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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마지막시대 마지막으로 할 일 벧전4:7-10
원시인들은 원시인들처럼 살았고 문명시대에는 문명인들처럼 살아왔듯이 마지막시대 인들은 마지막시대 인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소돔 고모라성이 멸망당하고 노아 시대 사람들이 멸망 받은 것은 마지막 때에 마지막 인답게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시대 사람들입니까? 21세기 초 과학문명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를 혹자들은 마지막시대라고들 합니다. 이 말은 어떤 짐승들의 세계를 보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스스로 나타내는 마음의 생각과 행동이 그런 생각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1999년 당시에 세상 메스컴이나 신문은 금세기 마지막시간에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큼은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은행에서 미리 돈을 찾아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Y2K 현상으로 컴퓨터 오작동에 대한 금융혼란 대비로 모든 은행들이 2000년 시작되면서 1월 4일까지 문을 닫는 다는 것입니다. 현금카드도 사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둘째 일주일분 비상식량을 구입해 두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비상사태에 대비해서 당시에 방송국이나 언론매체에서는 1주일분의 밀레니엄의 비상식량을 준비해 두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상품이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유비무환이라고 했던가요? 미리서 준비하는 사람들이 지혜가 대단합니다.
셋째 군인은 물론 전 국민이 비상전시사태에 대비하라고 했습니다.
미국, 소련의 핵미사일은 물론이고, 북한의 노동 미사일조차도 Y2K 컴퓨터 오작동으로 사람의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전쟁발발 가능성에 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시나리오가 있었음에도 예상을 뒤엎는 놀라운 인간들의 노력으로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인간 승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생사를 주관하시고 세상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섭리와 권능은 그 누구도 예측 할 수 없습니다.
몇 년 전 베네수엘라에서 몰아닥친 홍수로 한 순간에 5만 여명의 목숨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에게 그런 일들이 일어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을 그렇게 맞이한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다가오는 마지막과 시공간을 초월하는 주님 안에서의 역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마지막은 이미 결정되었으며, 역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개인적 종말도 그렇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한 설교학 교수는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설교 때마다 이것이 마지막 설교라고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역사속의 종말과 개인적인 종말 그사이에서 마지막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마지막 삶이 주어졌다면 여러분은 이 순간을 어떻게 무엇을 하며 보내겠습니까? 마지막이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요 다가올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지막이란 필연적인 과제 앞에서 도망자가 아니라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7)
여러분 마지막 죽음 앞에 선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마지막 순간에 할 일도 많은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유가 있을 때는 기도 없이 말도 하고 기도 없이 일도 행합니다. 그러나 정말 시간이 없을 때 그 마지막 순간에 할 말과 할 일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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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동안은 시간이 영원의 차원으로 변화되어집니다. 기도는 자기를 초월하는 가장 강력한 힘을 끌어오는 도구입니다. 버트란 경은 "힘"이란 글에서 네 가지 차원의 힘을 소개합니다.
1. 물리력. 2. 경제력. 3. 영향력 즉 지도력. 4. 영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중에 가장 강력한 힘은 영력이며 이는 기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이 시대적 마지막 때를 맞이하면서 교회의 믿는 자들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종말 시대는 사회적으로 볼 때 믿는 자들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특히 믿음의 지도자들에게 거는 기대는 더욱 큽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그것도 지도자들이 부정과 부패에 앞장 서 있습니다. 이것은 사단의 흉악한 궤계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사단의 궤계에 쓰임 받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성도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나만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사단 앞에 노출되어 있고 상당히 물들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기도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의를 위해, 진실을 위해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8)
마지막 시대 특징 중에 하나는 사랑이 식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훈훈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에게 사랑의 형태는 있으되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요 자기중심적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인 알프렛 아들러에게 우울증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의사는 그 여자 환경을 조사해 보았지만 나쁜 데가 없는 유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의사는 두 주간 복용할 약을 처방해 주면서 말하기를 이 약을 복용하면서 꼭 지켜야 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두 주일동안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 이것을 열심히 생각하고 그 사람들을 사랑해 주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 환자가 그 의사의 말대로 그대로 했더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울증은 치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받는 사랑이 하나라면 주는 사랑은 백이 될 수도 있고 천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사랑을 받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병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의 반쪽만 본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것도 큰 병이 됩니다. 진정한 사랑의 힘이란 내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꽃이 있다고 아무나 꽃꽂이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도 대상이 있다고 되어 진 것은 아닙니다.
심리학의 대가인 에릭 프롬은 사랑은 기술 혹은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시대의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버려져 있는 못쓴 대리석을 보면서 저기 천사가 하나 버려져있다고 했습니다. 울퉁불퉁한 대리석처럼 아무리 쓸모없는 돌이라도 미켈란젤로의 손에만 가면 작품이 되어지는 것은 그가 기술자요 예술가이기 때문입니다.
참 사랑은 주고받는 “Give and Take" 곧 주고받는 것이 아닙니다. Give and Give 주고 또 주는 것입니다. 자기 자녀가 사랑을 안 알아준다고 사랑 안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시고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묻는 이에게 “네 원수가 곧 네 이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 원수를 외면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보통 암과 같은 중병은 스트레스로 생긴 병입니다. 우리말로 화병이고 한이 맺힌 병이라고 합니다. 그런 병은 어떤 종류의 약을 먹어도 안 듣습니다. 그런데 그런 환자에게 “나는 당신을 정말로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루에도 수백 번 만나는 사람마다 6개월만 해보면 그 암세포가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임상실험의 결과입니다.
사실 생전 처음 보거나 아니면 평소에 관계가 껄끄러운 사람을 만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의 사랑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만날 때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자기의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고 또 하면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자기 마음에 기쁨과 참된 평안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24세 때 연세대학교 영문과 1등 졸업한 여학생이 서울공대 학장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양반집에 시집을 간 새댁이 하루는 김치를 담가서 아침밥을 가져갔더니 시 아버지가 이게 김치냐? 하고 던져버렸다. 남편에게 하소연하니 남편은 한수 더 떴습니다.
결국 시집에서 쫓겨났는데 그 여자는 그때 이후로 혼이 나간 듯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네네 정도밖에 하지를 못했다. 그 미움의 한이 맺혀서 몸과 정신을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48세 때 학창시절 2등 하던 여학생이 마지막으로 그녀를 부흥집회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때 우리나라의 유명한 부흥강사이신 이성봉 목사님이 집회를 인도하시는데 "시집살이에 고생하는 사람들, 소박맞은 사람들, 양반에게 눌려있는 사람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을 듣고는 울음을 터드리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말문이 터졌습니다. 한의 눈물을 다 쏟아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옛 시댁으로 들어가서 그 정씨 집을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아름다운 집이란 훈련원을 세워 청소년들에게 사랑과 신앙을 가르쳤습니다. 이 여인의 수제자 68명 중에 성결교 부흥사 이만신 목사, 한신대 정태기 박사, CCC김준곤 총재 등등 즐비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마지막 사랑의 실천이 될지도 모를 사랑을 실천할 때에 이렇게 역사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이런 역사가 여러분에게도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라(10)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좀 더 참을 걸. 둘째는 좀 더 즐겁게 살 걸. 셋째는 좀 더 베풀 걸 하는 것입니다.
봉사는 베푸는 것입니다. 팔을 다쳐 흰 붕대를 오랫동안 감았다가 풀면 그 동안 쓰지 않았기 때문에 팔 힘이 없습니다. 샘터에서 물은 퍼낼수록 맑은 물이 고이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산속의 옹달샘은 떨어지는 낙엽에도 물은 곧 썩어버립니다.
아기에게 빨리는 젖은 점점 영양가 있는 젖이 더 많이 생기지만 젖을 먹을 아이가 있음에도 아기에게 젖을 먹이지 않는 젖은 젖샘이 말라버립니다. 하나님은 사용하는 자에게 더 주시고 사용치 않는 자에게는 그 있는 것마저 빼앗아 버립니다.
6.25동란 시 가족을 북에 두고 피난 와서 처음으로 복음병원을 설립하고 평생을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봉사하신 장기려 박사님의 봉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봉사만큼이나 잊혀 지지 않는 것은 그분의 말씀입니다.
어느 날 가족과 헤어 진지 50여년이 지났는데 연락망을 통해 북쪽에 아내와 자녀들이 모두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기뻐하는 그분에게 기자가 소감 한 말씀 해 달라고 했더니 "나는 여기서 열심히 봉사했더니 하나님은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돌봐주셨습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물리학에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 있습니다. 어떤 물체가 불에 타서 없어진 것 같아도 그 속에 있는 산소, 질소, 탄소와 같은 원소나 원자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봉사 불멸의 법칙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물 한 그릇 떠준 것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우리의 봉사가 크고 작을지라도 하나님은 다 기억하십니다. 더 더욱이나 할 수 없는 중에 하는 봉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보석처럼 빛날 것입니다.
롱펠로우의 시에는 이런 시가 있다.
나는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았네.
그러나 그 화살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네.
나는 천공을 향해 노래를 불렀네.
그러나 나는 그 노래를 잃어 버렸다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나는
참나무 밑 둥에서 그 화살을 찾았다네.
그리고 내가 불렀던 노래는 처음부터
끝 구절까지 친구의 가슴속에 숨어있었다네.
오늘은 10월 첫 주일입니다. 지나간 날들을 아쉬워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날들을 어떻게 보람되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중요한 시점입니다.
한 그루의 과일나무를 훌륭히 키우기 위해서는 농부의 수고도 중요하지만 그 나무가 심겨진 토양이 매우 중요합니다. 토양이 잘못 되었다면 과감히 토양을 바꿔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토양이라 할지라도 그 우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토양의 우수성을 잘 보존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지나온 삶이 어떠했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까지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했는지 우리는 인생의 거울인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봐야 합니다. 그래서 잘못 된 것은 청산해야 합니다. 자를 것은 자르고 끊을 것은 끊어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고 나서 늦은 것 같지만 새로운 토양 위에 새로운 나무를 심고 열심히 가꿔 풍성한 열매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마지막 때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우리들의 몫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는 것과 열심히 사랑하는 것과 선한 청지기 정신으로 봉사하는 것이야 말로 마지막 때에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해의 마지막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아름답고 보람스러운 한 해의 결산을 위해 기도와 사랑과 봉사의 화살을 한번 힘껏 당겨보지 않겠습니까? 그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