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유스호스텔 침대가 마치 내 침대인양 늦잠을 즐기고 (4인실 도미토리 : 13.5유로, 아침식사는 제공하지 않음/비수기인 11월부터는 더 할인됨) 창문너머로 살랑거리는 바람과 파란 하늘에 기분 좋아 꼼지락 꼼지락,. 샤워하고 빵으로 아침식사하고 짐챙겨서 나온 시간이 오전 11시 반쯤,. 사실은 청소 아줌마가 방마다 돌리는 진공 청소기 소리에 더이상은 방에서 죽치고 있을 수 없어서 나왔다,.^^;;
일단 오페라 하우스 뒷편에 있는 tourist information에 가서 비엔나 시내 지도 구하고, 오늘 무슨 공연이 있나 알아봐야지,. 숙소에서 여행자 인포 찾는데 두 시간쯤 걸린 것 같다,. 두리번 두리번,. 티켓 판매소에 가니 오늘 공연은 매진이라면서 스텐딩 티켓 사란다,. 저녁 7시 공연이니 오페라 하우스내에서 5시 반에 팔거라면서,. 5시 반에 판매를 시작하니 5시전에 가서 줄을 서야 스탠딩 좌석이라도 앞자리를 맡을 수 있다,.
그럼 5시 전까진 "벨베데레 성"에 가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보고 오자는 생각으로 지도를 들고 걷기 시작했다,. 오페른 거리,. 캐른트너 거리,. 마리아힐페 거리,. 이리저리 구경하고(사실은 헤메고-_-) 또 두어시간 쯤 걸려 겨우 "벨베데레 성"에 도착했다,. 도대체 오늘 몇 시간을 걸은 거야,. 에고 다리야,.
아름다운 "벨베데레 성" 우선 클림트 그림을 보러 갔다,. 사실 내가 클림트라는 화가를 처음 알게 된 건,. 이외수의 소설 "들개"에서 였고,. 그 다음은 한젬마의 "그림읽어 주는 여자"에서 였다,. 클림트의 "키스"위에 유리를 덧씌워놓아서 무척 아쉬웠지만,. 그림과의 간격을 5미터쯤 하고 찬찬히 쳐다보았다,. 내가 꿈에 그리던 그곳에 서 있구나,.
다리가 아파서 갤러리 내의 카페에 가서 비엔나 커피(본명:아인슈패너)와 조각 케익을 시켜놓고 앉아 지친 다리를 쉬고 주린 배를 채웠다,. 갤러리내의 shop에서 그림을 샀다,. 내 안부를 제일 궁금해할 친구에게 줄 선물이었다,. 물론 내가 가질 것도 샀고,. 한국가면 액자에 넣어서 걸어놔야지,.^^
다시 찬찬히 그림들을 둘러보고,. 오페라 스텐딩 티켓 줄을 서기 위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오후 5시 조금 전에 오페라 하우스에 도착,. 다행히 내 앞에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 오늘 많이 걸었는데 또 두 시간 이상 서서 공연을 어찌 보나,. 그래도 볼건 봐야지^^ 내 앞에 줄 서 있는 중년 여성에서 어떤 미국청년들이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 그 중년여성은 독일에서 놀러온 아주머니인데,. 오페라 보러 이렇게 종종 비엔나에 오는 모양이었다,. 독일에선 기차만 타면 바로 오니까,. 부러워라,. 스텐딩 티켓은 세 종류가 있는데 가격은 3.5유로와 2유로 이다,. 2층 중앙에서 서서 보는 티켓이냐,. 3층에서 보는 티켓이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처음에는 2층 중앙에서 봤다,. 가격은 3.5유로,. 그런데 잘 모르는 오페라를 두 시간 이상 서서 보려니 집중력이 떨어지고 피곤하다,. 우띠-_- 그래도 최하 2.500원으로 세계적인 오페라를 볼 수 있다니,. 오페라나 클래식 음악회는 오스트리아에서는 문화적 사치가 아니라 생활이다,.
다음 날,. 쉔부른 성까지 가는 동안 햇살은 따스했지만,. 바람은 너무 심했다,. 변덕스런 날씨는 중간에 비까지 뿌렸다,. 그러나 금새 개였다,. 쉔부른 성의 언덕에 올라,. 가만히 성을 내려다 보았다,. 평화로운 분위기,. 그러나 심심했다,. 영화 "비포선라이즈"의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처럼 비엔나 시내의 Ring을 둘러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 속 그들처럼 도나우 강변도 걸어볼까,. 생각했다,. 오후 5시쯤엔 또 오페라 스탠딩 티켓 줄을 서기 위해 오페라 하우스에 갔다,. 어제는 내 앞에 있었던 그 독일 중년 아주머니 오늘은 내 뒤에 줄을 섰다,.^^ 두번째 보는거라 인사를 했더니 반가워해 준다,.^^ 어제 본 오페라가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간다고 설명해 줄 수 있냐고 했더니 아주머니 어설픈 영어로 설명하다가 막히면 독일어를 섞다가,. 아주 난감해 한다,. 그때 아주머니의 남편 되는 아저씨가 왔는데,. 아저씨는 영어를 조금 더 능숙하게 했지만 이 부부는 내게 어제 본 오페라 내용을 설명해 주느라 아주 진땀을 뺐다,.^^
어제는 2층 중앙에서 봤는데,. 이 독일 아주머니 말로는 자기는 3층이 더 좋단다,. 그래서 아주머니를 따라 3층으로 갔다,. 자리를 맡고는 일단 다리가 아파 앉았다,. 이따 공연 시작하면 다시 일어나야 했지만,. 오늘의 오페라는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 아는걸 보면 더 좋지 않을까 해서 한 번 더 온 것이다,. 공연 시작을 지루하게 기다리는데 내 옆의 흑인 남자아이 책에 무척 몰두하고 있다,. 너무나 편해 보이는 자세로 앉아서,. 턱을 괴고 나는 그를 흘낏 훔쳐 보았다,. 예쁜 옆 얼굴,. 오똑한 콧날이며,. 긴 속눈썹,. 흑인 아이치곤 아주 까맣지도 않고,. 잘생긴 얼굴이다,. 너무 심심한 나머지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나 : 숙제니? (대단한 영어 한게 아니다 "Homework?" 라고 물었을 뿐,.-_-)
그 흑인아이 : 아, 실제론 그렇지 않고,. 시험공부야,.
나 : (책을 유심히 보며) 전공이 문학이야? (이것도 대단한 영어 한게 아니다 "Your major is literature?")
그 흑인아이 : 아니,. 음악 전공이야,.
나 : 어떤 음악? (What music?-_-)
그 흑인아이 : 보이스와 피아노
나 : 와~ 멋지다,. 시험은 언젠데?
그 흑인아이 : 다음주 목요일
나 : 내가 방해한거 아니야?
그 흑인아이 : 아니 이번 주말도 있고,. 월요일, 화요일 계속 시간이 있는데 뭘,. 방해한 거 아니야,. 근데 넌 여행중이니?
나 : (매너까지 좋다니! 감격!) 응,. 난 유럽 배낭여행중,.
그 흑인아이 : 어디가 제일 좋았어?
나 : 노르웨이랑 그리스,. 독일도 좋았고,. 넌 오스트리아 사람이니까 독일어 잘하겠다,. 부러워,. 게다가 영어도 잘하네,. 아주 잘해
그 흑인아이 : 나 오스트리아 사람 아닌데,. 미국 출신이야,.
나 : 오~마이~갓! 진짜야? 난 니가 진짜 영어 잘한다고 생각했어,.
그 흑인아이 : (웃음) (웃는거 넘 귀여워~)
나 : 그랬구나,. 푸푸
그 흑인아이 : 너 음악 좋아해?
나 : 난 솔직히 기타 연주 좋아해,. 하드락이나 팝,. 재즈 다양하게 들어,.
그 흑인아이 : 어떤 뮤지션 좋아하는데?
나 : 에어로스미스,. 휘트니 휴스턴,. 시카고 등등
그 흑인아이 : 넌 어디 출신이야?
나 : 한국! 너 한국 알아?
그 흑인아이 : 응,. 알아,.
나 : 넌 미국 어디 출신이야?
그 흑인아이 : 죠지아,. 혹시 죠지아에 대해 아니?
나 : 잘 몰라,. 그건 그렇고 사람들이 나보고 "뮬란" 닮았대,.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 흑인아이 : "뮬란"이 뭐야?
나 : 허걱,. 너 "뮬란" 몰라? M,U,L,A,N
그 흑인아이 : 아~ "물란~"
나 : 허걱,. 그,.,.그러냐,.-_-
그 흑인아이 : 그러고보니 닮은거 같네,. 넌 한국에서 무슨 일 했어?
나 : 돈벌었지,. 그리고 유럽으로 여행온거야,.
그 흑인아이 : 어떤 일 했는데?
나 : 애들 가르치는거,.
그 흑인아이 : 어떤거 가르쳤는데?
나 : 어,. 그러니까,. 그게,. Korean!!! (English라고는 차마 말 못했음 ㅜ,ㅜ)
공연이 시작되면서 앉았던 사람들이 일어선다,. 스탠딩 티켓을 샀으니 서서 볼 수 밖에,. 내 앞에 키 큰 남자때문에 시야가 가린다,. 친절한 그 독일 부부,. 아주머니가 얘기해서 독일 아저씨가 자리를 바꿔주었다,. 하지만 그 흑인아이랑은 자리가 멀어져 버렸다,. 아쉬워라,.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은 주인공들이 성악하는 사람들이라 한 무게 하는 관계로 별로 애절해 보이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뒤돌아 보니 그 흑인아이 아직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냥 서로 쳐다보고는 서로 각자의 갈 길을 갔다,. 공연이 끝난건 저녁 10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이 시간에 뭘하겠나,. 빨리 숙소로 가야지,.
식종일관 책에 몰두하고 무언가를 끄적이던 모습이랑,. 친절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느리고 또박또박한 영어로 내가 기억안나서 버벅이는 단어를 "너 이 말 하려고 했지?" 라고 떠올려 주었다,. 아무튼 그 아이는 오스트리아를 떠나는 기차 안에서도 내내 생각이 날 정도였다,. 그때 시험은 잘 봤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