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는 임시정부의 여당 한국독립당(1940년) 당의(黨意)에 처음 수록되었다. 그 내용은 “머리와 꼬리의 위치를 고르게 하고, 나라를 흥왕하게 하며 태평을 보전함이 널리 인간을 유익하게 하며(弘益人間), 세계를 진리로써 화하는(理化世界) 가장 높은 공리이다.”라고 하였다. > 이어 조소앙이 기초하여 1941년 선포됐던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에도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는 우리민족이 지킬 바 최고공리임”이라고 규정하였다. '건국강령'은 일본제국주의를 물리치고 한민족의 통일된 독립정부 건설을 위한 전략구상의 명문화였다. > 홍익인간 이념은 민세 안재홍도 그대로 받아들여 '다사리' · '만민공생' · '대중교용' · '민주주의' · '민생주의' 같은 현대적 정치 원리로 보아 ‘새시대의 지도원리’로 신민족주의 이론으로 삼았다. 정인보도 '홍익인간'을 우리민족이 인간세계를 열고 나라를 세운 최고의 준칙이었고 ‘조선의 조선됨이 그 근본되는 연원’이자 ‘겨레의 줏대되는 정신’이라고 했다. 정인보는 공익을 사적 이익에 앞세우는 홍익인간의 전통을 잊고 실천치 않은 데서 망국의 비운이 초래된 것으로 보았다. > '홍익인간'이 교육이념으로 국가의식 속에 자리잡고 난 후에는 민간에서도 ‘단군민족주의’ 경향이 더욱 강화돼 교명이나 교가의 내용으로 정착되었다. > 우리나라 건국이념이 교명으로 된 예가 ‘단국대학교’이고, 교육이념은 ‘홍익대학교’ 명칭이 되었다. 교육이념이 된 '홍익인간'은 민족주의자인 '조소앙'과 '안재홍'과 같은 신민족주의자들이 처음 주목하며 비상했다. ‘홍익인간’은 13세기의 '삼국유사'(1281) · '제왕운기'(1287)의 ‘단군사화’에 처음 나타났다. 하느님 환인이 지상에 환웅을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보내며 지상에 이루려던 세상 모습이 ‘홍익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