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en I was growing up and somebody like Robert De Niro had a movie come out, it was a cultural event.
내 어린 시절, 로버트 드 니로 같은 배우의 영화가 개봉하면 그건 문화행사나 다름없었다.
숀 펜
로버트 드 니로
연기 학문인 메소드 연기에 파생된 최고의 연기술인 '드니로 어프로치'의 창시자이자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을 포함한 수많은 영화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70년대 중반~90년대 중반까지의 화려한 전성기에 이어 현재도 꾸준하게 활동하는 영화사 역대 최고의 배우
드니로 어프로치
로버트 드 니로가 다양한 배역들을 소화해내기 위해 배우 본인의 외부 신체 조건까지 변화시키며 역할에 몰입하는 연기술을 가리키며 공식적인 용어처럼 들리지만 철저하게 일본 내에서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완벽하게 내 역할에 빠져 든다"는 철칙을 고수하며 체중 조절을 비롯해 눈빛, 표정까지 바꿔가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연기를 뜻하며 로버트 드 니로가 첫 상업영화였던 <기관총 엄마>에서는 마약중독자인 배역을 위해 30파운드를 감량하는 노력을 했고, <언터처블>에서 알 카포네를 실감 나게 연기하기 위해 멀쩡한 자신의 앞머리를 뽑거나,
<미드나이트 런>에서 현상금 사냥꾼을 연기하기 위해 실제로 형사들과 잠복근무를 해보거나, <케이프 피어>에서 악랄한 악역을 연기하기 위해 자신의 이빨을 갈아버리는 등의 충격적인 연기들을 선보이자, 일본의 시네필들은 드 니로의 필모를 역으로 훑기 시작했고, <대부 2>에서 배역을 위해 실제로 시칠리아에서 4개월가량을 지내거나, <택시 드라이버>에서 뉴욕 택시 회사에 취직해 2주간 실제로 택시를 몰았다거나 등등의 일화들이 추가적으로 알려지면서 널리 쓰이게 됩니다.
<대부 2>에서 비토 콜레오네를 연기할 당시에 <대부 1>에서 비토 콜레오네를 연기한 말론 브란도와 목소리와 억양 등, 연기에선 거의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였는데, 이탈리아에서 지내며 연기 연구에 몰두했고 메소드 연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승화했다고 볼 수 있으며, 할리우드 배우 중 드니로 어프로치를 활용한 배우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 크리스찬 베일, 매튜 매커너히, 자레드 레토, 와킨 피닉스 등 많은 연기파 배우들을 꼽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
1941년 호프만대학에서 만난 지혜롭지만 독립적 성격의 버지니아 아드미랄과 아일랜드계 이탈리안 로버트 드 니로 시니어는 프로빈스타운의 멋진 커플이었고 페기구겐하임의 금세기 미술관서 전시도 함께 했습니다.
그들이 살던 현 뉴욕 명물 리틀 레드 스쿨하우스 Little red schoolhouse 한부분이 된 블리커가 200번지 3층 꼭대기 층 아파트는 밝은 색으로 칠해졌고, 아기 드 니로는 당대 뉴욕 최고 예술가들에 둘러싸여 그들 발밑을 기어 다녔습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높은 기준을 세워둔 아버지의 그림은 그리고 고치기를 반복하는 완벽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모습이었고 드 니로는 완벽 추구 예술가를 머리와 가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버지의 뒤늦은 커밍아웃으로 곧 이혼하게 되었고 외가에서 정상적 아동기를 보내고, 15살까진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끔 오후와 저녁 시간에 영화를 보며 지내면서 어린 드니로는 영화를 통해 매력적인 그레타 가르보를 보게 되는데, 훗날 그는 가르보와 함께 광적이다 싶을 정도로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점에서 비교가 되었고 드 니로는 가르보가 그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배우 중 하나라고 종종 언급합니다.
뉴욕 찰튼가의 엘리자베스 어윈 고등학교 시절은 순탄치 않았으며 멕카시즘 창궐, 스푸트니크호 발사, 냉전 시작 등에 맞서 좌익 성향 혐의를 벗기 위해 아이들 학업에 신경 쓰면서 많은 학생을 아이비리그 대학에 보내려고 법석을 떨기 시작했고 드니로는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너무 완벽하려는 데 원인이 있었습니다.
드 니로는 이탈리아계로서 마초적인 환경 속 복잡한 반항심이 있었으나, 후에 성공한 후로는 아버지가 살던 소호의 아파트를 다시 사들여 지금까지 살고 있으며 어릴 적 수줍음이 많았으나 시인인 어머니는 드 니로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라도록 해주어 많은 영향을 끼쳤고 학예회에서 오즈의 마법사의 사자를 연기한 이후부터 연기자의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연기자로서의 첫 걸음
고등학교를 얼마 못 다니고 중퇴한 드 니로는 거리의 풋내기 건달들과 어울리면서, 연기 준비를 계속하여 알 파치노 등을 배출한 HB 스튜디오와 액터스 스튜디오에 합격했고 브라이언 드 팔마의 초기작 <그리팅>에서 데뷔후 상업 영화에도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무명 시절부터 과묵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철저히 금하기로 유명했고 지인들 인터뷰로는 본인을 숨기는 데에 굉장한 강박이 있었고 무명 시절 오디션에 계속 낙방하는 연기자 친구에게 '모든 걸 드러내지 마라. 숨길수록 더 유혹적이다' 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로버트 드 니로의 영화 데뷔작 <그리팅>(1968)
존 루빈 역
<샘스 송>(1969)
샘 역
<기관총 엄마>(1970)
로이드 바커 역
<대야망>(1973)
브루스 피어슨 역
영원한 동반자 마틴 스코세시
신인 시절에는 당대 떠오르던 아메리칸 뉴웨이브 감독들과 열악한 작업을 하였고 영화사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이자 평생의 인연이 될 마틴 스코세시(국내에서는 스콜세지로 많이 쓰이나 스코세시가 가장 맞는 발음)와
알게 되면서 그의 커리어는 탄탄대로를 걷게 됩니다.
켄메어에 살던 드 니로가 스코세시가 사는 프린스, 엘리자베스, 스프링으로 자주 놀러갔고 두 사람은 어린 시절, 공통의 지인, 공통의 작품관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자랐으며, 스코세시 영화에 드 니로가 자주 출연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코세시는 당시 뉴욕대 영화과를 갓 졸업한 갓난아기 신인이었고, 드 니로야 철없어 보이는 애송이였으나 둘은 뒷골목에서 험하게 자란 이탈리아계라는 동질성이 있어, 빠르게 친해졌고 이런 환경은 두 사람의 커리어에 평생 예술적 자양분이 되어, 둘 다 예술과 성공에 대한 강박이 대단했기에 둘은 의기투합하여 작업을 도모합니다.
결국 이탈리아계 젊은이들의 뒷골목 삶을 담아낸 <비열한 거리>로 스코세시와 드 니로 모두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고
드 니로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희대의 또라이 '쟈니 보이' 역을 기가막히게 연기해냅니다.
그 후 끈끈한 이탈리아계 미국인 영화인 인맥을 타게 되었고 스코세시의 추천으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1975년작 <대부 2>에 캐스팅되어 비토 콜레오네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여 결코 말론 브란도에 뒤처지지 않는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대부 1>의 오디션에서 소니 콜레오네 역에 떨어졌던 안 좋은 추억을 보기 좋게 털어버립니다.
사실 이 때의 탈락은 대부 메이킹 필름에도 나오지만 절대 드 니로가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며 당시 오디션 장면을 보면 소니가 복수를 하겠다고 나서는 마이클을 비웃는 장면을 연기하는데, 이때 제작진들은 그의 연기를 보며 소름이 돋았으나 소니란 캐릭터가 너무 냉혈한처럼 보일 것을 우려해 좀 더 친숙하고 인간적인 이미지를 연기한 제임스 칸으로 갔다고 합니다.
대부 메이킹 필름에 들어간 제작진의 코멘트는 "It was spectacular. But it was Sonny... really like "killer." Nothing we could ever sell." 번역하면 "(연기가) 어마어마했죠. 하지만 그건 마치 소니가 진짜... 킬러 같았어요. 대중들에게 팔 수 있을 만한 건 아니었죠."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소니라는 캐릭터는 감정적이고 다혈질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가족애가 끈끈하며 동시에 든든하고 다정한 맏형이라 냉혈한들이 넘쳐나는 영화 속에서 오히려 튀어보이며 소니가 마이클을 비웃는 장면도, 실제로는 진심으로 그에게 애정을 가지고 '허허. 세상 물정 모르는 녀석이 귀엽게 덤비네. 이런 건 든든한 우리 형님들에게 맡기거라.'라고 놀리는 형태에 가깝습니다.
이때 드 니로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제작진은 후속작에서 그를 캐스팅하고 그러한 제작진의 선택에 화답하듯 드 니로는 여기서 영화사에 남을 명연기를 선보입니다.
이후 마틴 스코세시와 많은 작품을 함께 하게되고, 1973년부터 1995년까지 22년간 마틴 스코세시의 페르소나 자리를 꿰찼고 스코시스와 함께 197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많은 명작들을 남겼으며 공동으로 작업하여 시대의 걸작으로 길이 남은 <택시 드라이버>(1976년), <분노의 주먹>(1980년), <코미디의 왕>(1982년),<좋은 친구들>(1990년), <케이프 피어>(1991년), <카지노>(1995년) 등이 있으며 최근에도<킬링 더 플라워 문>(2023)을 함께 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바비(로버트 드 니로)와 미티(마틴 스콜세시)는 형제처럼 보인다. 바비에게는 마티의 변형된 모습이 있다. 마티는 바비에게 폭력을 교사하고 바비에게 저격수가 되도록 시킨다. 그는 바비에게 추락할 것을 명령하고 바비가 꼭대기에 올라가 몸을 던지게 되면 마티는 바비를 통제한다. 바비는 마티가 영화감독이 되지 않았으면 살았을 인생들을 재현해주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드 니로가 없다면 지금의 스코세시가, 스코세시가 없다면 지금의 드 니로가 없었을 것이며 마틴 스코세시 감독을 언급하지 않고 로버트 드 니로의 커리어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인 이 둘은 영화사 최고의 감독 배우 조합으로 일컬어집니다.
왜 영화사 역대 최고의 배우인가?
갱스터 무비의 전설
날것 그대로의 쌩양아치 이야기 <비열한 거리>(1973)
주연(존 '조니보이' 치벨로)
영화사 역대 최고의 속편 <대부 2>(1974)
조연(비토 콜레오네)
<대부>에 필적하는 걸작 갱스터 무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주연(누들스)
알 카포네 깨부시기 프로젝트 <언터처블>(1984)
조연(알 카포네)
마피아의 로망과 품위, 서로간의 의리 따위는 전혀 없는 그냥 개양아치들의 인생사 <좋은 친구들> (1990)
주연(지미 콘웨이)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꿈과 허상 <브롱스 이야기>(1993)
주연(로렌조 아넬로)
갱스터 무비의 절정 <카지노> (1995)
주연(샘 '에이스' 로스타인)
진하고 강렬한 남성용 블루 스킨 같은 로스앤젤레스 범죄 서사시 <히트> (1995)
주연(닐 맥콜리)
역대 최고의 배우들의 조합 <의로운 살인>(2008)
주연(터크)
갱스터 무비 장인들의 마지막 인사 <아이리시맨>(2019)
주연(프랭크 시런)
등 역대 최고의 갱스터 무비에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 갱스터 무비의 전설입니다.
모든 장르에서 보여준 최고의 연기
영화사 가장 인상깊은 배역 트래비스 비클 <택시 드라이버>(1976)
이 작품을 하면서 스콜세시와 드 니로 두 사람의 무게 중심이 옮겨졌고 드 니로는 의견 피력에 자신감이 생겼고, 비클의 인물 설정은 그 스스로의 연구와 아이디어로만 이루어진 것입니다. 스콜세시는 그의 이런 재능을 아무 의심 없이 존경했고 배우 통제권을 양보한 채 주연 배우를 이무 방해 없이 그가 어려운 연기를 준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무너져가는 봉건 제도와 새로 나타나기 시작한 사회주의속 인간군상 <1900년>(1976)
감독 베르톨루치와 불화가 있었는데 극중 배역인 알프레도는 약하고 우유부단한 인물인데 반해 드 니로는 강한 의지와 독단적인 면이 있었고 이제까지 한 번도 심약한 인물을 연기하는데 성공적인 적이 없었지만 결국에는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고 매력적인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라스트 타이쿤>(1976)
감독 엘리아 카잔은 “드 니로는 아직까지 한 번도 중역 연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유식한 연기도, 연인 모습도. 나는 그에게서 그런 모습을 찾아야했다. 그것은 아직 탐험되지 않은 영역이었다.”라고 했지만 드 니로에 대한 우려는 탁월한 선택으로 바뀝니다.
순수를 상실하고 아픔을 겪는 강대국 미국의 지울 수 없는 흔적 <디어 헌터>(1978)
영화사 역대 최고의 연기 <분노의 주먹>(1980)
천재 드 니로에게 개인 교습을 받는다는 것은 파바로티에게 성악 개인 레슨을 받는 것과 같다 by 캐시 모리아티
드니로는 거의 2년째 실베스터 스탤론 트레이너를 데려와 권투 선수 몸으로 단련시키는 작업을 했습니다.
드 니로의 라모타 연구는 빠른 속도로 강박 관념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는데, 드 니로는 실제 주인공 제이크 라모타와 살다시피 하며 그의 아파트에서 2년을 보냈고 라모타의 아내 데보라가 이혼 소송을 제기했을 때 드 니로가 하도 라모타 집안에 눌러 사는 것이 사유 중 하나가 되었고 '플레이보이'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드 니로가 너무나 자신의 예전 남편 같아서 같이 잠자리에 들고 싶을 지경이었다고 했습니다.
드 니로는 “나는 가짜로 연기할 수가 없었다. 나는 영화가 환상이란 것도 알고 영화의 첫 법칙이 속이는 데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난 그렇게는 못한다. 나는 너무나 호기심이 많다. 나는 이들의 모든 성격을 직접 겪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체중이 느는 동안 내면도 변화하는데 느낌과 행동에 변화가 온다. 등장인물과 같은 체중을 유지함으로써 그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와 같이 행동하게 되었다. 일어서 있노라면 늘어난 체중이 허리에 느껴진다. 이것은 마치 낯선 곳에 있는 느낌 같은 것이었다.”라고 햇습니다.
과대망상과 강박관념의 극치 <코미디의 왕>(1983)
80년대 SF 최고의 명작 <브라질>(1985)
종교를 초월한 진정한 인류애와 사랑의 실천에 대한 물음표 <미션>(1986)
악마 그 자체 <엔젤 하트>(1987)
현상범추적자와 마피아 도망자의 기막힌 여정 <미드나잇 런>(1988)
기면성 뇌염으로 40년 넘게 제대로 못 움직였던 환자 <사랑의 기적>(1990)
진부하지만 담백하고 진정성있는 중년남녀의 우정과 사랑 <스탠리와 아이리스>(1990)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악역 <케이프 피어>(1991년)
죽음을 속이고자 하는 남다른 집착을 가진 한 남자의 비극적인 이야기 <프랑켄슈타인>(1995)
스포츠 스타에 대한 애정을 넘어선 광기의 극치 <더 팬>(1996)
이렇게 사회고발물, 시대극, 휴먼드라마, 로맨스, 서스펜스 스릴러, 호러, SF, 코미디 등 모든 장르에서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입체적이고 압도적인 커리어를 구축하게 됩니다.
오스카와의 아쉬운 인연
로버트 드 니로의 엄청난 커리어와 명성에 비해 의외로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크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후보 지명 총 7회 및 남우주연상 수상 1회, 남우조연상 수상 1회로 총 2회 수상을 했습니다.
<대부 2>에서 비토 콜레오네의 젊은 날을 완벽히 소화해낸 명연기로 1975년 47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역사상 최고의 연기로 꼽히는 <분노의 주먹>에서 제이크 라모타를 연기하여 1981년 5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주인공 못지않은 존재감이 넘치는 최고의 조연
뜨거운 사나이들의 사명과 고뇌를 그린 <분노의 역류>(1991)
성장기속 시련과 아픔의 연속 <디스 보이즈 라이프>(1993)
20년동안 등지고 살던 불행한 자매가 가혹한 시련속에서 감정 응어리를 풀어가는 <마빈스 룸>(1994)
집단 성폭력을 당한 소년들의 복수극 <슬리퍼스>(1996)
그야말로 미친 조연 <재키 브라운>(1997)
진정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가치관과 선을 실천해나가는 삶 <위대한 유산>(1998)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최고의 심해 잠수사가 되는 과정 <맨 오브 오너>(1999)
나이를 잊은 연기에 대한 열정
20대~4, 50대의 젊은 시절에는 차갑고 강한 인상의 터프하고 날카로운 역할을 많이 맡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인상 좋고 따뜻하고 푸근하고 심지어 재치 넘치고 친근하기까지 한 아버지, 할아버지 역할이 많아지며 젊은 세대에게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각인된 배우 중 한 명이며 마이클 더글러스와 같이 나이가 들면서 느낌이 전혀 달라져 나이가 70이 넘어간 현재는 과거 청장년기 시절의 이미지가 매우 낯설만큼 귀여운 할아버지 같은 인상의 다른 느낌을 지닌 배우로 자리 잡아 신세대에게는 과거 젊은 시절의 이미지에 오히려 적응이 안 되는 케이스가 되었습니다.
60세가 넘은 나이까지 카리스마 있는 주연만 하겠다고 버티는 일부 배우들보다는, 늙어가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가며 젊은 주연배우들의 모자람을 옆에서 연기력으로 다듬어 주고, 그게 작은 배역이라도 원숙한 연기력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훨씬 대단하며 사실 나이 먹어서도 조연이든 주연이든간에 나올 때마다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건 지금도 젊을 때만큼이나 사기적인 것이 팩트입니다.
또한 드 니로가 구축한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와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기질은 여전히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며 이미 젊은 시절에 보여준 명연기들과 굵직한 커리어만으로도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의 상징으로 손꼽히기에 여전히 영화계에서 그의 존재감과 네임밸류는 영구결번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영화팬이라면 자신이 보러 간 영화에서 예상치 못하게 드 니로가 나올 때마다 친숙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사실 전성기에 비해 커리어가 약해졌다는 뜻이지, 2010년대 이후 출연 작품만 해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아메리칸 허슬>, <인턴>, <조이>, <조커>, <아이리시맨> 등 다른 탑급 배우들도 범접하기 힘든 넘사벽 커리어를 가지고 있으며 단지 그의 전설적인 전성기와 비교될 뿐입니다.
다만 이런 드 니로 특유의 살벌한 카리스마는 커리어 내내 양날의 검이 되어서, 푸근한 역이나 인간미 있는 역에 도전할 때마다 별 신통치 않은 반응을 얻었고 말년에 코미디물을 도전할 때에는 이런 살벌한 카리스마를 역이용하는 식의 연기를 보이기도 하였는데 이게 오히려 성공적인 결과를 얻게 되었고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벤 스틸러와 함께 출연한 <미트 페어런츠>가 있고
2012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열연하여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아메리칸 허슬>(2013)에서 엄청난 존재감과 위압감을 주는 이탈리아계 마피아 보스로 한 장면 등장하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나오는데다 크레딧에도 이름이 오르지 않지만 특유의 악센트 덕분에 알아볼 수 있으며 5분밖에 출연하지 않았지만 빅터 텔레지오라는 마피아 보스를 매우 인상적으로 연기했습니다.
의리가 있는 노년의 상남자 <라스트 베가스>(2014)
<좋은 친구들>에서의 양아치와 동일인물이라는 걸 연상시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의 연기력을 보여준 푸근하고 인자하며 지적인 간지 노년 <인턴>(2015)
여태 보지 못했던 드 니로의 저질스러운 변태 할아버지 <더티 그랜파>(2016)
그의 리즈시절 작품인 <택시 드라이버>, <코미디의 왕>에 영향을 많이 받은 <조커>
2019년 말, 마틴 스코세시의 역작 <아이리시맨>의 주인공인 프랭크 시런 역을 맡아서 갱스터 영화의 노익장다운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앞선 <조커>와 더불어 노년 커리어의 좋은 방점을 찍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23년, 역시 마틴 스코세시 감독작인 <플라워 킬링 문>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출연하여 작품과 연기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81세인 올해 영화는 범죄 스릴러물 <The Alto Knights>를 촬영중이고
<제로 데이>로 넷플릭스를 통해 배우 커리어 첫 드라마에 출연합니다.
영화감독으로서의 도전
트라이베카 영화제의 수장으로 유명하고, 자신의 제작사인 트라이베카 프로덕션을 소유하고 있는 드 니로는 감독 처녀작인 <브롱스 이야기>,
<굿 셰퍼드>(2006년)에서와 같은 감독으로서 도전했으며 실력은 나쁘지 않은 정도로 평가됩니다.
이처럼 배우로서 엄청난 커리어를 현재까지 유지하는 모습에서
영화사 역대 최고의 배우라는 호칭은 전혀 무색하지 않습니다.
결혼과 연애
로버트 드 니로는 흑인 여성에 대한 편력이 엄청난 걸로 유명하며 두 번 결혼했는데, 전부 흑인이었고, 사귀었던 애인들도 나오미 캠벨 같은 흑인 여성들이었습니다.
그의 첫 아내는 <택시 드라이버>에서 주인공 트래비스 비클이 포르노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영화관 점원으로 출연하고 코미디의 왕에서 리타로 출연했던 배우 겸 가수 다이앤 애벗(Diahnne Abbott, 1945-)이며 1976년 결혼해 1988년에 이혼했고 드 니로와의 사이에서 라파엘 드 니로를 낳았는데 첫딸인 드레나 드 니로는 로버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아니며 전 애인과 낳은 딸인데 로버트가 입양했습니다.
그 후 투키 스미스와 애인 사이를 유지했고 투키와는 시험관 아기로 대리모를 거쳐 1995년에 쌍둥이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투키 스미스(Toukie Smith, 1955-)의 직업은 모델이며 패션 디자이너 윌리 스미스(Willi Smith)의 동생입니다.
1997년에는 배우 그레이스 하이타워(Grace Hightower, 1955-)와 결혼했으며, 1999년에 헤어졌지만 2004년에 재결합했고, 2018년에 결별하였는데 그레이스와의 사이에 아들 엘리엇(1998-)과 헬런 그레이스(2011-)를 두었으며 헬런 그레이스는 대리모로 낳은 자식입니다.
2011년에 68세에 다시 한번 아빠가 되어서 미국에서도 상당한 이슈가 되었고 2023년 79살에 또 아빠가 되었기에 자식을 일곱 뒀는데 딸은 셋이며 아들은 넷입니다.
여담
이상형은 only 흑인 여성이다 보니 SNL에 출연해서 본인의 이런 성향을 빗대어 토머스 제퍼슨을 연기하기도 했는데, 스스로를 조롱한 드 니로나 미국의 국부인 제퍼슨을 거침없이 깐 SNL 제작진이나 대단하며 여기서 제퍼슨을 깠다는 건 그가 흑인과 연애를 해서가 아니라 제퍼슨이 자신의 아내 마사 웨일스 스켈턴의 이복자매이자 노예인 샐리 헤밍스를 임신시킨 혐의가 있어서 그렇다는 건데, 제퍼슨과 헤밍스는 무려 서른 살 차이였고 처음 제퍼슨이 헤밍스에 관심을 보였을 때 헤밍스는 10대 중반으로 미성년자였습니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인사, 그리고 뉴욕을 대표하는 인물답게 미국 민주당 지지자이며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에게 대놓고 '그가 대선 후보라니 미친 짓이다', '그는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같은 자다'라며 신랄하게 비판을 가하기도 했고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 2018년 토니상 시상식에 나와서 Fuck을 시원하게 날려주었습니다.
2015년 뉴욕대학교 예술대학 졸업 연설 때 박수를 받으면서 나와 첫 문장으로 '여러분, 졸업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제 X됐어요!'라고 말했고 장내는 당연히 난리가 났는데, 예대 나오면 취업 안 된다고 한 말이지만, 물론 웃자고 한 말이고 이후에 계속해서 위트와 함께 세상으로 나아가는 학생들에 대한 용기를 독려하는 따뜻한 축하의 말도 섞어주었습니다.
AFI 공로상 수상자 로버트 드 니로
<분노의 주먹>, <좋은 친구들>, <아이리시맨> 등 많은 작품에서 협업한 배우 조 페시와도 절친한 사이이며 조 페시는 드 니로가 AFI 공로상을 수상할 때 헌정하는 연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마무리하며...
제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배우 로버트 드 니로의 전기를 다시 한 번 써보는 시간을 갖았습니다.
적지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지만 영화 제목 아래에 그가 연기했던 모습을 올릴때 마다 그당시에 그의 영화를 보면서 느껴졌던 감정과 추억에 젖게되어 너무 행복했습니다.
아직까지 정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셔서 너무도 감사드리며 영화사 역대 최고의 배우의 마지막 행보까지 진심어린 응원을 보냅니다.
작성자 로더리고
“시간은 지나간다. 그러므로 당신이 해야할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해라. 당장 해라. 기다리지 마라.“
- 로버트 드 니로 -
첫댓글 저도 정말 좋아하는 배우...
어릴적 미션을 극장에서 봤는데 그때부터 팬이 되었습니다.
와 대단한 배우를 설명하는 대단한 글, 시간 가는줄 모르고 흠뻑 빠져서 잘 봤습니다.
전 40대인데 드니로 작품은 최근 몇개만 봐서 이력과 연기의 대단함은 이렇게 자세히는 몰랐는데, 이 정도로 연기의 정점이었는지를 알게 됐네요.
이런 댓글주시면 정말 큰 힘이 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전 대부를 작년에 다봤는데, 비토가 드니로인지 지금알았네요. ㄷㄷ
그당시는 날씬하고 샤프해서 지금하고 알아보기 힘들죠
진짜 미친몰입감 인거같습니다.. 영화 친구2에서 주진모가 그대로 따라했는데도 그거도 그런대로 쟈밌죠
저는 영화 '미션'에서 원주민들 앞에서 우는 장면의 연기가 압권이었습니다.(게시글 움짤 장면) 노예사냥꾼이 원주민에게 용서받았을 때였는데 기가막히게 연기하더군요
모레꼬네 음악 막 흐르고~
공감합니다 ^^
성난황소 오프닝 다시 보고있네요
드 팔마가 성난황소에 대해 언급한 것이 기억나네요 ,영화관에서 레이징 불의 오프닝을 보면서 주먹을 불끈쥐고 ,스콜세지가 또 저만큼 앞서 가버리는구나 라고 탄식했다는 ,,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을 사용한 오프닝은 역대 최고라고 봅니다.
역대 오프닝 음악중 그냥 압도적 톱입니다.
대단한 배우 !!
우리나라에서는 최민식 배우가 필적할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최민식 배우도 엄청나죠^^
저에게 드 니로 최고의 연기는 원스 어펀 어 타임 인 어메리카에서의 누들스 였습니다 ,마지막 씬에서 부감으로 드니로의 얼굴을 서서히 클로우즈업 시키는 장면을 볼때의 그 충격을 잊을 수 가 없네요 ,
아마도 원타아를 보신 모든 분들은 말씀하신 장면을 잊으실 수 없을거라고 봐요.
저 세대 배우들 중 가장 좋아하는 인물인데, 멋진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알 파치노, 잭 니콜슨. 더스틴 호프만까지 그 중 드 니로를 가장 좋아합니다^^
정말 위대한 배우.
영화 인턴에서 엄청난 저력을 느꼈습니다.
노년의 간지가 멋지게 물든 작품이었죠^^
Are you talking to me?
캬아... 본문에도 언급되었지만 드 니로의 의견이 많이 피력된 영화사 가장 인상깊은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정성글 잘 읽었습니다.` ^^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역시 제이크 라모타 연기가 최고였습니다. 그는 항상 칼을 감추고 있는 듯한 위험함을 풍기는, 어딘가 귀족적이고 고고해보이는 사람으로만 보였는데 성난 황소에서는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어요.
알 파치노와 함께 우열을 가를 수 없는 배우입니다.너무 너무 좋아합니다..,. 한 씬에 같이 출연한 마이클 만의 히트는 정할 전율했습니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