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32. 건강기능식품 판매
대도시에서 가정의학과를 운영하는 K원장에게 어느 날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영업사원이 찾아왔다. 그는 새로 미국에서 수입한 건강기능식품 세트 팜플렛을 보여주며 최근에 이러한 제품들이 환자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하였다. 혈액순환개선제, 노화방지제, 면역능증진제 등의 효능을 열거하며 모두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를 득한 품목이고 국내 시판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10만원, 20만원, 30만원의 세트가 있으며 낱개로도 팔 수가 있고 하나를 판매할 때마다 판매 대금의 30%는 판매자에게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K원장은 병원 경영을 위해 최근에 비만클리닉과 함께 건강증진클리닉을 시도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건강증진클리닉은 금연 등 환자의 생활방식을 바꾸도록 하여 건강을 증진하고 질병을 예방하려는 클리닉이다. 영업사원은 그러한 클리닉에 오는 환자들에게 이 제품은 매우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며, 이 제품은 자사가 독점 수입 판매하는 것으로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가 어렵고 오로지 의료기관 만을 대상으로 납품하려는 것이 회사의 전략이라고도 하였다. 하루에 두 세 세트만 판매해도 병원 경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영업사원의 말에 K원장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무리 병원 경영이 어렵다 해도 의사가 건강보조식품을 판매한다는 것이 왠지 꺼림직 했다.
<윤리적 고찰>
의사가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적절한가에 대한 물음이 이 사례의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들어 일반인과 환자의 건강기능 식품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이런 문제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책임 있게 대답을 해 줄 전문가가 의사라는 이유로 의사가 이런 일도 맡을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환자의 건강-질병 상태에 대해, 그리고 질병치료 및 예방에 이르는 포괄적인 영역에 대해 의사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그러므로 환자가 건강기능식품에대해 문의를 해 온다면 그에 대해 합당한 대답을 해 줄 수 있을 만큼의 전문적 지식을 쌓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의사가 건강기능식품을 치료보조제, 혹은 건강개선 목적으로 환자에게 권장할 때는 그만큼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최근 미국의 NIH나 FDA, 우리나라의 식품의약품안전청 등에서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건강 기능식품의 목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의사는 이러한 기구 및 각종 관련 학회의 지침 등을 숙지하여 학문적으로 근거가 있는 상태에서 건강기능식품을 사용하여야 한다. 대한의사협회 윤리지침도 제11조 1항에서 “의사는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의료행위’만 시행하여야 한다.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의료행위’라 함은 의학계 일반과 관련 전문학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의료행위를 말한다.”, 2항에서 “② 의사는 의학계에서 검증되지 않은 행위와 시험적인 의료행위는 반드시 사전에 전문학회 등 관련 기구의 공식적인 심의와 승인을 거친 뒤에 시행하여야 한다.”고 하여 이와 같은점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의 판매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의사가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한다면 그것은 환자를 위한 일인가, 아니면 의사를 위한 일인가? 만약 환자의 편의를 위해 효능이 입증된 건강기능식품을 갖추어 놓고 환자가 원할 경우 공급한다면 이는 비윤리적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건강기능식품의 공급 자체가 우선적으로 환자의 선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건강기능식품을 환자가 압력을 느낄 정도로 강권하여 구매하게 한다든지, 그 효능에 대해서 환자의 질병과 관련하여 과장된 주장을 한다든지, 아니면 지나친 폭리를 취한다든지 하는 행위는 의사의 전문직 품위를 훼손하는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환자에게 어떤 치료나 의약품, 혹은 건강기능식품을 권유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의사-환자 관계는 기본적으로 신뢰를 통해 구축된다는 사실이다. 의사의 권유를 다른 판매상의 그것처럼 환자들이 인식하게 된다면 이미 의사-환자 관계는 손상을 입은 것이다. 의사는 이러한 관계의 특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익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일부 의사가 그렇게 한다면 전체 의사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법률적 고찰>
이 사례는 의료인 혹은 의료기관이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것이 적법한 것인지에 관한 것이 사건의 쟁점이다. 의료법 제25조 제1항에서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의료인이 건강기능 식품을 판매하는 것은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판례는 의료행위라 함은 일반적으로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찰, 검안, 처방, 투약 또는 외과적 시술을 시행하여 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위 및 그 밖에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2001. 7. 13. 선고 99도2328 판결) 따라서 단순한 건강기능식품의 판매는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는 아니며, 이는 의료행위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건강보조식품의 판매는 의료행위가 아니며 따라서 의료행위가 아니므로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도 아니어서 의료인이 이를 판매하는 것은 적법한가? 그러나 의료법 제53조 제1항 제1호에 의하면 의료인으로서 심히 그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으며, 이 조항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단순한 건강기능식품이더라도 이를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이 판매한다면, 환자의 입장에서는 마치 건강기능식품이 치료제인 것처럼 오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건강기능식품에관한법률 시행규칙 별표1에서 정하고 있는 일반건강기능식품판매업자의 시설기준을 갖추어야하며, 시도지사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는 건강기능식품에관한법률에 위반되는 상태에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