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8일(주일오후)
본문 : 디모데후서 1:6~7
제목 : “두려움”
찬송 : 399, 445장
영국의 유명한 테니스 선수였던 짐 길버트는 그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와 함께 치과에 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치료를 받던 그의 어머니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린 길버트의 마음은 강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후에 그는 성장하여 영국에서 유명한 테니스 선수가 되었으나, 여전히 그는 치과에 대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이가 아픈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의 그 공포심 때문에 치과에 가지 않고 버텼습니다. 하지만 견디다가 견디다가 치과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 그는 치과의사를 집으로 불러 진료를 받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진료가 시작되고, 그의 입에 진료기가 닿는 그 순간 그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길버트는 결국 자신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세계 최강의 나라라고 자부하는 미국은 자국민들이 일 년 동안 복용할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구입하는데 무려 25억 달러(2,846,250,000,000원)의 비용을 들인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불안하고 두렵게 만드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항상 그것들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옛말에 ‘산 너머 산’이라고 한 것처럼,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찾아오고, 그 문제가 해결되면, 더 큰 문제가 찾아오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손자병법]에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백번 모두 이긴다.’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합니다. 도대체 두려움의 시작은 어디서 부터였을까요?
성경을 찾아보니 창세기 3:8~의 말씀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즉, 인류 최초로 찾아온 두려움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난 데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두려워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기 전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렸고, 하나님께서 찾으실 때면 기뻤습니다. 그런데 관계가 어긋나고 나니까 두려움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이라고 하는 큰 상처는 돈으로도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상처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상처는 오직 하나님만이 치료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세 가지 처방전을 주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처방전은 “능력”이라는 이름의 처방전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능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가장 먼저 기도한 것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에베소서 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라고 기도했습니다.
빨리 나가서 자기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도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 아닙니다. 자기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도울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가 강건해지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영과 육이 강건한 성도들이 되어 두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거룩한 용사들이 되시기를 능력의 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전에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에 경험한 일입니다. 우리는 시골 마을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동네에서 신기하게도 새벽 4시경만 되면 온 동네를 쩌렁쩌렁 울리는 이슬람 경전 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동네에서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세계를 흔드는 무슬림 성장의 비결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새벽기도 할 때에 초종치고 재종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종들이 사라질 무렵에는 차임벨이 들어와 경음악 찬송가가 온 동네를 울리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성장하던 시대였습니다.
언제부턴가 시끄럽다고, 민원 들어온다고 하면서 교회에서 종을 못 치게 했습니다. 차임벨도 못 울리게 했습니다. 그 때부터 기독교 성장은 멈췄고, 수직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심각할 것입니다. 단전인 예로, 안양에서는 안양시와 안양시기독교연합회가 협의 하에 각 교회당 200만원씩인가를 받고 교회종탑을 철거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장황합니다. “에너지 절약, 수면권 보호, 도시경관 개선, 안전사고 위험 사전 제거”등 그럴 듯한 이유를 앞세웠습니다. 하지만 점점 복음전파의 기회가 막히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무슬림들은 엄격한 규율 속에서 훈련받고 좀처럼 개종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들 중에서도 이슬람 지역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이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그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무슬림들은 어려서부터 코란을 가르칩니다. 무슬림 사원에서는 아주 어린 꼬마들을 모아놓고 코란으로 글을 가르치고, 그것을 암송하게 하고, 심지어 과외공부까지 시킵니다. 6~7세 된 아이들이 코란을 줄줄 외우고 다닙니다. 그렇게 무장을 시키니 강력한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성경 과외 공부 시키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23년동안 목회하면서 아직 한 번도 저에게 돈 주면서 자기 자녀에게 성경공부 시켜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을 못 만나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는 강건해져야합니다. 강건해지기 위해서 무슬림보다도 더욱 기도하고, 그들보다 더욱 말씀 읽고, 그들보다 더욱 신실한 예배 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두려움의 상처도 치료할 수 있고, 또 다른 두려움이 엄습해 올지라도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하나님의 처방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마음을 주시고 두려움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무기로 삼으셨습니다.
요한일서 4:18에는 사랑과 두려움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다같이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 하였느니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무엇이 지금 여러분들을 두렵게 하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사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배시간에 대표기도 해야 하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고, 오후예배 특송 순서 돌아 올까봐 두렵기도 하고, 진로의 문제, 사업의 문제, 자녀의 문제로 두렵다면 그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맞이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함을 사랑하고, 예배를 사랑하고, 찬양을 사랑하고, 나의 꿈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면 물리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우리 주님이 주신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도록 “절제”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칼이 날카로울수록 칼집이 필요합니다. 한번 밟으면 시속 300km까지 달릴 수 있는 고급 스포츠카가 있다면 그 차에서 가장 중요한 시스템은 브레이크입니다. 잘 달리는 자동차일수록 브레이크가 좋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절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항상 필요한 것이 절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복을 위해서 한 영혼을 위해서 절제해야 합니다.
로마서 14:13~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모든 음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본래 고기나 포도주를 먹거나 먹지 않는 것으로 우리의 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을 감사로 받으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내가 고기와 포도주를 먹음으로 인해서,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약한 자들이 그 믿음이 흔들리고 망하게 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두려움을 물리치는 절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렵게 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절제할 때에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힘으로 홍해바다를 건넌 것이 아닙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자기들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셨고,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할 수 없다. 안 된다. 힘들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 입술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초라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네 말이 네 귀에 들린 대로 행하겠다.”고 말씀(민수기14:28)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능력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사랑하며, 절제하며, 두려움을 물리치고 도전하여 능히 승리하는 거룩한 용사들이 되시기를 우리의 힘과 능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과 잘 맞는 찬양이 있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 합니다. 아시는 분들은 함께 찬양 드렸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