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부산(10) - 청사포(靑沙浦)
청사포에 해가 진다. 해질녘 청사포 노을은 푸른 바다에 붉은 물감을 들인다. 달이 뜨
면 청사포 바다는 검은빛 바다. 괭이갈매기는 쉴 곳을 찾아 늙은 해송을 찾는다. 청사
포 보름달 속 계수나무와 토끼 한 마리가 친구가 되어 훤하게 웃는다. 포구마을에 하나
둘 불이 밝혀지면 바다도 잠이 들고 청사포 할매도 졸린다. 먼 바다 큰 배는 밤새워 목
적지를 항해 가고 있다.
(청사포 전경)
“순이야! 아침은 꼭 묵고 가거라”
“......”
순이는 잠결에 엄마 말을 듣고 있다. 이른 새벽에 엄마는 아침밥을 하고 미역을 따러
간다. 섣달 겨울바람이 차갑다. 예닐곱 명이 한 배에 타 미역을 딴다. 하마 배에 시동을
걸고 기다리는 김씨 아저씨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눈으로 인사한다. 청사포 앞바다는 한
류와 난류가 섞여 흐른다. 영양분이 풍부한 바다에서 생미역은 잘 자란다. 새벽 칼바람
이 귓가를 때리지만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한 숨을 쉰다. 청사포 새벽 보름달이 서쪽
으로 지고 있다.
청사포 바다에 눈이 내린다. 청사포 철길에도 눈이 내린다. 고개 넘어 학교에 가는 순
이는 마을버스를 타고 학교로 간다. 손님이래 봤자 달랑 세명, 미리 히터를 켜놓아 버
스 안은 훈훈하다.
“아저씨 안녕하십니꺼?”
“그래, 순이도 잘 잤제!”
운전기사 아저씨가 인사를 받는다. 고개 넘어 동백초등학교에서 순이는 내린다.
“열심히 하거래이!”
“예”
엄마가 바다에 나간 지 한참 만에 졸린 눈을 비비며 순이는 일어난다. 곤하게 자고있
는 동생을 깨운다. 엄마가 차려놓은 밥상은 아직 따뜻하다. 미역국과 멸치젓은 청사포
바다에서 건져올린 것이고 시금치는 언덕배기 텃밭에서 어제 뜯은 반찬이다.
청사포 하늘에 눈이 내리는 날, 육학년이 되면 온다는 아버지가 보고 싶다. 짙은 눈썹,
큰 눈, 입가에 웃음 머금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 선원인 아버지는 일년에 두 번 집에 온
다. 청사포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처로 나갔다. 바다가 싫어 나갔
다. 군대를 갔다 오고 엄마와 결혼한다. 갯가에서 자란 아버지는 결국 배를 탄다.
동해안 최남단 마을인 청사포는 작은 포구. 가수 최백호는 ‘청사포’라는 노래에서 “
해운대 지나서 꽃피는 동백섬 해운대를 지나서/ 달맞이 고개에서 바다로 무너지는 청
사포/ 언제부터인가 푸른 모래는 없고/ 발아래 포구에는 파도만 부딪히어/ 퍼렇게 퍼
렇게 멍이 드는데…” 라며 푸른 바다 청사포를 노래한다.
(망부송)
노부부의 작은 배는 먼 바다에 가지 못한다. 요즈음 고기가 통 잡히지 않는다. 어제 친
통발을 건지고 다시 미끼를 넣어 바다에 던진다. 평생을 고기잡이로 산 노부부는 오늘
도 그물을 꿰맨다. 청사포 해송이 물끄러미 노부부 곁을 지키고 있다. 노부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부터 해송은 어부를 지키고 마을을 지킨다.
김씨 여인의 전설이 서린 청사포 당산. 해마다 해송 아래 당산에서 제사를 지낸다. 바
다로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마음이 너무나 애절하여 ‘동해 용왕이 푸른 뱀을 보내 동해
용궁으로 데려와 죽은 남편과 만나게 했다.’는 전설이 서리서리 내려오는 청사포 마을,
푸른 뱀(靑蛇) 어감이 섬뜩하여 푸른 모래(靑沙)로 바뀌었다.
순이는 방금 마을버스에서 내린다. 여름이면 갯가에서 놀지만 섣달 겨울에는 철길에
서 동생과 논다. 철길은 청사포 마을을 가로지른다. 철길은 기차가 뜸하다. 철길 끝으
로 간다. 철길 끝에는 또 끝이 있다. 철길 너머 동해안 해변 마을 송정, 기장, 일광이다.
가고 싶다. 기차를 타고 철길 끝의 끝까지 가고 싶다. 멍하니 철길 너머를 바라본다.
(철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
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꺽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시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가고 싶은 본능을 노래한다. 순이도 언젠가 이 마을을 떠날 것이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청사포 바다에 비가 내린다. 봄비는 추적추적 마을을 적시고 바다를 적신다. 안개낀
바다는 희뿌옇다. 갯가에 부딪치는 파도는 처녀의 속살처럼 하얗다. 오늘따라 순이 엄
마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남편이 얄밉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순이 엄마는
남편을 그리워한다. 청사포 붉은 노을, 푸른 파도가 밀려오는 청사포는 아주 옛날 구석
기 시대부터 오늘까지 해가 뜨고 달이 지고 사람이 태어나고 돌아간다.
그리운 청사포
배계용
“달을 맞이하느라
숨 가쁜 고개위에
갓 구운 열닷새 달 한 덩이 얹어
세상은 참 한정없이 밝다.
어느 화백이 짓이겨 놓은
바다 빛 붓자국 선명한
그리운 청사포
푸른 여인의 한숨이 깊어
가파르게 휘돌아 내려가는 포구에는
끼룩끼룩 하루를 작별한
바다새 노래의 여운이 애정하다.
늦은 시월
해는 잛아서
저녁은 그 두께만큼 밤으로 접히고
바다에는 살갑게 뜬 회처럼
천 조각 만 조각 조각난 피부마다
반짝이는 달이 금빛 하품 돕게 절여 두었다.
천만 갈래로 치렁거리는 달 속에
눈부신 머리채 한 단씩 두고
나는 또 온 길 되돌아 서서
그리운 여인의 곁을 떠나가야 한다.”
2008.5.29
조해은
제가 살고있는 해운대 옆에 아름다운 청사포를 소개합니다.
2008.5.
첫댓글 청사포가 무척 아름다울거라 생각이 드네요. 멋지게 소개해주신 우보님께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