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城百濟博物館이 개관되고 한참이나 지나서야 박물관을 관람하고, 궁금증이 생겼다.
① 왜 한성백제인가?
영문표기는 'SEOUL BAEKJE MUSEUM'
지금의 강남구, 송파구는 1960년대 이전에는 광주군이었으며, 한양은 漢水북쪽을 일컫고, 漢城府는 도성을 기준으로 城低10리까지를 관할했었고, 고려 때는 남경이었고, 모두 漢水 북쪽을 말하는데, 강의 남쪽은 위례 또는 다른 이름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한데?
후대 학자들이 편의상 위례에 도읍을 둔 시기를 한성백제라 하고. 웅진백제, 사비백제라고 칭하였다 하더라도 강(漢水) 남쪽은 한성은 아니었지 않는가?
② ‘서울 2,000년 고도로 다시서다.’ 정말인가?
천년고도라 함은 일반적으로 천년동안 국가의 수도로서 유지해온 도시를 말하는데 로마는 나라(정권)가 바뀌어도 계속수도였고, 경주는 천년에서 아주 조금 모자라는 기간 동안 신라의 수도였다.
그런데 서울은 왜 2,000년 고도인가?
그러면 웅진(공주)은 1500년 고도인가?
③ 都邑을 정하면 그 곳이 漢城인가?
백제의 시조 온조가 河南에 慰禮城을짓고 도읍을 정하였다면 수도로서의 이름은 위례성인 것이다. 都邑은 곧 漢城이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재차 친구들과 박물관을 찾았으나, 다소 석연치 아니하여 소견머리 없는 나의 좁은 생각을 요약해서 질문을 남겼었다.
그리고 질문의 말미에는
“혹시 오류나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관계자분들께서는 분노하여 나무라거나 야단치지 말고, 무지하고 夢寐한 나의 그릇된 생각을 깨우쳐주시기를 기대한다.” 는 말도 덧 붙였었고,
오늘(2012년 8월 27일) 질문에 대한 답변이 게재되었다.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시원한 답변을 해주신 관계자 분께 감사드리며, 그 답변내용을 소개함으로서 한성백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또한 삼국사기에 관한 공부도 하여야 할듯하다. / 모르면 질문을 하라, 그러면 답을 얻을것이다.!
한성백제 박물관 관계자 분의 답변내용
안녕하세요.
한성백제박물관 찾아주시고 전시물과 설명패널을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살피시고 질문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고객님께서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 드립니다.
1. 왜 한성백제인가?
⇒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시조 온조왕은 맨처음 한강 남쪽의 위례성에서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도읍 이름을 한성(漢城)으로 바꾸었지요. 삼국사기에는 온조왕 14년(BC5)조부터 한성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한성은 서기 475년에 고구려의 침공으로 함락될 때까지 백제의 수도였습니다. 그래서 역사학계에서는 삼국사기의 백제건국 연대인 BC18년부터 AD475년까지 493년간을 「한성도읍기」 혹은 「한성백제」시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성이라는 도시 이름은 조선시대에 다시 사용하게 됩니다. 1394년 태조는 한양(漢陽)을 새 도읍으로 삼았으며, 이듬해인 1395년 6월 6일 한양부를 한성부(漢城府)로 개명하였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 한성부라는 이름은 백제 때의 전통을 이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영문표기를 Seoul Baekje Museum으로 한 것은 한글이름에 따라 영문이름을 Hanseong Baekje Museum으로 표기할 경우, 외국인에게 Hanseong과 Baekje가 모두 생소한 이름이어서 기억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문가 및 자문위원회의 지적에 따라 ‘서울시의 백제 박물관’이라는 뜻에 맞춰 Seoul Baekje로 표기한 것입니다.
2. 서울은 왜 2천년 고도인가?
⇒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백제는 서기전 18년에 건국되었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당시의 왕성인 위례성을 확장해 새로 지은 한성이 모두 지금의 서울 송파구일대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한성은 이후 475년 고구려 땅으로 변한 뒤 남평양(南平壤)으로 불렸으며,
553년 신라의 땅이 된 뒤에는 한주(漢州) 등으로 불렸는데, 모두 한강변의 중심도시 기능을 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남경(南京)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에는 도읍으로서 한양(漢陽)․
한성(漢城)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므로 서울은 백제 때 5백년 가까이 도읍이었고, 조선시대에도 5백여년간 도읍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기간에는 각 왕조의 제2도시로서 기능했으므로 ‘오래된 도시’라고 부르기에 어색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2030년 전에 백제가 처음 서울을 수도로 삼았으며, 이후 서울이 각 왕조의 중요 도시였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서울시의 역사적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슬로건이 바로 「2천년 고도 서울」입니다.
3. 도읍을 정하면 그곳이 한성인가?
⇒ 한성이라는 이름은 일반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지명)입니다. 백제시대에 도시가 커짐에 따라 위례성이라는 이름을 한성으로 바꾼 것이고, 그 이름을 조선시대에 다시 사용한 것입니다. 또한, 왕성은 왕의 궁궐이 있는 성을 말하며, 도성은 왕성을 포함하여 도시를 크게 둘러싼 성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왕성보다 도성이 큰 개념인데, 학계에서는 보통 「위례성=왕성」, 「한성=도성」으로 이해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한성백제박물관을 찾아주시고 살펴주시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울 친구들! 충분히 이해가 되셨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은 세계문화유산으로서도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드네!
6.25 전쟁때는 청계천 북쪽지역은 폭격을 하지 말라는 요청을 UN군이 잘 지켜 주었으니 졍복궁, 창덕궁, 종묘 등등의 유적이 온전히 보존 된 것 아니겠는가!
암튼 우리의 문화유산은 소중한 것이야!
첫댓글 고맙습니다...한수 배우고 갑니다...
지금도 풍납토성 안쪽은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 카든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