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減膳撤樂[감선철악]이란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근신하는 뜻에서
임금의 밥상에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음악을 폐하던 일을 말하며 나라의 변고란 천재지변으로
태풍, 홍수, 호우, 폭풍, 해일, 폭설, 가뭄, 지진 등 자연계의 변화로 받는 재난을 말한다
인재가 아닌 자연재해에도 임금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백성의 안위를 살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모든 것을 다 가졌을 것만 같은 조선시대 왕도
자신의 존재기반이 되는 근본은 어디인지를 늘 생각하였다는 뜻이다
조선의 재해재난 전래이야기-우박과 벼락
천벌(벼락)
1.옥단춘전
황성에 김정이란 재상과 이정이란 재상이 있었다. 그들은 지기지우로서 남다른 우정을 가지고 지냈다. 김 재상은 진희란 아들을 두었고, 이 재상은 혈룡이란 아들을 두었다. 진희와 혈룡은 동갑으로서 같이 자라났고 같이 공부하였다. 그들은 부모들의 세의를 생각하며 금석같은 언약을 맺고, 누구든지 먼저 출세하면 서로 천거해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 후 양 재상은 노병으로 돌아갔으며, 김진희는 과거에 급제하고 누진하여 평양감사가 되어 갔다는 말을 듣고, 전백이나 얻으려고 걸인행색을 하고
평양으로 내려갔다. 감영에 가서 관속 소장을 만나 감사를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들은 체 만 체 하고 천시가 심하였다. 이혈룡은 며칠을 묵으며
아무리 애를 써 보았으나, 김진희를 만날 도리가 없었다. 노비도 떨어지고 하는 걸반으로 월여를 지냈다.
마침 연광정에서 평양감사가 잔치를 한다는 말을 듣고 혈룡이 찾아갔다. 그러나 김진희는 환영해 주기는커녕 사공을 불러 대동강으로 끌고 가서 죽이라는
엄명을 내린다. 이때 연광정에서 감사를 모시고 놀고 있던 평양 명기 옥단춘이 평소에 절개를 송죽같이 지키며 감사의 강압에도 굴하지 않고 지내 오다가,
감사를 친구라고 찾아온 걸인 혈룡이 비범한 인물임을 짐작한다. 그래서 감사의 손에 죽게 되는 그를 동정한 나머지 연석에서 홀연 병이 났다고 하며, 감사를 속이고 물러나와 뱃사공을 매수해서 혈룡을 물에 던지지 말고 강중에 있는 사장에다 숨겨두고 죽인 양 하라고 부탁한다.
옥단춘은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배를 타고 대동강 중에 있는 사장으로 가서 혈룡을 구출하여 집으로 데리고 온다. 옥단춘은 의복을 갈아 입히고
후대하여 자기의 심정을 고백하고 혈룡과 가연을 맺는다.
혈룡은 옥단춘의 집에서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지낸다. 혈룡은 옥단춘의 권고를 받아 과거에 응시하고, 그리운 부모처자를 만나 보기 위하여
옥단춘과는 후일을 기약하고 평양을 떠나 황성으로 돌아온다. 황성에 와서 옥단춘이 시키는 대로 집을 찾아가 보니, 뜻밖에도 노모와 처자가 좋은 집에서
시비를 거느리고 살고 있었다. 혈룡은 옥단춘의 소행인 줄 알고 노모와 아내에게 평양에서 지내던 이야기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노모는 아들이 고생하였음을 슬퍼하고 옥단춘의 희거를 칭찬하여 마지않는다.
혈룡은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평안도 암행어사의 명령을 받는다. 혈룡은 걸인복색을 하고 내려가서 역졸들을 이산시켜 놓고, 먼저 옥단춘의 집을 밤에
찾아갔다. 옥단춘은 반가와 어찌할 줄 모르며 몸도 씻어주고 머리도 빗어 주고 새옷을 내어 입히며 후대한다. 혈룡은 거짓말로 과거에도 떨어지고 가산도
탕진하고 걸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옥단춘은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수심하지 말라고 하며 위로하는 것이다.
혈룡은 이튿날 감사가 연광정에서 잔치한다는 말을 듣고 걸인행색으로 찾아가서 “아무것의 자식 김진희야 이 혈용을 모르느냐” 하고 크게 부른다. 감사는
대노하여 혈룡을 잡아 들이라는 명을 내린다. 혈룡을 묶어 놓고, 이전에 혈룡을 죽이기로 했던 사공을 잡아들여 고문하면서, 옥단춘과 혈룡을 한 배에 싣고
나가 자기가 보는 데서 물에 던지라 한다.
혈룡은 물에 들어가 죽으라는 최후의 북소리를 듣자, 연광정을 향하여 천지가 진동하도록 역졸들을 부르니, “어사출두”를 외치며 순식간에 모여 들었다.
이에 혈룡은 연광정에 올라가서 김진희를 잡아들여 봉고파직하고 죽이려 하다가, 옛정을 생각해서 정배 정도로 치형하려고 하였더니, 진희는 천벌을 받아
죽고 만다. 그 후 혈룡은 좌의정에 올랐으며, 옥단춘은 국왕으로부터 정덕부인 책봉을 받아 부귀를 일세에 누렸다 한다.
* 이 작품은 목판본이 없고, 활자본으로 1919년 9월 30일 발행인 청공당서점판(pp.43)을 비롯한 3종이 있고, 필사본으로 ‘이어사전’이란 이본을 김동욱 교수가 소장하고 있다.
2.엄씨효문청행록
대송 신완 황제 때 금주에 3형제가 있었으니, 첫째는 태사 엄백진이요, 둘째는 추밀 엄백현이요, 셋째는 오왕 엄백경이었다. 엄 태사는 최씨를 취하여 딸 셋만 낳고, 엄 추밀은 범씨를 취하여 2남 3녀를, 오왕은 장씨를 취하여 역시 2남 3녀를 두었는데, 3형제가 한 울안에 집을 짓고 의좋게 산다.
오왕이 차녀 월혜를 강보에 싸인 채 잃었는데, 월혜의 유모인 오녀의 남편 관학이 월혜를 안고 달아나 윤 승상 댁의 시비 쌍심에게 5백 냥을 받고 팔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쌍심은 월혜의 이름을 몰라 화숙이라 하고 기른다.
엄 태사는 최 부인이 40이 넘어도 생남하지 못하는 지라, 추밀의 차남 창으로 양자를 삼으니, 범 부인이 장남 표가 차남인 창만큼 못함을 한하여 동기간에
우애가 없고, 본래 포악하고 심술이 사나움을 잘 알고 있는 오왕 부부가 앞날의 집안일을 남몰래 걱정한다.
태사의 세 딸은 화·려·석씨 문중에 각기 출가하여 부귀를 누리면서 지내고, 추밀의 딸들도 윤·조씨 가문에 출가하여 잘 살고 있으며, 추밀의 장남 표는 양씨와 문씨의 양 부인을 취하였더니, 문씨는 마음이 곱지 못하고 양씨는 마음이 착하다.
엄 태사는 도덕군자인 창의 효성과 덕행을 사랑하여 엄문의 가통을 잇게 하려고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최 부인은 창이 양자로 들어온 지 7삭 만에 생남하고 이름을 영이라 한다. 최 부인은 생남을 기뻐하기보다 영의 자리를 창이 차지하게 된 것을 분하게 여겨 무용지자를 낳았다고 하며 한탄한다.
이에 최 부인은 창을 없애고 영으로 엄문의 종사로 삼을 음모를 꾸밀새, 최 부인은 문씨를 꾀어 음모에 가담하도록 하고, 시비 연화·매선을 통하여 무당
신계낭을 불러들여 후원에 창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활로 눈을 쏘고 칼로 머리를 베는 시늉을 하니, 창이 아무리 비상한 기운을 가졌다 해도 자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태사와 추밀이 걱정하다가, 태사가 우연히 깊은 후원에 들어갔다가 창의 인형을 발견하가 시녀들을 책하니, 신계낭이 천벌을 받아 죽으매, 창은 그 후부터
기운을 차려 일어나게 되고, 최 부인의 계교는 실패로 돌아간다.
최 부인의 큰딸의 남편인 화생이 과거를 보러 갔다가 오는 길에서, 영씨란 불상한 소녀를 만나 가약을 맺어 데리고 왔더니, 최 부인이 딸에게 영씨를
없애라고 한다. 그러나 엄 부인은 영씨가 겸손하여 서로 작의 심정을 나눌 만하고, 구고를 잘 섬기므로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니, 자기에게는 다시 그러한
말씀을 하지 말라고 한다.
최 부인은 다시 시녀 매선을 죽은 신계낭의 남편 김후섭의 아내로 들여보내 놓고 김후섭과 같이 음모를 꾸민다. 창은 이러한 것도 모르고 진왕 윤광천의 딸과 결혼하여 금실이 좋은데, 최 부인은 윤 부인이 생남하기 전에 윤 부인을 죽이려고 김후섭에게 얻은 요약을 시녀로 하여금 윤 부인과 양 부인의 세수물에 타게 하여 얼굴을 상하도록 했으나, 윤·양 부인이 미리 알고 그 물을 쓰지 않으니, 최 부인은 또 실패하고 문씨도 양 부인을 모해하려다 실패한다.
최 부인의 소생인 영은 모친과는 달리 착해서 형·창을 따르며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최 부인이 어머니 마음을 모르는 영을 꾸짖으나, 영은 모친의 음모를 알아차리고 형의 곁을 떠나지 않고, 밥을 먹을 때에 형의 밥과 바꾸어 먹곤 한다.
창이 20세 되는 해에 과거에 장원급제 하고는 윤 부인에게 부모를 잘 봉양하라고 부탁을 하고 숙부를 만나러 오국으로 가니, 오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며
세자를 데리고 나와 맞는다. 창이 오국을 떠날 때에 오왕과 장 부인이 이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해 한다.
최 부인은 창이 오국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김후섭에게 창을 죽이게 했으나 실패하고, 문씨도 양씨를 죽이려다 실패한다. 윤 부인은 최 부인이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지 어려운 줄도 모르고 해 내는데, 최 부인이 윤 부인을 남왕의 첩으로 팔았더니, 윤 부인은 미리 알고, 시비 춘앵을 자기 대신 납치되어 가게 한다.
문씨는 양 부인을 죽이지 못하여 안달하며 시비를 못살게 군다. 최 부인도 윤 부인을 죽이지 못하여 매질까지 하고, 문씨는 윤 부인까지 모해하다가 추밀에게 야단을 맞은 후로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으나, 최 부인은 여전하여 창을 따르는 영을 때려 실신하게 하고, 창이 윤 부인의 방에 가서 잔 것을 알고 윤 부인을
가두고 온갖 곤욕을 준다.
이 때, 오국에서 오왕이 죽으니 46세였다. 세자가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부왕이 죽으매 자기가 왕위에 오르게 될 것을 기뻐하다가, 신왕을 간택하여 달라는 부왕의 유서를 보고는 자기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생포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으니, 황제는 출전하여 대공을 세우고 돌아온 진왕의 아들 윤창인으로 오왕을 봉한다.
최 부인이 창과 윤 부인의 사주를 보니 천강한 선남선녀로서 감히 인력으로는 죽일 수 없고, 영 또한 귀한 몸으로 대공을 세울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최 부인은 그치지 않고 윤 부인이 생남하자, 윤 부인이 남편과 동침한 일이 없는데 생남했다고 무고하여 정배를 보내는 데 성공한다. 이 때 진왕의
시비 쌍심이 길러낸 화백 소저의 신원이 밝혀져 바로 오왕의 차녀 월례임을 알게 되매, 진왕은 아들의 원배로 삼는다.
최 부인은 윤 부인을 적소로 보내 놓고, 다시 법사 영원과 김후섭을 보내어 윤 부인을 죽이게 하니, 윤 부인을 보호하고 있던 동생 윤생이 활을 쏘아
쫓아버린다. 최 부인은 또 창이 모친을 죽이려 했다는 무고를 하여 창을 정배하게 하고 자객을 보냈으나, 그 자객이 창의 인물을 보고 같이 간 김후섭을
죽이고 창의 충복이 된다.
최 부인이 보낸 법사 영원이 윤 부인의 적소에 불을 놓았다가 벽력이 떨어져 죽고, 최 부인이 보수로 백금을 주겠다는 서간을 윤 부인을 보호하고 있던
영이 주워보니 모친의 필적이라, 기절하였다가 깨어나 모친의 죄악을 통한한다.
이 때, 태사와 추밀이 최 부인의 흉계로 요약을 먹고 시비를 분간하지 못하다가, 그 요약으로부터 차차 기운과 정신을 차리게 되었더니, 문 밖에서 최 부인과 시녀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가화의 원인을 알게 된 추사가 최 부인을 죽이려고 한다.
이에 진왕이 황제께 아뢰어 처벌하지 못하게 하거니와, 이건은 창이 알면 불효의 탓이라 하며 죽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 부인은 윤 부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죽어 귀신이 되어서라도 꼭 원수를 갚겠다고 발악한다.
그러나, 배소에서 윤 부인이 모시고 돌아온 영의 지극한 효도에 감동된 최 부인이 비로소 전비를 뉘우치고 착한 어머니가 되고, 문씨도 마음을 바로잡아
양 부인과 화목하게 살고, 창은 윤 부인과 헤어진 지 5년 만에 상봉하여 끊어졌던 부부의 인연을 회복하게 된다.
이에 황제가 창으로 효문공, 영으로 청문공, 창과 영은 종형제이면서 친형제 이상으로 우애를 돈독히 하고, 양모와 친모에 대한 효도를 다했기 때문에,
창과 영을 효문청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 이 작품은 장서각에 소장된 필사본으로 30권 30책으로 되어 있고, 고대도서관에 소장된 필사본은 16권 16책으로 되어 있다.
3.벼락맞은 불효자
옛날에 얘기 있잖니교. 며느리 시어머님이가 인제 꼬치(고추)를 따다 놓고, 죽- 따다 무져 놓고. 그 할마이도 나만춤 담바(담배) 즐기든 모양이래. 담배 풀라고 인제 그 쪼마한 알라(아기), 한 서너 살 먹은 알라를 가여(가서) “대(담뱃대) 가주 오라.” 카이께, 요놈의 얼라가 뿔- 가여 대를 가주 오그던.
대를 가져 오는데, 며느리 시어미 꼬치 따듬는데 담배 풀라고 대 가주 오라카이, 얼라가 소리 듣드매로(듣는 즉시) 쫓아가디, 그래 요늠아 가주 오다(오다가) 마 대 물뿌리를 물고 팍삭 엎어져가주 아가 목구영을 찔렀부러가주 죽었부렀어. 죽으이께네 며느리가 하는 말이, 시어마이가,
“아들 오만 우야꼬? 아들 오만 우야꼬?”
아들이가, 메느리가 하는 말이,
“아이구 어무이요. 오먼 내가 다 말하껬시더 마 걱정하지 마소.”
그래 이 메느리가 그 얼라 갖다 치았부고. 치았부이께네, 한 짜아(쪽에) 갖다 치아노이께네, 아들이 인제 저녁답에 털러털레 온다.
“알랄라(아기는) 어디 갔노?”
“알라는 이붖에(이웃에) 놀러 갔니더.”
그래 하마 그래여 해가 빠졌다. 저 넘 치체(처리)해야 되제. 그래 가주 며늘 각시가 인제 신랑 잩에 얘기를 하지.
“그래 어무이가 나칸 꼬치를 따듬고 있는데. 어무이가 담배 잡숫코 접어가주고(싶어서) 담배 풀라고 대를 얼라로 가조 오라 캤디마는, 얼라가 쫓아가 대
가주 오디마는 얼라가 목을 찔렀부러가주고 얼라가 죽었부렀는데. 우예든지 당신카 나카여(당신과 내가) 얼라를 치체해야 되지요.”
“닐라 있거라.”
알라로 어마이 업으러 카그던. 죽을 아를요. 알라를 업으라 카이, 고마 아들 여에 거치 몬해(거역하지 못해서) 업는다. 본래 각실라몬 오라 카고 지가 얼라를 어무이 업게 가주, 죽은 아를 업게 가주 어무이캉 인제 알라 지카(자기와) 서이 간다. 괭일라 손에 쥐고 인제 간다. 저 가(가서), 늘핀한(넓은) 펀데기 가려,
지양 끝이 파고서, 섯이 어마이 알라 업은 어마이를 마 알라카 서라 카그던. 서라 카이께네 얼라 할무이가 마 그대로 얼라 업고 섰다. 서이께 마 묻었분다.
청청 하늘이가 곽-제(갑자기) 노성백록(뇌성벽력)을 진동하고 치디마는 이 늠을 갖다가 불덩거리로 맨들었부그던. 베락을 맞차가주. 그리이께네, 각시가
‘세사에 가든 사람이 이 비는 놋날 글이 오고 소내기는 퍼붓는데, 왜 아 오느고?’ 싶어여. 인제 각시가 인제 간다. 찾아 간다.
그래 인제 사나아 찾아가지. 그자 시어마이카(시어머님하고) 가이께네, 하마 시어마이는 묻었부고 얼라하꼬 묻었부고, 서방이는 마 불덩어리가 돼가주
가-맣게 탔어. 이 일을 어뜩하노 싶어여. 불덩어리 되게나마게나 여자가 기가 맥히그던. 알라 죽었지. 시어마이 죽었지, 서방 죽었제. 기가 차.
집이 돌아와 가주고, 그 남자가 말다. 저근하만(웬만하면) 각시를 업게 가주 갔으먼 지가 참 복을 받제. 그이 인제 어무이 심부름 씨겄다고(시켰다고) 아를
업으라 카이께네. 아가, 어무이가 여에 거치 모해 업고 가여, 어미를 그래 묻이이께네, 그 늠이 베락을 안 맞고 어예노?
그 얘기도 애이시더. 그 전에 그랬다니더.
[강구면 설화 102]
4.호란 징조
계유 여름, 한성부의 연못물이 수일간 붉은색이었고, 7월 17일 벼락이 인정전의 두세 곳을 때렸다.
을해 7월 13일 큰 비바람이 불어 나무가 꺾이고 농작물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이때 목릉의 석물들이 모두 넘어지고 사대석의 쌓아놓은 돌들이 파헤친 것처럼 무너졌다. 또 건원릉의 수백 년 된 나무들이 낙뢰를 맞았다.
조사해 보니 많은 비에 피해를 본 것이고 특별히 벼락을 맞은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고, 원래 정해진 대로 원종을 태묘에 부하여 모셨다. 이해 12월 9일에 인렬왕후가 해산 직후 곧 사망했다. 그런 다음 이듬해 12월에 병자호란이 일어났다.(조선 중기)
5.상주 때문에 천둥에서 살아난 이야기
그래 한 마실에 숙질이 있었단 말이라. 삼촌하고 조카하고 있었는데, 그래 농사를 어떤 데 짔는고 아이라 산골짝에, 산골짝에 지었거든. 이제 조카 논은 밑에 있고, 삼촌 논은 우에 있었단 말이라. 날이 이렇게 가물었는데, 그때도 마이 가물었는 모양이지. 그래 그 삼촌이 물을 장(늘) 보러 댕겼는데, 표를 딱 해놨다
말이라.
한 분은 그 조카가 가가지고 밑에 논 저어 논에 대놨단 말이라. 그래 인제 가마이 생각해 보니 삼촌이 생각해 보이 숙질간에 논을 부치는데 다리이(다른
사람이) 그랄 이치는 만무하다 말이라. 아주 조카가 그랬거든. 조래놓이 그래 삼촌이 하는 말이,
“요놈! 내일 모레 베락맞을 놈이 내 논에 물을 빼가 제 논에 댄다.”
그래 조카가 물을 빼대고도 겁이 나가지고, 삼촌이 겁이 나가지고 뒷목에 가가지고 논두렁 밑에 가 숨어 있었다 말이라. 숨어 있으니 그 삼촌의 말이
그래하거든. 그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아무리 물을 빼댄들 삼촌이, 우리 적은(작은) 아버지, 삼촌이다가 말을 그래 한다.’ 싶어 그런 생각이 난단 말이라.
그 적시는 가마이 생각한다. 그래서 저거 집에 와 가지고 집도 인제 한 마실에(같은 마을에) 있겠다. 집에 와가지고 삼촌한테 갔다.
“작은 아버지! 물은 내가 빼댔습니다만, 내가 잘못 했니더. 잘못했는데 그래 내 논이 마르다보이 그래 빼댔는데, 그래 적은 아버지는 말씀 와 그리 하십니꺼?”
“우예 말이고?”
“내일 모레 날 벼락 맞으라고 안 캤읍니꺼?”
“그캤지.”
“그래 허면 조카가 벼락 맞으면 적은 아버지 좋은 게 머 있니껴? 물론 내일 모레 벼락 맞을 것을 알면서 방침도 있겠지요. 이런데 방침을 좀 갈치 주이소."
“방침을 갈치 주면, 니 그 내 시키는 대로 하나?”
“하든지 안 하든지 좀 가르쳐 주이소.”
그래 이제 삼촌한테 애걸복걸 했단 말이라. 그래 삼촌은,
“그럼, 니 내 말대로 그대로 해라.”
그래가지고 그거 삼촌이 갈치 준다 말이라.
“내일 모레 아무 날 장인데, 그 장에 가면은 그 상주가, 아주 중단이든지 상복이든지 방립이든지 막카(전부) 떨어진 거, 막카 오래 상주들이 꼭하이(오랫동안 상주로 지내니까) 그래 옷이 막 떨어진 단 말이라. 그런 상주들만 꼭 찾아 댕기거라. 찾아 댕기 가주고 너도 옷을 막 갈아입고 가가지고, 또 그 상주 그만 뒤의 자락을 놓지 말고 댕기란 말이라. 상주 자락을 놓으면 쪼매 지체되면 안 된다. 그래 두 말말고 똑 그 내 시키는 대로만 해라.”
그래 삼촌은 시깄다 말이라. 시키노니 그래 참 과여껀 그 조카가 장에 가니 상주가 떨어진 상주복을 입고, 떨어진 갓망을 씌고 왔단 말이라. 와가주 그리
오이 참 상주 만내 이 저, 그 사람은 반갑거든. 삼촌이 그리 시키이니 만났단 말이라. 그 뒤에는 그적시는 그 상주 뒤를 꼭 따라 댕기는 기라. 꼭 따라 댕기이, 그래 그적시에 낮쭘 되더이마는 청천벽력이지. 그런데 까만 구름이 동동 떠올러 오디마는 고마 번갯불이 퍼쩍퍼쩍 치디마는, 천둥을 하고 그렇거던. 머
번개를 치며 그저 베락이 곧 칠듯이 칠듯이 그렇다 말이라. 그라고 그적시는 장꾼이 말카 헤어지고 고만 한 집에 드갈 거 아이가, 비 파하러, 상주도 비
피하러 드갈 빼끼는 없지. 상주 뒤에만 꼭 따라 댕기거든.
상주 뒤에 옷자락만 쥐고 그래 따르이, 상주가 이리 가이 또 이 사람은 이리 따라가고, 저리 가이 저리 따라 가고. 그러이 그 온통 천동을 하민서 번개가
치민서 뭐꼬 베락이 곧 칠듯이 것는다 말이다. 곧 칠듯이 것다가 못 치고, 곧 칠듯이 것다가 못 치고 한단 말이라. 그적시는 한 및 분 카디마는 그적시는
고만 구름이 흩어지고 날이 청청 대이 맑단 말이라. 그래 만일 그 사람들을 안 따라 대있으면(다녔으면) 그 사람은 죽었단 말이야. 그 사람 때문에 베락이
천둥하고 베락이 왔다갔다하는 긴데, 상주 때문에 그 사람이 살았단 말이야. 그런 이야기가 있어.
[우보면 설화 1]
6.천둥 맞은 개구리
아득한 옛날 어느 한 골에서 어느 양반 가문에 아들 하나가 있어. 그 아들을 여울라구 삼현육갑(각)을 갖추구 신붓집을 찾어 가는디. 참 멫 날 메칠을
걸렸든지 간에 참 장가를 든다 이거여.
써―억 장가를 들구서 인제 오는 신행길인데, 신랑 역시도 몸 체격이 참 듬직하게 장수다욱구, 얼굴두 활발시럭구 나라 일할 만한 사람이라 이 말여. 그래
신부 얼굴이 얼매나 곱던지 참 솟아오르는 반달 같구 물 찬 제비 같은 여잔디. 이런 여자를 읃어 갖구 신행길 찾어오니까 경장두 안 했지. 그러한 거리에서
한참 오다가서 참 하인들이,
“아, 서방님! 목두 말르구 허니 주막이서 갑시다.”
한 주막거리에 앉어서 술 한 잔을 먹구 있넌디, 아 난데웂이 동쪽 하늘 구텡이서 몬지가 푸연히 펴지거던. 이게 바람 몬지두 아닌 몬지가 어째 펴지더니,
자 쪼꼼 있으닝깨 몬지가 오는디 보니까, 웬 한 큰 덜머진 총각 눔이 그 시커먼 말을 타구 막 뗘온단 말여. 말을 타구 떠억 오더니마는 심복, 가마 문 앞이 떠억 내려 스더니 한닷 소리가 메라구 하느냐 하먼, 하인들보구.
“가마문 열어라.”
아 이거 뭐 난데웂는 홍두깨 격이지? 신랑은 시방 술 먹으러 안이 들어가 있는디, 가마문 열으라구 해 노니, 누가 열 사람이 있을 거여. 암두 안 열어 주지요. 그 보잘 것 웂더니만, 그냥 가마문을 자기가 손수 후닥닥 열더니만 신부를 어깨에 들쳐 억구 도망가 버리능 거여.
신부 입뻐린(잃어버린) 신랑 닭 쫓던 개 울 쳐다보는 격이루, 혼자 저억하니(맥없이) 참 눈물을 겨워가며 자기 집이루 돌아옹게요. 돌아와서 날마다 머리
싸매구 두러눠 앓능 거여. 그래 멫 날 메칠을 앓었던지 참 멫 달을 지냈던지 이 사람 죽게 생겼어. 앓게 아퍼서 인저 생각다 못해 가지구서, ‘나 하나루 인해
가지구서 꽃다운 여성 하나 잊어뻐렸는디, 내가 이케 죽어서는 안 되겄다. 내 여자를 찾이야겄다’ 싶어서, 자기가 부인을 찾이러 나승 거여. 보따리를 싸 짊어 지구 나승 거라. 나서 가지구 팔도강산을 헤매는디, 암만 찾어 보아 있으야지. 이렁 저렁 흘른 세월이 십 이 년이란 세월이 흘러 갔더라 이 말여요.
그래 하루는 어느 한 골에를 떠억 찾어 갔더니 호호 백발된 노인네가 혼자 앉어서 참 바느질을 허구 앉었능 거여.
“할머니― 할머니!”
“누구시냐.”
“지내가는 과객인디 밤두 깊구 해서 들어 왔으니 할머니 하룹밤 좀 자구 가게 해주쇼.”
“흠[비웃듯], 각시 찾으러 나가… 나석구먼?”
대뜸 한닷 소리가,
“아아니 할머니? 할머니가 워트게서 그걸 알으십니까?”
“응. 신부 찾이러 나석구먼 그려. 아이고[혀 차는 소리] 츳츳츳츳 안 돽구나.”
“찾기는 찾겄다. 찾겄는디, 죽음끼 다가 왔어(죽을 때가 다가 왔어).”
그러니 큰 일이라 이거여. 아 해 놓구서 하룹밤을 떠억 자구 나니까, 거기서 참 인연이 있던지 할머니가 그 남자를 갖다가 그 청년을 아들을 삼었어요.
“네 정성이 지극허구, 듣자하니 부모에 효도하구 나라에 충성을 한다 하는 사람이라 하니 말여, 네 정성이 지극하니까 내가 네 안식구를 만나게 해 줄 거여.
해 줄 테니까, 부디 만나 가지구서 데러올 생각은 말어라. 말구, 내 허라는 대루만 허라.”
하먼서 난데웂는 새파란 병 하나, 푸른 병 하나, 시커먼 병 하나 병 세 개를 준단 말여?
“위급할 땔라컨(때면) 우선 처음일라컨 이 새파란 병을 열구우? 그 담이는 또 위급할 땔라컨 붉은 병을 열구? 젤― 또 위급하걸랑 그때 가서는 거먹(검은)
병을 열어라.”
했단 말여. 이래 놓구서는,
“이 앞이 가먼 배 하나가 있으니, 됨마(배의 일종)를 타구서, 배 안이 가먼 가만히 엎디려만 있으야지, 고개만 내 들으먼 죽는다. 그 배가 어디찌 임해서
닿걸라껀? 워디다 찧는(닿는) 소리만 나걸랑은 눈 뜨구서 말이지 배를 처매구 올라가라 말여. 그러먼 네가 살구, 그렇지 않으먼 죽는다 말이지?”
그러카구서 할머니가 그 배를 주는 바람에 배 갖다 놓구서, 배 됨마에 가만히 올라가 엎드려 있으니까, 느닷웂이 그냥 노성벽력이 치더니마는 회오리바람이 분다 이거여? 아 배가 쏜살루 바다 가운데루 떠나능 거여. 아드막한(아득한) 바다루 들어가서. 숲 하나 보이지 않구 이거 큰일 났어. 막막하기 한이 읎는디
참 멫날 메칠 갔던지 간에 위급이 참 당하게 생겼담 말여.
바람은 불어싸쿠 배는 돌아싸쿠 갈 길이 웂어요. 그래 배가 잠시 후에는 침몰 직전인데, 아 워쩌다 보니까 배가 지끈―지끈 그 닿는 소리가 난단 말여요.
그래 닿는 디루 떡허니 나가서, 눈을 떠서 보니까 크은 암벽 벽이 가서 배가 닿는디, 배를 쳐매 놓구 보니까 올라갈 길이 웂어. 그래 아무리 해두 못 올라
가겄어요. 그래 나중이는 어쩔 수 웂이 허는 길이 웂어 가지구서 그 파란 병을 열었더라 이거여. 아 병을 열으니까 난데웂는 바람이 쳐불구 노성벽력이
치구 허더니마는 나무가 말끔 부러져 가지구 네려 밀구 그래서 난리라 이거여? 그 불어치는 순간이 자기두 모르는 순간이 어트게서 바람이 날렸던지 간이
꼭대기꺼지 겨 올라갔어.
올라가서 보니까 집이 버언히 비치거든요. 그래 바람으루 살응 거여. 푸른 바람으루다가서 살아 가지구 벽 저기를(암벽 위를) 올라가서 하안―참 무제한 걷다 보니까, 한 섬중인디 워느 쪼꼬만―한 집이가 불빛이 하나 비거던. 그래 불빗이 하나 떠억―허니 있어서 이 사람이 거기를 걸음―걸음 찾어간 거여. 찾어 가서 보니까 남녀노소 할 거 웂이 수백 명이 사능 거여. 한읎이 많이 살어. 사넌디 참 기맥히게 하구 살어요. 그래 한 사람을 만나 각구서,
“이 말 좀 물어봅시다.”
“누구시냐.”
“내 육지서 온 아무갠디, 워트 오다 여까지 왔소. 여기가 총 호수가 멫 집이요?”
“한 집입니다.”
“에?! 한 집이서 이케 많이 삽니까?”
“예. 그저 장수님 한 분 모시구 삽니다.”
“그래 농초(토)는 얼마나 있소?”
“농초는 웂읍니다. 그저 밭 각구 먹구 삽니다.”
“그럼 식량이 안 모지랍니까?”
“예. 식량은 그저 수시루 둘어 옵니다. 그래 워째서 여기를 오셨소?”
“나는, 내 사람을 찾이러 왔는데 여까지 왔시다.”
“사람이라니?”
“한― 삼 년 전에, 내 각시를 잊어 뻐렸어. 각시를 잊어 뻐렸는디, 내 각시 되는 사람이 섬이서 이리 들어 왔다는 말이 있어. 그래서 내 여까지 찾아 왔노라.”
“그러먼, 신행길이서 잊어 뻐력구먼?”
“아, 그렇다,”
“으흥, 만나 보나마나 만나 볼 것두 웂어. 여기 우리 원(우두머리)장수님의 니 번채 마누라라 이거여. (니 번째)마누란디? 지금 최고 귀염을 박구 있는 여자다. 당신 거기 가먼 죽어? 죽으니까 아예 갈 생각을 말으라.”
그래 참 그리두 찾아 갔어요. 물어 물엄 찾어 가서, 자기 부인 방을 떡 문을 이르니까, 부인이 참 나온 담이 보니까, 자기 남편이 돌아 왔어. 돌아 와두
본체만체 한다 이거여. 첫날밤은 도둑눔 허구 치력(렀)구. 예는 그 사람하구 치력구. 이미 몸은 빽겼으니까 소용없다 이거지. 이래 놓구 자기 남편을 떠억하니 데리구서 상을 잘 대접하더니, 누가 보까 무서워 대접하더니만 갖다 골방이다 가둬 뻐린다 이거여. 가둬 놓구서는 죽일라구 드능 거여.
참 쪼매 있으니까 노성벽력이 치구 막 구름이 뫠 들구 하더니, 말굽 소리가 나더니만 도둑떼가 떠억 들어온다 이거여. 들어오니까 한닷 소리가 후이(히)
잔칫상을 벌려 놓구서 참 잘 먹능 거여. 먹구 참 마너래덜 주욱 앉혀 놓구 이러더니 니채 마누래가,
“육지에서 아무개가 건너 왔노라.”
이 보고를 허능 거여?
“그래 그눔 어딧느냐?”
“벽장이 가둬 놨느니라.”
“그러냐구. 내 노라.”
그래 그눔 잡어 네려 놓구서 술상을 멕여 놓구. 좌석 벌려 놓구 술을 주능 거여. 자기는 잔술을 먹어 가머 대접으루 주니까, 한 잔에 먹으먼서 여자 찾이러
왔다 이거지. 그 기가 맥힌 일여.
“여자 찾이러 오다니?”
당장에 참 죽어두 막(죽어도 아내를 찾아야겠다는 말이 생략됐다) 얘기 끝에,
“너는 살어 가는 길이 웂어. 웂으니까 두말 않구 여기서는 이 술 좌석 끝이서 너는 죽으니까 그리 알구서 술이나 먹으라.”
허구서 자기 차구 있던 시퍼런 장도루다가서 고기 꾹 찍어서 입이 대준다 이거여. 이눔이 대더니 떡 벌리구 받어 먹응 거여. 입으루 벌리머 받어 먹능 거여. 받어 먹으먼서 앉었넌디, 한참 먹구 앉었넌디 얼매 있으닝까 참 죽일 시간이 돌아 왔는지 칼을 간다 뭘 한다 이거여. 그래 가마안히 생각하닝깨 큰일 났어.
살 길이 막연혀.
그래 여자라 하능 것은 요물이라능 거요. 거기서 어쩔 수가 웂어 가지구 자기가 그 할머니가 시긴 대루다, 드디어 그때 상 밑이서 붉은 병을 열응 거여.
열으니까 하― 난데웂는 또 바람이 불구 허더니마는 집두 날러가 버리구, 그 벼락다(이) 도둑눔 쌔려뻐리구 그냥 절딴 낭 거여. 절딴 나구 남응 것은 자기허구 그 여자만 남었더라 이거여. 멫 사람하구. 그래 다시 자기가 그 여자를 델꾸서 육지와 살라구 배를 집어탕 거요. 배를 집어 타구 보니까, 아무리 배가 저어
가두 배(육지)가 나오야지. 그래 인제 꼼짝 웂이 죽었어.
그래서 할머니 허라는 대루다 가서 거먹 병을 열으니까 바람이 몰(아)쳐 가지구서 배가 육지에 닿구서 나와서 즈 집이다 갔더랍니다. 나와서 호이 먹구 잘
살구 막 할라구 하다가서 참 부자가 되구 크으게 잘 살라구 막 하는 노력할 챔인디, 깜짝 놀라 깨구 보니 꿈이더라 이거여.
[웅천면 설화 42]
7.파계승의 술수를 막은 효심
그러니까 고려 때의 일인데요, 그 당시에는 파계승들이 상당히 많고 불교가 원체 그 당시에 세도가 있어 가지고 귀족들 속에서도 심지어 출가해서 승려로서 수도해서 당기는( 다니는) 사람이 많았지요. 그러다 보니까 파계승도 많이 나왔고 이랬는데, 그래 요것은 지금 현재 도문동 쯔음 위치가 됩니다.
도문동에 위치가 되는데, 그게 지금 현재 전설의 줄거리는 벼락 바위의 전설이다 해 가지구선, 중도문에서 저 양양군 강현면 상복리로 건너간 다리 가에
지금도 돌이 있습니다. 그래 입을 벌린 채 중간에 갈라져 입이 돌린 채 있는데, 그걸 지금 현재 우리가 말하기를 상천이라고 많이 부르고 있는데, 사실은
문헌에서 얻은 바에 의하면 상천이 아니고, 상천이라고 이렇게 부르는데 사실 상천이 아니고 대림천(待臨川), 기대릴 대, 임할 림자 그래 대림천이 원본명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그 대림천이라고 고쳐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통 부르는 걸 보면 상천, 상천 하는데, 그래 그 당시에 도문동이라는 동명이 없고, 그 설악산 아래 산 옆의 한 마을이 되겠지요. 그 마을에 모 거사(牟居士)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러니깐 그 성은 모씨인데 거사(居士)다. 자기가 거사다 하는 이름인데, 그래 이 사람이 거사다 하는 뜻은 자기가 그 출가를
해 가지고 머리를 깎고 수도는 하지 않았지만, 자기가 그 불교의 도를 터득했다 이래 가지고 그 상당히 자부하는 거지요.
그래서 자칭 거사다 그래, ‘나는 모 거사다’ 하구선 아주 뽑내고 사는 사람인데, 그러면서도 정식적인 수도는 하지 안 했지마는 그 행세는 상당히 승려들이
하는 그 모든 일과 같이 행세를 하고, 살생을 금하고 그야말로 그 육식을 하지 않고 채식을 주로 해서 이렇게 생활을 했는데, 그래 열 한 대여섯 살 먹었는데, 딸아이를 하나 다리고(데리고) 살았더랍니다.
그래 이 사람이 하는 소일은 매일 그 대림천에 나가서 낚시를 던져 놓고 고기를 낚았다고. 낚은 고기는 도로 물에다 여어(넣어) 주고 또 낚시를 드려 놨다
낚이면 도로 그 놈을 여어 주고. 그래 앉아서 잡았다가 놓았다가 하는 그것이 하루의 일과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딸은 따라가 아버지 옆에서 시중을 드는 거지요. 여러 가지 잔심부름도 해 주고 그래는데, 그 하루는 모 거사가 낚시를 던져 놔놓고 잠이 들었어요. 막 자우는데(조는데) 그 딸이 보니까, 고기가
낚시대를 물어서 막 움직이고 있단 말이야. 그래니까 아버지를 깨웠어요.
그래 인제 이놈을 떠억 잡아 갖고 놔 주고 이런 장난을 하는데, 한 승려가 하나 왔다는 거지요. 이 사람도 마을에 들어올 적에, 모 거사가 사는데 딸이 하나
함께 살고 있다 하는 이 얘기는 듣고 왔어요. 이 사람은 하나의 파계승인데, 장난을 좀 하기 위해서 왔다는 겁니다. 와서 인제 모 거사를 보고,
“내가 인제 길이 저물 것 같애서 오늘 저녁에 댁에서 하룻밤을 쉬어서 갈라서 하는데 어떻게 좀 편리를 봐주겠느냐?”
그러니까 모 거사가 거들떠보지도 않고 들은 체 만 체 하고, 낚시만 하고 있다는 얘기야. 그러니 이 승려가 가만히 생각하니까 화가 버쩍 나거든요. 괘씸한
생각도 들고 말이야. ‘아무리 내가 들을 때 거사라는 말을 들었지만, 너가 거만할 수가 있냐?’ 하고는 인제 일거일동을 살피고 있는데, 끝내 말 한 마디 대꾸를 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 그 승려도 괘씸해 가지고 버티고 서 있는 거지요.
그러다가 해가 거무르 할 무렵에 낚시를 거둬 갖고 인제 들어가더란 말이야. 그래 이 사람도 무조건 따라 들어간 거야. 집에 떠억 무조건 따라 들어가니까,
그래도 거사는 왜 오느냐, 뭐 가라든가 이런 얘기도 한 마디 없다는 얘깁니다.
그래 인제 따라 가서 방에 떠억 앉아 있으니까, 그 처녀가 저녁상을 가져 왔는데 보니까 이 산나물에다가 감자를 넣고 죽을 쑤었어요. 그래서 죽 두 그릇을
가지고 저녁상이다 하고 들어왔는데, 그래 인제 상이 들어오자마자 모 거사는 말도 없이 뭐 죽 먹는데 정신이 없어서 옆 사람한테 먹어 보라는 말 한 마디도 없다는 얘깁니다. 그래 이 중이 갈수록 괘씸하단 말이죠.
‘내가 이렇게 무시를 당할 수가 있느냐. 이놈을 갖다가 어떻게 골탕을 좀 멕여 봐야 되겠는데, 어떻게 해서 내가 이놈을 갖다가 골탕을 멕여서 복수를
하겠는가?’ 하구선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에 한 가지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그 중이 불렀단 말이야.
“거사.”
거사가 눈을 지긋이 감고 앉았다가서는,
“왜 그러는가?”
“보시다시피 나는 이렇게 떠돌이 중이외다. 그런데 내가 여게까지 온 것도 하나의 목적이 있어 왔습니다.”
“그래 무슨 목적이 있어 왔느냐?”
“내가 사실은 부처의 씨를 갖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씨를 갖고 있단 말야, 씨앗.
“갖고 있는데, 나에게 그 밭을 하나 시주하시오.”
그런단 얘기야. 그래니까 모 거사가 생각해 보니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나는 밭이라고 해 봐야, 그저 감자 조금 붙여 먹을 밭 한 뙤기(뙈기, 논밭의 한 구획을 일컫는) 작은 한 조각밖에 없다.”
그래니 그걸 갖고 시주할 게 없다 이 말이야. 중이 하는 말이,
“에이. 그게 아니라 훌륭한 밭이 있다.”
“그래 무슨 소리냐? 내한테 그 밭이 없다. 무슨 훌륭한 밭이 있냐?”
“아, 딸이 있지 않느냐?”
모 거사가 듣고 생각하니 아주 괘씸하단 말야.
“그럼, 너 파계를 하겠느냐?”
“파계라니요, 당치도 않은 소리다.”
그 중이 하는 얘기가 이런 얘깁니다. 그러면서 보따리 안에서 슬금슬금 하더니 상자를 하나 꺼내거든요. 그래 상자를 탁 꺼내더니 펼쳐 놓고는,
“보시다시피 여게는 은금 보화가 한 상자 가뜩 들었습니다.”
“이 보화는 내가 부처 씨를 그 밭에다 심어서, 거게서 이 종자를 얻어서 큰 절을 지어서 말이야, 그 사람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려고, 내 이 재산을 가지고 방방곡곡 찾아다니는 도중에 여게 게시를 받고 왔다. 그래니까 집의 딸을 내한테 시주를 해야 되겠다.”
“거 쓸데없는 소릴 하지 말라.”
이 영감이 기가 막히다 말이야.
“그럼 좋습니다. 나하고 하나의 약속을 하자. 만약에 내가 여게서 밭을 못 얻으면 이 보화도 필요 없소. 그러니 내한테는 무용지물이니까, 당신하고 나하고
조건을 하나 걸자. 내가 이 집을 중심으로 해서 100장 이내에다가 이 짐을 숨겨 놓을 테니, 사방 100장 안에다가 이 보화 상자를 숨겨 놓고 갈 테니까, 내 숨겨 놓고 가서 100일 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도사가 지금까지 도를 닦았으니, 그 선도를 가지고서 이 보화 상자를 찾게 되면 나는 거사의 도에 눌리고 지는
사람이니까, 이 보화고 뭐이고 다 필요 없는 것이고. 만약에 그 중간에 거사가 이 보화 상자를 찾지 못할 때에는 필히 그 딸을 내한테 시주 해야겠습니다.”
거사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 집을 중심으로 해서 100마장, 100마장이라 하면 밭을 일궈도 일굴 것 같거든요.
“좋다.”
쾌히 승락을 했어요. 그러니 인제 그 중이 상자를 숨겨 놓고 갔단 말이죠. 그래 그날부터 낚시질이고 뭐이고 다 집어 치우고, 인제 그 보화 상자 찾기 위해서 땅을 뒤지는 거예요. 99일이 다 되었는 데도 보화상자를 못 찾았습니다. 그래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그래 가만히 생각하니,
“이게 내가 경솔했구나. 그야말로 이게 내가 아니할 응락을 해 가지고 딸을 저 중놈한테 뺏기고 마는구나!”
억울하기 짝이 없거든, 그래서 인제 또 한 가지 생각하기를,
“내가 그래도 도를 닦았는데, 내 도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도냐.”
인제 여기서 자기 혼자서 한탄을 하는 거지요. 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99일 동안 찾아도 못 찾은 것을 도저히 하루 더 찾는대도 찾을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서 완전히 포기 상태에 들어간 겁니다. 할 수 없어서 딸보고,
“내가 경솔했다. 그러니 내 도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도고 하니까, 내가 앞으로 내 도를 더 훌륭하니 닦아 와야 되겠다.”
하면서 딸 혼자를 두고서는 자기는 설악산 쪽으로 도를 닦으러 들어갔단 얘깁니다. 그래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딸이 말이지, 그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그
자리서 붙들지도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그때부터 기도를 한다는 얘기지요. 자기 아버지를 위해서 말이죠. 기도를 하는데, 그러니까 그날 상당히
일기가 좋지 안 해가지고 비바람이 치고 막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면서 아주 사나운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딸이 그러한 날이 궂고 비바람이 부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가 가는데 너무나 서운해서 앉아서 손 합장을 하구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그 비바람이 쳐서 말이지 그 뼈속까지 들어간 것 같은 그런 냉기를 느끼면서도 그대로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는 과정에 뇌리에 뭔가 번쩍 스쳐 나가는 것이, 그 즈이 아버지가 앉아서 거 매일 낚시하던
바위가 뇌리에 스쳐 나가는 순간에 말이지 ‘쾅’ 소리가 나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벼락이 들이치더라는 거지요.
그래서 깜짝 놀래 가보니까 그 바위가 벼락이 쳤는데, 그 바위가 깜짝 놀래 쩍 갈라져 입을 벌렸는데 보니까 말이지, 그 안에 보화 상자가 나타나더랍니다.
그래서 인제 보화 상자를 찾으니까, 파계승은 멀리도 안 가고 그 인근에서 거동을 살펴보는 거야. 그래니까 한 방 때려서 벌어졌으니까 그 들통이 났단
말이죠. 그래니 그 중은 나타나지도 안 했고, 그래 인제 그 보화 상자를 찾았으니까 중이 그 나타날 그게 없단 말이지. 나타나 봐야 헛 거니까.
그 질로 그 파계승은 갈 데로 가 버리고, 그 담에 딸은 그 아버지를 찾아서 설악산에 들어갔는데, 후세에서 말하기를 그 효녀의 효심에 의해 가지고, 그 딸의 효심에 의해서 그 바위를 벼락을 쳐서 말이야 그 파계승의 장난을 모면하게 됐다. 그래서 그 바위를 지금도 ‘벼락 바위다’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 바위의 둘레가 상당히 큽니다. 한 높이가 한 6m 정도 되고 둘레를 따져 보면 거의 60m 나올까 하는 그런 정도의 큰 바위입니다. 지금도 보면 그 가운데가 떡 벌어져 가지고 버티고 있는데, 그 옛날의 전설을 뒷받침하는 걸로 봐 주지요.
[속초시 설화 63]
8.벼락바위의 내력
옛날 배락 바우란 데가 있는데, 옛날 어떤 처녀가 그 갯 가세 있는 벼락 바우, 벼락 바우가 갯가에 있는데, 그 갯바닥으로 조개도 잡고 게도 잡고 낙지도 잡고 그래가지고 생계로 삼아 먹고 사는데.
그 한 넘의 집 사는 머슴 놈 한나가 그 처녀한테 곤란하게 살고 그런께. 맘이 있어가지고 항상 말을 못 허고, 그 게 잡으러 개에 댕긴 것을 살펴보고 어느
때든지 좋은 뜻이로는 못 이뤄지게 생겨서 ‘겁탈이라도 해볼까, 또 중마라도 시여 볼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한 번에는 그 개에(갯가) 갔다 나와 가지고 조개를 잡아갖고 오다 나와 갖고 옹달샘에서 물을 묵고 손발을 씻고 옷 갈아입는디, 쫓아 들어가서 겁탈을 했어.
겁탈을 허고 나니께 그냥 천지가 우지자지허고 뇌성 소리가 많이 나고 번개가 치고 그러더니, 그 배락을 맞아가지고 지금 현재에는 그 바위가, 바위 밑에서 그짓을 했는디 그 바위가 배락 맞었다 해가지고 부실부실 해. 손이로 이렇게 잡어 떼어도 떨어지고 그 꽝이로 파도 엄마든지 팔 수 있는 그런 바우가 지금도 크게 남어 갖고 있습니다.
[압해면 설화 24]
9.세천 벼락바위에 얽힌 전설
옛날 아주 옛날에 아주 마음씨가 착허고 얼굴도 고운 아주머니가 한 분 살고 계셨는데, 이 아주머니가 하도 생활이 어려워서 감을 광주리에 이고 감을 폴로 이 부락에 들어왔었어요.
근데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감도 다 팔지도 못 헌 채 날이 어두워져 부렀어요. 날이 어두워서 생각해 보니까, 집에는 갓난이 젖도 먹여야 쓰것고 식구들
밥도 해 줘야 씨것는데, 날이 저물어서 할 수 없이 어둠침침한 길을 다시 급히 집으로 돌아 올려고 했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하도 오줌이 마려워서 오줌을
눌려고 가만히 보니까, 그 옆에 큰 바위 하나가 있길래 그 바위 뒤에 가서 살짝 오줌을 누고 있었답니다.
근데 갑자기 오줌을 누고 있었는데, 하늘에 시커먼 구름이 깔리더니 천둥 번개가 쳐서 벼락을 내렸어요. 그래 이 아주머니는 그 벼락을 맞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불고, 그 큰 바위는 딱 두 동강이가 나져부렀어요.
근데 이 바위는 바로 그 고인돌로서, 이 부락 사람들이 아주 신성해 하고 옛날부터 신성한 곳으로써 부락 사람들은 신성하게 모시고 있는 바위였는데, 이
아주머니가 아마 참 신성한 곳에 오줌을 싸서 그 신이 노해가지고 벼락을 때리지 안 했냐 이런 전설이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읍니다. 그래 이 바위는 세천
부락 옆에 바로 있는데, 지금도 이곳 바위를 세천 벼락바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압해면 설화 51]
10.장성 장자못은 벼락소
이 베락소라는 놈의 간 데가 고로콤 큰물이 지고 흐레(흙탕물)이 들어가고 뭐이 들어가고 그러면, 목탁(나무토막)이 들어가면 메일찌(막힐지) 알아도 밤낮
밑에 짚은 데는 한 질 두 질 되네. 그래서 거기가 붕어 같은 것, 메기 같은 것 전부 고 속에서 사네. 이 양반들 이곳에 낙숫군들이 다 거기로 가거든. 그런게
옛날부터 베락이 맞았는가 어쨌는가 가보면 이름은 베락쏘여. 그런개 베락 맞아 폭 페였는갑데.
그런데 바로 가평 그 베락소 밑에 동네에 그 아무거시 동서가 거 알 살았다고. 거기서 이야기를 들었는디, 옛날 시상에 몇 백 년 될지는 모르니, 내가 들은
풍월로 말을 들었는디, 옛날 큰 장재 부자가 거기 살았등만. 잔뜩 부자가 거기서 삼서 그때 쯤에는 가난한 사람이 하도 많응개, 동냥 다닌 사람도 많고 얻어
묵으로 다닌 사람도 많은디, 어찌 독허든지 아닌 것이 아니라 한나(하나도) 넘 주랴 생각도 안 허고, 그러닝개는 비락을 거기다 때려가지고는 쏘를
맹글아가지고 그래서 거가 베락쏘다 그러드랑개.
그런디 아무리 가물드라도 안 말라. 그런디 쏘(장성댐)속에 들어가 분졌어, 베락 바우는. 베락 바우는 산에서 큰놈이 내려왔어. 내려왔는디 이것이
건방지게 냇 가운데가 딱 가로막고 있응개, 에라 해가지고 가운데를 툭 갈라 분졌어. 베락을 쳐서 베락 바우라.
[장성읍 설화 15]
벼락을 제거한 인물
1.망경대와 벼락 꺾은 강감찬
망경동 골짝에 새미(샘)가 하나 있었는데, 새미 옆에 그 한(어떤) 해 노성(雷聲)을 한께 여(여기) 피신처로 했다 말이지. 피신처로 하는 반면에 불칼이
떨어진께 물에 집어 옇었다가 불칼을 뿌지렀다 마. 뿌지리 삐리고(꺾어 버리고) 그래 가지고 강감찬이 그래 했다 쿠는 요(이) 새미가, 찬물 새미가 있어서 물이 안 몰라지고(마르고) 늘 있었거든.
근래에 와서 수도가 난께, 수도 사정이 좋은께 그걸 메아 삐리고 이랬는데. 그래서 장(늘) 양반이 여게서, 그 때 지명이 망경대라. 그 때 망경대에 올라가서
서울로 바래보고 장 나랏님 보고 절로 하게 된께 망경대라 그래.
그 때가 말이지 그 밥티(밥알)만 헡여도 안 되고 뭘 쪼껭만 거석해도 그랬는 갑대. 벼락을 때리고 쌓은께 강감찬 선생이 가마이 생각을 해 본께 안 되께거덩. 그래 우물 새미가 저 말이 그렇데. 강냉이대 그 놈을 궁딩이다 대고(옥수수를 똥처럼 엉덩이에 붙이고 앉아) 똥 누는 척하고 똥 눈다고 앉아 있은께, 고만
탁 쌔리는디(벼락이 때리는데) 그래 마 똑 잡아 뿌질러 가이고, 앉아 있은께 내려 와 가이고, 그 말이 참말인가 거짓말인가 모리지.
그래 자로 주운께네 자꾸 끄트머리 도라쿠거덩. 그래 끄트머리를 준께네 가 가지고, 요새 좀 거 불칼(벼락)이 안 심하다 쿠는 그 말이 있는디, 그거 우리가
거 알 수 있나. 아이 고 하늘 옥황상제한테 그 불칼 그슥이 내려와 도라 캤지. 누가 도라 칼(할) 사람이 있나.강감찬이가 옥황상제에게 비니까 자를 내려
주어서 그것으로 불칼 벼락을 꺾어 버렸다는 말이다.
[진주시 설화 1]
2.벼락살을 꺾은 강감찬
이 베락 맞은 것두 인제 화학적으루 시방 얘기지만, 옛날에는 그 천둥을 하믄 왜 이 뇌성벽력을 하믄 번들갤 치맨설랑은 무엇 불줄이 왔다갔다 하맨서, 뭐
사람을 치맨 사람이 죽구 낭글치면 낭기 망가지구 그래지 않았어. 그랜데 그 강감찬이란 분네가 이대루 두었다가는 사람이 반수 이상 소멸이 될 테이깐 이거 안 되겠다구. 그래맨서 그 베락살이 시갠데(세 갠데) 두개를 꺾었대는 게여, 강감찬이가.
두갤 꺾는데 우텋게 꺾었느냐 하믄, 옛날에는 베락을 그냥 무단히 치는 건 아니라, 뭔 죄가 있던지 죄가 있는 사람이 베락을 맞아 죽는다구 했는데,
우물머리에 가서, 여럿이 길어 먹는 거 상수도 우물 머리에 가서 똥만 앉어 누믄 아주 영낙읍시 벼락을 내려와 때리더래.
그래 우물머리 가서 강감찬이가 부러 베락살 꺾을라구(웃으며) 궁뎅일 까구서 똥을 누니까는 베락살이 내려오믄 잡아꺾구, 내려옴 잡아꺾구 그래서 세 갠데 두 갤 꺾구서 하내(하나가) 남었는데, 마주 글 내려와서 잘못 때리다가는 마주 깩이믄 야중(나중)에는 베락을 처볼께 읍겠다구 그 베락살이 중둥(중간)에 와서 훼훼 돌다간 도루 쫓겨 올라가군 쫓겨 올라가군(웃음) 그런다는 그게. 그런 그건 바람두이 얘기지만 그런 얘기두 있다구.
[청일면 설화 40]
3.벼락칼을 부러뜨린 강감찬
그 강감찬 장군은 얘기할 거 없이. 우리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그 사람이 몸에서 안 낳았다는 그런 일화가 있대요. 짐승의 몸에서 낳았다. 그런 일화가 있는데, 그거는 고런 정도에서 그치는 거겠지마는, 지금 벼락이라는 게 있잖아요.
벼락 치는 거. 뭐 야사이고 신화 같은 얘기죠. 지금은 벼락을 칠 때 불이 내리 때려가지고 말이야 치는데, 현대 과학으로는 전기가 뭐 이렇다는 얘기를 모두 하는데, 당시 고려 시절에는 칼이란 데야. 지금같이 불이 아니고 벼락칼이란 거야. 칼이 나와서 부딪히는 거야.
현재 우리네 사회에도 거의 그 얘기가 없어져 가는데, 목화밭에 말여 똥을 안 눈다는 얘기여. 벼락을 맞는다고. 그게 강감찬 장군에 대한 일화인데, 그 당시
고려 시절에는 목화밭에 말야 벼락 맞는다고 똥을 안 누었어. 게 이유는 별난 게 없는데, 근데 강감찬 장군이 어디를 갔다 오시다가 급작시레 똥이 마려운데 거 목화밭이 있더라. 이 분이 목화밭에 들어가 똥을 누시니깐 말여. 생각하기를 말야,
‘이놈, 오늘은 벼락의 버릇을 좀 가르쳐 주겠다.’
그래서 일부러 간 셈이지. 목화밭에 누구 앉으셨는데 급작히 뇌성벽력을 하고 구름이 모여 들더니 번개가 번쩍번쩍하더니, 벼락칼이 말이여 탁 들어오면서 그 강감찬 장군의 목을 치러 들어오더라 이거여. 강감찬 장군의 그만한 위력이 있다는 얘기죠.
장적이 있잖아요. 옛날로 기다란 장적을 입에 물고 앉아 똥을 누시다가 말고, 벼락칼이 들어오는 놈을 장적으로다가 탁 받아 치니까 벼락칼이 그만 뚝
부러지더래요. 그 후로 그래 됐어. 강감찬 장군 때에는 그때꺼지면(까지) 칼이 있었는데, 강감찬 장군이 거 담뱃대로다가 탁 치니가 벼락칼이 부러져.
그래가지구 벼락 버릇을 가르쳤어.
그래가지고 강감찬 장군 이게 일화의 하나야. 하늘에 서인데 말이야. 불을 부르지 못해가지고 벼락을 못 때린대요. 마주 부르지 못하면 하늘에서 벼락을
못 치기 때문에, 지금은 그래서 벼락이 없대요. 서이(셋)인데 강감찬이가 두 개를 부러 버렸대요. 그래 지금 마주(마저) 없애 버리면 아무 것도 안 되거든.
그러기 하나 때문에 지금 벼락이 없대요.
[영월읍 설화 128]
벼락을 맞아 잘된 사람
1.벼락 바위
한양 조씨, 나한테 육대 할아버진데, 사막당요 그 묘자리는 어떻게 됐는가 하면, 과거에 제주 고씨가 그 산을 썼다가 지사 양반이,
“안 좋다.”
그래서 그 산을 도로 사 김영탄을 모셔 갔거든. 그 자리를 우리 집안이 썼단 말이야. 지사가 와서 그때 뭐라고 말씀 하셨나면,
“그 남산에 큰 바우가 있거든, 저 바우 없어져야 묘 자리가 잘 된다.”
그랬거든. 그랬잖아 몇 해 있다가 벼락을 때려 갖고 바우를 없앴단 말이야. 없앤 이후에는 우리 집안이 잘 됐어. 그런 역사가 있어요.
그래 쓸 적에 지사가 그 남쪽으로 벼락 바우, 그 큰 바우 섰는데, ‘저 그 바우 없어져야 산자리가 파조 난다’ 이러니, 몇 해 안 있다가 벼락을 때려 바위 없애니 우리 집안이 괜찮아요.
[현남면 설화 65]
2.벼락 바위 전설
그 온양으루 가서 본다면 거기가 워디냐 하먼 모산이지. 못읍내 가면 베락바우라는 디가 있지 않습니까? 베럭바위 가면은 개밥 주다 개밥 훔쳐다 먹은
베락이라 해각구, 개밥베락이라구 하는 베락이 있는디 전설이 있어요.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서 쪼오꼼 떨어진 천안 밑이 못읍내라는 디 가면은 베락바위라는 디가 있는디. 그 어트게 된 베락바위냐 이겁니다.
아득―한 옛날 워느 한 집이 어머니허구 아들이 떡 살구 있었는디. 그 아랫집이는 아주 천하에 일색인 샥시 하나가 있었어요. 아주 부잣집 딸여, 또 양반이구. 그래 이 총각은 숭악한 상눔이라. 혼인 얘기는 감히 말 디릴 수가 웂어. 그래서 참 워트게 뭐 양반 상눔 할지언정 그 즈이찌리 아마 눈이 통했던지, 아마
서루 정을 두구 있던 모냥여. 그래 어렸을 때부터 소꿉장난 해 나왔으니까, ‘너 아니먼 나는 시집 앙 간다. 너 아니먼 장가 앙 간다.’ 인제 약속했던 모넁이지요.
이러다가서 나중이는 느닷웂이 신부가 시집을 간단 말여. 시집을 떡허니 가니까 남자루서는 기맥히다 이거여. 여자두 기맥힌 일이구. 그래 신랑감 데리구서 신부가 그 총각을 불러다 놓구,
“나는 암 디 시집을 가니, 나는 너를 잊을 수가 웂어. 그러니까 나 따러서 안 갈 테냐.”
이거 기맥힌 얘기지요. 그래 이제 신랑이 신부를 데리구 떡허니 가다 보니까, 이 뒷집 총각두 인제 그 몸종으루 따러강 거여. 속 내막적으루 아마 정을
통했는지는 몰르지만, 따러가서 나알마둥 그 집 방아나 쪄 주구 마당 쓸어 주구 그저 이러구서 먹구 사능 거여.
그래 즈 어머니는 굶어 죽어. 그러니까 누름밥 같응 것두 읃어 먹구, 밥 같응 걸 몰래 주면 수건이다 싸다 즈 어머니 갖다 멕이능 게 그게 일여. 이러구 사는디, 일을 쪼꼼 더 하먼 품값을 더 주구, 쫌 들 허먼 아까먼(아까우면) 안 주구. 이러구 사능 것두 한 멫 해 지내가더니만 나중이는 품 값두 안 주구 혼자만 먹는단 말여. 그래 즈 어머니가 죽을 날짜가 돌아 왔던지 꿍꿍 앓는디, 참 굶어서 앓능 거여.
하루는 식전부텀 매를 마안히 갈어 놓구, 매라면은 바루 벼 가능 겁니다. 벼를 마안히 아시를 쪄 갈어 놓구서 나니까, 아침 때가 휘― 하니 지냈어. 난데웂이 바람이 불구 막 쏘낙비가 온단 말여? 가마안히 생각하닝깨 간밤이 즈 어머니 밥 한 숙갈 못 갖다 줬지, 인제 굶어 돌아가싱 거여.
그래 가 보니까 개밥 그릇에 하아얀 밥이 두 그릇이 엎어져 있다 이거여. 그러니까 그 먹을라구 하는 개를 막 쫓아, 개가 ‘웅―’ 하니 물라구 할 거 아녀. 밥 암 빽길라구. 그러니까 발루다 개를 몰아 내구서는 개밥을 자기 적삼에 싸 가지구선 그눔을 각구 즈집이 와서 그 개밥을 깨애깟이 빨어 쌂어서 즈 어머니를
봉양을 항거다 이거여.
그러구 난 뒤에, 메칠 있다가서 늦모를 심는데, 일꾼들이 한 십여 명이 주욱 늘어 앉어 가지구서 모를 심는다 이거여. 오후 때가 지내, 오후 술 참 때가 되니까 난데웂는 구름이 뫠 들더니만 노성벽력이 하구 막 쏘내기가 쏟아진다 이거여. 부쪼지 못허게(어찌할 바를 모르게) 범접하지 못하게 앞이 안 뵈여. 막 어트게 비가 오는지 천둥해 가먼서. 그러니까 거기 한 사람이 머라구 그라느냐 하먼,
“이 베락은 죄진 눔 때리는 베락이다? 누구든지 죄진 눔은 이 베락 맞어 죽어.”
막 다 달어난단 말여요. 가마안히 이눔이 생각하니까, 죄는 지가 짊어졌어. 개밥 갖다 즈 어머니 준 죄 밲이 웂다 이거여. 그래 그 바위 옆이 엎디려 각구서, ‘(간절한 애원조로) 하느니임! 이눔을 쥑여 주십시요. 나는 우리 어머니 개밥 갖다 쌂어 준 죄밲이 웂습니다. 하느니임―.’ 하니까. 난데웂이 베락을 거기다
때링 거여. 아닝게 아니라 ‘와지끈’ 하먼서 막 베락을 쌔리닝깨 바위가 쩍 벌어진다 이 말여.
원제 비가 왔느냐는 듯이 금방내 그냥 또 개버렸어. 이 사람 인제 말끔 비 맞구 들어 왔으니, 옷 갈어 익구 뇌곤하닝깨 막 그 잠들 자구 안 나온단 말이지.
이 사람이 정신 차려서 고개를 들구 보니까, 끌어 안으머 금이란 말여. 그러닝깨 이눔이 이눔 끌어 앙꾸서 나라 잉금을 찾어 갔어. 고을 원 찾어 가서는,
“원님. 사실은 이게 제가 어머니 개밥 준 죄루다가서 베락을 때리기에, 나 때려 달라구 했더니마는 머리맡이 이게 있으니 각구 왔습니다.”
그래 나라, 그 고을 원이,
“너는 과이(과연) 부모에 효헌 사람이요. 정직한 백성였기때미 이런 복을 줬으니까 이건 네 것이니라.”
해서 각구 가서 그 금과 잘 살었다는 전설이 있어요.
[웅천면 설화 44]
3.벼락 바위 전설2
우리 동네에 여기 벼락 바구(바위) 꼴차이라는 데 꼴창이 있습니다. 이 동네로서는 그 들어가믄, 지금도 들어가면 물이 기곡(계곡) 물이 흐리고, 들어가믄
시원하기 아무리 염천이라도 들어가믄 시원해요. 그러기 때문에 참 벼락 바구 골차이라 이러는데, 배락 그 넘이 탁 치면은 간이 설렁 안 합디꺼. 그 이치에
따라 들어가믄 설렁허이 시원습니더.
그런데 그 바귀가 있는, 벼락 바구라는 있는 그 우에 참 나 많은 아부지 한 분하고, 참 열칠팔 살 묵는 딸 하나하고 둘이가 살았어. 이 딸아이가 낭(娘)인데, 똑 심청이매이로 효녀라.
그래 만날 밑에 동네 와가지고 밥을 얻어갖고 올라가고, 일도 해 주고 이러면서 반다시 올라갈 때는 바구 우에 그게 앉아서 자기 아버님 오래 사라고 기도로 반다시 드리고 올라가. 산에 불공을 하러 올라가, 거기서 딱하이 바위 한 가운데 앉아서.
그래 하로는 가을이지. 넘의 가을 일로 나락 겉은 거 해주고, 밥을 너직허이 얻어가 올라가는데, 동네서 몬땐 총각 놈이 한 놈 있었는 모냥이라. 이넘이 그
처녀를 땅 문때가 저 넘을 우찌 품어봐야 되겄는디, 눈독을 딱 올리가 있는디, 그 날 지녁은 마침 늦게 올라가거든. 미리 딱 올라 가가지고, 고마 남자 걸음인께 비미(틀림없이, 번연히) 빠르낀가배(빠를 것 아닌가). 올라가서 바구 밑에 딱 숨어가 있다 말이여.
숨어가 있인께 처녀가 오거든. 그래 밥을 바구에 옆에다 딱 놔뚜고, 딱 한가운데 앉아서 또 인자 기도로 올리이. 기도를 올리더마는(올리는데) 그마 뒤에
가가지고 볼끔 아듬았다 말이다. 그래 그만 난데없는 고만 벼락이 ‘우당당땅’ 하더만 그마 처녀는 저짝 들어 내삐고, 그마 그넘을 탁 벼락을 때리서 그마
직사를 해삤어.
그 때 그 바구가 탁 벌어져가지고 지금도 보믄 이만치 벌어져가 있어. 그래서 효녀는 하늘이 안다. 효녀 심청도 용궁이 알았기 때민에, 용왕님이 알았기
때민에 다시 살럈다. 그래서 효녀는 부모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은 항상 복을 받고 산다. 그래서 요새 젊은이들도 부모에 대한 말을 잘 듣고 부모의 가르침을 잘 들어라 이 말입니다.
[금남면 설화 17]
4.어머님 무덤을 지키는 돌이 된 아들
옛날 어느 한 마을에 효성이 지극한 한 청년이 살고 있었어요. 그는 극진한 효성으로 홀어머니를 대하였는데, 그러던 어느 날 이 청년이 산속에서 나무를
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보이지를 않는 거여. 집 밖에서 멀리 나가지 않았던 어머니가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걱정이 되지.
걱정하던 아들은 어머니가 있을 만한 곳을 애타게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어. 어느덧 밤이 깊어 혹시나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계시는 거야.
“어머니 어딜 다녀오셨어요?”
“아무 데도 안 갔는데. 계속 집에 있었어.”
그러는 거야. 그래서 그런가보다 하고는 며칠이 지났지.
그러던 어느 날 이 청년의 꿈에 그 마을의 뒤산에 모셔진 산신령이 나타났어. 산신령이 말하길,
“여보게 젊은이! 너의 어머니는 진짜가 아니고, 하늘에 죄를 지어 쫓겨난 이 산 우물에 사는 머리가 용이고 몸이 뱀인 괴물이여. 그 괴물이 며칠 전에 산으로 놀러온 네 어미를 헤치고 너까지 노리고 있다. 그러니 니가 화를 면하려면 그 괴물의 두 눈을 찔러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여. 너의 효성이 너무 지극하여 말해주는 것이니 꼭 명심하여라.”
꿈에서 깬 총각은 깜짝 놀라 일어났으나, 꿈속에서 산신령이 말한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어. ‘어머니가 저렇게 살아 계신데 괴물이라니’ 개꿈이겠니 무시해 버리고 전보다 더 효성을 다해 모셨어.
그러던 어느 날 밤에 또 산신령이 꿈에 나타나서 또 그러 말을 하는 거여.
“내일은 보름날이다. 달이 연못 한 가운데로 왔을 때, 이 화살로 비춰진 달을 향해 쏘아라.”
어느 것이 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워. 다만 꿈에서 깨서 옆을 보니, 진짜 화살이 있는 거야. 총각은 지극히 모셨던 어머니를 쏘아야 한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아 괴로웠어.
총각은 보름날 일찍 잠이 든 척하고 어머니의 행동을 살펴보았더니, 시간이 오래 되자 부스럭거리며 진짜로 어머니가 밖으로 나가는 거여. 그래서 얼른 일어나서 몰래 뒤를 따라갔더니, 괴물로 변하여 연못으로 들어가는 거여. 그래 산신령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고, 연못 한가운데 달이 왔을 때 화살을 쏘았어.
연못물이 갑자기 소용돌이치며 주위가 어두워지고 엄청난 괴성과 함께 눈이 활에 박힌 괴물이 솟아오르는 거야. 그때 괴물에게 번개를 치는 거야. 번개를
맞은 괴물은 그대로 돌이 되었어.
그런데 총각은 괴물을 죽였어도, 어머니를 잃어 너무 슬퍼하고 원망하며 울다가 지쳐서 죽고 말았어. 이를 불쌍히 여긴 산신령은 그의 몸도 바위로 만들어
어머니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고 영혼을 불러 산신으로 만들었대.
무주군 무주읍 장백리 하장백마을 개인집, 제보자1(60대, 남), 2005. 10. 29.
우박
1.변란 징조-우박
만력 무술, 제천에 보리 이삭이 세 가지로 벌어진 것이 6개, 네 가지로 벌어진 것이 4개, 다섯 가지로 벌어진 것이 3개, 그리고 두 가지로 벌어진 것은 무척
많았다. 그랬는데 이 해 일본 평수길이 죽고 왜군이 퇴각했다.
천계 임술, 영해에 참새가 난새를 낳았다. 고을 사람들이 말하기를, “수년 전 영양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했는데, 이듬해에 광해군이 폐위되었다. 만력 무오에는 흰 기운이 모두성을 침범하더니, 이듬해 명나라 제독이 전사하고, 명나라를 도와 출전했던 우리 강홍립과 김경서 등도 전패했다.
천계 갑자 가을, 장단에서 평산에 이르기까지 큰 우박이 쏟아졌는데, 작은 것은 거위 알만 하고 큰 것은 발만 했다. 병인에는 창성에 사람 얼굴이 새겨진
우박이 떨어졌다. 그러더니 정묘에 호병이 의주를 함락시키고 평산까지 점령했다. 이때 임금이 강화도로 피난하고 결국 성하지맹을 체결했다.
숭정 을해 병자에는 변고가 더욱 심해, 모두성이 관서 지방에 떨어져 큰 개의 머리만한 돌로 변했고, 금화에는 사람 얼굴이 새겨진 우박이 내렸으며, 천둥
벽력이 인정전과 인경궁 별전 및 충훈부를 내리쳐 사람이 많이 상했다. 물이 넘쳐 사람들이 죽었고, 개구리가 나와 싸워 죽어서 산더미를 이루었으며,
영남에서는 겨울에 벼락이 떨어져 여러 날 불이 번졌다.
이해 섣달 호병이 침입하니 결국 우리 임금이 항복했고 동궁이 인질로 잡혀갔다. 아, 아득한 하늘이여, 그 천심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조선 중기)
2.청도에 우박이 많은 연유
저 청도 저쭉 경북은 우박이 심하고, 우리 경남은 우박이 없다. 이 도가 어데 있느냐 하면 시례 용소 그 찌꺼미가 이도(理由)가 어데 있느냐 하면, 시례 용소(밀양군 사내면 남명리에 있는 소). 그 찌끼미가 그 용 못 된 거, 거이는 강철이가 있거던. 아마 저 청도 그 뭐신 소고? [청중 : 말굴 소라 카데.] 말굴손(밀양군 상동면과 청도군 매전면 사이에 있는 소)가 뭐 있다. 거어서는 용이 아가미로 두 낱을 가지고 있는데, 여게 강철이가 아감지(아가미) 하내이(하나에) 하나썩만 있으마 하늘에 득천을 할라 하는데, 얻으로 가거던. 두 낱을 가(가지고) 있는데, 그거 얻어로 가거든. 하내이 하나썩만 하만 하늘에 득천을 하겠는데,
“그래 니 하나 하고 날 하나 하고, 같이 하늘로 득천을 하자.”
욕심이 많애 안 주요. 안 주는 머리에 ‘에이쿠 기이(기어이) 안줄 밲이는 한 분(한 번) 맛 좀 봐라, 이 넘우 새끼.’ 우박을 한 분 니라 뿠거던. 저쭉에는 이짜다가 우박을 줄라 카이 용이 딱 막하뿌기 때문에 도저히 이쭉에는 우박이 없어요. 흔히 청도 갈래(지역) 가믄, 우박이 심하거든.
[산내면 설화 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