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로 또다시
서울로 가는 기차는 꽃소식을 가득 안고서 휘파람을 불며 가고 있다. 온통 세상이 꽃 잔치다. 세상이 정신없이 돌아가면서 바쁘다고 아우성이니 꽃들도 한꺼번에 툭툭, 팡팡, 톡톡, 꽃망울을 터뜨리나보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봄꽃들이 봇물 터지듯 산과 들에서 합창을 하는 지금, 소리치고 싶다. 이런 날에 몸살을 앓지 않으면 어찌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봄이 되어 내 삶의 봄날을 만나러 서울로 가고 있다. 우산 없이 걷던 덕수궁 돌담길 모퉁이에 우연인 척 서 있던 그 사람처럼, 몇 사람 타지 않는 어느 간이역에서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거짓말처럼 내 앞에 서서 웃던 사람. 감동은 생각지도 않은 엉뚱한 장소에서 일어난다. 홀로 나선 여행길에 조금은 지루하고 따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초콜릿처럼 다가와서 여행길에 동행을 해주니 감동이 폭발한다. 눈물 나도록 감사한 삶이다. 너무 감사해서 눈물을 닦을 수건을 가슴에 서너 개 쯤 달고 싶다.
서울역은 낯선 모습으로 맞아주었다. 예전 서울역은 옆으로 비켜서서 박물관에 전시품으로 놓여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을 올랐다. 중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놀러 다니던 곳이다. 남산 식물원에서 사진도 찍고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면서 계단을 오르내리던 단발머리 소녀들이 개나리처럼 웃고 있다. 마치 영화 필름처럼 돌아가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면서 더듬더듬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달나라 공주는 하늘 꼭대기에서 남산타워 몸뚱어리만 한 컵에 팝콘을 사 들고 콜라를 마시면서 서울을 접수하고 있었다. 유리성에 갇혀서 바라본 서울은 어려서 보았던 세상이 아니었다. 거인처럼 느껴지던 신문사 건물이나 사옥들도 이제는 거대한 빌딩 숲에 묻혀서 추억의 장소로 남아있다.
광화문 분수대에서 이순신 장군과 반갑게 해후를 했다. 광화문 연가를 부르며 우리는 어쩌면 너무 열심히 살아온 시간을 울먹이며 줍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선배들이 부르던 자유와 사랑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비밀 일기장에 적으면서 살았다. 그 시간이 서럽도록 그리운 것은 순수했고 감정에 솔직한 맑은 향기가 나는 시간인 까닭이다.
월요일이라서 휴관을 하는 곳이 많았다. 우리는 걷고 또 걸으면서 서울을 만져보고 있었다. 내가 커버린 것일까. 하루가 다르게 명동은 변화를 거듭했을 텐데 지금 걷고 있는 거리는 예전의 명동이 아니었다. 어쩌면 공유할 수 있는 곳이 사라진 부재의 공허감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시작은 언제나 설렌다. 평화시장에서 검은색 여름 모자를 샀다. 이렇게 우리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저곳에서 너를 처음 보았지? 광화문 네거리에서 우리가 첫 키스를 나 누었잖아! 서울역 시계탑 앞에서 첫눈이 내리면 만나자! 남대문 시장 구루마 표 귀걸이를 처음 너에게 선물했잖아, 꽃잎들이 바람에 실어서 문자를 보낸다. 처녀처럼 다가온 서울이라는 섬에서 우리는 남산 언덕길을 오르며 그렇게 힘들었던 이 길을 가볍게 걸어 내려온다고 속삭이며 웃었다.
영원함을 약속하며 매달아 놓은 열쇠를 보면서 내가 걸어놓은 열쇠는 몇 개나 될까 생각해본다. 열쇠마다 소중한 향기가 전해진다. 죽도록 사랑한다는 혜교와 달수의 열쇠. 달수와 혜교는 죽을 만큼 사랑했던 시간을 남산에 새겨놓은 것이다. 벚꽃이 날리는 거리를 걷는 두 사람을 그렸다. 우리 행복하자! 이렇게 적었다.
‘너에게로 또다시 돌아오기까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서울은 그랬다. 다시 돌아가는 것이 두렵고 힘들었다. 세상은 다 변했다. 나는 새로운 땅 위에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것이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깨에 기댄 채 아가처럼 잠을 자는 여자를 물푸레 그림자 같은 여자라고 누가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