음대로 통일할 수 없어서 포괄적인 역사와 율법 저작을 다섯 두루마리에 나누게 되었다. 그리 할 때 할 수 있는 대로 의미를 잘 살리려고 하였지만, 출19장부터 민10장까지, 관련성 있게 씌어진 하나님의 시내 산 계시는 세 두루마리 곧 세 권의 '책'에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오경 전체를 그리스 말로 펜타튜코스 라 한다. 곧 '다섯 권짜리 저작'(다섯 두루마리 책)이란 뜻이다. 히브리 말로는 그 이름이 토라 이다. 토라란 '하나님의 율법' 또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뜻한다. 유대교와 유대교의 신앙과 생활 방식에서는 이 다섯 권의 책이 아주 근본적인 것으로 거룩한 글들의(우리의 '구약 성경', 정경*) 고유한 핵심을 이룬다. 오경의 저자 또는 저자들에 대해서 성경 본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주후 일세기 이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전승에서는 오경을 모세의 저작으로 여겼다. 신34장에서 모세의 죽음에 대해 말하지만 이는 나중에 덧붙은 것일 수도 있기에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큰 비중을 지니는 것이 있다. 곧 '오경'에는 문체상의 여러 차이와 내용상의 여러 불균형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관찰한 것인데, 단 한 사람의 지은이가 쓴 작품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경은 일관되게 집필한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글의 모음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미 18세기부터 사람들은 모세 오경에 개별 전승들의 모음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자료들 이 계획성 있게 한데 묶여져 있다는 점을 주의 깊게 보게 되었다. 자료들이란 독자적인 문학 작품들을 말하는데, 이 작품들은 다시 개별 전승들을 모으고 정리함으로써 생겨난 것들이다. 같은 역사 과정을 다른 시대의 다른 저자들이 일관성 있게 서술하고, 이 '자료 문서들'을 나중에 어떤 한 사람('편집자')이 손질하였거나, 아니면 단계적으로 여러 사람이 오늘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오경에서 볼 수 있는 방식으로 한데 묶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자료 문서 구분은 중복된 내용, 곧 비슷하지만 특징 있게 다른 형식으로 나타나는 본문이(이를테면 창1-2장에 나오는 두 가지 창조 본문) 오경의 여러 곳에 있다는 점을 관찰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관된 것처럼 보이는 본문에서도(창6-9장의 홍수 본문 같은 경우) 거듭되는 곳들과 서로 어긋나는 바들이 드러났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런 경우에는 여러 자료의 전승이 긴장감 넘치게 묶여져 하나의 본문으로 되었음을 생각할 수 있다(그런 보기들에 대해서는 성경 '원역사' 안내 참조). 그렇게 다루어진 자료들이 개별 전승 단편이 아니라 일관성 있게 쓴 기록들이라는 것은 한결같이 거듭 나오는 특징적인 표들을 관찰해 보면 알 수 있다. 그 표는 부분적으로는 문체에 관한 것이고 부분적으로는 신학적인 성격을 띤다. 자료 문서들의 차이는 거기에 사용된 하나님 이름 에서 가장 손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방 백성들의 신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고유명사로 불린다. 그 발음을 개역한글판에서는 여호와로 적고 있지만, 원 발음은 야훼 인 듯하다(출3:15 해설을 참조하라). 이와 아울러 히브리 말에는 한 분이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엘로힘 이 있는데 이를 또한 '하나님'으로 옮긴다. 창6-9장의 홍수 본문에서 이 두 가지 하나님 이름이 겉보기로는 아무렇게나 번갈아 나오는 듯함을 살펴 볼 수 있다. 그 두 이름이 서로 다른 자료를 알려주는 표라고 생각하면, 그 '아무렇게나'라는 인상이 사라진다. 서로 다른 하나님 이름에는 각기 독특한 관점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살펴보면 하나님 이름을 한결같이 야훼로 사용하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구약학에서는 이 사람을 야훼 기자 라고 부른다. 다른 점에서는 아주 다른 두 자료 문서가 출애굽의 시점 이후부터 비로소 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출3:15와 6:2-3 참조). 여기서 야훼 이름을 알림은 하나님의 행동의 새로운 단계를 뜻하고, 그 서술하는 바에 따르면 비로소 이 시점에서야 그 이름이 계시된다. 그 두 자료 문서 가운데 하나는 그 때까지 하나님 이름을 엘로힘으로 썼다. 그리하여 이 문서의 저자로 생각되는 사람을 엘로힘 기자 라고 부른다. 다른 자료 문서들은 또 오래 된 하나님 이름인 엘 샷다이를 엘로힘과 나란히 쓴다(엘 샷다이를 <개역한글판>은 창17:1에서는 '전능한 하나님'으로, 출6:2-3에서는 '전능의 하나님'으로 옮긴다). 이 문서는 제사 의식과 제사장 직무에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이 마지막 자료를 제사장 문서 라고 한다. 물론 자료 문서로 추측할 수 있는 이 셋은 오로지 이리 저리 줄여서만 단 하나의 저작으로 합쳐질 수 있었을 것이다. 야훼 문서와 제사장 문서는 전체 얼개와 신학 성향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보존되었다. 엘로힘 문서는 조각들로만 남아 있어서 이것이(이리 저리 흩어져 있던 개별 전승뿐만 아니라) 도대체 하나의 일관된 자료 문서인가 하는 데 대해 거듭 의아한 생각을 품게 한다. 자료들의 통합 과정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엘로힘 문서의 부분들을 야훼 문서 안에 넣은 다음 야훼 문서와 엘로힘 문서를 합친 것을 줄여 제사장 문서의 틀에 맞추어 넣은 듯하다. 오경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신명기>인데, <신명기>는 그 자체로 완결된 고유한 자료 문서로 드러난다. 이 문서는 줄이지 않고 통째로 민36장과 신34장 사이에 들어간 듯하다(그에 대해서는 <신명기> '안내'를 보라). 세 자료 문서 가운데 가장 오랜 것이 '야훼 문서 '인 듯하다. 이 문서는 창조에서 시작하여 원역사와 선조의 역사와 출애굽과 시내 산 계시와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거쳐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바로 앞 순간에 이르기까지 오경 전승 전 사건을 일관성 있게 다룬다. 가나안 진입 자체에 대해서는 세 문서 자료 가운데 어느 하나도 말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 자료들의 저자들에게는 모세가 죽기 전에 약속의 땅을 멀리서나마 보았다는 식으로 마무리짓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자료 문서의 저자인 '엘로힘 기자'는 자기의 서술을 이스라엘 백성의 시조인 아브라함과 직접 연결시킨 듯하다. 그와는 달리, 야훼 기자는 이스라엘 형성의 역사 앞에 인류의 '원역사'를 두고, 또 그리함으로써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행동을 세계적인 맥락 안으로 옮겨 놓는다. 그러나 인류는 창조주에게 굴복하려 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였다(창8:21). 이런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은 자신에게 영광을 돌릴 한 민족을 뽑으신다. 하나님은 이 백성을 크게 만들려 하시지만 또한 이 백성으로부터 다시금 전세계에 복이 흘러 나가야 한다(창12:1-3). 야훼 기자는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첫 부분이 다윗과 솔로몬의 큰 나라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본 듯하다. 야훼 기자가 솔로몬의 왕궁에 속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는 주석가들이 여럿 있다. '엘로힘 기자 '에게 속한 전승들에서 부분적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의도적인 신학적 성찰이다. 하나님 계시를 여러 단계로 구분함이(출3:13-15) 그러하고, 하나님을 '영적으로 생각함'도 그러한데, 후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강조한다(하나님은 창3:8; 18:1,22-23에서처럼 더 이상 단순히 땅 위를 거니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자들을 통해서나 꿈으로 스스로를 드러내신다. 창20:3,6; 21:17; 22:11; 31:11 참조). 선조들은 모범적인 인물들로 상당히 강하게 묘사되어 그들의 인간적인 약점들은 부드럽게 다루어진다(창12:11-13; 18:1-19와는 달리 창20:2,12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거짓말이 그러하고, 30:37-43과는 달리 31:4-13에 나오는 야곱의 속임수 같은 술책이 그러하다). '제사장 문서 '의 신학 성향은 아주 똑똑히 알 수 있다. 그보다 더 오래 된 다른 두 자료 문서와는 달리 제사장 문서는 주전 587년의 민족적 대재난 경험을 전제한다. 제사장 문서는 바벨론 포로기*에 생겨난 듯하다. 이스라엘의 생성에 대한 제사장 문서의 묘사는 하나님 백성에게 그들의 역사를 현실적으로 풀이해 줌으로써 대재난을 넘어서서도 변하지 않는 관점을 마련해 주려고 한다. 제사장 문서의 서술은 하나님의 주권 행위인 세계 창조로 시작하는데, 이 행위로써 지속적인 여러 질서가 확립된다(창1:1-2:3). 그 질서의 절정은 시내 산에서 천막 성소('회막')를 건립함에 대해 넓게 상세하게 묘사한 데서, 또 제사 의식과 제사장직을 제정하는 데서(출25장-민10장)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여러 백성들 가운데 한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 백성 한 가운데에 하나님이 몸소 '거주하신다'. 또 바로 이 사실이 하나님 백성의 온갖 삶의 표현을 규정한다. 제사장 문서는 이중적인 방식으로 전 역사 과정을 하나님의 행동과 관련시킨다. 곧 한편으로는 창조의 근원에 연결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 안에서 하나님이 계속하여 이루시는 구원 제정 행위들을 통해 그리하신다. 역사를 뒤로 그 근원에 연결함은 제사장 문서의 특징이 되는 온갖 사건들을 빈틈없이 시간 안에 배치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그 밑바닥에 깔린 것은 순수한 연대상의 관심이 아니라 복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관심인데, 이 능력은 창조로부터(창1:28) 시간을 꿰뚫고 흐른다. 그러나 시간은 균등하게 경과하는 것으로 여겨보지 않고 하나님이 제정하신 바들을 통해서 나누어진다. 이것들은 맨 처음으로 홍수라는 벌의 심판을 불러일으킨 사람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보장한다. 홍수 이후 인류는 생활 조건이 여러 가지로 달라졌지만 노아와 그의 후손들에게 하신 평화의 약속 아래(노아 언약, 창9:1-17) 살아간다. 나중에는 이 후손들 가운데에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선별되는데 그들에게 하나님은 특별한 약속을 하신다. 그 약속의 표는 할례*이다(아브라함 언약, 창17장). 다른 표가 거기에 덧붙는다. 출애굽 때는 유월절*(출12-13장)이 표였고, 광야 시대에는 안식일*이 표였는데, 안식일은 이미 창조에 그 근거를 두고 있었다(창2:1-3을 출16:22-30과 견주어 보라). 그 모든 것이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관심을 보증한다. 이 관심은 시내 산에서 제사 예배를 제정하심으로써 그 절정에 이른다. 제사 예배의 뜻은 속죄, 곧 사람이 잘못한 결과로 백성 전체와 개인에게 닥칠 멸망을 돌이킴에 있다. 하나님이 몸소 이 속죄를 허락하신다. 속죄는 사람이 이루는 것이 아니다(<레위기> '안내'를 참조하라). 백성의 중심점이자 속죄의 장소인 성소는 하나님과 자기 백성의 유대 관계가 취소될 수 없는 것임을 선포한다. 이 유대 관계는 이스라엘 나라의 존재가 끝장난 다음에도 지속된다. 여러 자료 문서는 역사의 변천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근본 전승들을 하나님의 산 증언으로 늘 새롭게 표현해 왔는가를 알게 한다. 그 각각의 특징 있는 '소리들'이 후대 사람들에게는 보존할 만한 것으로 보여서 모세 오경이라는 큰 흐름 안에 -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 들어왔다. 오경을 읽는 사람은 전체를 그 본디 구성 요소들로 나누어 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앞에서 암시한 오경의 형성 역사가 여러 특성을 설명해 주고 숱한 본문에 밝은 빛을 던져 줄 수 있다. 어떤 학자들은 그 밖에 다른 자료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최근에 다른 학자들은 일관된 자료 문서의 개념을 물리치고 전승이 한데 같이 묶어짐을 다른 식으로 설명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서술의 다양성은 어쨌든 지나쳐 볼 수 없다. '야훼 문서, 엘로힘 문서, 제사장 문서'라는 '고전적' 자료 문서 유형은 방향 잡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지금까지 거듭 인정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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