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녕하시오 ^^
정모와 팬미팅의 난을 뚫고 무사히 살아남았소
^^
(둘다 불참하였소)
어느덧 외전 시리즈가 벌써 10 편째라오. 나도 놀랍소..
*.*
이젠 16일 전에는 정말 못쓸것이오 ㅠ_ㅠ
부디 이번 편도 예뻐해주셨음 좋겠소.
참 이번 편 [등 뒤에서]는 선행과목이 없다오~ ^^ (나 잘했소?)
굳이 선행과목을 꼽자면..
다모 방영분 두 편이라오.
그게 몇부 몇부인지는..읽으시면 아실 것이오...
이번 [등 뒤에서]편에서는 (제목짓느라 고민이 많았소 -.-)
....같은 일이라 하여도 겪는 사람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기억으로
남아있는...그런 "기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소.
오해와는 좀 다른 것이오..
그래서 작가시점이 좀 왔다갔다하오 ^^;
년도도 훌쩍 뛰어 넘나들지만..다모를 보신 분이라면 능히 따라잡을 수 있을것 같소.
그래도 복잡하다면 죄송하오 ^^;;;
그럼...
부디 아껴주시길 감히 바라오..
그리고 감상도 많이 적어주시오 ^^ (얼굴에 철판 깔았소)
그럼 다음에 짠-하고 나타나리다.
조금 시일이 걸리겠지만..반드시 돌아오겠소.
그럼 글 올라가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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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좌포청 뒷뜰 정자 하늘이 청명하니 좋은 날이다. 정자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조세욱과 정홍두, 윤, 난희. 난희가 차를 따르고 있다.
정홍두: (윤에게) 자네도 어서 들게 윤: 예…
윤, 찻잔을 든다. 이때 저 쪽에서 옥이 걸어온다. 옥, 남장을 하고 봇짐을 메고 있다. 윤이 차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옥, 윤과 눈이 마주치자 공손이 예를 갖춘다. 윤, 옥을 보자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서 옥에게 간다.
윤: (다가온다) 이제 나가는 길이냐? 옥: (공손하게) 예…. (정자 안에 있는 난희를 본다) 아가씨께서 차를 따르시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기품이 있습니다. 다모인 저조차 따라가지 못하지요. 윤: (냉담한 목소리) 차 맛을 느낄 만큼 편한 자리가 아니다. (잠깐 침묵) 팔은 좀 어떠냐? 옥: 나으리께서 주신 금창약이 좋아 금방 아물었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옥, 공손히 인사하고 돌아선다. 그때 윤, 뒤에서 말을 건넨다.
윤: (다정하게) 옥아… 사주전 패거리들은 위험한 놈들이다… 설사 사주전 패거리들을 파악하게 된다 하더라도… 혼자 움직여서는 아니된다.. 옥: (미소짓는다) 심려마십시오…. (잠깐 사이) 도련님..
옥, 다시 눈으로 인사하고 길을 간다. 봇짐 멘 옥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윤,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진다.
윤: (마음 속으로) 도련님. 오랜만에 듣는구나…
2. 9년 전, 묘향산 관음사 9년전 겨울 낮.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친다. 윤, 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 독서에 집중하는 윤, 그러나 밖에서 들리는 재희의 목소리에 집중이 흩어진다.
재희: (문 밖에서) 도련님, 빨래하러 갔다오겠습니다.
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재희, 빨랫감을 가득 안고 서 있다.
윤: 이 추위에 말이냐? 재희: 예, 스님 오시기 전에 다 해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윤: 그래,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재희, 목례하고 돌아서서 일주문 쪽으로 걸어간다. 윤, 잠시 바라보다 몸을 돌린다. 윙윙 거친 겨울바람 소리. 방 밖으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뺨이 차갑다. 윤, 방문을 닫고 신을 신는다.
윤: (소리친다) 재희야!
재희,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 뛰어가는 윤, 재희를 잡는다.
재희: (놀란 목소리) 도련님! 윤: (웃는다) 나도 마침 검세를 익히려던 참이다. 같이 내려가자꾸나.
재희와 윤, 빙긋 웃는다.
3. 계곡 내려가는 길 빨래를 가득 든 재희와 검을 멘 윤, 바위 투성이인 계곡 길을 조심스레 내려가고 있다. 길이 얼어 미끄럽다.
윤: 이리주어라. 내가 들면 된다. 재희: (빨래를 꼭 끌어안는다) 아닙니다, 도련님. 윤: (웃는다) 너도 참 고집이구나.
재희, 웃는다.
4. 계곡 계곡물도 얼어 군데군데 얼음 위에 눈이 쌓여있다. 윤, 검집으로 얼음을 깨어 구멍을 만들어준다. 재희, 빨래를 내려놓고 얼음구멍으로 손을 넣는다.
재희: (얼굴을 찡그리며) 앗, 차가워!
재희, 놀란듯 손을 움츠린다. 그 모습을 본 윤.
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구나. 내가 도와… 재희: (손사레를 치며 말을 막는다) 아닙니다, 도련님. 도련님은 검술 수련을 하러 오시지 않았습니까. 빨래는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윤: (할 수 없다는 듯이 웃는다) 알았다.
재희, 열심히 빨래를 한다. 빨갛게 곱은 손가락이 아픈지 때때로 입김을 분다. 저쪽에서 검세를 익히던 윤, 자꾸만 칼을 멈추고 재희를 바라본다.
드디어 빨래를 다 한 재희. 바위에 올려놓은 빨래를 모은다. 재희, 웃으며 소리친다.
재희: 다 되었습니다, 도련님!
5. 관음사 올라오는 길 길이 무척 미끄럽다. 빨래까지 가득 안고있는 재희, 바위길에서 균형잡기가 쉽지가 않다. 윤, 앞서가다 자꾸 멈추어 재희를 기다린다. 그때 재희, 발을 헛디딘 듯 균형을 잃는다.
재희: (놀란다) 엄마야!
윤, 놀라서 얼른 손을 내민다.
윤: 잡아라. 길이 많이 미끄럽다.
간신히 균형을 잡은 재희, 윤의 손을 잡지 않는다.
재희: 아니옵니다. 괜찮사옵니다.
잠깐 그대로 바라보던 윤, 내민 손을 거두고 다시 앞서 올라간다. 몇 걸음이나 갔을까. 뒤에서 들려오는 재희의 비명. 놀란 윤, 반사적으로 뒤돌아본다.
재희: 엄마야~~!!
재희, 미끄러져 뒤로 나동그라져있다. 신 한짝은 벗겨져 저 쪽에 구르고 빨래는 다 흩어져있다. 윤, 얼른 재희에게 뛰어가 재희를 살핀다.
윤: (걱정스런 목소리로) 재희야!!!! 재희: (찡그린 표정) 괜, 괜찮사옵니다. 소녀의 불찰이옵니다. 윤: (재희를 일으키며) 일어날 수 있겠느냐?
일어나려던 재희, 다시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다. 놀란 윤, 다시 쓰러지는 재희의 팔을 잡는다.
윤: (급박하게) 다리를 접지른게냐??!! 재희: (식은땀이 흐른다) 발, 발목이…
윤, 재희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돌아 재희쪽으로 등을 댄다.
윤: 자, 얼른 업히거라.
재희, 깜짝 놀란다.
재희: 아니옵니다, 도련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재희, 바위를 짚고 일어나려 하지만 금세 인상을 쓰며 주저앉고 만다. 하지만 다시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는 재희. 윤, 재희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윤: (매우 화났다) 어서 업히라니까!! 재희: (당황한다) 소녀 혼자 갈 수….. 윤: (버럭) 업히라고 하지 않았느냐!!
재희, 윤의 고함에 당황한다. 잠자코 윤의 등을 바라본다… 재희, 잠시 망설이다가 윤의 어깨에 손을 내민다. 윤, 재희가 업히자 일어난다. 한 걸음 떼려는 찰나.
재희: (갑작스레) 저, 도련님, 빨래는… 윤: 너를 일단 방에 데려다놓고 내가 가지고 오면 된다. 재희: (미안한 듯) 하오나… 윤: 괜찮다. 신경쓰지 말아라. 어서 가자.
윤, 조심스레 걸음을 뗀다. 등에 업힌 재희의 무게가 겨울 바람 탓인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가볍다.
# 오버랩 1. 1679년 황해도 신천. 15세의 윤, 장대비가 내리는 대나무 숲 길에서 한 도령에게 죽대를 휘두르고 있다. 흠씬 두들겨맞고 있는 도령.
윤: (고함친다) 스승님께 돌아가 사죄할테냐??!! 도령: (싹싹빈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이때 길 저쪽에서 한 사내가 어린 계집아이 하나를 데리고 오다가 이 장면을 보고 놀라 뛰어온다.
사내: (윤의 죽대를 잡으며) 자네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이 도련님이 어느 댁 자제분인줄 알고? 윤: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다) 스승님께 버릇없는 학동들 회초리 좀 들고 있습니다!!
윤, 다시 도령을 때리려 한다. 황급히 말리는 사내. 이 틈을 타 맞고있던 도령, 저 쪽으로 달아난다.
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죽대를 바닥에 내리친다. 허망한 눈빛. 그때 사내 뒤에 서 있는 어린 계집아이를 발견한다.
윤: 넌 누구냐… 계집아이: (조그만 목소리) 재희라 하옵니다. 사내: 새로 온 관빌세… 윤: (놀란다) 이 꼬맹이가? (재희를 본다) 너도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신세로구나..
윤, 고개를 떨군다. 발이 부르트고 빗속에 진흙 범벅이 되어 피가 흐르는 재희의 짚신이 눈에 들어온다… 윤, 갑자기 재희에게 등을 돌리고 무릎을 굽힌다.
사내: (깜짝 놀라며) 여보게! 지금 천한 관비에게 무얼하는 겐가! 윤: (피식 웃는다) 어서 업혀… 잡아먹지 않을 테니…
재희, 잠깐 망설이다 윤의 등에 업힌다. 윤, 재희를 업고 산 길을 뛰기 시작한다. 거센 장대비를 맞으며 대나무 숲 길을 뛰는 윤. 굵은 비가 아프게 떨어진다. 눈물이 빗물이 온 얼굴을 적신다.
ㅡ 훨훨 날아가버렸으면 좋겠다…. 훨훨….. 너도 그렇지, 꼬마야…..
6. 다시 관음사 올라오는 길 재희를 업고 산길을 올라가는 윤. 등에 업힌 재희의 차가운 손이 윤의 어깨에 느껴진다. 윤, 가슴이 아프다.
윤: 추우냐…
재희,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윤: ….. 꼭 잡아라…
재희, 조심스레 팔을 내밀어 윤의 목을 감싼다. 윤, 잠시 말이 없다. 눈싸라기가 날리기 시작한다. 윤, 산길을 뛰어 올라가기 시작한다.
7. 관음사 재희의 방 재희의 방 문이 벌컥 열리며 재희가 윤에게 업혀 들어온다. 방 안에 냉한 기운이 무겁다. 윤, 재희를 한쪽에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하다.
윤: 발목을 접지른거냐.
재희, 고개를 끄덕인다.
윤: (가라앉은 목소리) 냉찜질을 해야겠다.
윤, 방바닥을 손으로 짚어본다. 바닥이 차다. 윤, 방문을 닫고 나와 부엌으로 간다. 수건과 물을 찾는다. 물동이에 들어있는 물이 살짝 얼었다. 윤, 바가지에 찬 물을 담고 온돌구멍에 불을 지핀다. 콜록 콜록…. 연기만 나던 장작에 간신히 불이 붙기 시작한다. 윤, 나무를 좀 더 넣고 물바가지를 들고 재희의 방으로 향한다.
8. 재희의 방 윤이 나간다. 재희, 살짝 치마를 걷고 버선을 벗어 발목을 만져본다.
재희: (인상을 쓰며) 아얏!
부어오른 발목. 재희, 차가운 손을 발목에 댄다.
조금 후, 윤이 방 안에 들어온다. 윤, 바가지와 수건을 내려놓고 재희 앞에 앉아 재희의 발목을 본다. 복숭아뼈 주위가 많이 부어있다. 윤, 수건을 찬 물에 담궜다가 물기를 짜낸다.
윤: 냉찜질을 하면 좀 나아질 것이다….
옥의 발목에 물수건을 올려놓는 윤. 방바닥을 만져보니 아직도 차다. 윤, 일어서서 요를 깔고 이불을 내린다.
윤: 놀랐을테니 좀 쉬거라. 시간이 지나면 좀 괜찮아질게다. 재희: 예…. 윤: 잠시 나갔다가 오마. 쉬고 있어라.
윤, 방을 나간다. 재희, 조심스레 눕는다. 발목에 놓여진 수건이 차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본다.
9. 계곡 내려가는 길 윤, 계곡으로 내려간다. 아까 재희가 넘어진 곳에 다다른다. 빨래가 땅에 떨어져있다. 윤, 빨래를 집어든다. 하필이면 흙탕물 위에 떨어져서 빨래가 흙투성이다. 빨래를 주워모은 윤의 눈에 재희의 짚신 한 짝이 보인다. 짚신을 주워든 윤. 빨래를 안고 계곡 쪽으로 향한다. 눈발이 날리고 있다.
10. 그날 밤, 윤의 방 밤이 깊다. 창 밖에서는 찬 바람이 쌩쌩 부는 소리가 들린다. 창호지 문 틈새로 찬 바람이 비집고 들어오려고 한다. 윤, 촛불을 밝혀놓고 독서에 매진하고 있다.
11. 다음 날 아침, 윤의 방 다음 날 이른 아침. 윤,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몹시 곤한 듯 단잠을 잔다. 그 때 밖에서 들리는 수월의 목소리.
수월: (문 밖에서) 윤아, 기침하였느냐
윤, 깜짝 놀라 잠에서 깬다. 문을 열고 뛰어나간다.
윤: (반갑게) 스님~! 수월: 이제 기침하였느냐 윤: (쑥쓰러운 듯) 송구합니다…. 스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지금 오시는 길이십니까. 수월: 몇 시각 되었다. 헌데…. 재희는 어디 있느냐?
윤, 재희 방을 본다. 방 문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재희의 신.
윤: 재희가….. 어제 그만 계곡에서 다리를 접질렀습니다…. 그래서 몸이 노곤하여 아직 못일어난 듯 싶습니다…. 수월: (놀란다) 계곡에서 말이냐? 윤: 송구합니다… 다 제 불찰입니다….
수월, 재희 방을 흘낏 본다.
수월: (혼잣말로) 겨울에 접지르면 쉬이 낫지 않을터인데…. (윤을 본다) 윤아, 그 동안 내준 과제는 다 마치었느냐? 윤: (깜짝 놀란다) 예? 예…스님….. 수월: 그럼 내 방으로 책을 가지고 오너라.
수월, 자신의 방으로 간다. 윤, 당황스러운 기색이다. 수월, 뒤돌아본다.
수월: 무엇 하느냐? 윤: 예, 스님!
윤, 얼른 자신의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12. 수월의 방 엄한 표정의 수월. 책이 펼쳐진 책상을 사이에 두고 윤,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정적이 흐른다. 이윽고 입을 여는 수월.
수월: (진노한 목소리) 윤아! 문과 무를 겸비하는 것이 진정으로 강해지는 것임을 네 어찌 모르느냐!! 윤: (고개를 숙인다) …… 수월: (버럭) 강해지고 싶다고 한 것은 네가 아니었더냐!!! 윤: ……. 수월: (버럭 소리친다) 내가 며칠 자리를 비웠다하여 그리 나태해져서는 되겠느냐!! 몸뚱아리만 강해진다고 네가 진정 강해지는 것인줄 아느냐!! 윤: (작은 목소리) 잘못했습니다, 스님….
수월: (조금은 누그러진 목소리. 허나 아직도 노기가 가득하다) 윤아. 거문고를 왜 백악지왕(百樂之王)이라 하는 줄 아느냐? 거문고의 육현 가운데 양 바깥에 있는 두 현은 각각 문현과 무현이라 이름한다… 선비들은 거문고를 뜯을 때라도 문과 무의 합치됨을 잊지 않았던게야!! 윤: (점점 숙여지는 고개) ……. 수월: 네가 평소 문과 무에 모두 열심이었던 것, 내 잘 안다… 허나 단 한번의 나태함이라도 경계해야 할 것이야!!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네 자신이다!! 알겠느냐??!! 윤: (고개를 숙인다. 기운 없는 목소리)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스님……
13. 그날 오후, 재희의 방 수월, 재희의 발목을 만져보고있다. 재희, 아픈듯 찡그린다. 어제보다 더욱 부풀어오른 발목, 윤의 얼굴이 흐려진다.
수월: 뼈를 상한듯 싶구나. 마을에 내려가 의원에게 보여야겠다.
재희, 윤 놀라 수월을 본다.
수월: 채비하거라. 어서 다녀오자. 윤: 스님! 재희는 걸을 수 없습니다. 제가 업고 다녀오겠습니다. 수월: (껄껄) 아직은 내 기력이 그 정도는 된다. 신경쓰지 말고 윤이 넌 책에 전념하거라. 윤: 하오나…. 수월: (엄하게) 내 다녀올 수 있다 하지 않았느냐. 하루하루의 게으름이 쌓여 태산을 무너뜨리는 법이다. 내 아까 이르지 않았느냐? 윤: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만다) ……
수월, 등을 재희쪽으로 대고 업히라는 시늉을 한다. 재희, 망설이는 표정.
재희: 스님… 수월: (어서 업히라는 손짓) 괜찮다. 어서 다녀오자.
재희, 수월의 등에 업힌다. 수월, 방밖을 나선다. 일주문까지 따라나서는 윤. 수월, 일주문을 나서며 윤에게 말을 건넨다.
수월: 의원에게 보이고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게야. 기다리지 말거라. 윤: 예, 스님…. 길이 미끄럽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저 멀리 오솔길 너머로 수월과 재희의 모습, 사라진다. 윤, 오솔길 저 쪽 끝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본다.
14. 그날 저녁, 윤의 방 윤, 방으로 밥상을 들고 들어온다. 두어 수저 뜨다가 밥맛이 없는 듯 상을 밀어놓는다. 책을 펼치는 윤, 잠깐 집중하는 듯 하나 금세 멍하니 다른 생각에 잠긴다.
15. 다음 날, 관음사 일주문 앞. 아침 일찍부터 윤이 마당을 쓸고 있다. 계속 일주문 아래 쪽을 곁눈질하는 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저 아래에서 수월과 재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재희, 절뚝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고 있다. 수월, 잠깐 걸음을 멈추고 이마의 땀을 닦는다. 윤, 일주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윤: 스님!!
그 소리에 재희, 고개를 들어 뛰어오는 윤을 쳐다보고 활짝 웃는다.
16. 한양 좌포청 정문 앞. 저 쪽에서 걸어오는 윤과 옥. 정문을 지키던 포졸들, 윤을 보고 목례한다. 윤, 정문 앞에 멈추어 서고 따라오던 옥 역시 걸음을 멈춘다.
윤: 여기가 한성 좌포청이다.
옥, 좌포청 현판을 바라본다.
윤: (다정스레) 포청 다모 일이 쉽진 않을게야. 허나 잘 해내리라 믿는다… 옥: (미소짓는다) 예, 도련님.
윤, 잠시 옥의 눈을 바라본다. 옥,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인다. 윤, 좌포청 안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잠깐 망설이던 윤, 어렵게 입을 연다.
윤: 그리고…. 포청에서는 더 이상…. 나를 도련님이라 불러서는 아니된다..
옥, 흠칫 놀라 윤을 본다.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윤.
윤: (미안한 목소리) 이 곳 생활은 산에서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앞으로는 나를 나으리라 부르거라, 옥아….. (침묵) …. 이제부터는 너도 더 이상 장재희가 아니지않느냐….. (침묵)
옥, 잠깐 눈빛이 흐려지나 곧 평소 얼굴로 돌아온다. 윤, 걸음을 뗀다.
윤: 그럼 들어가자.
윤, 먼저 앞장선다. 정문을 지키던 포졸들 비켜선다. 옥, 크게 숨을 한 번 쉰 뒤 잠자코 윤의 뒤를 따른다.
17. 포장영감의 방 윤과 옥, 조세욱의 방에 들어간다. 조세욱, 병풍 앞에 앉아있다.
조세욱: 앉게.
윤, 조세욱의 맞은 편에 앉고 옥, 그 옆에 조심스레 앉는다. 잠깐의 정적.
세욱: 이 아이인가. 윤: 예, 영감. 세욱: (채옥을 보며) 이름이 무엇이냐. 옥: 재...채옥이라 하옵니다. 세욱: …… 포청 다모는 결코 허튼 자리가 아니야. 허나, 황보 종사관이 극구 추천해 널 다모로 데려온 것이니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옥: 예….
세욱: 그럼 너는 나가서 기다리거라. 황보 종사관, 내 종사관과 잠시 할 이야기가 있소.
채옥, 공손히 인사하고 방 밖으로 나간다. 문이 닫히는 소리.
세욱: 내 자네를 믿네만…. 어떤 아이인가. 윤: 연천 본가에서부터 관비로 데리고 있던 아이입니다. 세욱: 자네 원대로 저 아이는 오늘부터 평범한 관비가 아닐세. 포청 다모인게야… 비록 자네가 천거하여 다모로 데려오긴 하였으나 이제부터는 사사로이 대해서는 아니될 것일세. 갑작스러운 일이라 못마땅해하는 눈이 많아….. 그만큼 자네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잘 알아두길 바라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윤: 잘 알겠습니다, 영감.
18. 포장 영감의 방 밖. 문 밖에서 기다리는 옥.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둘러본다. 이 때 문을 열고 윤이 나온다.
윤: 가자… 옥: 예….나으리….
윤, 잠깐 멈칫하나 금세 발걸음을 옮긴다. 옥, 말없이 뒤따른다.
19. 며칠 뒤, 포청 마당 무슨 일인지 채옥과 병택, 실랑이를 하고 있다. 무척 곤란해보이는 표정의 옥.
병택: 아잉~~ 채옥아~~ 채옥아~~~~ 잠깐만 쉬면 안될까? 옥: (곤란한 표정) 아니되옵니다, 도련님.
이때, 뒤 쪽의 열린 문 밖으로 지나가던 윤, 둘의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춘다. 옥과 병택, 윤의 모습을 보지 못한 듯. 병택, 채옥이를 계속 조르고 있다.
병택: 아잉~~ 채옥아~~ 채옥아~~~
이때 뒤에서 들리는 윤의 엄한 목소리. 병택, 깜짝 놀라 옥에게서 떨어진다. 옥 역시 깜짝 놀라며 뒤돌아본다.
윤: (버럭) 지금 뭣들 하는 건가!
윤, 병택을 본다. 못마땅하다는 표정.
윤: 자네는…. (버럭)이 곳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병택: (쫄았다) 나, 나으리, 저는 그저~ 윤: (말을 자른다) 이 곳은 포청 사람이 아니면 함부로 들락거리는 곳이 아니야! 용건 없이 이 곳에 들어오지 말게!
병택, 나가라는 윤의 말에 불만이 가득하나 윤의 기에 눌려있다.
병택: (우물우물) 아니, 저는, 그냥, 옥이랑… 윤: (말을 자른다. 버럭 소리친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가!
병택, 옥을 한 번 바라보고 뒤돌아 힘없이 터덜터덜 문을 나선다. 윤, 옥을 잠깐 보더니 역시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한다. 그때 들리는 옥의 목소리.
옥: (급하게) 도, 도련님!
나가려던 윤과 병택, 동시에 걸음을 멈추고 반사적으로 돌아본다. 얼굴에 화색이 가득한 병택, 입이 찢어져라 웃는다.
병택: 채옥아, 왜? 응? 응? 나 부른거야?
옥, 당황한 얼굴.
옥: (당황한 목소리) 아니, 저, 도련님을 부른 것이 아니오라…. 병택: (의아한 듯이) 잉? 나 부른게 아니었어? 옥: 저…..나으리.
병택, 실망한 얼굴. 윤, 병택을 노려보자 병택, 꽁무니를 내뺀다. 윤, 채옥에게 다가온다. 옥, 땅만 쳐다보고 있다.
윤: (다정한 목소리) 왜 그러느냐.
옥, 고개를 들어 윤을 본다. 처음 보는 복장. 종사관 복장인가보다. 어깨에는 쇠장식이 있고 옆구리에는 칼을 찼다. 잠깐 멍하니 윤의 옷을 바라보는 옥, 윤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온다.
윤: 무슨 일이냐. 옥: (당황하여) 아, 아닙니다, 나으리….
윤, 따스한 눈길로 옥을 바라본다.
윤: 지내는 건 어떠하냐. 지낼 만 하느냐. 내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신경써주지도 못했구나… 옥: 송구합니다…
잠깐 침묵. 옥, 윤을 바라본다.
윤: 할 말이 있는거냐. 옥: (당황한 듯이) 아니옵니다. 어서 볼 일을 보십시오. 윤: (싱겁다는 듯이 웃는다) 알겠다.
윤, 문 밖으로 나간다. 옥, 문을 나가는 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20. 며칠 뒤, 포청 뒷마당. 채옥이와 병택이 또 실랑이 중이다.
병택: 그럼 옥이 넌 종사관나으리랑 계속 산 속에서 있었던 거야? 옥: 예, 도련님. 병택: 휴우~ 힘들었겠다~ 저런 나으리 모시느라~ 옥: (곤란한 표정. 뭐라 말을 하려한다) 아닙.. 병택: (말을 자른다. 철없는 말투) 안그래? 무지 힘들었지? 안봐도 뻔해~ 저 찬바람 쌩썡 도는 것 좀 보라구~ 옥: (곤란한 표정) 아닙니다. 도련님은…(황급히 입을 막는다) 아니, 나으리께서는…
이때 지나가던 안녹사, 둘의 대화를 들은 듯 이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와 순식간에 병택의 귀를 잡는다.
안녹사: 이놈아~!!! 병택: (괴로움) 아~~아~~ 아부지~~~ 안녹사: (병택의 귀를 당기며) 이놈아, 이놈아, 아침부터 이게 뭐하는 짓이여? 병택: 아아~ 아부지~~ 귀 좀 놓고 말씀하세요오~~ 안녹사: (귀를 더욱 세게 당기며) 이놈아, 내가 책 읽고 있으랬지 언제 나와 놀으랬어? 이놈아, 넌 문과를 봐야할 놈이 아니냐~ 병택: 아~ 아~~ 아부지~~ 아파요오~~
안녹사, 옥을 본다. 옥, 돌발상황에 놀란 듯.
안녹사: 아니 그런데 너는 아직도 나으리를 도련님이라 부르는 거냐, 지금? 여긴 산 속이 아니여~ 한성 좌포청이란 말이여~~
채옥, 고개를 숙인다. 안녹사, 옥이 못마땅한 듯 계속 말을 잇는다. 여전히 병택의 귀를 잡아당긴다.
안녹사: (뭔가를 가르치려는 듯) 나으리께서 직접 다모를 데려오셨다하여 총명한 계집인 줄 알았더니, 어째 아직도 호칭 하나 구별을 못해!
옥,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의기양양 안녹사.
병택: (귀 때문에 아파 인상을 쓰면서) 아, 아, 아부지~~! 포청온지 이제 일주일 밖에 안되었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포청 사람이 되겠어요~ 산에서 내려왔는데~~ 아, 아~~ 아파요옷~!! 안녹사: (한심한 듯 병택을 본다) 산이고 뭐고 여긴 한양 좌포청이란 말이다, 이놈아, 넌 나서지 좀 말어~!
안녹사, 옥을 흘겨본다.
안녹사: 이제부터라도 조심해! (병택을 보며) 가자!
안녹사, 병택을 끌고 간다. 옥, 고개를 숙인채 가만히 있다.
21. 다음 날, 포청 집무실. 윤과 원해, 주완, 옥 앉아있다. 그 때 복도 저 쪽에서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모두들 깜짝 놀라고 순간 원해가 칼을 빼든다. 문 밖에서 갑자기 멈추는 발걸음.
노비1: 나으리, 우포청에서 급히 와주십사 연통이 왔습니다요~! 윤: 우포청에서? 무슨 일이냐? 노비1: 지난 번 여곽 교살사건의 용의자를 잡았는데 나으리의 의견을 여쭙고자 한답니다! 윤: 여곽 교살사건말이냐? 그래, 내 곧 가리다.
윤, 일어선다. 투덜거리는 원해.
원해: 우포청에서 왠일이랍니까. 세상 살다보니 별 일 다 보겠습니다. 주완: 이런 우라질~! 우리가 먼저 잡으려고 했는데! 윤: (타이른다) 어디에서 잡았건 잡았으면 된 것 아니오. 내 다녀오리다.
나가려던 윤, 옥을 본다.
윤: (옥에게) 아직 우포청에 가본 적이 없지 않느냐, 같이 가자. 옥: 예? 윤: 어서 채비하거라.
윤, 먼저 집무실을 나선다. 옥, 어안이 벙벙하여 가만히 있는다.
주완: 아따, 뭐혀~! 나으리께서 가보시자는데 어서 따라 나서지 않고~! 옥: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옥, 공손히 인사하고 나간다.
원해: (불만 가득한 목소리) 이게 뭐랍니까, 회의 좀 해보겠다고 왔더니만. 주완: 그러게 우포청에서는 때도 못 맞춘다냐~! (주위를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춘다) 그건 그렇고, 저 애 말이다. 에… 이름이 뭐더라? 원해: 옥이랍니다. 채옥이. 주완: 아 맞다 맞다! 채옥이. 그런데 나으리께서 직접 데려오실 정도면… 설마 우리보다 칼에 능한 것 아니냐? 보기만 해서는 잘 모르겠구먼. (심각하게) 다모라 함은 자고로 떡대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 원해: (씨익 웃는다) 실력은 조만간 알 수 있겠지요, 형님. 저런 년이 칼들고 설치면 더 무섭습니다요~! 주완: 그, 그러냐? (중얼중얼) 포청 밥 먹는동안 저렇게 생긴 다모는 처음봤네, 그려….
22. 우포청가는 길. 말을 탄 윤과 옥, 언덕을 넘고 있다. 또각또각 천천히 걷는 말발굽 소리가 경쾌하다. 둘, 아무 말이 없다. 어색한 분위기. 나무가 울창하다. 이윽고 윤, 정적을 깬다.
윤: ….포청생활이 힘들진 않느냐. 옥: 지낼 만 합니다. 윤: 일이 고되진 않느냐 옥: 아닙니다, 도련, 앗, 나으리…. 송구합니다.
윤, 말을 멈추고 옥을 본다.
윤: 옥아…. 내가 나으리라고 부르라 했다 하여 나에게 말건네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듯 보이는구나. 그리 마음쓰지 않아도 된다. 내 그저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어 그러한 것 뿐이니… 옥: (놀란듯) 당치도 않습니다. 나으리께서는 이제 한성 좌포청 종사관이 아니십니까. 그리할 순 없습니다. 법도가 그렇지 않습니까. 윤: …. 법도가 그러하다해도…. (잠깐 침묵) 그저 예전처럼… 예전처럼 편히 대하거라. 옥: …….
윤, 말없이 옥을 바라보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옥, 말없이 뒤따라간다. 바람이 분다. 윤의 벙거지의 꿩깃털이 바람에 흔들린다.
23. 좌포청 뒷뜰 정자 정자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윤. 환하게 미소지은 얼굴. 그 때 뒤에서 들리는 조세욱의 목소리. 무언가 생각에 잠긴 윤을 깨운다.
세욱: 서서 무얼 그리 생각하는가? 차가 다 식겠네.
윤, 얼른 미소를 거두고 다시 정자로 들어가 앉는다. 난희, 윤의 찻잔에 다시 차를 따른다. 차를 받아든 윤, 저 쪽 마을 어귀쪽으로 사라져가는 옥의 뒷모습을 본다. 옥,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더 이상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윤의 얼굴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다시 번진다.
# 오버랩 2. 좌포청 뒷 뜰에서 마을로 나가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옥. 남장을 하고 봇짐을 메고 있다. 다리를 건너다 잠깐 정자 쪽을 쳐다본다. 윤이 정자로 들어가고 있다. 채옥, 잠깐 윤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금세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24. 의금부 앞, 밤. 깊은 밤. 의금부. 흰 옷을 입고 상투를 튼 조세욱과 윤이 의금부 병사들에게 끌려가고 있다. 포박당한 채 옥사 쪽으로 끌려가는 조세욱과 윤.
주완과 조치오, 난희, 채옥 저 쪽에서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온다. 의금부 담장 너머로 끌려가는 둘을 바라본다. 병사들에 의해 저 쪽으로 끌려가는 조세욱과 윤. 난희,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고 만다.
난희: (주저앉으며) 아버님…. 주완: 아가씨! (난희를 잡는다) 이런 우라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조치오: (끌려가는 조세욱을 본다) ……
옥, 담장 위로 포승에 묶인 채 끌려가는 윤을 본다. 안타깝다. 이 때 끌려가던 윤, 갑자기 뒤돌아 이 쪽을 본다. 순간 옥과 눈이 마주친다. 옥과 눈을 맞추는 윤, 허나 병사들이 윤을 재촉한다. 윤의 모습, 저 쪽으로 사라진다. 안타까움을 가득 담고, 채옥, 윤이 사라진 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25. 그날 밤, 좌포청 별도 뜨지 않는 어두컴컴한 밤이다. 토포복장을 하고 칼을 등에 멘 채옥, 터덜터덜 포청 문을 들어선다. 들어서는 옥을 발견한 병택, 다가간다.
병택: (조심스레) 소식 들었다…. 내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이런 말 하긴 그렇다만….
채옥, 멍하니 병택을 본다.
병택: (결심한 듯 진지한 목소리)….채옥아! 나랑 같이 무비사로 가자! 포청일은 너무 험해…. 포청에 계속 있다간 너도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나와 무비사로 가자, 채옥아!
채옥, 병택의 말을 듣는 건지 만 건지 말없이 고개를 돌리고 집무실 쪽으로 힘없이 걸어간다.
26. 포청 집무실 컴컴한 집무실 문이 열리고 옥이 들어온다. 넋나간 표정, 눈에 초점이 없다. 책상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옥. 이윽고 채옥의 눈에 윤의 벙거지가 들어온다. 책장 위에 가만히 놓여있는 윤의 벙거지. 초록색 꿩깃이 힘없이 늘어져있다.
옥,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윤의 벙거지를 한참이나 바라본다. 채옥, 벙거지 쪽으로 한 발을 떼려다가 의자에 주저앉고 만다. 책상에 가만히 이마를 묻는다. 일어날 줄을 모른다….
# 오버랩 3. 9년 전 겨울. 묘향산 계곡. 열 세살의 재희, 빨래를 가득 안고 윤을 따라 산을 올라가고 있다 윤, 앞서가다 자꾸 멈추어 재희를 기다린다. 미안하다. 하지만 미끄러운 길에서 빨래를 가득 안고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윤이 또 걸음을 멈추고 재희를 기다린다. 자신을 기다리는 윤을 본 재희, 걸음을 바삐 내딛는다. 아, 그 순간 바위를 밟은 발이 미끄러진다.
재희: (놀란다) 엄마야!
윤, 놀라서 얼른 손을 내민다.
윤: 잡아라. 길이 많이 미끄럽다.
간신히 균형을 잡은 재희, 윤의 손을 잡지 않는다.
재희: 괜찮사옵니다, 도련님.
잠깐 그대로 바라보던 윤, 내민 손을 거두고 다시 앞서 올라간다. 조심해서 발을 딛느라 재희의 걸음은 더욱 느려진다. 몇 걸음 가지도 않았는데 윤과 벌써 이만큼 멀어졌다. 그 때….
재희: 엄마야~~!!
세상이 거꾸로 돈다. 겨울 하늘이 파랗다…. 이때 윤의 목소리가 들린다.
윤: (걱정스런 목소리로) 재희야!!!!
재희, 정신을 차린다. 윤이 곁으로 달려왔다. 걱정스러운 윤의 얼굴. 재희, 그제서야 자신이 넘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윤: (걱정스러운 목소리) 재희야! 재희: (찡그린 표정) 괜, 괜찮사옵니다. 소녀의 불찰이옵니다. 윤: (재희를 일으키며) 일어날 수 있겠느냐?
일어나려던 재희, 다시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다. 일어설 수가 없다. 놀란 윤, 주저앉는 재희의 팔을 황급히 잡는다.
윤: (급박하게) 다리를 접지른게냐??!! 재희: (식은땀이 흐른다) 발, 발목이…
이마에 땀이 흐른다. 발목이 찌르르 아프다. 윤, 갑자기 재희 쪽으로 등을 대고 무릎을 굽힌다.
윤: 자, 얼른 업히거라.
재희, 깜짝 놀란다.
재희: 아니옵니다, 도련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재희, 바위를 짚고 일어나려 하지만 금세 인상을 쓰며 주저앉고 만다. 일어날 수가 없다. 하지만 다시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는 재희. 허나 윤, 재희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그대로 등을 대고 있다.
재희: 도, 도련님… 윤: (말을 자르며 매우 화난 목소리) 어서 업히라니까!! 재희: (당황한다) 소녀 혼자 갈 수….. 윤: (버럭) 업히라고 하지 않았느냐!!
재희, 윤의 고함에 당황한다. 잠자코 윤의 등을 바라본다. 넓고 단단해보이는 등. 재희, 잠시 망설이다가 윤의 어깨에 손을 내민다.
윤, 재희가 업히자 일어난다. 한 걸음 떼려는 찰나 재희의 눈에 땅에 떨어진 빨래가 들어온다.
재희: (갑작스레) 저, 도련님, 빨래는… 윤: 너를 일단 방에 데려다놓고 내가 가지고 오면 된다. 재희: (미안한 듯) 하오나… 윤: 괜찮다. 신경쓰지 말아라. 어서 가자.
윤, 재희를 업고 걷기 시작한다. 찬 겨울바람이 뺨을 에인다. 손이 시렵다. 몇 걸음 걷던 윤, 갑자기 멈추고 입을 연다.
윤: 추우냐…
재희, 고개를 젓는다.
윤: …… 꼭 잡아라……
재희, 팔을 내민다. 윤의 목을 감싼다. 윤, 잠시 말이 없다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눈싸라기가 날린다. 윤의 걸음이 빨라진다.
찬 바람이 거세다. 뺨은 칼에 베인 듯 아프다. 재희, 가만히 윤의 등에 고개를 묻는다. 쌩쌩 아프게만 불어오던 겨울 바람이 더 이상 뺨을 에이지 않는다…….
ㅡ 도련님을 처음 뵈었던 날… 도련님께서는 … 한낱 관비에게 등을 내어주셨지요…. 지금처럼 말입니다…..
# 오버랩 4. 수월의 등에 업힌 재희, 오솔길을 내려가고 있다. 재희, 수월에게 업힌 채 잠깐 뒤돌아본다. 일주문 앞에 서 둘의 모습을 바라보는 윤의 모습이 점차 작아진다. 수월이 한 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윤의 모습도 흔들린다. 이윽고 윤의 모습, 보이지 않는다.
재희,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ㅡ 금방 다녀올께요, 도련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