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집터를 명동성당의 초석이 된 명례방으로 내놓았던 첫 순교자 김범우 토마스 순교자 성지
☞ 위치 :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 삼랑진읍 사기점길 50-100)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에서 북쪽 만어산 방면 도로를 (삼랑진 오순절 평화의 마을 방향) 따라서 3km쯤 가면 광천 마을 삼거리가 된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면 다시 삼거리가 나온다. 우회전하여 1km정도 들어가면 사기점 마을인데 김범우 묘소는 10분 정도 산길을 올라야 된다.
♤ 김범우 토마스 순교자는 1751년 서울 남부의 명례방(현 명동 주교좌성당)에서 중인(中人) 역관의 8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784년 평소 친분이 있던 이벽의 권면으로 입교하여, 이승훈 베드로에게서 토마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듬해인 1785년에 서울 명례방의 자기 집에서 신앙 집회를 개최하다가 추조(형조)관리들에게 발각된다. 이것이 바로 일명 '을사 추조 적발 사건'으로 그는 동료들과 함께 형조에 끌려가 많은 매를 맞고 옥에 갇혔으나 끝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와 함께 끌려간 이벽, 이승훈, 정약용 등은 모두 소위 양반계층에 속한 인물들인지라 즉시 풀려 나왔지만 김범우는 교회 집회 장소의 집주인일 뿐 아니라 중인(中人) 신분이었기 때문에 멀리 밀양으로 귀양을 떠나야만 했다.
처연한 신세가 되어 그는 만어산의 금장굴 부근에서 2년간 귀양을 살게 된다. 하지만 유배된 후에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다 유배된 지 2년 만인 1787년 9월 14일 혹독한 매질의 여독으로 3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가 되었다. 그가 죽은 뒤 후손들은 만어산을 중심으로 삼랑진, 단장면의 범귀리 등에 살면서 신앙을 전파했다.
* 복자 김범우토마스 순교자 묘소
* 1985년 김범우의 묘를 백방으로 찾던 후손 김동환과 영남 지방 교회사 연구에 몸바친 마백락 씨 등은 1989년 극적으로 후손의 외손 중 한 명을 만나 김범우의 묘로 지적해 준 묘를 확인함으로써 비로소 김범우의 묘를 찾아낸다. 그리하여 김범우의 묘소는 밀양군 삼랑진읍 용전동 산 102번지 만어산 중턱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 1999년 8월 15일 우리가 처음으로 삼랑진 오순절 평화의 마을을 지나서 김범우 순교자 묘소를 찾았을 때는 험한 오솔길의 산길에 나무십자가 1개만이 지키고 있던 잡풀 속의 작은 무덤으로 쓸쓸히 홀로 있었다. ('빛바랜 흔적들' 참조)
* 그후 2000년 초에 묘소로 오르는 비포장 임도를 내고, 그 임도를 따라서 십자가 묵상의 길과 로사리오의 길 등이 조성되고 묘소를 단장하며 순교자의 성지가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 그리고 2011년 9월 부산교구 레지아의 협조로 성모 동굴 성당을 봉헌하였고, 2017년 9월에 교육관과 피정의 집이 건립되었다.
* 성모동굴성당
* 복자 김범우토마스 순교자 무덤 발굴시 발견된 돌 십자가 모양
★ 참고 : 순교자 김범우 토마스 옛집터와 명동성당
★ 참고 : 김범우 토마스 순교자 묘소 주변의 만어산과 만어사의 바위들
★ 빛바랜 흔적들
* 2006년 부활절 낮미사 참례 후 이웃과 김범우 성지로 엠마오 갔던 길
* 1999. 08. 15. 김범우 묘소를 처음 찾아 갔었다.
자기 집터를 명동성당터로 내놓고 머언 남쪽 삼랑진 야산의 풀밭에 묻힌 작은 무덤 하나.....많은 묵상을 했었다.
그 후 2000년대 와서 부산교구에서 성지를 다듬고 조성하였다.
* 2021년 새로 촬영 자료들(한국 교회사)
* 아래 사진의 시성식 날짜는 5월 5일이 아니라 5월 6일로 바로 잡으면 좋겠다.(성지 관리사무실에 알려주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