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시 십 분 전.
비지 비 클리너스(BUSY BEE CLEANERS)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스름한 불빛이 그의 머리 위로 가만히 내려왔다.
세탁소는 천정이 공장 건물만큼 높은데다가 천팔백 스퀘어 피트로 넓어서, 불침번이나 서도록 천정에 켜둔 형광등 하나가 넓은 실내를 제대로 밝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러므로 작은 등의 불빛은 실내 공간 전부를 장악하지 못하고 대충의 허공만을 밝힌 탓에, 가게 안의 모든 것들은 분명한 형태로 나타나 보이지 않았다.
실내 공간에는 스팀 파이프가 거미줄 같이 기계들을 얽어 놓고 있었는데 이 스팀 파이프에는 스티로폼 같은 단열재가 덮히고 그 위로 흰 종이 테이프가 감겨져 있었다. 이 붕대처럼 좁고 긴 내열 테이프는 시간이 지나면서 누렇다 못해 짙은 갈색으로 변색하였고, 아주 낡아서 군데군데가 풀어진 다음 축축 늘어뜨려졌다. 새벽, 어두운 불빛으로 보는 너울거리는 테이프 조각에서는 괴괴한 소리가 나는듯했다.
어두워서 분명치 않은 모습으로 실내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기계들도, 숨이 끊어진 채 나둥거려져 있는 덩치 큰 짐승들 같아 보였다. 대부분이 일이십 년을 넘긴 낡은 세탁장비는 전기 배선이 기계 밖으로 삐져나온 것들이 많아서 꼭 배 터진 짐승의 꼴 같기도 했다. 이와 같은 잿빛의 어수선함은,컴컴한 기계 밑창으로부터 시커먼 짐승이 뱀처럼 불거져 나오지나 않을까 하는 불쾌한 상상이 나도록 했다.
그의 생계를 받쳐 주는 고마운 이 가게가 이토록 섬뜩하기까지한 불안감을 그에게 주는 까닭은 단지 어두움이 주는 두려움 탓만이 아니었지 싶다. 그것은 하루도 쉬지 않고 탈이 나는 이 세탁소의 낡은 설비가 그에게 하도 몸서리쳐져서, 그래서 밤새 잊고 있던 기계에 대한 불안감이 새벽이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세탁소의 뒷문 옆, 구석진 벽에 걸린 전기 배전반의 메인 스위치를 올려 세탁소를 깨웠다. 그런 다음 언제나처럼 돌아서서 바로 보일러실 속으로 들어갔다. 네 평 남짓한 넓이를 별도의 벽으로 둘러싼 시커멓게 그을은 중환자 보일러실. 캐나다에도 이런 보일러가 있다니? 서 있기도 힘겨워 보이는 낡은 스팀 보일러는 그의 키보다 조금 더 커서 머리 위로 팔을 뻗어 올려야 끝이 닿을 높이였는데 그 꼭대기 모서리 부분을 죽 둘러서 황토색 본드가 이겨 붙여져 있었다. 보일러는 두 아름 둘레이니 덩치가 큰 축에 드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것이 온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팀을 발생 시키는 보일러이니 만치 덩치에 비해 아주 센 강단이 요구 되는 기종이었다. 그러나 자꾸만 드러눕고 싶어하는 이 나이 든 보일러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그를 불러 자기를 살피도록 했다.
보일러 스위치를 올린 다음 물 펌프 도는 소리를 들으며 얼른 돌아섰다. 하루 일을 시작하기 위해 그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지금은 여기서 더 머뭇거리고 있을 수 가 없다. 보일러는 반 시간 후가 되면 제 압력을 낼 것이다. 90psi의 압력, 그러니까 제곱 인치당 90 파운드의 강력한 스팀 압력을 이 늙은 보일러가 힘겹게 만들어서 세탁기계들에게로 보내 줄 것이다.
여섯 시.
초록색 오픈 사인이 켜지자 이내 네 사람의 공장 노동자가 문을 열고 들어와 푸른 작업복을 맡겼다. 세탁소가 속한 상점가(mall)의 어귀에 유전지대로 가는 통근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근처 콘도에 사는 노동자들이 버스 기다리는 시간을 틈타 작업복이나 오래 입은 스웨터 몇 점씩을 던지고 가곤 했다. 곤한 잠에서 깨어난 그 노동자들은 대부분 너무도 무표정해서 아직도 덜 끝낸 꿈을 마저 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카운터에 선 그의 아내도 그저 그들의 성(last name)이나 묻고, 언제 찾을 거냐는 꼭 필요한 질문만 던졌다.
이것은 사람을 만나면 으레 다가가 종다리처럼 쾌활하게 말걸어 지저귀는 그의 아내를 몹시 서운하게 만드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돌처럼 표정이 굳은 그들에게 더 이상의 어떤 말이라도 붙였다가는, 대번에 퉁명한 역정이 되돌아올 수도 있는 일이라 종다리도 이들에게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세탁소의 전면, 카운터가 앉은 지역은 그의 아내가 감당한다. 한꺼번에 손님 서너 사람까지는 혼자서 종다리 종종거리며 다니듯, 뛰며 날며 감당해 냈다. 그래서 전방을 아내에게 전적으로 맡긴 그는 오직 후방의 낡은 설비들과의 싸움에만 몰두했다. 전방의 카운터는 사람을 대하는 대인 업무이어서 종다리가 맡는 것이 당연히 좋았고, 후방은 기계와의 우악스러운 전투라서 붙임성이 변변찮은 그가 이 삭막한 작업을 맡게 되었는데, 그도 또한 종다리처럼 날래기는 마찬가지여서 두 사람이 세탁소의 좁은 통로를 앞뒤로 바쁘게 비집고 다녔다.
와이셔츠가 한 무더기 담긴 밀차를 밀어 세탁소의 뒤편 구석에 놓인 물세탁기 옆으로 옮겼다. 셔츠는 담긴 모양새로 보아 대충 칠십 장이 되거니 싶었다. 그는 와이셔츠의 옷깃에 세척력이 강한 스프레이 세제를 뿌린 다음 물세탁기에 넣고 물을 채웠다. 그런 다음 플라스틱 카드를 컨트롤 박스에 밀어 넣어서 세탁기의 드럼을 회전시켰다. 이다음에도 세탁기는 수동으로 계속 조작되어야만 했으므로 물세탁을 한번 시작한 후에는 다른 기계를 진득히 볼 틈이 없었다. 각 공정의 작동시간은 그의 손목시계에 의존하고 있어서 잠시라도 넋을 놓고 있다보면 한없이 엉뚱하게 돌고 있는 수동 세탁기였다. 게다가 물세탁기의 드럼을 붙들고 있는 금속 베어링도 아주 낡아서 샤프트와의 유격이 크게 발생한 때문에 가끔 드럼이 바깥 철판 케이스를 치는 일이 생겼다. 이때의 마찰음은 천둥 치는 소음이라서 그의 머리카락은 즉시 쭈뼜 섰었고 천둥소리는 해머가 되어 그의 가슴을 쾅 치곤 했다.
여섯 시 삼십 분.
드라이 클리닝 기계 위에 달린 둥근 압력계가 스팀 압력을 90으로 나타 냈다. 이제 드라이클리닝을 시작할 시간이다. 그는 드라이클리닝 첫 작업을 위해 밝은 색 옷만 골라 쌓아둔 밀차를 끌고 왔다. 시작은 옅은 색부터 한다. 가끔 독한 펄크 솔벤트가 싸구려 옷의 짙은 색 염료를 녹였다. 그럴 때면 기계배관 속에 시커멓게 더러워진 솔벤트가 숨어 있다가, 다음 차례 세탁하는 연한 색 옷을 망치게 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경험 많은 동업자들이 그에게 일러준 말이 "드라이클리닝은 연한 색부터 하는 거야."였다. 이 드라이클리닝 기계 역시 컨트롤 박스에 카드를 넣어 한 단계씩 일일이 수동으로 돌려야 했다. 그래서 그가 드라이클리닝과 물세탁 이 두 가지 기계를 한꺼번에 돌리고 있을 때면 두 가지만으로도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거대한 몬스터(monster).
중고 기계 몇 대를 뜯거나 갖다 붙이거나 해서 주물러 만든, 투박하고 덩치만 큰 드라이클리닝 기계. 오 년 전 세탁이라고는 전혀 모르면서 무작정 이 가게를 사버린 탓에, 세탁에 눈이 뜨이면서 이 고물은 큰 두통거리가 되었다. 우선 보기에도 심상찮은 기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고무 패킹은 잔금이 덮힐 만큼 낡았고 펄크 증류실 쇠문고리 용접부는 금새라도 떨어질 듯 덜걱 거렸다. 그러니 이 골칫덩어리는 언젠가는 큰 사고 한번 치고 말 주정꾼 같아 보였다. 세탁을 모르면 새 기계 가진 가게를 골라야 했던 것을.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이다.
오늘의 첫 세탁물을 투입하기 위해 원형의 유리문을 열어 젖히자 기계 내부에 팽창해 있던 펄크 증기가 훅 그의 얼굴을 덮쳐 왔다. 기침이 쏟아지고 눈과 목이 쩌릿해졌다. "크으윽! 펄크 이놈은 너무 지독해." 그가 아침마다 뱉는 혼잣말이었다. 그의 가게에서 쓰는 이 독한 솔벤트의 이름은 펄크이었고 제대로 된 이름은 퍼클로로에틸렌이었다.
그는 드라이클리닝을 수동으로 진행 시켜 가는 동안 맹독의 펄크액이 바닥의 탱크에서 드럼으로 오르내리다가, 필터로도 갔다가, 나중에는 증류 탱크로 옮겨 가는, 이 모든 과정을 조그맣게 내놓은 유리 구멍을 통해 지켜 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어그러질 것만 같은 이 부실한 기계에서 저 독한 펄크가 새어 나오는 날에는 이 실내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피 시켜야 하나? 불안한 상상은 꼬리를 물었다.
일곱 시.
이 시간으로부터의 반 시간 동안은 출근길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들리는 시간이다. 그들은 가던 길에서 잠시 내려서 옷 한 뭉치 불쑥 내밀고, 얼른얼른 이름 적고 그리고는 싹 돌아서서 휑하니 떠나갔다. 단정하면서도 냄새를 피워서는 안 되는 선생, 의사, 부동산 중개인, 변호사,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세탁소를 찾는 시간이다. 이 시간대의 손님 중에 변호사인 주크(Zuk) 씨와 부동산 중개인 밥(Bob) 씨도 있었는데, 매주 목요일이면 오는 큰손인 이들이 오늘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아내가 그를 보고 입을 삐죽거려 보였다.
그렇다면 오늘 장사는 죽(Zuk)도 밥(Bob)도 안 되겠네?
여덟 시.
"하이 씨엉, 굿 모오닝, 굿 모오닝."
세 사람의 다림질 아줌마, 롤레인, 도나, 케이티가 한데 몰려 들어와 거푸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Seong, 이것이 그의 이름 김성립의 중간 이름자여서 여자들은 그를 Seong이라 부르는 것인데, 대부분의 캐나다 사람들이 다 그런 것처럼 그들에게 이 Seong자 읽기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뭐 이런 글자가 다 있느냐는 표정만 짓고 읽어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 하면, 그 중에는 씨엉이라 읽는 사람이 많은 편이었고, 세옹,시옹, 심지어 씨앙해서 썅 소리 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그가 오 년 전 사십 넘은 나이에 바다를 건너 캐나다로 건너 오면서, '성림 김'이던 그의 이름이 아주 서양식으로 '씨엉 킴"으로 바뀌어 버렸다.
작업 채비를 시작한 세 아줌마 모두가 빗자루로 다림질 기계 위의 먼지를 쓸어 내리는 둣 했으나, 이내 빗자루를 든 채 통로에 모여 서서 수다 떨었다. 입심 좋고 명랑한 도나가 선두에 섰다.
"어제, 어제 말이야, 우리 옆집에 사는 떠버리 있잖아. 그 떠버리 여자가 저 아래 다운타운 세탁소, 펭귄에 갔었다는데 말이야, 펭귄이 그 여자 바지 주름을 두 줄로 잡아 놓았더라지 뭐야. 그래서 옆집 떠버리가 막 고함을 질렀다지. 그랬더니 펭귄 세탁소 주인 여자, 다이안이 뭐라고 한 줄 알아?
"뭐야? 뭐야? 다이안이 떠버리를 한 방 먹인 거야?"
"히히히 다이안이 말이지, 점잖게 이렇게 말한 거지. 오! 손님, 두줄 만든 주름 중 한 줄에 대해서는 우리가 돈을 받겠지만, 하나 더 만든 주름은 무료로 해 드리겠습니다요. 써비스로 그냥 해 드릴테니 걱정을 마시라고요. 이렇게 말했다는 거야. 아하하핫."
씨엉이 끼어 들었다. "레이디스, 웬 야단들이래? 일도 시작 않고."
그냥 두면 파티는 한없이 길어 질 것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인구 삼만의 작은 도시 M에서 이 년 전부터 대규모 유전이 본격적으로 개발 되면서 도시는 생각지도 않은 모습으로 달라져 갔다. 유전을 개발한 석유 회사는 엄청난 수의 일꾼을시급히 필요로 했지만, 섯불리 이 구석진 곳까지 와서 일하겠다고 덤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도시가 북위 육십 도까지 올라와 있는 추운 골짜기인데다가, 인근의 도시라해야 오백 킬로미터 떨어진 멀리에 이웃 도시 하나가 있을 만큼 너무 외롭게 치우쳐져 있는 까닭이었다. 그러자 석유 회사는 기대 이상의 파격적인 급료를 제시해 사람들을 유혹한 끝에, 삼만 인구를 칠만으로 늘릴 수 있었다. 전기 기술자에서 주방 보조원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새 일손들이 일거리를 잡았는데 관리직에 비하면 노무직 수가 월등히 많아서, 늦은 밤 다운타운에서는 눈에 뜨이게 술집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도시 M이 생긴지 사십 년이 되도록 잘 유지되던 정숙한 분위기가 깨어지고 처음으로 살인 사건이 나서 시민이 치를 떤 것도 이즈음의 일이었다.
도시는 갑자기 늘어난 인구를 수용할 집이 없었다. 호텔은 이미 만원이어서 노베이컨시 사인을 일 년 내 달고 있었고 빈 아파트 보기도 어려워졌다. 그러자 다음으로 단독 주택을 가진 사람들이 너도나도 방을 비워 임대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때문에 저녁이면 주택가 길 옆에 차 세울 빈 자리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세를 놓는 사람들은 도시 유입자들이 석유 회사로부터 넉넉한 보수를 받고 있다고 믿고 경쟁적으로 집세를 올렸다. 주위에서 터무니 없는 렌트비 액수를 비난할 때면 그들은 이 도시의 비정한 물가에게로 공격의 화살을 돌렸다. 그들도 이 도시의 살인적인 물가와 인건비, 수리비 등을 치르고 살아 남아야 하므로 이 정도의 집세는 타당한 선이라고 발뺌을 했다. 그래서 방 셋짜리 콘도의 월세가 삼천 불이 넘었다. 그러자 밤과 낮으로 근무 시간이 다른 근로자들이 한 집을 빌려서 같이 쓰는 사례가 많았다. 그들은 침실과 식당을 교대로 쓰고 잠자리가 부족하면 복도나 욕조 속에서도 잤다. 그러니 방 두 칸 집에 세 집 식구 아홉 명이 사는 정도는 흔히 볼 수 있었다. 도시로 유입해 온 사람들의 바람은 한 밑천 장만해서 이 삭막한 도시를 웃으며 빠져 나가는 것이어서, 일부 젊은이를 제외하고는 내핍이 몸에 베어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인구가 두 배 넘어 늘어 났어도 씨엉의 드라이클리닝 가게처럼, 사는 데 필수 요소가 아닌 업종의 매출 증가는 인구 느는 폭만 못하였다. 실크나 양모 옷감이 없는 보통 사람들은 물빨래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홉 시 사십 분.
"스팀이 약하다는데."
물세탁기 앞에서 빨래를 끄집어 내던 씨엉에게 종다리가 일러 주었다. 압력계를 보았다. 40 psi. 보일러가 죽었나 보다. 얼른 보일러실로 들어서니 컴프레서의 공기 다지는 소리만 탁탁거릴 뿐 보일러는 숨소리가 없다.
"또 죽었군."
그가 오 년간이나 보일러의 병시중을 든 끝에 간신히 이 노병의 병세를 짐작한 것 세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컨트롤 박스의 전자적인 결함이 있을 때이고, 두 번째는 수증기 만드는 가마에 녹 찌꺼기가 꽉 찼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물의 역류를 방지 시키는 파일러트 밸브가 낡은 때문이었다. 그는 보일러의 남은 압력을 더 낮춘 다음 물 공급 펌프를 재가동 시켜 보았다. 지이잉하고 물오르는 소리가 났다. 파일러트 밸브가 문제인가 보다. 스팀이 물탱크 쪽으로 역류하지 못하게 하는 파일러트 밸브가 낡았으니 어찌할거나? 지금 밸브를 갈자면 두 시간 동안 다림질 아줌마들을 놀려야 하고, 고치지 않고 끌어간다면 삼십 분 일하고 이십 분씩 놀려야 한다. 급한 물건이 아직 제법 남았으니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레이디스, 이십 분 휴식." 말을 전하자 세 여자가 합창 한다.
"빙고! 댕큐, 댕큐, 씨엉."
오늘은 일을 줄여서 열 두 시까지만 다림질을 하게 하자. 급한 것만 골라서 말이지. 그리고는 천천히 밸브를 갈도록 해야겠다.
그도 제법 요령이 생겼다.
"왜 밸브가 자주 말썽이람?" 종다리 짜증스럽다.
"물이 석회질 투성이라서."
"그러면?"
"연수기를 달면 밸브가 오래 간다네."
"얼마나 할까? 천 불? 그 정도면 달고 말지."
열 시 십 분.
다시 올린 스팀 압력으로 다림질과 드라이클리닝이 계속된다. 아마도 길어야 반 시간 후면 또 압력이 주저 앉을 것이다.
비실거리는 보일러, 털털거리는 물세탁기, 금세라도 펄크가 새어 나올 것 같은 드라이클리닝 기계. 컴프레서 한 놈만 씩씩하게 타타타 돌고 있다. 절벽에서 나무뿌리를 잡고 매달려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놀며 쉬며 끌어서 열 두 시를 채우고 다림질 일을 줄여서 끝냈다.아줌마들은 어쨌거나 시간이 일찍 끝나면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돈은 다음에 생각할 사항이고 우선은 그렇게 홀가분해할 수가 없다. 아줌마들이 돌아갈 채비를 하는 중에 케이티가 다가와 말을 꺼낸다.
"씨엉......"
오 년이나 일하던 케이티가 이 도시를 떠난다고, 이제는 못 볼 거라고 한다. 석유 회사에서 일할 사람 모조리 긁어가는 마당에, 사람 어디서 구하라고 떠난단 말이냐?
열 두 시 반.
드라이클리닝 한 차례만 더 끝나면 보일러를 꺼야겠다고 생각하는 참에 보일러실에서 펑하고 센 폭발음이 났다. 이어서 보일러실 문으로 검댕 구름이 나풀나풀 쏟아져 나오자 그는 기겁 하고 달려가 보일러실의 문을 닫았다. 자칫 세탁소 안의 옷을 죄다 물어주게 되었을까 봐 가슴이 쿵덕 쿵덕했다. 세탁소를 인수할 적에 보일러실 벽이 온통 검댕칠이라 마음에 걸렸던 일인데, 그러나 그동안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으이씨, 어떻게 된 일이냐? 원인을 알지 못하는 소동이라서 겁이 나고 짜증스러웠다. 불행은 겹쳐서 오지 않는다더니, 줄을 서서 오고 있는 불행이었다.
"내가 그래도 바다를 건넌 사람 아니던가?"
이민 와서 뿌리 내리려 억척 떨던 지난 오 년인데, 그러나 요즘 들어 등등하던 기세가 많이 숙어졌다. 일 년 수리비가 만 불씩이나 나갔으니, 이대로 괜찮을까 염려가 생긴 것이다. 세탁은 그저 기계 돌려서, 빨고 다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자신이 끔찍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물러서면 어디로 가겠나?"
캐나다 북쪽의 외진 골짜기까지 밀려왔으니 내 등 뒤가 바로 벼랑이지. 그는 어금니를 깨물어 보고, 몽키 스파나를 챙겨 파일러트 밸브를 갈러 보일러실로 뛰어들었다.
오후 두 시 반.
세탁소는 스팀 뿜는 소리와 컴프레서 도는 소리가 무질서하게 엉기는 오전 나절에는 활기에 넘치지만, 오후 들어 기계 작동이 끝나면 찍소리 하나 없는 적막이 가게를 덮는다. 이따금 들어오는 손님과의 대화가 있지만 그것도 대개 몇 마디 오래지 않아 끝나고 말아서 가게 안은 금세 다시 얼어 버린다. 그러나 오늘은 기계 소리보다 더 날카로운 말들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마음인데 웬 노인네가 들어와서 염장 지르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쟎우. 이것이 새 스웨터였단 말이오. 우리 며느리가 지난 생일에 내게 선물한 것인데 내가 서너 번만 입었으니 여즉 새옷인게지. 그런데 멀쩡하던 내 스웨터가 겉이 이렇게 후줄근해 보이니, 필시 당신네 기계 속에 들어가 돌면서 다 쓸린 거 아니겠느냐고?"
귀부인 티가 나는 점잖은 노인네가, 스웨터를 꺼내 놓고 조용조용 따지는 품이 악쓰는 소리보다 머리를 아프게 했다. 십 년은 좋이 입어낸 것 같은 스웨터를 두고 새것이었다고? 그런데 씨엉이 제대로 된 영어에 자신이 없으니, 전투 개시 전부터 의기소침해진다. 혹시 이 노인도 돈을 후리러 시비 만드는 엉터리패 같지나 않을까?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빈틈없이 단정하고 선량한 이웃 노인 같아 보인다.
"우리 기계를 의심하신 아주머니의 상상력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이 세탁소는 일 년에도 수백 벌씩의 스웨터를 세탁합니다만 아직 아무 사고가 없었지요."
세탁 업주가 전혀 숙이고 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노인은 귀찮은 듯이 말을 던졌다.
"명함 한 장 주시우. 거기에 세탁소 주소와 주인 이름이 다 있지요?"
어이쿠 고소하겠다는 말이구나. 가슴이 써늘해졌다. 성가시고 신경 쓰이는 일을 만들겠단다. 이 동네 사람은 법원에서 보자는 소리를 노래하듯이 했다. 그러나 씨엉도 이해 가지 않는 시비를 자주 당한지라, 이제는 무턱대고 꼬리 내리지 않는 덤덤한 뱃장도 생겼다. 명함 한 장 선뜻 뽑아 건네 주면서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서 그 스웨터 다시 한번 볼 수 있겠느냐하고 건네 받았다. 그는 옷을 주의 깊게 살핀 후에 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보건대 이 옷은 오래된 옷입니다."
노인이 흥분으로 고개를 떨며 대꾸했다.
"뭘 보니 그런가요?"
"제가 소매를 뒤집어 보았지요. 그랬더니 보시는 것처럼 소매 안쪽의 팔꿈치 자리가 오래 입어서 헤져 있더란 말씀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노인은 멋쩍게 웃더니, 옷을 꿰어차고는 뛰쳐나갔다.
씨엉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어제 아침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중년의 아주머니가 열 몇 살씩 먹은 딸 셋을 데리고 옷을 찾으러 왔는데 옷이 없었다. 온 가게를 뒤집어 찾아도 찾는 바지 셋이 흔적이 없었으니, 아마도 엉뚱한 사람에게 옷을 잘못 내준 모양이었다. 잘못 나간 옷은 간혹 찾아간 사람 눈에 뜨여서 돌아오기도 했지만, 운 없이 돌아오지 않는 적도 적지 않았다. 바지 셋의 분실이 확실해지자 아주머니는 정색을 했다.
"그 옷들은 말이어요, 불과 한 달 전에 산 새 옷이라고요. 그렇지? 얘들아."
그 여자는 엉뚱하게 어린 딸들의 동의를 구했다. 중학생,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들이 싱긋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네에, 그렇고 말구요. 새 옷이어요."
이렇듯 어린아이들까지 한 목소리를 내는 데야 새 옷이라 믿을밖에.
"물론 변상을 하실 거죠? 고급 제품이라 값이 많이 나간답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씨엉은 옷이 되돌아올 수가 있으니 보름만 시간을 달라고 사정한 끝에 닷새 말미를 얻었다. 그래놓고 걱정으로 낯을 펴지 못하고 있었는데, 가게 문 닫기 바로 전에 웬 천사가 바지 셋을 들고 왔다.
아! 그 고급 옷!
그러나 살펴 보니 바지는 오래 입어 풀기가 없는 값싼 옷이었다.
바지를 찾은 안도감 보다, 아이들에게 거짓을 가르치는 못된 어미를 본 서글픔이 앞섰다. 씨엉은 한숨을 쉬었다. 종다리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런 짓을 보자고 캐나다까지 온 게 아닌데......"
한 때는 중국요리 시켜 먹은 다음 툭하면 내빼던, 그러나 별 죄악감 없이 저지르던 한국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여기서도 덜 되먹은 사람들이 말이 서툰 이방인 세탁쟁이를 먹잇감인 양 집적거렸다. 장난치듯 돈을 요구하다가도 아님 말고하는 식으로 끝낼 수 있으니 그들에게는 이 세탁소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장이 되는지도 모른다.
오후 네 시.
씨엉은 요일 꼬리표를 달고 있다. 색색의 꼬리표를 옷의 허리춤이나 목덜미에 다는 손놀림이 익숙하다. 세탁일 오 년에 거침없이 날래진 솜씨다. 꼬리표 붙인 다음 립스틱이나 볼펜을 찾으러 주머니를 뒤진다. 엉뚱한 곳에 달린 별난 주머니 조차 놓쳐서는 안 된다. 주머니 속을 살핀 후에도 손으로 다시 한번 옷을 훑어 내린다. 이렇게 꼼꼼히 살피는데도 일 년에 몇 번씩 사고가 터졌다. 세탁기에서 옷을 꺼냈을 때 싯뻘건 립스틱이 죽같이 풀어져 옷을 전부 망쳐 놓았거나, 검푸른 잉크가 옷마다 황칠 되어 있는 꼴을 보는 순간이면, 눈 앞이 캄캄해지고 말문이 턱 막혔다.
그래서 이 수색작업은 극히 조심스러웠는데, 그 결과로 부수적인 습득물을 많이 잡아내었다. 그 잡동사니는 주로 동전이 많았고 주머니칼과 헨드폰, 지갑 또는 열쇠 등이었다. 때로 수백 불이나 되는 현금을 찾았을 때에는, 되돌려 받는 돈주인으로부터 칭찬 듣는 맛이 아주 좋았다.
씨엉과 종다리는 습득물을 땡전 한 잎까지 빠뜨리지 않고, 비닐봉지에 담아서 영수증 종이에 매달아 놓았다. 이 영수증 종이는 옷과 함께 컨베이어를 타고 돌게 되어 손님들은 지폐나 동전이 머리 위에서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재미있어했다. 이 모양은 씨엉의 아이들도 보게 되어서, 돈을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그들의 정직성은 큰 보상을 받았다. 그 보상이란,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게 된 것이었는데 그 자부심은 아이들을 아주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오후 여섯 시.
가을의 낮은 여섯 시부터 꺾여지는 것 같다. 가게 유리문 밖 주차장을 떠나고 있는 시든 햇살 보다, 실내를 비추는 형광등 빛이 점점 더 밝아 보이기 시작했다.
종다리가 비를 들고 바람이 가게 안으로 몰고 온 사시나무의 노랑 이파리들을 쓸어 모으고 있다.백야의 여름 끝에 잠시 찾아온 가을이 겨울을 부르고 있어서, 비수처럼 살기를 뿜어낼 비정한 겨울은 곧장 덮쳐올 것이다.
이 낯설던 곳도 이제 그의 눈에 많이 익어졌다.
사람은 그렇게 사나 보다. 눈에 익고 귀에 익어지면 그저 고향인 듯 사나 보다.
참고 있던 피로가 눈꺼풀 위에 얹히자 그는 잠깐 몽롱해졌다. 그 짧은 순간 떠 오른 꿈속에서, 그는 저녁에 마시게 될 한 잔의 위스키를 떠올렸다. 그 위스키가 흘러나오는 병 속에서 고향과 친구가 따라 나왔기 때문에 그는 친구 앞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헤밍웨이가 만났다는 바닷가 노인 이야기 알지? 그건 별거 아니야. 내가, 내가 건넌 바다는 그 노인의 바다보다 얼마나, 얼마나 더 험한지 알아?"
아앗차!
졸다가 깬 그가 흘리다 만 침을 급히 들이켰다.
어스름해지는 이 무렵, 문 열고 들어서는 사람조차 없으면 쓸데없이 스산해진다. 그는 머리를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뒤편의 기계들을 둘러보았다.
"전기만 꺼 놓으면 요렇게 얌전한 놈들이...... 그나저나 내일은 은행에 가 보아야겠다."
그는 새 기계를 머릿속에 그리며, 방금 보았던 벽시계를 또 올려다 보았다.
오후 일곱 시.
씨엉은 앞쪽 천정의 형광등 하나에 불침번을 맡긴 후, 어둑한 세탁소를 천천히 빠져나왔다.
종다리도 종종 걸음으로 따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