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의 상세한 설명 Ānāpānassatikathā
청정도론, VIII. 145∼244 [*대림스님 역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 65쪽-]
215. Idāni yaṃ taṃ bhagavatā
‘‘ayampi kho, bhikkhave, ānāpānassatisamādhi bhāvito bahulīkato
santo ceva paṇīto ca asecanako ca sukho ca vihāro,
uppannuppanne ca pāpake akusale dhamme ṭhānaso antaradhāpeti vūpasametī’’ti evaṃ pasaṃsitvā –
145.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이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전적으로 고요하고 수승하고 순수하고 행복하게 머물고,
나쁘고 해로운[不善] 법들이 일어나는 족족 즉시에 사라지게 하고 가라앉게 한다.(S54:/v.321)"라고
찬탄하셨다. [*웨살리 경(S54:9)]
‘‘Kathaṃ bhāvito ca, bhikkhave, ānāpānassatisamādhi kathaṃ bahulīkato
santo ceva paṇīto ca asecanako ca sukho ca vihāro,
uppannuppanne ca pāpake akusale dhamme ṭhānaso antaradhāpeti vūpasame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닦고 어떻게 많이 [공부]지으면
고요하고 수승하고 순수하고 행복하게 머물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는 족족 사라지게 하고 가라앉게 하는가?
Idha, bhikkhave, bhikkhu araññagato vā rukkhamūlagato vā suññāgāragato vā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So satova assasati satova [sato (sī. syā. kaṃ. pī.)] passasa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 가거나 빈 방에 가거나 하여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마음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Dīghaṃ vā assasanto ‘dīghaṃ assasāmī’ti pajānāti,
dīghaṃ vā passasanto ‘dīgh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ṃ vā assasanto ‘rassaṃ 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ṃ vā passasanto ‘rass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sabbakāy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abbakāy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➀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➁ 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➂ '온 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➃ '몸의 작용[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Pīti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pīti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sukh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ukh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cittasaṅkhār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cittasaṅkhār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citt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citt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➄ '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➅ '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➆ '마음의 작용[心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➇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Citt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citt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abhippamoday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abhippamodayaṃ citt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samādah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samādahaṃ citt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vimocay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vimocayaṃ citt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➈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➉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⑪ '마음을 집중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집중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⑫ '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Anicc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anicc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virāg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virāg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nirodh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nirodh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paṭinissagg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paṭinissagg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⑬ '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⑭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⑮ '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⑯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S.v.322)"
Evaṃ soḷasavatthukaṃ ānāpānassatikammaṭṭhānaṃ niddiṭṭhaṃ. Tassa bhāvanānayo anuppatto.
이처럼 세존께서는 열 여섯 가지 토대로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명상주제를 설하셨다.
이제 그것을 닦는 방법을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So pana yasmā pāḷivaṇṇanānusāreneva vuccamāno sabbākāraparipūro hoti.
Tasmā ayamettha pāḷivaṇṇanāpubbaṅgamo niddeso.
146. [그것을 닦는 방법은] 성전의 주석에 따라 설하면 모든 측면에서 완성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성전의 주석을 우선으로 하여 그것을 닦는 방법을 해설할 것이다.
216. Kathaṃ bhāvito ca, bhikkhave, ānāpānassati samādhīti ettha tāva
kathanti ānāpānassatisamādhibhāvanaṃ nānappakārato vitthāretukamyatāpucchā.
비구들이여, 어떻게 이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닦고에서
우선 어떻게라는 단어는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수행을 여러 측면에서 설명하고자함을 나타내는 질문이다.
Bhāvito ca bhikkhave ānāpānassatisamādhīti nānappakārato vitthāretukamyatāya puṭṭhadhammanidassanaṃ.
이 질문에 대한 비구들이여, 이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닦고라는 문장은
여러 측면에서 설명하기위해 질문했던 그 법을 보여준다.
Kathaṃ bahulīkato…pe… vūpasametīti etthāpi eseva nayo.
어떻게 많이 [공부]지으면 … 가라앉게 하는가에서도 같은 방법이 적용된다.
Tattha bhāvitoti uppādito vaḍḍhito vā.
147. 여기서 닦는다는 것은 일으킨다, 혹은 증장시킨다는 뜻이다.
Ānāpānassatisamādhīti ānāpānapariggāhikāya satiyā saddhiṃ sampayutto samādhi.
Ānāpānassatiyaṃ vā samādhi ānāpānassatisamādhi.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이라는 것은 들숨날숨을 파악하는 마음챙김과 함께 하는 삼매
혹은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에 있는 삼매라는 뜻이다.
Bahulīkatoti punappunaṃ kato.
많이 [공부]지으면이라는 것은 '거듭거듭 행하면'이라는 뜻이다.
Santoceva paṇīto cāti santo ceva paṇīto ceva. Ubhayattha eva saddena niyamo veditabbo.
148. 전적으로 고요하고 수승하고: 전적으로 고요하면서도 전적으로 수승하다.
두 곳 모두 전적으로(eva)라는 단어에 의해 결정적인 상태를 알아야 한다.
Kiṃ vuttaṃ hoti?
무슨 뜻인가?
Ayañhi yathā asubhakammaṭṭhānaṃ kevalaṃ paṭivedhavasena santañca paṇītañca,
oḷārikārammaṇattā pana paṭikkūlārammaṇattā ca ārammaṇavasena neva santaṃ na paṇītaṃ,
[예를 들면] 부정(不淨)을 관하는 명상주제(VI)는 오직 통찰(paṭivedha)이라는 측면에서만 고요하고 수승하지만
대상으로서는 고요하지도 수승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부정관의] 대상은 거칠고 혐오스럽기 때문이다.
na evaṃ kenaci pariyāyena asanto vā apaṇīto vā, atha kho ārammaṇasantatāyapi santo vūpasanto nibbuto,
paṭivedhasaṅkhātaaṅgasantatāyapi.
그러나 이것은 그와 같지 않아서 어떤 이유로도 고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수승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오히려 대상도 고요하고 통찰이라 불리는 [禪의] 구성요소(各支)도 고요하기 때문에
이것은 고요하고 가라앉게 하고 [번뇌의 열을] 식힌다.
Ārammaṇapaṇītatāyapi paṇīto atittikaro, aṅgapaṇītatāyapīti. Tena vuttaṃ ‘‘santo ceva paṇīto cā’’ti.
다시 이것은 대상을 통해서도 수승하고 [禪의] 구성요소를 통해서도 수승하기 때문에
아무리 가져도 넘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고요하면서도 수승하다고 설했다.
Asecanako ca sukho ca vihāroti ettha pana nāssa secananti asecanako,
anāsittako abbokiṇṇo pāṭiyekko āveṇiko.
149. 순수하고 행복하게 머무는 것이다: 여기서 불순물이 없기 때문에 순수한 것(asecana)이다.
순전하고 [준비의 마음 등과] 섞이지 않았고 단독적이고 특정한 것이다.
Natthi ettha parikammena vā upacārena vā santatā.
Ādisamannāhārato pabhuti attano sabhāveneva santo ca paṇīto cāti attho.
여기서는 [까시나의 경우처럼] 준비의 마음이나 근접의 [마음]을 통해서 고요해지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 마음에 가져올 때부터 자신의 고유성질에 의해 고요하고 수승하다는 뜻이다.
Keci pana asecanakoti anāsittako ojavanto sabhāveneva madhuroti vadanti.
Evaṃ ayaṃ asecanako ca,
appitappitakkhaṇe kāyikacetasikasukhapaṭilābhāya saṃvattanato sukho ca vihāroti veditabbo.
그러나 어떤 자들은 '순전하고 맛을 가졌고 고유성질이 달콤하기 때문에 순수하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이것은 순수하고 또 본삼매의 매 순간마다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행복을 얻게 하기 때문에
행복하게 머무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Uppannuppanneti avikkhambhite avikkhambhite.
Pāpaketi lāmake.
Akusale dhammeti akosallasambhūte dhamme.
Ṭhānaso antaradhāpetīti khaṇeneva antaradhāpeti vikkhambheti.
Vūpasametīti suṭṭhu upasameti.
Nibbedhabhāgiyattā vā anupubbena ariyamaggavuddhippatto samucchindati, paṭippassambhetīti vuttaṃ hoti.
150. 일어나는 족족: 억압되지 않은 것은 모두.
나쁜: 저열한.
해로운[不善] 법들: 능숙하지 못함에서 생긴 법들.
즉시에 사라지게 한다: 순간에 사라지게 한다, 억압한다.
가라앉게 한다: 완전히 가라앉게 한다. 혹은 이것은 꿰뚫음(nibbedha)에 동참하기 때문에
서서히 증장하여 성스러운 도에 이르러서 [해로운 법들을] 멸절시킨다, 편안히 가라앉게 한다는 뜻을 설했다.
Ayaṃ panettha saṅkhepattho.
Bhikkhave, kena pakārena kenākārena kena vidhinā bhāvito
ānāpānassatisamādhi kena pakārena bahulīkato santo ceva…pe… vūpasametīti.
151. 간략하게 설하면 이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방법으로, 어떤 측면으로, 어떤 규칙대로, 어떤 방법으로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닦을 때,
전적으로 고요하고 …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는 족족 즉시에 사라지게 하고 가라앉게 하는가?'
217. Idāni tamatthaṃ vitthārento ‘‘idha, bhikkhave’’tiādimāha.
Tattha idha bhikkhave bhikkhūti bhikkhave, imasmiṃ sāsane bhikkhu.
Ayañhi ettha idhasaddo sabbappakāraānāpānassatisamādhinibbattakassa puggalassa
sannissayabhūtasāsanaparidīpano aññasāsanassa tathābhāvapaṭisedhano ca.
Vuttañhetaṃ – idheva, bhikkhave, samaṇo…pe… suññā parappavādā samaṇebhi aññehī’’ti (ma. ni. 1.139).
Tena vuttaṃ ‘‘imasmiṃ sāsane bhikkhū’’ti.
152. 이제 그 뜻을 상세히 설하기 위해 여기서 비구들이여라고 시작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라는 구절은 '비구들이여. 이 교법(sāsana)에서 비구가'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여기(idha)라는 단어는 모든 측면에서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일으키는 사람이
의지할 곳인 [부처님] 교법을 나타내고, 외도들에게는 그런 [의지할 만한 사애]가 잇음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오직 여기에 사문이 있고 … 다른 교설에는 사문이 없다.(M.i.63, A.ii.238 등)"
그러므로 '이 교법에서 비구가'라고 설하신 것이다.
Araññagato vā…pe… suññāgāragato vāti
idamassa ānāpānassatisamādhibhāvanānurūpasenāsanapariggahaparidīpanaṃ.
Imassa hi bhikkhuno dīgharattaṃ rūpādīsu ārammaṇesu anuvisaṭaṃ cittaṃ
ānāpānassatisamādhiārammaṇaṃ abhiruhituṃ na icchati, kūṭagoṇayuttaratho viya uppathameva dhāvati.
153. 숲 속에 가거나 혹은 … 빈 방에 가거나 하여:
이것은 그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닦기에 적절한 처소를 찾은 것을 나타낸다.
이 비구의 마음은 오랫동안 형상(色), 소리 등 여러 대상으로 흩어져있기 때문에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의 대상에 오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거센 황소에 질매를 맨 달구지가 궤도를 벗어나는 것과 같다.
Tasmā seyyathāpi nāma gopo kūṭadhenuyā sabbaṃ khīraṃ pivitvā
vaḍḍhitaṃ kūṭavacchaṃ dametukāmo dhenuto apanetvā ekamante mahantaṃ thambhaṃ nikhaṇitvā
tattha yottena bandheyya,
athassa so vaccho ito cito ca vipphanditvā palāyituṃ asakkonto tameva thambhaṃ
upanisīdeyya vā upanipajjeyya vā,
예를 들면 목동이 거센 어미 소로부터 떼어내어 한 쪽에다 땅 속에 큰 기둥을 박고
그곳에 밧줄로 묶을 것이다.
그러면 그의 송아지는 여기저기를 처박아보지만 도망 갈 수 없을 때 그 기둥 곁에 앉거나 누울 것이다.
evameva imināpi bhikkhunā dīgharattaṃ rūpārammaṇādirasapānavaḍḍhitaṃ duṭṭhacittaṃ
dametukāmena rūpādiārammaṇato apanetvā araññaṃ vā…pe… suññāgāraṃ vā pavesetvā
tattha assāsapassāsathambhe satiyottena bandhitabbaṃ.
이와 같이 이 비구도 오랫동안 형상 등의 대상 등인
먹을 것과 마실 것으로 자란 못된 마음을 단련시키기를 원할 때
형상 등의 대상으로부터 격리시켜 숲 속이나 빈 방으로 가져가서
그곳에서 들숨과 날숨의 기둥에 마음챙김의 밧줄로 묶어야 한다.
Evamassa taṃ cittaṃ ito cito ca vipphanditvāpi pubbe āciṇṇārammaṇaṃ alabhamānaṃ satiyottaṃ chinditvā
palāyituṃ asakkontaṃ tamevārammaṇaṃ upacārappanāvasena upanisīdati ceva upanipajjati ca.
그러면 그의 마음은 이곳저곳으로 부딪혀보지만 이전에 친숙했던 대상을 찾을 수 없고
또한 마음챙김의 밧줄을 끊고 도망갈 수도 없을 때
근접삼매와 본삼매를 통해 그 대상에 앉고 눕는다.
Tenāhu porāṇā –
154. 그러므로 옛 스승들은 말씀하셨다.
‘‘Yathā thambhe nibandheyya, vacchaṃ damaṃ naro idha;
Bandheyyevaṃ sakaṃ cittaṃ, satiyārammaṇe daḷha’’nti.
(pārā. aṭṭha. 2.165; dī. ni. aṭṭha. 3.374; ma. ni. aṭṭha. 1.107);
여기 마치 송아지를 길들이는 사람이 기둥에다 묶는 것처럼
자기의 마음을 마음챙김으로 대상에 굳건히 묶어야 한다.
Evamassetaṃ senāsanaṃ bhāvanānurūpaṃ hoti.
Tena vuttaṃ ‘‘idamassa ānāpānassatisamādhibhāvanānurūpasenāsanapariggahaparidīpana’’nti.
이처럼 이런 처소가 수행하기에 적절하다.
그러므로 위와 같이 설하셨다.
이것은 수행자가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닦기에 적절한 처소를 찾은 것을 나타낸다.
-------------------------------------------------------------------------------
http://thepathofpurification.blogspot.kr/2011/08/visuddhimagga-viii-154.html
‘‘Yathā thambhe nibandheyya, vacchaṃ damaṃ naro idha;
Bandheyyevaṃ sakaṃ cittaṃ, satiyārammaṇe daḷha’’nti.
(pārā. aṭṭha. 2.165; dī. ni. aṭṭha. 3.374; ma. ni. aṭṭha. 1.107);
Ñ(VIII,154): 'Just as a man who tames a calf
Would tie it to a post, so here
Should his own mind by mindfulness
Be firmly to the object tied'.
*論의 설명에 따르면 기억할 대상(身受心法, 여기서는 호흡의)에 cittaṃ마음을 묶어 둘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해탈을 지향하는 佛敎가 마음을 묶는 수행으로 해탈을 이룬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고,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합하는 經說이 있는지 찾아 보니, ... 있습니다.
[* 길들임의 단계 경 Mn125
‘‘‘Evaṃ, devā’ti kho, aggivessana, hatthidamako rañño khattiyassa muddhāvasittassa paṭissutvā
mahantaṃ thambhaṃ pathaviyaṃ nikhaṇitvā āraññakassa nāgassa gīvāyaṃ upanibandhati
āraññakānañceva sīlānaṃ abhinimmadanāya āraññakānañceva sarasaṅkappānaṃ abhinimmadanāya
āraññakānañceva darathakilamathapariḷāhānaṃ abhinimmadanāya gāmante abhiramāpanāya
manussakantesu sīlesu samādapanāya.
Tamenaṃ hatthidamako yā sā vācā nelā kaṇṇasukhā pemanīyā hadayaṅgamā
porī bahujanakantā bahujanamanāpā tathārūpāhi vācāhi samudācarati.
Yato kho, aggivessana, āraññako nāgo hatthidamakassa yā sā vācā nelā kaṇṇasukhā pemanīyā
hadayaṅgamā porī bahujanakantā bahujanamanāpā tathārūpāhi vācāhi samudācariyamāno sussūsati,
sotaṃ odahati, aññā cittaṃ upaṭṭhāpeti; tamenaṃ hatthidamako uttari tiṇaghāsodakaṃ anuppavecchati.
‘‘Yato kho, aggivessana, āraññako nāgo hatthidamakassa tiṇaghāsodakaṃ paṭiggaṇhāti,
tatra hatthidamakassa evaṃ hoti – ‘jīvissati kho [nu kho (sī. ka.)] dāni āraññako [rañño (sī. pī.)] nāgo’ti.
악기웻사나여, 그 코끼리 조련사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폐하.'라고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에게 대답하고는
숲 속의 습관을 제어하고 숲 속의 ...생각[*기억과 생각]을 제어하고 숲 속의 근심과 피로와 열병을 제어하고
마을에 사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
땅에다 큰 기둥을 박고 야생 코끼리의 목을 거기에 묶는다.
그러면 코끼리 조련사는 부드럽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온화하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한다.
악기웻사나여, 야생 코끼리는 코끼리 조련사가 하는 부드럽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온화하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들으면
들으려 하고 귀를 기우리고 이해하려 애쓴다.
그러면 코끼리 조련사는 다시 건초와 물로써 보답한다.
악기웻사나여, 야생 코끼리가 그가 주는 건초와 물을 받아먹으면
코끼리 조련사는 '이제 왕의 코끼리는 살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
Seyyathāpi aggivessana, hatthidamako mahantaṃ thambhaṃ paṭhaviyaṃ nikhaṇitvā
āraññakassa nāgassa gīvāyaṃ upanibandhati.
Āraññakānañceva sīlānaṃ abhinimmadanāya, āraññakānañceva sarasaṅkappānaṃ abhinimmadanāya,
āraññakānañceva darathakilamathapariḷāhānaṃ abhinimmadanāya,
gāmante abhiramāpanāya, manussakantesu sīlesu sampādanāya1
evameva kho aggivessana, ariyasāvakassa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ā cetaso upanibandhanā honti.
Gehasitānañceva sīlānaṃ abhinimmadanāya, gehasitānañceva sarasaṅkappānaṃ abhinimmadanāya,
gehasitānañceva darathakilamathapariḷāhānaṃ abhinimmadanāya,
ñāyassa adhigamāya nibbānassa sacchikiriyāya.
숲속의 습관을 제거하고, 숲 속에서 달리던 (*이후는 각묵 스님 譯: 숲 속의 기억과 ) 생각을 없애버리고
숲 속의 근심과 피곤과 고뇌를 제거하고
마을에서 즐기며, 사람들에게 맞는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
땅위에 큰 기둥을 박고 숲 속의 코끼리의 그 목을 붙잡아 매듯,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은
재가 생활의 습관을 제거하고, 재가 생활의 기억과 생각을 없애버리고,
재가 생활의 근심과 피곤과 고뇌를 제거하고
바른 길을 얻게 하고 열반을 실현시키기 위해 성스러운 제자의 마음을 붙잡아 맨다.
[*네 가지(身受心法)가 확립되도록 (네 가지에) 마음을 꽉 붙들어 맨다.
과거의 습관 기억 생각 근심 피곤 고뇌 제거하고 →[지금여기]→ 미래의 바른 길 얻고 열반 실현하기 위한 수행]
2013.01.14 . 작성했던 글
-------------------------------------------------------------------------------
Atha vā yasmā idaṃ kammaṭṭhānappabhede muddhabhūtaṃ
sabbaññubuddhapaccekabuddhabuddhasāvakānaṃ visesādhigamadiṭṭhadhammasukhavihārapadaṭṭhānaṃ
ānāpānassatikammaṭṭhānaṃ itthipurisahatthiassādisaddasamākulaṃ gāmantaṃ apariccajitvā
na sukaraṃ bhāvetuṃ, saddakaṇṭakattā jhānassa.
Agāmake pana araññe sukaraṃ yogāvacarena idaṃ kammaṭṭhānaṃ pariggahetvā ānāpānacatutthajjhānaṃ
nibbattetvā tadeva pādakaṃ katvā saṅkhāre sammasitvā aggaphalaṃ arahattaṃ sampāpuṇituṃ.
Tasmāssa anurūpasenāsanaṃ dassento bhagavā ‘‘araññagato vā’’tiādimāha.
155. 혹은 이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명상주제는 명상주제들 가운데 가장 으뜸가고,
모든 부처님과 벽지불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특별함을 얻는 것이 가까운 원인이고, 금생에 행복하게 머무는 것의 가까운 원인이다.
여자, 남자, 코끼리, 말 등의 소리가 뒤섞여 있는 마을의 경계를 떠나지 않고서는 이것을 쉽게 닦을 수 없다.
시끄러움은 禪의 가시이기 때문이다.
마을이 없는 숲 속에서 수행자는 쉽게 명상주제를 들고 들숨날숨을 통해서 네 번째 禪을 일으키고
그것을 기초로 삼아 상카라[行]들을 명상하면서 가장 높은 과위인 아라한과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적절한 거처를 보이기 위해 세존께서 숲 속에 가거나라고 시작하셨다.
Vatthuvijjācariyo viya hi bhagavā, so yathā vatthuvijjācariyo nagarabhūmiṃ passitvā suṭṭhu upaparikkhitvā
‘‘ettha nagaraṃ māpethā’’ti upadisati, sotthinā ca nagare niṭṭhite rājakulato mahāsakkāraṃ labhati,
evameva yogāvacarassa anurūpasenāsanaṃ upaparikkhitvā
‘‘ettha kammaṭṭhānaṃ anuyuñjitabba’’nti upadisati,
tato tattha kammaṭṭhānaṃ anuyuttena yoginā kamena arahatte patte
‘‘sammāsambuddho vata so bhagavā’’ti mahantaṃ sakkāraṃ labhati.
156. 세존은 터를 보는 기술[宅地學]의 대가와 같다.
그 택지학의 대가는 계획도시의 땅을 보고 면밀히 조사하고는 '여기에 도시를 건설하라.'고 지시한다.
안전하게 도시가 만들어졌을 때 그는 왕가로부터 큰 영광을 얻는다.
이와 같이 세존은 적절한 거처를 검증한 뒤 수행자에게 '여기서 명상주제를 들어라.'고 지시하신다.
나중에 그곳에서 명상주제를 든 수행자가 아라한과를 얻었을 때
'참으로 세존은 정등각자이시다.'라고 세존은 큰 영광을 얻는다.
Ayaṃ pana bhikkhu dīpisadisoti vuccati.
Yathā hi mahādīpirājā araññe tiṇagahanaṃ vā vanagahanaṃ vā pabbatagahanaṃ vā nissāya nilīyitvā
vanamahiṃsagokaṇṇasūkarādayo mige gaṇhāti,
evameva ayaṃ araññādīsu kammaṭṭhānaṃ anuyuñjanto bhikkhu yathākkamena
sotāpattisakadāgāmianāgāmiarahattamagge ceva ariyaphalañca gaṇhatīti veditabbo. Tenāhu porāṇā –
157. 이 비구는 표범과 같다고 말한다.
마치 거대한 표범의 왕이 풀이 우거진 황무지나 숲의 정글이나 바위투성이인 황무지에 숨어서
거센 물소나 거센 황소나 돼지 등 야수들을 잡듯이
숲 속에서 명상주제를 드는 비구는 차례대로 예류도, 일래도, 불환도, 아라한도와
[네 가지] 성스러운 과를 얻는다고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옛 스승들은 말씀하셨다.
‘‘Yathāpi dīpiko nāma, nilīyitvā gaṇhatī mige;
Tathevāyaṃ buddhaputto, yuttayogo vipassako;
Araññaṃ pavisitvāna, gaṇhāti phalamuttama’’nti.
(pārā. aṭṭha. 2.165; dī. ni. aṭṭha. 2.374; ma. ni. aṭṭha. 1.107);
마치 표범이 잠복하여 야수들을 잡듯이
부지런히 수행하고 위빳사나를 닦는
부처님의 아들도 숲 속에 들어가서
최상의 과위를 증득한다. (Miln.369)
Tenassa parakkamajavayoggabhūmiṃ araññasenāsanaṃ dassento bhagavā ‘‘araññagato vā’’tiādimāha.
그러므로 그에게 수행을 촉진하기에 적절한 곳으로 숲 속의 거처를 보이시면서
세존께서 '숲 속에 가서'라고 말씀을 시작하신 것이다.
218. Tattha araññagatoti ‘‘araññanti nikkhamitvā bahi indakhīlā sabbametaṃ arañña’’nti (vibha. 529) ca,
‘‘āraññakaṃ nāma senāsanaṃ pañcadhanusatikaṃ pacchima’’nti (pārā. 654) ca
evaṃ vuttalakkhaṇesu araññesu yaṃkiñci pavivekasukhaṃ araññaṃ gato.
158. 숲 속에 가서: 여기서 숲이란 "마을의 경계인 석주 밖을 나가면 모든 것은 숲이다."와
"숲 속 거처란 오백 활 길이만큼 떨어진 곳이다."로 설명하였다. (II. §49)
이런 특징을 가진 숲 들 가운데서 한적함의 즐거움을 가진 어떤 숲 속에 가서.
Rukkhamūlagatoti rukkhasamīpaṃ gato.
Suññāgāragatoti suññaṃ vivittokāsaṃ gato.
Ettha ca ṭhapetvā araññañca rukkhamūlañca avasesasattavidhasenāsanagatopi
suññāgāragatoti vattuṃ vaṭṭati.
나무 아래에 가서: 나무 근처에 가서.
빈 방에 가서: 비었고 한적한 공간에 가서.
여기서 숲과 나무 아래를 제회하고 나머지 일곱 가지 장소에 간 것도 빈 방에 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Evamassa ututtayānukūlaṃ dhātucariyānukūlañca ānāpānassatibhāvanānurūpaṃ senāsanaṃ upadisitvā
alīnānuddhaccapakkhikaṃ santaṃ iriyāpathaṃ upadisanto nisīdatīti āha.
159. 이와 같이 세 계절에 적절하고, 세 가지 체액과 기질에 적절하고,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기에 적절한 거처를 보이시고,
해이함이나 들뜸에 빠지지 않는 고요한 자세를 보이시면서 앉는다라고 설하셨다.
Athassa nisajjāya daḷhabhāvaṃ assāsapassāsānaṃ pavattanasukhataṃ ārammaṇapariggahūpāyañca
dassento pallaṅkaṃ ābhujitvātiādimāha.
그 다음에 앉아있는 자세의 고정된 상태와 들숨날숨이 쉽게 일어남과 대상을 파악하는 방편을 보이시면서
가부좌를 틀고라고 시작하셨다.
Tattha pallaṅkanti samantato ūrubaddhāsanaṃ.
Ābhujitvāti bandhitvā.
160. 가부좌: 넓적다리를 완전히 맞물리게 해서 앉는 것이다.
틀고(접고): 고착시키고.
Ujuṃ kāyaṃ paṇidhāyāti uparimasarīraṃ ujukaṃ ṭhapetvā. Aṭṭhārasapiṭṭhikaṇṭake koṭiyā koṭiṃ paṭipādetvā.
Evañhi nisīdantassa cammamaṃsanhārūni na paṇamanti.
Athassa yā tesaṃ paṇamanappaccayā khaṇe khaṇe vedanā uppajjeyyuṃ, tā na uppajjanti.
Tāsu anuppajjamānāsu cittaṃ ekaggaṃ hoti, kammaṭṭhānaṃ na paripatati, vuddhiṃ phātiṃ upagacchati.
몸을 곧추 세우고: 몸을 곧바로 세우고서, 열여덟 개의 등뼈의 끝이 다른 끝에 닿도록 두고,
이와 같이 앉을 때 그의 피부와 살과 힘줄이 꼬이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꼬이면 그것으로 인해 순간순간에 느낌들이 일어나겠지만
[바르게 앉았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이 일어나지 않을 때 그의 마음은 하나가 된다.
명상주제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특별함을 얻기 위해] 증장하고 강해진다.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ti
kammaṭṭhānābhimukhaṃ satiṃ ṭhapayitvā.
Atha vā parīti pariggahaṭṭho.
Mukhanti niyyānaṭṭho.
Satīti upaṭṭhānaṭṭho.
Tena vuccati ‘‘parimukhaṃ sati’’nti
evaṃ paṭisambhidāyaṃ (paṭi. ma. 1.164) vuttanayenapettha attho daṭṭhabbo.
161.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고(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명상주제를 향하여 마음챙김을 두고,
혹은 "접두어 pari(둘레에, 원만히)는 철저히 파악한다는 뜻이고,
Mukha(입, 얼굴)은 출구의 뜻이며,
Sati(마음챙김)은 확립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parimukhaṃ sati(철저히 파악하여 출구가 되는 마음챙김)이라고 설했다.(Ps.i.176)"
이와 같이 『무애해도』에서 설한 방법에 따라서도 이 뜻을 알아야 한다.
Tatrāyaṃ saṅkhepo, pariggahitaniyyānaṃ satiṃ katvāti.
간략하게 설하면 '철저히 파악하여 [반대되는 심리현상인 잊어버림으로부터] 출구인 마음챙김을 [공부]짓고'
라는 뜻이다. [*탈出하는 입口를 확실하게 기억하고서]
219. Sosatova assasati sato passasatīti
162. 그는 오직 마음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so bhikkhu evaṃ nisīditvā evañca satiṃ upaṭṭhapetvā
taṃ satiṃ avijahanto sato eva assasati sato passasati,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앉아서 이와 같이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그 마음챙김을 버리지 않고
오직 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첫 번째 네 개조를 수행하는 방법
sato-kārī hotīti vuttaṃ hoti. Idāni yehākārehi satokārī hoti, te dassetuṃ dīghaṃ vā assasantotiādimāha.
Vuttañhetaṃ paṭisambhidāyaṃ ‘‘so satova assasati sato passasatī’’ti etasseva vibhaṅge –
163. (1) 여러 방법으로 그는 마음챙김을 닦는 자(sato-kāri)가 된다.
이제 그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길게 들이쉬면서는이라고 시작하셨다.
『무애해도』에서 그는 오로지 마음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면서 숨을 내쉰다라는
구절 분석에서 이와 같이 설했다.
‘‘Bāttiṃsāya ākārehi sato kārī hoti.
"그는 32가지 방법으로 마음챙기면서 [공부]짓는다.
[*그는 (호흡하는) 32가지 방법에 대한 기억(이 작동)하는 자가 된다.
*2015.01.29 첨가 http://cafe.daum.net/pali-study/8Y0Y/74
→ sato kārī는 satokārī가 아니라 sato kārī로 뛰어 쓰는 것이 옳은 듯?
"32가지 방법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者가/기억하게 되면, 행하고 있는 者이다."
無碍解道
32. katamāni battiṁsa sattokārīsu ñāṇāni?
32. 32가지 마음챙김을 행하는 지혜(作念智)란 무엇인가?
40) satokāriya, M. ; sotokārisa, S.] *
Dīghaṃ 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sato kārī hoti.
(i) 길게 들이쉼을 통해 마음이 하나됨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알 때 그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지혜 때문에 그는 마음챙김을 닦는 자(satokāri)가 된다.
Dīghaṃ passāsavasena…pe… paṭinissaggānupassī assāsavasena.
Paṭinissaggānupassī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sato kārī hotī’’ti (paṭi. ma. 1.165).
(ii) 길게 내쉼을 통해 …
(xxxi)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쉼을 통해,
(xxxii)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쉼을 통해
마음이 하나됨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알 때 그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지혜 때문에 그는 마음챙김을 닦는 자가 된다. (Ps.i.76-77)"
* 『무애해도』는 각종 지혜를 술한 성전, 『청정도론』의 소의 경
-임승택 / 동국대 강사- 大品 제3, 들숨과 날숨에 관한 말씀 ( ānāpānakathā):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각종의 지혜에 관해서 언급하며,
특히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실제가 어떠한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 220가지의 지혜( ñāṇa)는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행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것으로,
거기에는 그러한 ‘마음챙김의 수행’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에 앞서 미리 알아두어야 할 예비적인 사항들과 함께,
마음챙김을 실천해 나가는 구체적인 양상, 그리고 그 결과로서 얻어지는 성과에 대한 내용들을 포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