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에 호평을 많이 받은 작품이어서 더 이상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김성기, 류정한씨의 더블 캐스팅도 매우 다른 매력으로 각각의 관객들을 사로잡은 공연이라고 보이더군요. 살짝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이 공연에 아이들이 매우 많았다는 것일까요. 홈쇼핑에서 가족 뮤지컬로 홍보하며 티켓을 팔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래서일까요.
1. 원작과 뮤지컬의 관계
이 뮤지컬은 세르반테스와 돈 키호테의 이야기를 혼합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소설 <돈 키호테>와 세르반테스에 대한 애정 어린 오마쥬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연히 원작과 뮤지컬은 일대일로 치환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짬뽕해서 만든 영화 <세익스피어 인 러브>와 비슷한 스타일입니다. 저는 그 혼합이 매우 흥미로웠고, 대본을 쓰신 분의 재능에 감탄했습니다. 이미 주어진 정보를 어떤 식으로 얼개를 맞추어 나갔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제게 이 공연은 한 편의 잘 쓰여진 팬픽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뮤지컬은 세르반테스가 종교재판을 받기 위해 지하 감옥에 갇히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곳에 갇혀있는 다른 죄수들 앞에서 모의 재판을 받으며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변호하겠다고 말합니다. 극중극인 '돈 키호테'의 이야기는 세르반테스와 죄수들이 모여서 만드는 '추악하고 절망적인 세상에서 희망과 꿈을 추구하는 순진하고 무지한 이상주의'에 대한 변호입니다. 물론, 다들 아시겠지만 <돈 키호테>라는 작품은 원래 소설로 쓰였고, 세르반테스가 한때 극작일을 했다고 하나 별 볼일 없는 성과를 거두었고요. 송사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종교 재판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뮤지컬 속의 세르반테스는 실제의 세르반테스와 닮았으면서도 미묘하게 틀립니다. 그래도 이 발상이 너무 깜찍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류정한씨의 캐스팅으로 봐서 '젊은 미남자 세르반테스'의 매력에 잠깐 현기증을 느끼면서 쓰러졌습니다. 세르반테스가 소설을 썼을 때는 거진 60대에 가까운 나이였고, 제가 아는 세르반테스는 뮤지컬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미지였거든요. 뭐랄까.... 제가 생각하는 세르반테스는 약간 능글맞은 늙은이인지라 이상주의와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찬 뮤지컬 속의 세르반테스가 무척 사랑스러웠습니다.
황금 투구와 풍차 사건이 소설 <돈 키호테>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주막에서의 사건들은 새롭게 쓰여졌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특히 알돈자의 강렬함은 이 뮤지컬에서 가장 주목할만 합니다. 동시에 <돈 키호테> 2부에서 등장하는(1부가 히트 치자 대중작가 세르반테스는 당연히 2부를 내었죠. 이른바 <속 돈키호테>인데 국내에서는 범우사판이 절판이 되어 도서관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희귀한 책이 되어버렸습니다;;) 닥터 까라스코가 나오는 것도 상당한 즐거움이었고요. 원작 대로라면 까라스코가 돈 키호테의 정신병을 고치기 위해 숲의 기사, 거울의 기사로 변장하고 일부러 패하다가 백월(白月)의 기사가 되어 이기게 되지요. 원작과는 다르게 뮤지컬에서는 '거울'의 이미지를 활용해서 돈 키호테를 좌절하게 만드는데, 그 상징성이 원작보다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원작에서는 까라스코에게 패해 고향에 돌아온 돈 키호테가 병석에 누워 이성을 회복한 후 기독교인으로 생을 마감하는 결말로 끝납니다. 이 부분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원작 보다 훨씬 더 강렬한 돈 키호테에 대한 찬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줄줄이 늘어놓았지만... 결국 대본을 쓴 데일 웨셔멘의 공을 크게 인정해 주고 싶다는 뜻이었습니다. 세르반테스가 만든 플롯이었지만, 이 팬픽 역시 원작에 결코 떨어지지 않으니까요. 원작이 있는 뮤지컬을 만든다고 했을 때 이렇게까지 드라마의 구조를 새롭게 짤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결말이 주는 감동은 오롯이 데일 웨셔멘은 덕이기도 하고요.
2. 공연에 대하여
And the world will be better for this, That one man, scorned and covered with scars, Still strove, with his last ounce of courage, To reach the unreachable stars!
공연을 보기 전에 OST를 먼저 접했었는데 제가 무척 놀라고, 좋아했던 부분은 The Impossible Dream에서 위의 대사입니다. 이번 국내 공연이 굉장히 번안이 잘 된 노랫말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니까요. 돈 키호테의 이 모든 쓸데없는 저항들이 '이 한 사람, 경멸과 상처로 뒤덮인 남자로 인하여 세상은 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믿음 하에서 행해진다는 뜻에서 이상주의의 핵심을 보았으니까요. 그런데 번안이 되면서 살짝 뜻이 달라지더군요.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로 번역되면서 살짝 뜻이 약해집니다. 음절의 수를 맞춰야 하니깐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뉘앙스가 다소 아쉽더군요. '닿지 못할 별'을 꿈꾸는 이유가 그 불가능한 시도를 통해서 세상이 보다 아름답고, 나아질거라는 믿음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때 돈 키호테가 쫓는 꿈이 도취적 나르시즘에서 삶과 세상 전체를 향한 이상으로 확대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음음, 그리고, 알돈자와 다른 사람들이 모두 'You are'라고 말할 때 고풍스러운 기사 돈 키호테만은 고어로 'thou art'라고 말하는 부분도 상당히 재미있었고요. 존칭어법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번역될 수 없는 부분이었겠지만요.)
이 공연에서 가장 강렬한 이상주의자는 알돈자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뮤지컬에서 돈 키호테는 더러운 것을 보지 못하고, 욕설과 비난을 듣지 못합니다. 온실에서 자란 화초의 느낌마저 들어요. 백면서생이랄까. 꿈과 희망은 보지만 아픔과 절망을 볼 수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했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윤간을 당하며 돈 키호테에 소리를 질러 놓고도 임종시 찾아와 희망과 꿈을 일깨우는 알돈자가 더 대단해 보였습니다.
아쉽게도 김성기씨 캐스팅을 보지 못해서 류정한씨와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김성기씨의 경우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의 전환이 보다 뚜렷하고, 류정한씨의 경우 성량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내리기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 24일 공연, 그러니깐 막공에 가까운 공연을 봐서 일까요. 류정한씨의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의 변신은 꽤 뚜렸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아주 개인적인 감상과 편견으로... 류정한씨가 연기파 뮤지컬 배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탓에 오히려 '우왓! 연기가 좋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습니다. 공연 자체와 별개로 배우분이 성큼성큼 성장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지킬 앤 하이드>의 경험 때문일까요. 스트레이트 억양으로 대사를 읽던 배우였는데 느낌이 다르더군요. 특히 초반에 돈 키호테로 변한 후에 목소리를 노인처럼 바꾼 음색이나 노인네 특유의 후들거리는 느낌은 매우 좋았습니다. 공연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점점 젊은 목소리로 돌아가게 되지만요. 약간만 균형을 잃으면 세르반테스와 돈 키호테가 똑같아지더군요. 그래도 초반에 보여준 그 뚜렷한 변화의 폭을 생각하면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게다가 이미 커밍 아웃했듯이 세르반테스였을 때의 모습을 제가 너무 좋아합니다♡ (이 부분이야 말로 김성기씨의 캐스팅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부분이겠죠)
그리고, 닥터 까라스코의 이계창씨의 목소리도 참 좋더군요. 캐릭터의 해석이나 분위기가 매우 잘 어울렸고요. 신부님 역할의 진용국씨의 노래도 매우 좋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봤던 당일날 공연에서 <그들만의 둘시네아> 경우 노래 가사가 정확히 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그분의 생각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발성의 문제일까요. 돈 키호테의 임종 후 라틴어로 노래를 부를 때는 성량과 음색이 참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이름 모를 주점의 패거리들의 코러스도 듣기가 좋더군요. 어느 공연이든 코러스의 노래에서 째진 소리가 나는 경우가 많은데 뮤지컬 <돈 키호테>의 코러스는 대만족이었습니다. 내심 <새야, 작은 새야>같은 넘버는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단지 소리를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많이 담겨있고, 소리를 너무 높이지 않아서 듣기가 훨씬 수월했습니다.
그 밖에도 까라스코와 안토니아, 신부와 가정부의 대화를 체스판으로 설명했던 장면이 매우 인상 깊더군요. 정말 위트있는 해석이었다고 계속 키득거렸습니다. 오랜 시간을 통해서 다듬어진 공연인 만큼 세트도 상당히 좋았고요. 약간 아쉬운 부분은 그토록 혹독한 체험을 한 알돈자가 어떻게 다시 돈 키호테를 찾아올 수 있었는가가 이빨이 빠진 것처럼 빠져있는 것이지만요. 불길이 된 분노로 타오르는 <알돈자>라는 넘버를 듣고 있노라면 그녀의 행보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돈 키호테의 고결한 이상주의에 경도된 것이라고 보기에는 밑바닥으로 떨어진 경험이 만만찮을텐데 말이예요. 한 템포만 더 늦춰서 그녀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었어도 공연의 느낌이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설문처럼 살짝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오페라 마니아들은 공연을 보기 전에 해당 레파토리를 접하고 익숙해지고 난 뒤에 가죠. 음악을 알면서 듣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있을테니까요. 그러나 뮤지컬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 지인은 일부러 공연을 보고 와서 나중에 씨디를 듣더군요. 저의 경우는 OST를 많이 접해서 넘버에 익숙해지고 공연을 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요. 다른 분들은 어떤 편이신가요? 어떤 쪽을 선호하시는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