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시험 답안지(科擧試驗 答案紙) 과거시험 모범답안 모음 (대한제국)
대한제국(大韓帝國) 시기에 선희궁(宣禧宮) 내에서 사용하였던 인쇄된 서식(書式)으로 서식의 사면(四面)에 적색 테두리가 있고 중앙부위에 태극문양(太極紋樣)과 왼쪽 하단부에 선희궁(宣禧宮)의 글자가 문양(紋樣)되어 있다.
기록한 글의 내용은 임오(1822년), 계미(1823년), 갑신(1824년), 을유(1825년). 병술(1826년)에 치뤄졌던 과거시험(科擧試驗)에서 출제(出題)되었던 과년도(過年度) 문제의 답과 과거시험(科擧試驗) 실시 일자, 합격자 명단(名單)등이 있다.
당시 과거시험(科擧試驗)은 초시(初試), 회시(會試), 알성(謁聖), 국제(菊製), 부전(赴展), 원자궁진후평부경과제초시진시(元子宮疹候平復慶科除初試進試), 오제(梧製), 생획(生劃), 충양과(忠良科), 별시일소(別試一所), 동당일소(東堂一所) 등 다양하였다.
특히 순조왕의 맏아들이었던 효명세자가 궁내에서 진료받은 후 회복되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경과(慶科)를 치루었던 시험문제도 포함되어 있으며 시험문제는 서경(書經), 시경(詩經), 맹자(孟子) 등의 싯귀를 주고 이를 해제하는 것으로 출제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있는 조선시대 중종(中宗)에서 선조(宣祖)까지 과거에 합격한 19명의 급제자가 주제에 대한 주장을 논술하고 있는 과거시험 모범답안을 모아놓은 동책정수(東策精粹)와 유사한 형태의 문서이다.
※ 선희궁(宣禧宮)은 영빈이씨가 사망한 해인 1764년(영조 40)에 건립되어 의열묘(義烈廟)라 하였다가 1788년(정조 12)에 선희궁으로 고친 후 1870년(고종 7) 위패를 육상궁(毓祥宮)으로 옮겼다가 1896년 또 다시 선희궁으로 되돌린 뒤 1908년(순종 2) 다시 육상궁으로 옮겼다가 현재는 서울 종로구 궁정동의 칠궁(七宮) 안에 있으며 경우궁(景祐宮) 묘사(廟祀) 안에 합사되어 현제 칠궁(七宮)으로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