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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4. 1. 26. 17:14
■ 대한제국의 행정개혁
▲1897년 대한제국 관제개혁 / 누구 인물사진인지 잘 모르겠음.
▲1898년 의회 설립(중추원 : 임명의원 25명, 민선의원 25명)
▲옛 서울시청[한성부 청사]의 모습.
▲1894년 경무청(警務廳)을 창설/근대 경찰제도의 시작.
▲1895년 근대소방시스템 도입.
▲1895년 전 국민평등법제정/반상의 차별철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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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과 통신 분야개혁
▲1898년 전차 운행을 개통 했다.
▲1898년의 종로거리 모습
당시 종로의 전경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사진입니다. 길을 중심으로 오른쪽이 북쪽 입니다.
육의전이 위치한 장랑 뒷쪽으로 피맛 길과 그 안의 사람들의 모습이 잘 보입니다.
조선시대에 주도로 이면에는 피맛길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피맛길이 조성되었던 길로는 종로와 남대문로, 돈화문로가 있었는데, 현재는 종로 북쪽과 돈화문로에 그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현재의 피맛길을 걷는 것은 600년 전의 길을 걷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종로2가와 3가천변 너머의 시가 전경입니다.
기와집 천지인 한성부의 시가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로 남쪽사진은 햇빛의 방향으로 인해 사진 찍기가 어려워서 귀한데, 이 사진은 종로의 남쪽 모습과 서울 중심의 분위글 파악할 수 있는 귀한 사진입니다. 가로에는 전차 노선이 보이나 자동차는 보이지 않고, 오후 거리를 활보하는 한성부민의 모습이 보입니다.
▲ 1898년 한성전기회사 설립. 전기보급을시작했다..
한성 전기회사는 1898년 고종황제가 미국인콜브란(Collbran)의 조언 아래 이근배, 김두승 두사람의 이름으로 설립한 우리의 민족기업.
1887년 한성 전기 회사보다도.. 11년 앞선 1887년 경복궁내의 건청궁에서는 전깃불이 켜졌습니다. 에디슨이 백열등을 발견한지 고작 8년 지난 1887년 3월6일 서울에서 전깃불이 켜졌으며. 그 당시 세워진 발전 설비는 동양에서 가장 뛰어난 16촉광열 750개를 점등할수 있는 역량이였다고 합니다.
이때 발전기를 조립 설치 전등 가설등은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의 윌리엄 멕케이라는 전기 기사가 맡았습니다. (고종과 에디슨이 이후 긴밀한 관계를 맷었 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먹히지 않았다면 산업적으로도 급성장 했을 수도 있습니다.
▲1899년 철도개통(1899년 촬영) 대한제국 최초의 철도는 경인선 미국자본에 의해 건설됨.
경부선은 미국 자본이 경부선 부설권을 확보했으나.. 1901년 영국에서 자본을 빌려온 일제가 부설권을 미국으로부터 사들여서 자신들이 건설하였으며..경의선은 1896년 프랑스 피브랄사가 부설권을 획득하였으나.자금조달 실패로 부설권을 상실하였고...
1897년 대한철도회사가 부설권을 사들였으나 또다시 실패하자..1900년 정부기관인 내장원이 서부 철도국을 설치하고 서울 개성간 측량 중에 러일전쟁 발발하였고. 일제가 임시 군용 철도통감부를 설치하고 공사를 하였고 대륙침략의 노선으로 활용했다.
▲1897년 착공, 1900년 개통된 한강철교.
▲1884년 근대 우편제도 실시(당시의 우체부 모습)
▲1885년 電信개통/통신원직원 기념촬영.
▲1885년 電信개통/통신원직원의 기념촬영.
청일 전쟁에서 대한제국의 전신망을 활용한 일본군은 청나라 군을 손쉽게 재압할수 있었다.
▲1903년 자동차 수입시작.
▲1904년에 촬영한, 오늘날 신촌 세브란스병원
1885년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왕립 광혜원이 H.N. 앨런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대한의원(1907년 촬영)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1877-1910/33세)
▲1903년 제네바협약 가입. 적십자 활동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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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軍隊)
▲1881년 군제개편
대한제국 군대는 황제를 대원수로 황태자를 원수로하는 원수부가 최고사령부 역할을 하였으며, 원수부 내에는 군무국, 검사국, 기록국, 회계국, 4개 부서가 있었고. 원수부 예하에 호위대, 친위대, 시위대, 진위대, 무관학교, 헌병대(헌병대 사령부)등의 부대를 두고 있었다.
호위대는 대대급으로 황실에 대한 근접경호를. 친위대와 시위대는 총 11개 대대로 수도 및 궁성 수비를 담당하는 중앙군 임무를 담당했고. 진위대는 총 18개 대대로 국경 수비 및 지역 치안을 담당하는 지방군 역할을 하였으며 무관 학교는 교육기관 장교 양성을 하였고. 1900년에 창설된 헌병대는 군대내의 경찰역할을 하였다.
1902년 10월 30일 당시 원수부 250명. 호위대 730명. 친위대 4400명. 시위대 5180명. 진위대 18100명. 무관학교 70명(+생도는 600명)등으로 대략 총 28,700명에 달하였다.
1905년 4월 일제의 압력으로 러시아식 편제에서 일본식 편제로 개편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7700명으로 대한제국군의 숫자가 줄었으며. 이마져도 1907년 8월 1일 군대가 본격해산되었고.. 해산된 군인들중 일부가 의병화 하였다.
▲대한제국 황립 무관학교 교관들과 생도들.
1896년 무관학교에선 1년의 교육과 함께 5명의 졸업생을 배출합니다. 친일내각과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될때 자결헀던 대한제국군 시위대 제 1대대장 박승환 참령 독립군으로 무장항일운동을 벌였던 사재흡. 신팔균. 이분들 1회 졸업생 이라고 합니다.
1898년 광무2년 군부대신의 건의에 의하여 무관학교 역시 본격적으로 설치됩니다. 황제가 칙령 11호 [무관학교관제]를 반포하면서 대한제국에 근대적 군사교육기관이 설치. 당시 정원은 200명이었는데.. 무려 1700여명이 지원하여 지금의 사관학교를 능가하는 치열한 경쟁율을 보였다.
교육기간은 1년으로 원수부의 특별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만 졸업자격증이 부여되었고 졸업생들은 종6품 참위[소위]로 임명되었다.
무관학교는 1896년부터 1909년까지 49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져갑니다.
이회영 선생님이 만주에 세운 신흥무관학교 독립군의 양성소 역활을 했던 신흥무관학교는 대한제국 무관학교의 교육내용을 그대로 따랐고.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이세영 이관직 이장녕 김창환 등]의 상당수가 대한제국 무관학교의 졸업생들입니다.
이름있는 항일 무장 독립운동을 벌인 지청전. 유동렬. 이동휘. 신규식. 민긍호. 김혁. 등등 대한제국 무관학교 출신들이며. 청산리 대첩의 김좌진 장군도 대한제국 무관학교 출신이다.
▲신식무기의 도입(암스트롱 포)
▲1900년에 촬영한, 해군사관학교 모습입니다.
1894년, 국내 최초의 해군사관학교를 강화도에 설립하였으며 영국 해군 대위 코렐과 하사관 허치슨이
강화도에 들어와 해군생도들의 근대적 군사훈련을 맡았다.
▲1903년 신식군함을 도입하였다.
대한제국의 군함 도입사업의 정보를 입수한 일본은 미쓰비씨를 통해서 신형 군함값 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인 55만엔을 받아낸 후.. 고물 화물선에 포 몇문 설치해서 대한제국에 넘겨주는등 사기까지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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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개혁
▲1883년부터 근대교육을 실시하다.
대한제국의 근대 교육은 1883년 원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조선 북부 지방의 작은 상업도시였던 원산에서 뜻있는 주민들끼리 성금을 모아 "원산학사"를 설립했습니다. 문예반과 무예 반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교과과목은 공통과목으로 산수(수학)·물리·기기(機器)·농업·양잠·외국어·법률·지리를 배웠으며, 심화과정에 들어가면 문예반은 경의(經義), 무예 반은 병서(兵書)를 가르쳤다.
이후 전국적으로 학교 설립운동이 시작되어 1910년 까지 200개가 넘는 근대 사립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이어 외국인들도 근대교육시설을 설립하였는데, 1883년 묄렌도르프와 T. E.핼리팩스에 의한 영어전문학교 설립.1886년에는 국가에서 귀족 전용학교인 "육영공원"도 설립하였습니다.
배우는 과목은 영어, 독서, 습작, 한문, 산학(수학), 지리, 사소습산법(寫所習算法)을 배웠고, 심화과정으로 대산법(고등수학)과 외국의 역사, 언어, 정치 등을 배웠습니다.
또한 1885년 아펜젤러에 의해 설립된 배재학당이 설립 되었고. 교과목은 한문 ·영어 ·수학 ·역사 ·지리 ·과학 ·음악 ·성경 ·미술 ·체육 ·번역 ·교회사를 가르쳤고.. 특별반을 두어 심화과정을 교육하고, 수공과(手工科)를 설치하여 근대기술을 가르쳤다. 졸업생으로는 김유순 ·김규식 ·안창호 ·서병호 ·윤동주 ·이승만등이다.
1886년 여자선교사 스크렌턴에 의하여 여성 고등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이 설립되었고, 이화학당의 학교명은 명성황후가 내려준 교명이었다. 1894년 조선에서 근대개혁인 갑오개혁의 실시로 과거시험 폐지. 조선국립대학인 성균관이 자체적으로 근대학문을 교육하자 전국의 서당들이 개량서당으로 명칭을 바꾸고 근대학문을 가르쳤다.
1895년 3월 법관양성소가 세워져 근대적 재판관을 양성했고, 4월에는 관립한성사범학교(官立漢城師範學校)가 설립되어 전문교사를 양성했다. 뒤이어 국립 일어학교, 국립 중국어학교, 국립 영어학교가 세워졌고. 이때부터 전문 지식인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1895년 고종이 발표한 "교육입국조서" 한 대목을 발췌 소개하면 .
[세계의 형세를 보면 부강하고 독립하여 잘 사는 모든 나라는..다 국민의 지식이 밝기 때문이다. 이 지식을 밝히는 것은 교육으로 된 것이니. 교육은 실로 국가를 보존하는 근본이 된다. 교육은 그 길이 있는 것이니, 헛된 것과 실용적인 것을 먼저 구별하여야 한다.
이제 짐은 정부에 명령하여 널리 학교를 세우고..인재를 길러 새로운 국민의 학식으로써..국가 중흥의 큰 공을 세우고자 하니, 국민들은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덕과 건강과 지식을 기를지어다.왕실의 안전이 국민들의 교육에 있고, 국가의 부강도 국민들의 교육에 있도다.]
1897년 대한제국 광무개혁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며, 전국에 소학교. 중학교를 세웁니다.
1899년에는 국립 경성의학교(京城醫學校)와 상공학교(商工學校)가 세워졌고. 경성의학교에서의 졸업생은 주로 국립병원인 "대한의원"에서 근무했습니다.
1897년 설립된 기술학교 우무학당(郵務學堂) ·전무학당(電務學堂)을 비롯해. 1899년 설립된 광무학교(鑛務學校) ·직조학교(織造學校) ·공업전습소(工業傳習所) 등의공업 기술 전문학교에서는 공업기술자를 많이 배출했으며, 이 학교들의 졸업생은 조선의 근대기업 대조선저마제사회사(大朝鮮苧麻製絲會社), 대한제국인공양잠합자회사(大韓帝國人工養蠶合資會社), 종로직조사(鍾路織造社), 한성제지회사(漢城製紙會社)등에 취직되었다.
1899년 독일어 전문학교, 러시아어 전문학교, 프랑스어 전문학교가 생겨났고. 1899년에는 최초의 남녀공학 "점진학교"가 세워지기도 했다. 1899년 철도가 개통되자 1900년 사립철도학교(私立鐵道學校)가 설립되었으며. 철도기술을 익힌 졸업생들은 대한철도회사(大韓鐵道會社), 부산철도회사(釜山鐵道會社)등에 취직하였다.
1895년 고종이 반포한 교육입국조서의 내용(전문)
홍범 14조 교육에 관한 조항
제11 우수한 젊은이들을 파견시켜 외국의 학술·기예(技藝)를 받아들인다.
제12 장교(將校)를 교육하고 징병을 실시하여 군제의 기초를 확립한다.
제13 민법·형법을 제정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제14 문벌(門閥)을 가리지 않고 널리 인재를 등용한다.
▲1883년 당시의 근대교육용 교과서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지지로 들어선 김홍집 박영효 내각은 독일 러시아 프랑스의 삼국간섭으로 조선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되자. 고종은 조선내부의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1895년 5월 김홍집 내각을 실각시키고 박정양 내각을 출범시킨다.
고종이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하자 1895년 8월 20일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발생하고, 그 와중에서도 고종은 그 당시 친미 반일파였던 이완용을 교육대신으로 앉히고 교육개혁을 적극 추진하였다. 먼저 학무아문을 독립시켜서 소학교. 중학교. 대학교. 사범학교. 기예학교. 전문학교의 틀을 잡았고.....
1895년 5월 10일 외국어 관제.
1895년 7월 2일 성균관 관제.
1895년 7월 19일 소학교령.
1895년 7월 24일 한성 사범학교 규칙 同 부속소학교 규정
1895년 8월 9일 성균관 경학과(經學科) 규칙
1895년 8월 15일 소학교 교칙대강
특히 1895년 7월 19일 소학교령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근대적인 초등교육의 체계와 내용관리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처음으로 제도화하였고. 그중 주목할 부분은 ‘만7세부터 만15세까지 8개년으로 학령을 정함’(제16조)이라는 구절인데, 근대적 학제에 의한 초등교육의 의무화를 규정하였다.
또한 ‘소학교 교칙대강’에 의하면 학생들에게 오륜행실(五倫行實), 소학(小學) 등 전통과목 외에 한글이나 국한문(독서, 작문, 습자), 역사, 지리, 산수, 물리, 화학, 체조 등을 가르침으로써 서구 문물에 대한 교육과 함께 사회와 자연을 이해하고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체득할 수 있게 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서울에 관립 10개, 지방에 공립 50개교가 설립됐다. 한일병합 직후인 1911년 보통학교의 수는 306개(학생 수 32384명), 사립 각종학교의 수는 1467개(학생 수 57532명), 근대교육을 시키는 개량서당의 수는 16540개(학생 수 141604명) 였다고 한다.
▲1885년 서양시찰의 첫 유학생 유길준선생.
유길준은 황실의 지원으로 미국유학을 갔다 왔어 중용되었지만. 한국의 전통을 무시한체 너무 과격하게 급진적으로 개혁을 시도했기 때문에 황실과 마찰이 일어 날수 밖에 없었다. 만약 유학파들과 개화파들이 고종황제의뜻대로 전통을 지키면서 실용적인 개혁을 추진했었다면 일제 식민지 지배로 들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지 여겨진다.
▲1886년 여성교육 실시
▲1899년 외국어 전문학교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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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 정책
▲1883년 근대언론 시작/신문사 모습.
▲1896년 민간신문 발간.
고종황제의 후원으로 서재필 등이 국민계몽 차원의 독립신문이 발간되었고, 대한제국의 각 분야를
계몽시켜 나갔다.
▲1898년 일간지 발행시작.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광고는 1886년 2월 22일자 한성주보에, 실린 세창
양행의 광고가 최초의 신문 광고입니다.
▲1898년 민중집회(만민공동회)
고종황제의 지도력으로 서재필 등이 국민 계몽차원의 민중집회가 초창기에는 잘 이뤄졌으나,
박영효 같은 친일파들이 민중집회를 왜곡해서 고종황제를 무력화 시키려 해서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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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개혁
▲1902년 근대화폐제도 실시.
▲유통된 금화
▲1904년 은행권화폐 .
▲1888년 미국 워싱턴 주재 영사관 업무시작.(사진은 1891년 촬영)
▲국립극장 원각사(1908년)
▲1898년의 명동성당/1886년, 종교와 선교의 자유가 이루어졌다.
▲1890년 성공회 병원(성누가병원)설립
친일 및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근대화 시켰다고 하는데. 일제가 뭘 우리나라를 근대화 시켰는지 위의 사진 자료들을 보면 그 허구성을 입증한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근대화 하려는 일을 훼방질만 한게 일본이고. 대한제국의 근대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러시아와 전쟁까지 하면서 일제는 다급하게 설쳤다는 것을 알수있다..
위의 사진 자료에서 보듯 대한제국 시대에 이미 근대화 조치는 거의 다 끝났고. 반상의 차별철패, 신문을 통한 국민계몽. 전국의 수많은 소학교부터 시작한 학교 설립으로 인재를 길러내고 있었고. 상업을 지원하는등 대한제국은 근대화 조치가 꽃 피우기도 전에 일제에 먹혀버린 우리나라의 비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