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를 좀 일찍 마치고 금요일 저녁에 농장에 왔다.
이번 주말에는 친구도, 아내도 개인사정이 있어 오지를 못했다.
주말이면 늘 함께 와서 좋았는데
혼자 오게 되어 다소 아쉽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오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어서 혼자라도 오게 된 것이다.
날씨가 가물어 채소에 물을 주어야 하기도 했지만
다음 주말부터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을 하다 보니
출발하기 전에 농장부터 단속을 해두고 떠나야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에서 처리해야 될 업무가 밀려 좀 늦게 출발하였던 관계로
농장에 도착하니 날은 저물고 있었다.
우선 어둡기 전에 해야 할 일부터 챙겼다.
먼저 사다리에 백열등을 달아두고,
탁자도 잔디밭으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버섯이 있는 비닐하우스와 고추밭에
물을 주기 위해 관수조치를 해 두었다.
이렇게 해서 우선 급한 일들을 대충 마친 후
저녁을 먹을 준비를 했다.
채소밭에서 상추와 풋고추를 따와서 씻어 놓고,
마늘도 한 뿌리를 갖다 놓았다.
그리고 농장에 오면서 사가지고 온 충무김밥과 회를 펼쳐놓고
냉장고에서 맥주도 한 병 꺼내 놓았다.
은은한 백열등 불빛 아래 조촐하지만 근사한 저녁상이 차려진 것이다.
아무도 없는 농장에서 혼자 탁자에 앉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어둠이 깔리면서 농장 아래로 보이는
마을에서는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농장 주변은 푸른 나무들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가운데 주인이 앉아있었던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회지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는데
지금은 대자연 속에 머물러 있었고, 나만이 누릴 수 있는 공간에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앉아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때로는 많은 군중 속에서,
때로는 몇몇의 이웃과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오게 되지만
때로는 혼자서 있음으로 지금까지 잊고 지내왔던
“나”를 만나게 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맥주를 한 잔 들이키는 여유로움 속에 주변을 살펴보니
밤하늘의 별도 보이고,
사다리에 걸쳐둔 백열등 주변에 원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벌레들도 눈에 들어오고
풀벌레 소리도 귀에 들려오는 것이었다.
농장에 혼자 올 때는 다소 서글프기도 했지만
호젓하게 혼자 앉아 자연과 마주하고,
내가 “나”와 마주하게 되는 이 시간도 좋은 것 같이 느껴졌었다.
아침에 일어나 농장을 둘러보았다.
계절은 여름철에 접어드는데 벌써 코스모스가 피어있었다.
가을의 전령사처럼 인식되어온 코스모스는
이제 더 이상 가을에 피어나는 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수원과 채소밭 주변에는 루드베키아가 새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꽃밭에는 바늘꽃이 피어나있는 것도 보였으며,
물웅덩이에는 노랑 어리연도 볼 수 있었다.
채소밭을 둘러봤다.
비닐하우스에 먼저 심었던 고추는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키도 사람 허리에 미칠 정도로 엄청 자라나 있었다.
노지에 심어놓은 고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고,
열매도 많이 달려있었다.
취미로 가꾸는 주말농장에서
거금을 들여 비닐하우스를 지어 농사를 짓는 것이 무리였는데
그래도 잘 한 것 같이 생각되었다.
채소밭에는 이밖에 오이와 토마토 가지 등
열매채소들이 모두 열매를 달기 시작했으며
과수원에도 여러 가지 열매들을 볼 수 있었다.
봄부터 땀 흘려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리며 잡초를 뽑아주었는데
이렇게 농부의 땀이 열매로 변신되어 굵어가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마음이 흐뭇해지고, 내가 부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농장을 둘러보고, 채소밭에 물을 주도록 조치를 한 후
이랑마다 잡초를 뽑았다.
평소 같으면 아직은 잡초를 뽑지 않고 그냥 두어도 괜찮을 정도이지만
그래도 2주간 농장에 주인의 손이 미치지 못할 것을 대비해서
잡초의 싹도 나지 못하도록 호미질을 해두었다.
그리고 오이 토마토, 수세미 등 덩굴식물들은
다시 지주대에 줄기를 끈으로 묶어두었다.
이렇게 해두어도 여행기간 동안 장마가 시작되면
농장은 엉망진창이 될지도 모른다.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잡초가 채소들을 덮쳐가게 될 것이고,
오이는 제 때 따주지 않아 아래 부분에 달린 열매들은
야구방망이만큼 크게 자라나있을 것이고,
윗부분에 달린 열매들은 영양부족으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열매들이 꼬부라져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가꾸는 식물도 소중하지만
내 육신이 여행을 할 수 있을 때 여행을 다녀오는 것은 더 중요한 것이다.
먼 훗날 돈과 시간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다리에 힘이 없어 걸을 수 없다면 여행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2주간 눈을 딱 감고 여행을 다녀올 계획을 하게 되었고,
오늘은 그나마 최선을 다해 잡초를 뽑고,
줄기를 다시 묶어주는 등 식물들을 단속해두었던 것이다.
아무쪼록 2주 후에 주인의 도움 없이도
식물들이 잡초와 싸워 버티어내기를 바라면서
먼 길 떠나는 사람이 집안 단속을 하는 심정으로
농장을 단속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첫댓글 즐거운 여행
건강 잘 챙겨 다녀오세요
농장은 자연에 맡겨놓고
기룡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