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한 ‘영어능력’을 요구하는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께
대한민국에는 쳐야 할 영어시험이 참 많습니다. 공인영어시험으로 TOEIC, TOEFL, TEPS, GRE, GMAT, TOEIC Speaking, OPIc, G-TELP 등은 물론이고, 영어가 필수적인 과목으로 들어간 입사시험이나 중등교원임용시험, 대학원 시험도 많습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중등교원임용시험과 통번역대학원 입학시험은 요구하는 영어능력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합니다. 이런 시험에 최종합격 하기 위하여 영어를 익히려는 분들을 위해 제 경험에 비춘 도움이 될 만 한 지침을 드리고자 글을 씁니다.
2002년 처음 통번역대학원 입시반을 운영하게 되면서 강의를 시작했고, 그 이후 2005년을 전후해 이름을 달리 하여 ‘이름없는강의’를 개설해 지금까지 8년여를 가르쳐 왔습니다. 강의명을 바꾸게 된 것은 통번역대학원 입시반을 운영하면서 느낀 바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높은 영어능력을 요구하는 시험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시험준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보고 회의를 느꼈습니다. 즉, 근본적인 영어의 어학적 소양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험준비]만 하다 보면, 겉모양은 그럴싸하게 만들 수 있지만 실제 시험에서 요구하는 ‘영어능력’은 투자한 시간만큼 길러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느낀 것입니다.
결국 [시험준비]용으로 [공부]한 영어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영어를 언어로 받아들여 듣거나 말하고 읽거나 쓸 때, 주제를 막론하고, (전문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언제라도 자연스럽도록 하는 훈련이 되어야 그 위에 ‘페인트칠’만 하면 보기 좋은 튼튼한, ‘반석 위에 세운 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의 영어 숙달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외국어를 익힌다는 것은 그 말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모사(mimicking)’하는 노력입니다.
이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말을 모사하는 훈련을 할 것인지를 잘 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초등학교 2학년생과 대화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잘 듣지 못하고, 그 아이들에게 ‘버벅’거리고 있다면 아직 신문을 읽는 것은 비용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입니다. 생후 6개월 된 아이에게 몸에 좋다고 beef steak를 줄 수는 없는 일인 것입니다. 내가 말을 말로 받아들여 실제로 대화나 글에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말들이 (비교적) 충분히 갖추어져, 말을 머릿속에서 ‘조립’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입으로 의미를 떠올림과 동시에 말이 나오는지를 가늠해보셔야 합니다.
이것도 아직 어느 정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들이 한다고 나도 기출문제집을 풀어보고 남들이 듣는 강의를 듣는다면 애초부터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미국 아이들이 보는 영어동화책을 들으세요. 무슨 말인지 알아보고, 영영사전을 활용해 단어와 어구를 정리하고, 의미와 뉘앙스까지 파악한 다음 소리를 들어가며 그대로 ‘모사’하세요. 정확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는 다독은 다독(多讀)이 아니라 다독(다~(모두) 毒)입니다. 모사를 충분히 많이 해서 입에 ‘착’ 하고 붙게 하세요. 이것이 많아지면서 말의 순서와 어법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자리잡게 됩니다. 이 부분을 받아들이셔야 제가 말씀 드리는 다른 부분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외국어를 익히는 방식과 모국어를 익히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같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맥락에 수도 없이 노출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된 것이 모국어라면, 모국어가 자리잡은 상태에서, 맥락에 수도 없이 노출되면서 (모국어만큼 빨리는 아니지만) 습득하는 것이 외국어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맥락에 수도 없이 노출되는 것이 외국에 살면서 오랜 기간에 거쳐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습득하게 되거나,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반복해서 습득하게 됩니다. 후자의 상황을 만들어 외국어를 익히자는 것이 한선생의 생각입니다. 이것을 본인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쉬운 말들을 따라 하면서 하시라는 것입니다.
이미 이런 과정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훈련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그 다음에는 ‘어른의 말’을 익히는 것이 좋습니다. 신문과 뉴스방송, 미국드라마, 헐리우드 영화, 소설 및 비소설류 등의 모든 매체를 활용합니다. 이것 역시 가능한 한 소리로 하는 것이 ‘비용효율성’ 측면에서 훨씬 낫습니다. 결국 들을 수 있는 말을 나도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면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습니다. 모국어를 ‘말’부터 배웠나요 아니면 ‘글’부터 배웠나요. 또 말은 ‘듣기’부터 했나요 ‘말하기’부터 했나요. 어떤 분들은 본인에게는 읽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받아쓰기를 하라고 하면 쳐다도 안봅니다. 그건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오히려 시간이 없어서 받아쓰기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의 틀을 체화해서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이 글을 읽어서 그것을 하려고 하면 받아쓰기를 해서 익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어른의 말’을 배우고자 익히다 보면 생소한 주제와 생소한 어휘, 길어진 문장 때문에 처음에는 매우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신문을 읽으라고 주었을 때, 그 아이가 느끼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곧 익숙해집니다. 우리의 영어는 유치원생일지언정 우리의 머리는 성인의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듣고 받아쓰고 읽고 어휘/어구를 영영사전을 이용해 정리하고, 그 정리내용을 매일 다시 소리 내서 읽어보고, 멋져 보이는 문장들은 선별해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외웁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보고, 매일 영어로 일기를 씁니다. 이것을 하다 보면 역시 말들이 한결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그 다음 단계는 다청과 다독입니다. 틀이 잡혔다 해도 이것이 충분히 많은 맥락에서 반복해서 ‘훈련’되지 않으면 말이 진정으로 자기 것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영어를 매일 매일 30년 동안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던 사람들의 영어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루에 신문기사를 다섯 개 읽고, 영어뉴스를 매일 보고, 좋아하는 미드를 정해 자막 없이 매일 한 편씩 보세요. 잘 생각해보면 영어는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겁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기본적인 언어의 틀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다청과 다독으로부터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한, 영어를 훈련한다는 것이 어떤 단계에서 무엇만 해야 하고, 어떤 단계에선 무엇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보고 듣고 말하고 읽고 통째로 암기하고 단어를 정리하고 중얼거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앞서 설명 드린 ‘단계’는 초반에 말씀 드린 대로 ‘지침’으로 큰 그림을 그려보려 한 것입니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동화책/소설 듣고 보기를 중단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연설을 듣다 보면 참 쉬운 말들로 청중을 사로잡습니다. 편식 없이 좋은 영어는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한형민어학원은 이 훈련을 하도록 돕는 곳입니다. 맥락이 잘 녹아 있는 좋은 콘텐츠를 마련하고, 그것을 뉘앙스까지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돕고, 잊을 만 하면 잔소리를 하고,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나태해지지 않도록 돕는 곳입니다. 그러니, 사실 영어 배우는데 학원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단, 남들 한다고 그냥 따라 할 것이 아니라, 영어를 익히는데 있어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를 이해하고, 겸손하고 성실히, 묵묵히 꾸준히 해야 합니다.
참으로 영어 배우는 방법에 대한 주장도 논란도 많은 세상입니다. 누구는 맞고 누구는 틀리고 내가 맞고 당신은 틀리고… 하는 무익한 논쟁에 시간낭비 하지 마시고(그 시간에 한 자라도 더 보세요) 동의가 되는 방법을 택해 그것을 소처럼 묵묵히 해 나가십시요. 제가 항상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Modesty is your best teacher. 방법은 성실함 다음입니다. 항상 겸손하게 묵묵히 하면 이런 지침이 없이도 할 수 있습니다. 2014년 한 해,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고, 원하는 자격증을 따고, 원하는 시험에 합격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