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차시(茶詩) 이야기
여름빛 머금은 차생활의 멋
박숙희 / 한문교육학 박사, 우리 협회 충북지부장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져 소리하니
오마지 않은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뜨거운 여름날 한낮에도 갈망의 마음은 가라앉지 않는다. 최남선 선생의 <혼자 앉아서>가 소소한 일상의 기다림이라면, 100년간의 무신정권 시대를 살아온 고려의 문인들은 어떤 기다림을 안고 살아갔을까.
과거제도의 실시와 문약(文弱)의 폐풍으로 무신의 난(1170)이 일어나 많은 문인들이 관직을 버리고 은둔하였다. 이러한 전원생활은 많은 시문(詩文)을 낳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불교의 융성과 함께 차문화와 차시(茶詩)가 발달하는 터전을 이루었다. 중앙에 집중되었던 문인들은 지방으로 분산되어 저변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중국 동진시대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모방하여 이인로ㆍ오세재ㆍ임춘ㆍ조통ㆍ황보항ㆍ함순ㆍ이담지 등이 죽림고회(竹林高會)를 만드는 등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며 시 짓기를 하나의 여흥으로 즐기는 가운데 시문학은 더욱 융성하게 되었다.
당시의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 은둔생활의 괴로움을 극복하려는 자기 수양, 자연에 귀의한 피안, 현실도피 등을 주제로 삼은 이들의 시는 산사(山寺)나 전원생활 속에서 일상화된 차를 즐기며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용해된 차시를 남기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죽림고회의 중심인물인 이인로(李仁老, 1152~1220)의 자는 미수(眉叟)이며 호는 쌍명재(雙明齋)이다. 고아가 되어 중 요일(寥一)에게서 성장, 1170년 정중부가 난을 일으키자 승려가 되었다가 후에 환속하여 1180년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오른 문인이다. 문장과 시가 뛰어났고 글씨에도 특출했다. 저서로는 쌍명재집(雙明齋集), 파한집(破閑集) 등이 있다.
어지러운 현실을 빗대며 이상향을 갈구한 그의 차시 ≪한송정(寒松亭)≫은 한여름 강릉 앞바다를 찾을 때마다 생각나는 시이다.
千古仙遊遠 먼 옛날 신선들 노닐던 곳
蒼蒼獨有松 지금은 짙푸른 소나무만 남았구나
但餘泉底月 다만 샘 아래 달그림자 어려
髣髴想形容 어렴풋이 차 달이던 모습 보이누나
파한집(破閑集)에 실린 이 시는 한송정의 쓸쓸한 모습 속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선(四仙)의 자취를 찾아보며 이상향을 꿈꾸는 작가의 심경이 간결하게 담겨있다. 먼 옛날 무리를 지어 차를 즐기던 신선들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소나무만 서있는 한송정. 선인(仙人)의 자취를 찾아보지만 샘(茶泉)밑의 달빛 속에 차 달이던 모습을 어렴풋이 상상할 뿐이다.
이인로는 한송정에서 돌로 만든 다조(茶竈, 차샘), 즉 석지조(石池竈)를 보았다. 이제현(1287-1367)은 <묘련사석지조기>에서 ‘석지조는 한쪽은 샘물을 담고 한쪽은 찻물을 끓일 수 있는 부뚜막’이라 하였다.
선인들이 찻물을 받고 차를 끓이던 한송정의 다조는 선인(仙人)들의 삶의 발자취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인로에게 한송정은 단순한 명승지가 아니라 마음의 안식처요, 이상향의 다른 이름이다. 한송정의 샘, 다조(茶竈)는 자연이 주는 안주를 넘어 정신적 안정의 중요한 매체 역할을 한다. 사선랑의 자취가 담긴 다조는 역사의 대변인으로 고요히 한 잔의 차로 세상의 이치를 풀었던 선인들의 지혜의 산물이다. 바로 차를 통한 자기 도야와 현실 극복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시대의 혼란이 야기될 때마다 고려인들은 이상향을 찾아 한송정을 찾았다. 그들은 사선의 자취를 좇으며 마음을 달랬다. 사선랑은 남랑ㆍ영랑ㆍ술랑ㆍ안상 등으로 신라의 전설적인 화랑들이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풍류도를 닦아 한송정이나 경포대에서 차를 달여 마시며 심신수련을 하였다. 이로써 선가(仙家)의 다풍(茶風)을 짐작하게 한다. 수련장에는 차를 달이는 돌절구와 돌부뚜막, 돌우물과 다구들이 있어 항상 차를 달여 산수 간에 노닐며 차를 즐겼고, 낭도들이 차를 나누어 마시기 편리하도록 고정 다구를 사용했다.
사선랑이 차로 무리를 수련하고, 불가에서 다선일여(茶禪一如)로 한 잔의 차로 전법(傳法)을 한 것을 보면 차는 일찍이 인간 수양의 중요 매개체로 여겨진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입증하듯, 당나라 육우는 ≪다경≫에서 ‘차는 행동이 정갈하고 검소하며 덕 있는 사람에게 적합하다’고 하여 차가 단순한 음료가 아닌 수행의 중요 수단임을 밝혔다.
조선 성종 때의 문관 이목도 ≪다부(茶賦)≫에서 차를 마시면 ‘공자가 뜬구름에 마음을 휘둘리지 않은 것과 같고, 맹자가 호연지기를 기른 것과 같다’고 하여 씩씩한 기상을 기르는 바탕임을 분명히 밝혔다.
차를 마실 때는 색ㆍ향ㆍ미의 세 가지를 느끼고 생각하며 마셔야 하니 차ㆍ물ㆍ불의 세 가지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천지가 조화를 이루듯 문무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항상 자연스럽게 차의 조화를 이루는 한송정의 다조와 풍류가 녹아 있는 차생활이야말로 가장 값진 조화의 아름다움이다.
한송정의 다조는 고려의 문인들에겐 그토록 찾고 싶은 이상향으로 긴 기다림의 상징이었다. 사선(四仙)은 조선시대에도 숭상되었던 상징적 인물로 그들의 행적을 따라 순례하는 것이 문인들 사이에 유행했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자취조차 찾을 수 없는 한송정과 다조는 이제는 먼 이상향을 가리키는 이름으로도 사용되지 못한 채 잊혀져간다.
죽림고회가 꿈꾸었던 이상향을 되짚어 본다. 사선랑과 한송정, 화랑들이 심산유곡을 찾아 심신수련을 할 때 차를 마시던 다조는 ‘역사 속에 숨겨진 이상향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자연 속에서 차를 즐기며 생활의 멋과 격을 높이는 일상적 생활이야말로 고려 차인들, 이인로가 꿈꾸었던 이상향이리라. ‘다조’는 선조들의 꿈과 희망의 상징으로 차문화 역사의 중심이 되어 다시금 그 모습을 내보이고 있다.
뜨거운 여름날 경포대 바닷가를 찾아본다. 백사장을 넘어 철썩이는 바닷물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