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동행
본문: 아가서2:8-13
서론 :
오늘 여러분에게 가수 최 성수가 부른 “동행”이라는 가사의 내용을 낭송하면서 설교를 시작고자 합니다.
(조용한 음악에 맟추어 낭송한다.또는 노래를 직접 불러본다)
아직도 내겐 슬픔이 우두커니 남아 있어요
그날을 생각 하자니 어느새 흐려진 안개
빈 밤을 오가는 마음 어디로 가야만 하나
어둠에 갈 곳 모르고 외로워 헤매는 미로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사랑하고 싶어요 빈 가슴 채울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요 사랑 있는 날까지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사랑하고 싶어요 빈가슴 채울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요 사랑 있는 날까지
이 가사의 내용은 현대를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상은 점점 외롭고 쓸쓸하고 허무하게 느껴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인생을 동행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같이 따스한 봄볓이 내리쬐는 날 사랑하는 이와 손잡고 아름다운 동행을 해보고 싶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의 데이트를 하는 아름다운 모습....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풍기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읽을 때 아름다운 인간의 사랑 즉 에로스적인 사랑을 통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사랑 (아가페 적 사랑)입니다.
본론
이 아름다운 봄이 돌아오는 계절, 특히 2011년 초에 여러분은 누구와 어떤 동행을 하기 원하십니까?
1. 나의 사랑하는 자와 동행해야 합니다.
인생은 어떤 사람, 또는 누구와 동행 하느냐?가 그 남은 인생을 좌우 합니다.
수많은 부부들이 잘못한 동행으로 말미암아 이혼이라는 아픔을 격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도 , 절친한 친구도, 부부사이에도 완전한(온전한) 인생 끝까지의 동행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과 나의 미래까지도 온전히 동행할 분을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그가 바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지난주 설교내용을 회상하며...“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하나님을 독생자를 우리의 죄의 댓 가를 위해 대신 십자가 죽음에 내어 주시는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 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하는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을 주님과 동행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사람과 동행하면 둘 다 망합니다. 잘못된 만남, 잘 못된 동행은 서로에게 상처와 아픔만 주고 결국 둘 다 고통가운데 처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세 번의 만남과 동행이 있다고들 합니다. 첫 번째는 부모와의 만남 그리고 결혼 할 때 까지 부모님과 함께 인생길을 걷는 것입니다. 두 번째 만남은 배우자와의 만남과 동행입니다. 둘 다 인생의 중요한 만남이며 동행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동행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동행은 진실하지도 못합니다.
언제든지 한쪽이 먼저 떠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실한 사랑으로 동행하는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시기 위해 이 땅에 먼저 오셨습니다.
마1: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 이랄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리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오셔서 “나와 함께 가자”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진정한 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손을 붙잡고 동행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 하려면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지도 않고 동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어떻게 같이 살 수 있겠습니까?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세계에서 이혼 률 이 가장 높은 나라 그리고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왜 그렇게 이혼을 많이 할까요? 여러 가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서로 부부가 사랑으로 만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이 다 용납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조금 모자라도 이해되고 용서가 됩니다.
우리나라 역사이야기 가운데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라는 이야기를 아시죠. 고구려 양원왕 때의 실화라고 합니다. 양원왕은 울보 공주에게 자꾸 울면 바보온달에게 시집을 보내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란 평강공주는 16살 때 궁을 몰래 빠져 나와 바보온달을 찾아 나섰고 바보온달을 찾은 평강공주는 온달과 결혼을 합니다. 공주는 온달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사랑에는 국경도 초월합니다. 사랑은 경제, 사회적 지위도 초월합니다. 결국 바보온달과 결혼한 평강공주는 온달에게 학문과 무술을 가르치게 되고 전쟁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전쟁에 나가서 바보온달은 죽음을 맞이 하게 됩니다.
평강공주는 바보지만 그의 낭군 온달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참아주고 가르쳐 주고 공부도 시켰습니다. 부족한 남편이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동행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남편이 조금만 실수하고 부족하면 무시하거나 하지 않습니까?
참 사랑만 있으면 가난해도 서로가 안 맞아도 손잡고 동행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여러분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삶을 삽니다. 주님과 함께 산책도 하고 주님과 함께 대화도 하고 주님과 함께 일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여인은 사랑하는 자라는 말을 구절 마다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동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사랑하는 이와 동행하면 고통이 사라집니다.
본문 11,12절을 보면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항상 좋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기치 않는 환란과 시험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겨울 정말 혹독한 추위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한겨울 추위가 우리의 몸을 얼어붙게 만들어도 오늘과 같이 따스한 봄 날씨 같은 날도 온다는 사실입니다. 겨울이 지나면 꽃이 피는 봄이 오고 꽃 봄의 꽃이 지만 열매를 맻는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열매가 익어가는 가을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연의 법칙 또한 누가 운행하고 조정하겠습니까?
바로 세상을 사랑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니겠습니까?
결국 모든 만물과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사랑하는 자가 말하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는 것은 춥다고 자리에만 앉아 있지 말고 이제 따스한 봄기운이 왔고 땅에는 꽃이 피고 산에는 새들이 노래하고 나무에는 열매가 익는 희망의 계절이 왔으니 일어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과 동행하면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희망이 보입니다. 봄과 같은 새 희망이 찾아옵니다. 비젼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만이 우리의 삶에 참된 희망과 소망을 발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스러운 그의 자녀들에게 희망을 향해 함께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여러 가지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세상적으로 추운 겨울과 같은 희망이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반드시 희망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추운 인생의 겨울을 무사히 지나고 새봄의 희망을 볼 것입니다.
저희 부부가 신혼때 정말 가난하고 어려운 전도사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매달 교회에서 생활비 35만원을 받아 어머니와 아내와 그리고 갓태어난 인선이와 함께 힘들게 살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신혼집도 남이 사놓은 빈집 그것도 쥐들이 천장과 안방까지 드나들던 그런 곳에서 살았습니다. 인선이 먹일 분유를 매일 걱정하던 시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생애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시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아내도 그때가 가장 인생의 황금기라고 가끔 고백합니다. 그렇게 물질적으로 환경적으로 힘들고 어려웠어도 정말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우리 아내가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 인선이가 사랑스러웠습니다. 어머니 가 감사했습니다. 사랑스러웠습니다. 사랑하면 어떤 고통도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소망, 희망, 비젼은 오직 주님과 동행할 때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소망을 이루시는 분은 오직 살아계신 주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어두운 밤을 벗어나고 싶으십니까? 인생의 추운 겨울을 지나가 새 희망과 소망의 삶을 살고 싶습니까? 자아를 벗어 버리고 세상과 짝하며 즐기던 것을 과감하게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세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새봄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향기로운 꽃이 피고 많은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3. 사랑하는 주님과 동행하면 어둠의 세력도 이길 수 있습니다.
악한 마귀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놓기를 바라고만 있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손을 놓는 순간 우리의 영혼을 사단이 붙잡아 지옥으로 데리고 가기 위함입니다. 마귀의 하는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망시키고 무너뜨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15절에 나오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포도원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포도원에 봄이 오고 꽃이 피고 열매가 익을 무렵 여우는 그 포도밭을 망가뜨리기 위해 틈을 엿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틈만 생기면 그 틈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포도원을 망가뜨립니다.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그 여우를 작은 여우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생활에 틈을 타고 들어오는 사단은 큰 놈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놈입니다. 사단의 졸개들입니다.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시험 들게 하고 환란과 어려움을 주는 요인이 대부분 큰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소한 문제들, 예를 들면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 또는 별 생각 없이 행한 행동들이 우리의 신앙과 교회를 망가트립니다.
그래서 본문 에서 그 여우를 잡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악한 사단의 세력을 무력 화 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6절에 말씀처럼 항상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여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하나님께 속해 있는 자들입니다. 속해 있다는 것은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과 주님과 동거동락 하며 동행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해 있는 자는 근심과 걱정이 없습니다.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공급해 주실 것을 믿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바로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주님의 손을 붙잡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샘터 교회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함께 동행 하여 축복된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저는 설교를 처음 시작할 때 세상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는 가요 가사를 소개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면서 제가 애창하는 찬양하나 부르고 함께 기도하고 마칠려고 합니다. 제목은 “주님여 이손을 꼭 잡고 가소서!” 함께 불러 봅시다.
“주님여 이손을 꼭 잡고 가소서... 지치고 피곤한 이몸을....
폭풍우 흑암속 헤치사 빛으로 ...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때,...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소리 귀기울이시다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