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 고엽제전우회, ‘전두환 추징금 징수’ 나선 이유는?
“1984년 전두환 정권이 일방적으로 한국인 고엽제 피해자의 존재 감췄다”
입력 2013-06-21 18:10:56 수정 2014-09-24 11:06:09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회원 500여명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집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어 “전 전 대통령의 잘못으로 미국 고엽제 제조업체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기회를 놓쳤다”며 전 전 대통령 처벌과 추징금 환수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내고 “집권 당시 부정축재한 재산을 자식들 앞으로 은닉한 전두환은 구(舊)정치인들을 부패와 부정축재자로 몰아 재산을 몰수해 놓고 본인은 청렴결백한 지도자로 행세한 파렴치범”이라며 “29만원이 아닌 5,000억에 달하는 부정축재로 은닉한 재산에 대해 정부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전두환 일가의 재산을 몰수하고 관련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표적인 보수단체인 고엽제전우회, 왜 연희동에 쳐들어갔나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자료사진)ⓒ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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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보수단체인 고엽제전우회가 군인 출신인 전 전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이같은 규탄대회를 연 것은 처음이다. 최근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조세피난처에 만든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해외 은행의 비밀계좌에서 돈을 관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논란이 일긴 했지만, 전 전 대통령의 자녀들이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이미 수차례 문제가 제기 된 바 있어 고엽제전우회가 갑자기 이같은 행동을 보인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고엽제 문제의 배경을 보면 고엽제전우회의 이같은 규탄대회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번 규탄 대회는 고엽제 문제를 외면했던 진짜 책임자에게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미군은 1961년부터 1971년까지 전쟁이 벌어진 베트남에서 잎을 시들게 해 식물을 죽이는 맹독성 제초제인 고엽제를 살포했다. 한국군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에 파병돼 있었다. 고엽제전우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고엽제 사용에 관한 별다른 지시나 주의사항을 듣지 못했고, 부대 주변에서 제초작업을 하는 병사들은 고엽제 가루를 철모에 담아서 맨손으로 뿌리기도 했다.
고엽제전우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고엽제가 “인류 역사상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인 다이옥신(dioxin)이 함유되어 있다. 다이옥신은 1그램이면 사람 2만 명을 죽일 수 있는 지구상에서 독성이 가장 강한 독극물이다. 인체에 극히 적은 량이 흡수되었다 해도 점차로 몸속에 축적되어 10년~25년이 지난 후에도 각종 암, 신경계 손상, 기형유발, 독성유전 등의 각종 후유증을 일으키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같은 피해는 미국에서 이미 1978년부터 사회문제화 됐고,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의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고엽제 제조회사인 다우 케미컬, 몬산토 등 7개 회사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 소송에서 제조회사들은 소송 집행경비 절감 및 기업 이미지 손상을 우려, 에이전트 오렌지의 후유증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정상을 참작 보상에만 합의함으로써 1984년 5월 소송을 종결시켰고 피해자들은 1989년 1억8000만달러를 보상받았다.
1984년 정부와 주미대사는 월남전 고엽제 피해 협상을 몰랐을까?
당시 한국의 피해자들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뒤늦게 1996년 미국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미국 법원은 패소 판결했다. 미국에서 보상에 합의한 1984년 당시,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인인 연인원 32만명이 참전한 우리나라는 왜 손해 배상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피해보상에 합의한 1984년은 전두환 정권 때다. 전 전 대통령은 1970년 백마부대의 29연대장으로 베트남전에 파병돼 1년 가량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또 1984년 당시 주미대사는 류병현 씨 역시 베트남전쟁 당시 맹호사단장이었으며 합참의장을 거쳐 주미대사를 역임한 바 있다. 그는 미국에서 고엽제 관련 소송이 시작된 해인 1978년 한미연합사의 초대부사령관이기도 하다. 이들이 고엽제 피해자 소송에 대해 파악하지 못했을까? 이들 중 누구도 대한민국의 고엽제 피해자들에게 소송 사실을 이야기해준 이는 없다. 고엽제 피해 사실이 처음 국내에 알려진 건 지난 1991년 호주 교민을 통해서다.
고엽제전우회도 이같은 과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1999년 5월 대한해외참전전우회는 <김대중 대통령께 드리는 청원문>을 통해 “(1984년) 당시 정부와 미국의 한국대사관은 월남전 고엽제 피해에 관한 협상 당시의 사실을 전혀 확인ㆍ파악할 수 없었는지? 정보화 시대를 맞아 미국에서 큰 문제로 야기되었던 고엽제 피해보상 문제를 어떻게 하여 우리 정보기관에서는 파악조차도 할 수 없었는지?”등의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1984년 전두환 정권이 일방적으로 한국인 고엽제 피해자의 존재 감췄다”
경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으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하고 있다(자료사진)ⓒ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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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전우회는 당시 전두환 정권 하에 억압 때문에 해당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봤다. 고엽제전우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대한민국 제5공화국 정부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철저한 보도통제와 억압을 했다(실제로 1984년 중앙일보에서 고엽제문제를 보도하였으나, 제보기자 해고시키고, 타 언론사에 보도하지 못하도록 통제하였음)”며 “독재 정권하에 있는 한국에서는 대부분 그런 사실을 모르거나 입이 막혀 참전용사들은 베트남 풍토병이라는 원인 모를 질병에 시달리다가 수 많은 참전 군인들이 40대의 아까운 나이에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고 게재하고 있다.
고엽제전우회는 최근 “1984년 전두환 정권이 일방적으로 한국인 고엽제 피해자의 존재를 감춘 것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고엽제전우회 김성욱 사무총장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1979~1984년 사이 진행된 고엽제 피해자 소송 과정에서 미국 측은 ‘미국 다음으로 한국에서 많이 참전했으니까 피해자들은 소송에 참여하라’고 요청했는데 전두환 정부가 ‘한국에는 피해자가 없다’고 이를 묵살했다”며 “우리는 당시에는 모르고 있다가 2000년 미국에 있는 월남참전용사협회를 방문했을 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왜 더 일찍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냐’는 물음에는 “그 때는 이미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전두환한테 책임을 묻는게 안됐는데, 지금은 대통령을 했다는 사람이 도둑질을 해먹고 부패한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부정축재한 것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고엽제 피해자들의 소송 7년째 대법원에 계류중...
고엽제전우회는 1984년 당시 정부가 거절한 이유를 전 전 대통령이 밝힐 때까지 전 전 대통령을 규탄하는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고엽제 피해자들이 제조사를 대상으로 낸 소송은 현재 우리나라 법원에서 진행중이다. 앞서 고엽제전우회 등은 1999년 소송을 냈으며 2002년 서울지방법원은 원고패소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고엽제에 함유된 다이옥신과 원고들이 앓고 있는 질병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설령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손해배상 소멸 시효인 10년을 훨씬 경과,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2006년 1월 “두 회사는 6795명에게 모두 630억76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질병과 고엽제 유해물질 다이옥신의 인과관계에 대해 “미국 국립과학원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호지킨병 등 11가지 후유증과 다이옥신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참전자와 그 2세들이 가장 많이 앓는 ‘말초신경병’과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은 현재 7년째 대법원에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채 계류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