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소개로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어느 재즈클럽에 간 적이 있었다. 별 기대 안하고 간 그곳에서 재즈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재즈가 들렸다. 재즈가 느껴졌다, 귀에 익숙한 해외 재즈음악 보다 그가 작곡한 곡의 연주를 들으면서 신기하게도 재즈는 나에게 찾아왔다.그들의 연주를 계속 들으면서 놀랍게도 나는 그의 음악적 매력에 빠져서 열광해 본 최초의 재즈밴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바로 이한진밴드다.
이한진밴드의 곡은 한국의 정서가 잘 담겨있고 누구나 들으며 공감하며 느낄 수 있다, 그가 작곡한 곡들을 들어보면 누구나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데다 재즈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한진 밴드의 앨범에 수록된 곡들과 그의 라이브 연주를 자주 들으면서 이젠 그의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즈 뮤지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그리고 재즈공연도 찾아서 가 볼 정도로 호기심이 충만하게 되었다, 이렇게 재즈를 즐겨듣는 음악 중 하나로 만들어준 이한진밴드를 만나 보았다.
Q. 트롬본은 언제 부터 시작했나요?
음악에 취미가 있었지만 전공할 생각이 없어서 기술을 배우려고 공고를 들어가게 되었어요, 인문계보다 실업계고가 이런 예능이 활성화 되었잖아요, 그 당시에는 나팔을 불어야 하니까 음악성과 상관없이 키크고 등치 좋은 아이들을 뽑았었거든요. 선배들이 반에 돌아다니며 “너,너."하며 "올라와 "해서 밴드부에 갔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재미있더라구요. 트론본은 흔하지 않는 악기라 접해보니 소리가 좋더라구요, 재미있게 하다보니 소리를 잘 내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시 음악선생님께서 이런 저를 보고 음대진학권유를 해주셔서 본격적으로 고2때 트롬본을 하기 시작했어요,
Q.음대레슨비도 만만치 않으셨을텐데...
어머니께서는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적극적으로 밀어주셨지만, 아버지께서는 심하게 반대하셔서 악기도 안사주셨어요,어머니께서는 악기를 그 당시 야마하 중고로 (누군가 몇년간 구멍나기 직전까지 쓰던 악기)로 60만원을 주고 사주셨어요, 저는 이 악기로 대학 시험을 봤어요.
어머니께서 여대앞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저를 밀어주셨어요, 아버지께서는 대학에 합격하니 그때서야 악기통반 왔다갔다 한게 아니었구나하며 인정을 해주시게되었구요.
그는 아버지게만 인정만 받은 게 아니었다,ㅡ 대학때는 동아음악콩쿨에서 입상을 했으며, 후에 관악기 제조회사 conn-selmer world Artist로 아시아 최초로 AKG microphone Artist 선정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악기를 평생 사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는 국내에서 인정받으며 실력있는 트롬본 연주자가 되었고, 3집까지 앨범을 내기도 한 뮤지션이다,
Q. 재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음대라 클래식을 할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군대에서 재즈의 영향을 받아 맘이 많이 재즈쪽으로 기울려지더라구요,제대를 하고 학교다니면서 클래식과 재즈를 같이 하게 되었어요. 재즈를 하면 할수록 매력이 너무 크다는 걸 느꼈어요.
Q.트롬본을 배우고자 하는 하는 사람들이 많나요?
트롬본 연주를 배우려는 일반인들이 다른 섹소폰이나 악기에 비해 조금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종종 있어요. 제가 지금 7군데 학교를 출강하고 있어요, 보통 어렸을때부터 관심있어 하는 사람도 있고, 실용음악을 공부하는 친구들이 종종 트롬본을 배우려고 찾아 오기도 하구요.
Q.트롬본 연주하기 위해 따로 운동하시는 거 있나요?
그냥 유산소운동하고 많이 걷고 뛰고,수영이 좋다고도 하는데 ,수영이 좋다고들 하는 말이 많기 하는데 저는 수영체질이 아니라 숨을 뱉고 들이마시는 걸 많이 하며 생활하는 편이죠, 대부분 서서 연주를 하나까 하체도 튼튼해야 하니까 등산을 주로 하고 있어요,
Q.이 길을 들어서려고 하는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분위기에 휩쓸려서 음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부분 학교를 그만두면 음악도 그만 두더라구요, 모든 인생의 목표가 그렇지만 생명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하고 음악을 평생 하겠다는 생각으로 덤벼들어야 할 것 같아요, 먼저 트롬본을 좋아해야 하고 또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는지 자신에게 되불어 보고 또한 즐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라고 해주고 싶어요. 살다보면 슬럼프도 오고 왜 이 음악을 해야하나? 하며 좌절감이나 절망감이 찾아 오기도 하거든요, 어려움이 찾아오면 그걸 뛰어넘지 못하고 대부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이때 실력이 더 늘 수 있거든요.그래서 초심을 잃지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왜 연주를 하는지 되물어보고, 연주를 즐기고 있는지 등을 스스로 자문자답 하는 시간도 가져보고요,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현실에 대한 어려움 때문에 언제까지 연주자로 활동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될때가 있어요,, 그때의 답은 현실에 안주하던지 음악을 즐기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처음 시작할때를 생각해보면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겠죠.때론 돈이나 명예보다 다시 태어나도 트롬본을 연주하겠다는 자기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고 음악을, 연주를 즐길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죠.
Q.공연을 한다면 어떤 공연을 하고 싶으신가요?
재즈빅밴드로 가요도 재즈로 편곡해서 재즈에 관심있는 가수들과 조인해서 공연하고 싶어요,재즈보컬도 선우정아씨랑 하는데 이런 보컬이 나와주는 것도 참 좋은 현상이죠, 대중들이 연주 음악만하면 어려워하는 편이니까 익히 알고 있는 곡들로 연주하며 함께 즐길 수있는 무대에 서고 싶어요,
Q.가장 많이 영향을 많이 받은 뮤지션이 있다면?
림스 안델 펑크쪽의 유명한 트롬본니스트 J.J Johnson 이예요.
재즈트롬본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어요, 재즈의 기법과 기초를 닦어 놓았다해도 과언이 아니죠
Q.재즈음악을 더 알고 싶어요, 재즈음악 추천 해주신다면?
브라이언 커버슨이라는 연주자인데 아주 펑크하면서 굉장히 팝스러워요, 최고의 인기인데, 대세예요,한번 들어보세요, 재즈적인 요소가 대중적이라 이해하시기 편하실 거예요
Q.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많은 편인가요?
재즈 프로그램이 너무 없으니 우린 그냥 클럽에 머무르는 거지요,
재즈를 올릴 수 있는 클럽이 서울에 약 다석군데 정도 있어요, 그런데 동경에는 150군데 있어요. 일본 입장료가 5천엔,우리나라 돈으로 5만원이상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멀리서도 클럽에 가서 재즈공연을 보러와요. 사장님이랑 밴드랑 수익을 나누어 갖는게 클럽인데 일본에는 5인조밴드라 해도 개인 페이를 100만원정도로 줄 수 있어요,그래서 5인조 밴드가 출연을 해도 충분히 실력으로 보장 받을 수 있고 생활을 할 수 있지요,그런데 우리나라는 거의 페이가 없어요, 있다하더라도 차비밖에 안나오죠, 그만큼 아직 대중화 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봐요.
Q.일본은 재즈보급이 잘 된다는 거네요
일본은 나팔 잡지가 따로 있어요, 나팔 연주자 들을 위한 잡지가 두세개는 되어요,고등학교 밴드부가 상탔다하면 거기가서 기오타쿠 정신이 뛰어나서 그런지 고등학교 어느 밴드가 상을 탔다 그러면 인터뷰하러가고 그런편이죠,관심을 그만큼 가지는 거죠. 오히려 미국 보다 더 일본은 재즈를 상업화 시킨 것 같아요.전자상가등 동네슈퍼에도 재즈가 흘러나오는 편이니까요,
Q.어떻게 하면 재즈가 대중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요?
좋은 연주자들이 한국에 많아요, 수준도 많이 올라간 편이라 생각도 들고요,
문제는 어떤곡이 유행하면 그 곡만 연주해요. 다음 유행곡이 나올 때까지 서울에서부터 제주도까지 그 음악만 듣게 되죠. 획일화 된 음악의 흐름이 조금 아쉬워요,대중들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하지 않는 편인 것 같아요,
그러나 매체를 통해 음악을 접하기 때문에 국민들은 잘못이 없고 음악사업을 하시는 분들이나
자금력이 있는 사람들이 좋은 재즈뮤지션들을 세계에 내 놓아도 아깝지 않는 앨범제작과 공연을 기획을 하고 뮤직비디오도 만들고 해서 해외에 나갈 때도 되었긴 한데,,,, 아쉽죠.
대중가수들은 그렇게하는데 아직 못한다는 것은 재즈가 돈이 안된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Q.작곡의 영감은?
하루에 3곡 쓸때도 있었어요, 작곡의 영감은 하늘로 부터 온다고 생각해요,받으면 그때 모티브만 생각해서 앞,뒤로 멜로디로 쓰는거죠, 2집의 파파스워즈는 작곡뿐 아니라 작사까지 했어요, 희망적인 가사예요.제목도 자연스레 붙여지게 되더라구요. 작곡이란게 공부만해서는 안되는 것 같아요.
Q.개인적으로 3집의 "가을여행" 곡이 너무 좋아요
기차여행 하면서 멜로디가 떠올라 써보게 되었어요, 인생이 여행 이잖아요, 우리가 의지적으로 이 세상에 나온 건 아니잖아요, 우리네 삶이 축복의 여행이라 생각하니 음악이 만들어 지더라구요.
잠시 가을여행 듣고 가실께요~~
Q.그동안 앨범내며 힘드신 적은 없으셨나요?
3집 나온지가 3년 된 것 같네요, 2집과 3집이 1년차이 밖에 안나요, 2년 사이에 곡을 많이 썼어요,
재즈 음악문화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싶어서 회사를 찾아 다니기도 했었어요,그런데 결국 혼자 해야하는 구나 느끼게 되었죠.혼자 힘써볼 거 다 해보니 재즈라는 음악이 아직 자리를 잡기에는 한계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Q.꿈이 있다면?
제 꿈은 세계선교예요. 예전엔 트롬본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이 꿈이 전혀 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재즈를 통해 사역을 하고 싶은 맘이 커요,1년에 한두번 돈을 모아서 해외선교를 가는데 이젠 한달에 한번 해외로 선교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그런데 이 꿈은 제 개인적인 것만 아니라 우리 밴드 멤버들의 꿈이기도 해요,멤버들도 먹고사느라고 힘들어요, 멤버들에게 월급도 주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한진밴드 음악을 통해 힘들고 지친 많은 이들이 꿈을 가지고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Q.해외에서 연주할때 반응은 어떠한가요?
정기적으로 매 해 태국은 가고 있어요. 한류로 인해 k-pop이 애국가 수준으로 알려졌어요, 먼저 한류음악 연주하면 현지인들이 너무 좋아해요. 현지인들이 k-pop으로 맘이 열리게 되면 그제서야 재즈연주도 하고 미션음악도 연주하며 사역을 하고 있어요.
그는 연말이 되면 캐롤도 연주하고 이웃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지방 카페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초대해서 공연도 하고, 사랑의 책나눔 북콘서트에도 재능기부와 책도 도서관에 기증해 주었다, 밴드라 악기를 옮기고 멤버들과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흔쾌히 먼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모습에서 사랑과 열정이 가득한 사람인 것 같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그는 앨범을 가져와 1집부터 한장씩 한장씩 포장지를 직접 뜯어가며 사인을 해주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녹음해도 될 만큼 곡작업을 해 놓은 것도 많은데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아직 발표되지 않는 그의 곡들이 참 듣고 싶어진다,
해외 재즈 뮤지션들 뿐만 아니라 국내 이런 재즈뮤지션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편의점이나 동네 핸드폰가게에서도 재즈음악이 흘러나오는 때가 있지 않을까? 누구나 좋아하고 듣기 편하고 즐거운 재즈음악,이한진밴드가 재즈대중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