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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5월11일 어버이주일 에베소서6장1-4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설교말씀
제가 매년 부활절때마다 톨스토이의 부활을 소개 한다면, 어버이주일에는 젊은 연인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청상 과부가 되어 독자를 길렀는데, 그 아들이 청년이 되었습니다. 청년이 된 아들이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그 여자친구가 갑자기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슬픔에 잠겨 괴로워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한 수도승이 이 청년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청년이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고 이 수도승은 그 청년에게 엄청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산 사람의 간을 빼서 따뜻할 때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를 해 준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청년은 고민하다가 밤에 칼을 들고 잠을 자고있는 어머니 곁으로 가서 잠든 어머니를 죽이고 어머니의 배를 가른후에 간을 빼들고 자기 애인의 집으로 달려 갔습니다.
그런데 간을 빼들고 달려가는 아들뒤를 어머니의 혼령이 따라오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얘야! 천천히 가라! 넘어질라! 넘어지면 그 간에 흙이 묻는다! 간에 흙이 묻으면 먹일수가 없쟎니! 얘야! 제발 뛰지말고 천천히 가라!“
자식을 위해서라면 생명도 아낌없이 주면서 희생하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죽어서도 자식을 걱정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버이날은 1910년에 생겨 났습니다.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주에 찰스라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찰스 부인은 26년동안 교회학교 교사로 헌신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날 어린 딸 안나가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카네이션을 한 아름 안고 와서 그 꽃을 어머니의 영정에 바쳤습니다.
그후에 찰스부인의 추모예배 때마다 성도들이 카네이션을 한송이씩 들고와서 찰스 부인의 영정에 드렸습니다. 그런 소식이 기독교 신문에 소개되자 필라델피아의 백화점 왕 와나메이커씨가 찰스 부인의 딸 안나의 효성을 귀하게 생각하고 그의 백화점에서 매년 5월 둘째 주일마다 어머니 기념회를 열었는데 그것이 어머니 주일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후에 1914년 미국국회에서 5월8일을 어머니주일로 작정 공포하여 국가 행사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73년도에 어머니날을, 어버이날로 개칭하여 지켜오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가슴에 달고 있는 꽃은 자식들을 키우느라 수고하신 부모님들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달아드렸습니다.
효도라는 말은 공자가 쓴 말이지만 효도의 참된 실천은 예수님이 먼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효도를 다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장 17절에 보면“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기뻐하셨다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효도를 다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에게“네가 십자가를 지고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어서 세상 사람들을 구원해야 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6절로 8절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최고의 효도를 올려 드렸습니다. 더불어서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에게도 효도를 다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 51절로 52절에 보면“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아버지 되는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에게도 순종하여 받들면서 효도를 다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하나님과 부모님께 효도를 다해야 합니다.
잠언 23장 25절에 보면“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라고 증거 합니다.
조선시대때 퇴계 이황선생은 효자로 유명합니다. 그는 노년에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가기를 원했습니다. 임금이 그 이유를 묻자“고향에 내려가서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여생을 보살펴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임금은 더없이 훌륭한 중신인 이황을 조금이라도 더 옆에 두고 싶은 생각에“어머니를 한양으로 모셔 오도록 하시요 그러면 내가 그대의 어머니를 잘 돌보아 드리도록 하겠소”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황은 정중히 거절하면서“제 어머니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흙과 더불어 평생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면 제가 고향으로 내려가서 어머니와 함께 흙과 더불어 살아야만 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모를 기쁘시게 하는것이 참된 효도임을 이황은 알았던 것입니다.
한 소년이 뱃사람이 되어서 바다를 항해하는 꿈에 부풀었는데 청년이 되자 드디어 큰 선박회사에 취직해서 먼 나라로 항해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배에 오르기 전에 어머니에게 가서 작별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청년의 어머니가 아들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면서“나는 네가 배를 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네가 배를 타고 거친 바다로 나가면 이 에미는 주야로 걱정이 되어서 잠도 평안히 자지 못할거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효심이 지극했던 그 청년은 어머니생각에 항해를 포기했습니다. 뱃사람이 되는 일도 포기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고 기뻐 했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훗날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효성이 지극한 워싱턴을 통해서 미국을 영국의 식민지에서 구출하고 미국을 세계 최강의 나라로 만드는데 기초를 놓는 대통령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4절에 보면“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 한 것이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부모공경을 명령하신 하나님께서는 한편 불효에 대해서는 굉장히 진노하셨습니다. 성경 신명기 21장 18절로 21절에 보면“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찌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부모 말을 듣지 않고 반역하고 방탕한 자식은 돌로쳐서 죽이라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사형제도를 폐지하자고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살인하는 자도 사형을 시키고 간음한 자도 사형을 시키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도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잠언 20장 20절에도 보면“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등불이 유암중에 꺼진다는 말은, 어느날 부지 불식간에 심판을 받아서 사망한다는 말입니다.
신명기 27장 16절에도 보면“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살펴보면 기독교처럼 부모를 잘 공경하라고 가르치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 대해서 오해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기독교인들은 조상제사를 드리지 않는 불효자식들 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제사보다 훨씬 의미있는, 추모예배를 드립니다. 게다가 이미 고인이 되신 조상들은 음식을 차렸다 해도 사실은 하나도 드시지 못합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다음에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제삿상을 차려서 효도하기 보다는, 살아계실 때 잘 섬기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주신다고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효심이 지극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년의 가정은 너무나 가난해서 그의 어머니가 매일 상점에서 가방에 물건을 가득 담아서 각 가정으로 배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소년은 어머니가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왜냐하면 가죽과 천으로 만든 가방이 너무나 무거워서 어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들게 짐을 나르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느날 소년이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도울수 있을까를 생각 하다가 종이를 접어서 가방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밑바닥이 네모난 종이 쇼핑백을 만들었는데 거기다가 물건을 담아서 나르니까 아주 가볍고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가볍고 편리한 종이 쇼핑백이 사용되기 시작 했습니다.
상점이며 백화점이며 너도 나도 종이 쇼핑백을 사용하게 되었고 발명자인 소년은 특허까지 받아서 종이백으로 인해서 큰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이 소년이 찰스 스틸웰 입니다. 그는 1887년에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종이 쇼핑백을 발명하는 바람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상점이나 대형 마트에 가면 종이백에 물건을 담아 오는데 그 종이백을 들때마다“이 종이백이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 어머니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찰스 스틸웰이 발명한 효도 종이백이구나!”하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반드시 복이 따라 옵니다. 고려시대에 박정승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나이든 노모가 한분 있었는데 당시에는 고려장이라는 국법이 있었습니다. 나이들어 아무일도 할 수 없는 노인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하여 산속에 갔다 버렸습니다. 그러나 박정승은 차마 어머니를 고려장으로 버릴수가 없어서 아무도 몰래 어머니를 집에 숨기고 봉양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정에 큰 일이 생겼습니다. 중국에서 사신이 왔는데 똑같이 생긴 두필의 말을 끌고 와서 그 중에 어미와 새끼를 가려내라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만약에 대답을 못하면 그것을 빌미로 벌을 내리고 엄청난 조공을 받아 가려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국가적인 망신을 당하게 생겼습니다.
조정에서는 매일 회의를 열고 묘안을 짜 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똑같이 생긴 말이 키도 같고 모양도 같아서 어느 것이 어미고 어느 것이 새끼인지 도무지 분별할 길이 없었습니다.
박정승이 퇴궐해서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보니까 아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을 보고서“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게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박정승이 중국에서온 사신과 말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그게 무슨 걱정거리냐? 나처럼 나이 먹은 부모라면 누구나 다 그 답을 안다!”하면서 문제를 풀 묘안을 가르쳐 주었습니다.“우선 말을 하루 정도 굶긴 후에 여물을 갖다 주어라. 먼저 여물을 먹는 말이 새끼 말이다! 어미 말은 새끼가 먹은 후에야 먹기 시작할 것이다”
박정승은 그길로 당장 조정으로 가서 어머니의 충고대로 말을 하루 굶겼다가 중국 사신 앞에서 어미 말과, 새끼 말을 끌고 나와서 여물을 먹게 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중에 말 한 마리가 덥썩 달라들어서 여물을 먹는데 한 말은 뒤로 물러서서 새끼가 어느정도 먹을때까지 기다렸다가 여물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 광경을 본 박정승이“이 말이 새끼고 이 말이 어미입니다”라고 이야기를 말했습니다. 그러자 중국 사신이 놀래서 얼굴이 붉어 지더니 결국 고려인의 지혜에 탄복하여 그냥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임금님이 감탄해서 박정승을 칭찬하자 박정승은 그제서야 임금님에게 이실직고 하면서“이 지혜는 몰래 모시고 계신 어머니에게서 나왔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임금은 공부를 많이한 똑똑한 신하들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노모가 풀었다는 말을 듣고 노인의 지혜에 탄복했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은 그때부터 고려장이라는 악습을 폐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도 하는 일은 개인이 잘되고 나아가 나라와 민족이 잘되는 동기가 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미국의“메리 파이퍼”라는 사회학자가 말하기를“노인에 대한 사랑은 곧 자기 미래에 대한 사랑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노 부모나, 노인을 어떻게 부양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노년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재앙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불효를 심으면 늙어서 불효를 거두고 효도를 심으면 늙어서 효도를 거둡니다.
우리가 하는 일거수 일투족을 우리의 자녀들이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불효하면 자녀들도 똑같이 불효를 본받게 됩니다. 늙고 병든 부모를 무시하면 불원간 언젠가는 자기도 자식에게 무시를 당하게 됩니다.
오늘날 부모들의 자녀교육은 출세 일변도요 돈벌이에 능한 사람을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가정교육도 학교교육도 모두 다 똑같습니다. 그래서 참된 인간이 되는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자식들이 자라서 성년이 되었을때, 늙으신 부모가 부담이 되거나 생활에 짐이 되면 외면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지난 5월8일 어버이날에 채널 A 텔레비전 방송에서 “천하에 몹쓸 불효자식”에 대한 방영이 있었습니다. 한 아버지가 아들을 미국에 유학을 보내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유학비가 3억원이나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돌아와서 결혼을 한 후에 사업을 했는데 이제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서 실버타운에 들어가서 살려고 아파트를 팔았습니다.
아파트를 판 돈 10억으로 노인 요양원에 들어가서 살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들이 찾아와서 사업상 돈이 필요하다면서 돈을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자기에게 돈을 빌려주면 자기가 부모님을 모실 테니까 염려 하지말고 돈을 빌려 달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믿고 아파트를 판 돈을 몽땅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들과 며느리가 부모님의 돈을 가져간 후에 빈털터리가 된 부모를 나몰라라 하는 바람에 부모는 졸지에 갈데가 없어서 여관방을 얻어서 생활했고 컵라면이나 먹으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돈이 없는 아버지는 고물상에 가서 하루종일 분리 수거하는 일을 해서 일당 만원을 받아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 내외는 아버지에게서 가져간 돈으로 좋은 아파트를 사고 다시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해서 잘먹고 잘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가서 돈을 좀 달라고 하니까 아들은 지금 사업이 망해서 어렵다고 하면서 아버지를 피해서 도망을 다녔습니다. 나중에는 아들이 아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결국 살길이 막연해진 아버지는 동사무소에 찾아가서 기초생활 수급자 신청을 하러 갔는데 동사무소 직원이 조사해 보니까 아들은 재산이 7억에 연봉도 엄청난 고소득자로 신고가 되어 있어서 아버지는 기초생활 수급자 신청이 받아드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결국 경찰서에 찾아가서 아들을 고소했고 아들에게 재산 반환 신청을 냈습니다.
재판정에서 고소장이 날아 오니까 다급해진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와서 잘못 했다고 빌면서 건물 하나를 팔아서 아버지에게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에게 건물을 처분하기 위해서 위임장 서류를 써 주었는데 아버지가 아들이 써 준 위임장 서류를 가지고 건물을 파는 계약서를 작성 했는데 그 서류 때문에 아버지가 사기죄로 걸려서 유치장에 들어갔습니다.
알고 보니까 아들이 건물을 주지 않으려고 사기를 쳐서 아버지를 유치장에 들어가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경찰 조사결과 그 모든 일은 아들이 꾸민 사기극인것이 들어났고 결국 아들은 잡혀서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종종 가정문제로 큰 사건이 벌어지는 이유는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에 마산 한성당 약국 주인 김효수(57. 약사)씨 부부를 살인방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이 살인방화 사건의 주범은 다름아닌 그 부부의 아들로 밝혀졌습니다. 아들은 부모가 돈을 주지 않자 화가나서 부모를 칼로 잔인하게 죽이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하여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습니다.
한번은 고등학교 2학년 딸이 새벽 2시에 술에 취해서 집에 돌아 왔는데 딸아이가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모습을 본 아버지가 딸아이의 뺨을 때렸습니다. 그런데 뺨을 맞은 딸이 당장 112에 아버지를 신고해서 경찰이 출동하여 아버지를 잡아 갔습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가정의 기본질서가 무너지고, 부모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이제는 부모들이 자녀의 눈치를 보면서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많은 자녀들이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부모를 멸시하고, 또한 부모님의 훈계를 비웃고 부모님의 훈계는 시대에 뒤떨어 졌다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도 부모공경은 가장 중요한 인간의 도리입니다. 부모 공경은 교회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사람들은 부모 공경을 가르쳐 왔습니다. 이는 부모 공경이 인류의 보편적인 도덕이요 윤리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은 우리가 힘써 행하지 않으면 소홀하기 쉽습니다.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지만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는 태만한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자식을 위해서라면 한 달에 수십만 원 쓰는 것을 아까와 하지 않으면서 부모님에게는 단돈 몇 만원의 용돈을 보내드리는 것도 아깝게 생각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독일 속담에“한 아버지는 열 아들을 기를 수 있으나 열 아들은 한 아버지를 봉양키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본능적인 것입니다. 사랑 가운데 모성애보다 강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들 역시 자녀를 사랑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미국과 호주 또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이민 가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한인교회를 세우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인교회가 싸우고 분열하는일을 계속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미국 내 한인교회들은 90%가 분열과 싸움의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인교회가 왜 그렇게 잘 싸우고 분열하는지 사회심리학자들이 모여서 심층 연구 분석을 했습니다. 3천명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면서 연구를 했는데 놀라운 사실이 발견 되었습니다.
이민자들 대부분이 부모를 버리고 왔다는 자괴감 때문에 조금만 감정이 상해도 잘 싸운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내면속에, 부모공경을 잘 하지 못한데 대한 죄책감과 좌괴감이 내재하고 있기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폭발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떠나서 이민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 부모님께 사람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산다는 자괴감 때문에 늘 마음이 편치 못해서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쫓기는 듯한 마음 때문에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한 경우가 많고 그리고 사회 공동체나 교회 공동체에서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는듯한 상황이 발생하면 마음속에 쌓여있던 자기에 대한 불만과 자괴감이 강하게 표출되면서 공격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초청해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효도하면서 사는 사람은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성공적인 이민생활을 하고 있다는 조사 보고가 나왔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결과 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보면“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라고 증거 합니다.
성경에는 상당히 많은 명령문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죽도록 충성하라, 내 양을 치라 등등 우리에게 익숙한 대부분의 말씀들이 전부 명령문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명령문이 많다는 것은 이 모든 명령에 어느 만큼 복종하느냐 하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신앙 수준 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의 눈 높이를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교회에서 배운 내용을 자기 생활에 잘 적용시키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52주 예배를 안빠지고 예배를 잘 드린 사람도 신앙 생활을 잘 한 것이지만 그보다 더 잘 한 사람은 그 말씀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님도 공경하라고 증거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레"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 뜻은“두려워한다 또는 엎드려 경배한다”입니다.
예수님께서도“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앞에 납작 엎드려 겸손하게 예배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다르"와 "카바드"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하다르"는“존경하다, 호의를 베풀다”라는 뜻이고, "카바드"는 “짐을 지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부모공경은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를 위해서 짐을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
모를 위해서 경제적인 짐도 짊어져야하고, 부모의 고독하고 외로운 짐도 나누어지고, 늙은 부모의 힘들어하는 짐이 무엇인가를 돌아보고 그 짐을 져주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옛날에 젊은 부부가 홀로 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 부부에게는 어린 아기가 있었습니다. 농사 일이 바쁘다 보니까 부부가 함께 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어느날 밭에서 돌아온 아내가 시아버지 옆에서 잠든 아기에게 젖을 먹이려고 아기를 들어 안았는데 아기가 기척이 없이 고개를 푹 떨구었습니다.
알고보니 시아버지가 낮술을 한잔 하고 낮잠을 자다가 그만 아기를 깔고 자는 바람에 아기가 죽은 것입니다. 애기 엄마는 너무나 놀래서 죽은 아기를 안고 얼른밖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아기를 불러 보았지만 아기는 아무런 기식이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애기 엄마는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아기를 깔아죽인 시아버지를 염려 했습니다.“혹시라도 시아버님께서 자기가 아기를 깔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괴로워 하실까?”그래서 이 사실을 비밀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아기를 안고 밭에서 일하는 남편에게로 달려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아내의 말을 다 듣고난 후에 갑자기 "이런 불효 막심한 자식!, 왜 하필이면 할아버지밑에서 깔려 죽어서 할아버지의 심기를 괴롭게 하는거냐? 너 같은 불효 자식이 천하에 어디 있겠느냐 이 나쁜놈아!" 하면서 아기의 뺨따귀를 후려 갈겼습니다. 그랬더니 뺨을 맞은 아기가 응애!하고 울면서 깨어 나더랍니다.
자식이 죽어 나가는 상황 에서도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린 부부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신 것입니다. 이 사연이 널리 퍼지면서 그 지역에 효자와 효부가 산다 하여 그 동네가“효자동”이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자녀들은 부모에게 사랑의 빛을 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모든 생물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부양을 받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씨앗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끝납니다. 곤충이나 어류들은 알을 낳는 것으로 끝납니다.
동물들도 새끼를 낳은후에 몇 개월만 돌보아 주면 끝납니다. 다시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혼할 때까지 근 30년을 돌봐주는 것이 보통입니다. 심지어는 나이가 들어서도 손주 손녀까지 키워줍니다. 인간은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할 때까지 기나긴 시간을 부모의 보호와 도움을 받으면서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와같이 오랜 세월동안 사랑으로 키워주고 돌봐준 부모의 은공을 잊지말고“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오늘 본문에서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6:1-3) 라고 명령 했습니다.
여기서“부모에게 순종하라”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22절에는 아내들에게 권고하는 말씀이 나옵니다.“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submission)과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obedience)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강한 표현입니까? 당연히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더 강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자의적인 순종”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강제적인 순종”입니다. 마치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듯이 부모님한테도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그 십계명을 돌판에 새겨 주셨습니다. 첫째 돌판에 새겨진 계명은 첫 번째 계명부터 다섯 번째 계명인데 하나님 공경에 대한 계명입니다. 두 번째 돌판에 새겨진 여섯 번째 계명부터 열 번째 계명은 인간(이웃)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제5계명은“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그런데 이 계명은 분명히 인간에 대한 계명인데도 첫째 돌판, 즉 하나님 공경에 대한 계명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제5계명, 즉 부모공경에 대한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에 속한 계명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즉 부모는 이 땅에 계신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모님을 볼 때 하나님 보듯 하고, 부모님을 섬길 때 하나님을 섬기듯이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부모공경의 자세입니다.
미국 텍사스 주에서 살던 한 남자가 가족을 버리고 타지에 나가서 30년 동안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가 병으로 죽었습니다. 돈 한푼 없이 죽은 그는 고향에있는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기를 고향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자식들은 모두 분개했습니다.“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우리가 아버지를 모셔다가 장례식을 치러야 해?”하면서 다들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신앙심이 깊은 큰 아들은 달랐습니다. 아버지의 시신을 고향으로 운구해오기 위해서 큰아들은 자기의 농기계를 저당 잡혔습니다. 그리고 돈을 만들어서 수천리 먼곳에 떨어진 캘리포니아까지 가서 아버지의 시신을 모셔다가 지극정성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장례식이 끝난후에 큰 아들은 동생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성경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지 좋은 부모만 공경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단다”
그렇습니다. 좋은 부모든 나쁜 부모든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1998년 5월 12일 새벽에 전북 진안군 생수면 점촌 마을에서 목재소를 경영 하는 전창균씨 집에서 한밤중에 불이 났습니다. 불이나자 부인 김정숙씨는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집안으로 뛰어들어가서 9개월 된 아들을 구해내고 다시 큰 아들을 구하려고 뛰어 들어갔다가 아들과 함께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소방관들이 불을 끄고 김 여인을 찾았을 때 김 여인은 아들을 꼭 껴안고 죽어 있었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는 희생으로 자녀들을 길렀습니다. 부모는 고생고생 하면서도 자녀들을 길렀습니다. 부모는 먹지 못하면서도 자식은 먹이려 했고, 입지 못하면서도 자식은 입히고 부모는 밤잠을 자지 못하면서 자식들을 공부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 부모의 은혜를 외면하는 사람은 자신을 세상의 미물만도 못한 자로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부모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는 잠언 30장17에서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 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라고 했고, 레위기 20:9에는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라고 증거하고있고 출애굽기 21장 15절과 17절에 보면 부모를 때리거나 부모를 욕하거나 저주하는 자식은 반드시 죽이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유교의 칠거지악에도 보면, 부모불효거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불효하면 집에서 쫓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법은 더 무섭습니다. 하나님은 집에서 쫓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인본주의에 물든 현대 사회는 불효자식 처벌법이 없어서 불효자를 처벌하지 못하지만 부모를 괴롭히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는 하나님이 직접 처벌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 처벌이 있느냐 하면 부모공경은 하나님이 세워주신 법 가운데 기본 골격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불효하는 죄는 하나님께 직접 범죄하는 것이되기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그런 패가망신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에게 항상 효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서 복을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국어학자로 유명한 이숭녕 박사는 워낙 유명하신 교수님이자 학자이기 때문에 제자들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의 결혼주례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숭녕박사님은 결혼 주례를 승낙하기 전에 결혼할 당사자들을 불러놓고 반드시 한가지 약속을 받은후에 결혼주례를 서 주셨다고 합니다.
"부모에게 불효한 자는 늙어서 자녀에게 반드시 버림을 받게 된다네! 부모를 나몰라라 하고 팽개친다면 훗날 자네들은 몇배의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야! 그러니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나하고 약속할 수 있겠나?" 그 다짐을 받은 뒤에야 결혼주례를 승낙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효자와 효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십자가 앞에 서 계신 어머니 마리아를 바라 보면서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네 어머니라”(요19:26-27) 라고 말씀 하시면서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제자 요한이 예수님의 모친을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어느 인질범이 할머니 한분을 납치해서 인질로 잡아놓고 며느리에게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당신의 시어머니를 내가 데리고 있다. 천만 원을 가져 오면 풀어 주마” 며느리가 말합니다. "어림없는 소리, 당신 맘대로 하세요”
그러자 인질범이“좋다. 그럼 너의 시어머니를 도로 너의 집으로 데려다 놓겠다.”그러자 당황한 며느리가 황급한 목소리로“여보세요! 은행 계좌 번호가 어떻게 되죠?”하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요즈음 부모님 보시는 자녀들은 정말 귀한 사람들입니다. 권효가(勸孝歌)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내려오는 글인데, 제가 소개 하겠습니다. 한문으로 된 시를 번역한 것인데 의미가 있습니다.
“부모님의 그 은혜는 하늘보다 높다지만, 청춘남녀 많은데도 효자효부 없는지라, 출가하는 새악시는 시부모를 싫어하고, 결혼하는 자식들은 살림 난다 졸라대네. 제 자식이 장난치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부모님이 훈계하면 듣기 싫어 등 돌리고, 재롱부린 자기자식 귀엽다고 박수치며 부모님이 타이르면 잔소리라 외면한다. 자식들의 오줌, 똥은 손으로 주무르나 부모님의 흘린 침은 더럽다고 눈 흘기고, 과자봉지 들고 와서 아이 손에 쥐어주나 부모 위해 고기 한 근 사올 줄을 모른다네. 개 병들어 쓰러지면 가축병원 달려가나 늙은 부모 병이 나면 치매라고 관심 없고, 열 자식을 낳은 부모 한결같이 키웠건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귀찮다고 생각하네. 자식 위해 쓰는 돈은 한도 없이 많건 만은 부모 위해 쓰는 돈은 한 푼조차 아깝다네, 자식들을 데리고는 비싼 외식 자주하나 늙은 부모 모시고는 외식 한번 힘들구나. 그대 몸이 소중커든 부모은덕 생각하고 서방님이 소중커든 시부모를 생각하라. 가신 후에 후회 말고 살아생전 효도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자녀들이 효도하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부모를 존경하고 높이고 짐을 지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뒷방에 모셔놓고 음식만 넣어 드리는 것은 감금한 것이지,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말씀을 나누고, 어르신의 조언을 귀하게 듣고, 집을 나가고 들어오면서 문안드리고, 그래야 공경하는 것입니다.
공경의 출발은 부모님의 마음과 몸을 함께 살펴 드리는데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보람과 기쁨을 안겨드리는 것이 공경입니다. 사회적으로 잘못 되어 부모님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말고 가슴 아프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성경은 구원과 더불어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강조 합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도 강조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이 땅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하늘에 닿아 있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까마귀를 가리켜서 반포조(反哺鳥)라고 합니다. 어미가 늙으면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주기 때문에 생긴 별명입니다. 효도를 미덕으로 알고 있는 인간이 보기에는 상당히 훈훈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까마귀가 효성을 깨닳아서 그리 하는것이 아닙니다. 단지 본능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 뿐입니다.
효도는 오직 사람에게만 있는 귀한 감정입니다. 효성이 깊은 사람은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심지어는 나라에서 표창도 합니다. 하지만 성도가 효도하면 그 효도는 하나님께 열납되는 향기로운 제사입니다.
우리가 이 특권을 잘 이행하면 큰 복을 누리면서 살게 됩니다. 우리 다같이 “어머니은혜”라는 노래를 부르고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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