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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in 무설재
 
 
 
카페 게시글
내손 안의 우주, 김석환의 세계 스크랩 중국에서 3
김석환 추천 0 조회 28 07.04.10 23: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누군가 날 깨운다. 빨리 가잔다. 시계를 보니 5시로 겨우 두 시간이나 잠을 잤나 싶다.

일어나 대충 이 닦고 샤워를 한 후에 김 교수를 쫓아 그의 집으로 갔다. 새벽길을 달려 커다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 그가 사는 맨 꼭대기 층의 아파트에 들어갔다. 일찍 일어난 부인이 반가이 맞아 준다. 김 교수는 강의 준비를 하고 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둑한 속에 밝아오는 낯 설은 주변의 경치가 나의 역마살을 어루만지는 듯하다. 해를 기다렸지만 어느 방향인지 감을 잡을 수 없게, 북경 와서 처음 만난 황사가 시야를 가린다. 오늘은 황사가 온 세상을 덮을 모양이다. 부인이 내온 차와 다과를 떨더름한 입맛으로 먹는 둥 마는 둥하고 김 교수를 따라 차를 타고 강의장으로 나갔다.


그 곳은 상가 안의 공간으로 말하자면 기독교인들이 매 주 한 번씩 만나서 갖는 조찬기도회 같은 것인가 보다. 10여명이 모인 가운데 적당한 절차와 함께 김 교수의 북한 여행 경험 강의가 이어진다. 평양을 다녀온 그의 말에 의하면 북한의 호텔 하루 비용이 170만원인데 그것도 내린 가격이란다. 돈을 그렇게 내고도 모든 코스는 지정 된 곳 말고는 갈 수 없고 사진도 꼭 찍을 수 있는 곳만 찍어야하고 사람도 전혀 접촉이 안 된단다. 당연히 감시원이 늘 따라 다닌다니 여행치고는 최악의 여행지란 생각이 든다. 언제나 자유스럽게 드나 들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뀔 지 궁금하다.


행사 후에 아침을 주기에 간단한 한국식 아침을 먹고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 단체 회장이란 사람이 티벳은 여름에도 덥지 않고 돌아다니기가 좋다는 말과 함께 여름에 그곳을 여행 간다기에 나도 끼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에니메이션 회사를 운영한다는 멋지게 생긴 여사장을 쫓아 대부분 그녀의 회사에 구경을 갔다.


마침 그 곳은 내가 처음에 오려고 했던 예술인 촌이 있는 ‘칠구팔’이란 곳으로 1500백 평이나 되는 공간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막 영업을 시작을 해서 인력 수급이며 여기 영업상황을 잘 모르므로 먼저 자리 잡은 한인들의 조언을 듣고 싶어 했다. 다들 도와준다고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김 교수가 말하기는 중국에서 그처럼 '무대뽀‘로 사업을 시작해서는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학교로 돌아 왔다. 사무실에는 부산에서 교환교수로 온 어 교수가 내 노트북을 손 보고 있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노트북의 윈도우 프로그램의 버전이 좀 지난 것이어서 인터넷이 안 되는 것 같다며 다시 깔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할 수 없이 컴퓨터도 못하고 좀 시간을 보내다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먹고 연구생과 함께 여기의 전자 상가를 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먼저 택시를 타고 ‘타왕루’라는 지하철역까지 간 후에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다시 2호선으로 갈아 탄 후에 13호 선으로 다시 갈아 타 북경의 지하철을 다 섭렵한 후에 다시 30분을 걸어가니 거기 전자 상가가 나타났다. 나 혼자서는 유럽을 다 도는 시간을 써서 와도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나는 오로지 따라만 오는 것이기에 쉬웠다.


하지만 어제 밤의 짧은 잠으로 내 다리는 유감없이 그 효과를 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두 시간 걸려서 정작 찾아간 상가에서는 별로 할 일이 없이 그냥 기계를 놓고 가란다. 다시 그 길을 역으로 밟아 오려니 망막하기만 하다. 이제 좀 있으면 러시아워와 만나게 되고 그 때는 지하철이 전쟁터로 바뀐다니 아픈 다리와 함께 심난하기만 하다.


버스를 타면 한 번에 간다는 말에 그 것을 기다리니 한참 만에 온 타려는 버스가 그냥 지나가 버린다. 버스 정류장이 틀렸던지 안 서고 가버린다. 나나 같이 온 북경 생활이 한 달이라는 조선족 연구생이나 그 이유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여서 그냥 택시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서 가던 역순으로 돌아오니 피곤이 꼭대기다. 학교 근처에 와서는 또한 핸드폰을 사료고 조그만 좌판 같은 것을 벌이고 있는 상점에 들어가니 의외로 쉽고 간단히 중국제 중고 핸드폰을 쥐어 들을 수 있었다.


카메라는 안 달린 것으로 가격은 170위엔이고 130원 어치의 충전을 마치니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서 통화가 되는 것이 아닌가? 중국이 그래도 인공위성을 날리는 나라다 보니 이런 일이 이처럼 간단하게 마무리 되나 보다.


이어서 은행카드들 만들려고 은행에 가니 시간이 지나서 못한단다. 그냥 학교로 돌아와 저녁을 간단히 시켜 먹고 한참 동안 내 블러그 홈페이지를 정리 한 후에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하니 그냥 나가떨어진다.


잠깐 자다 눈을 뜬 것 같은데 아침 8시 반이다. 무려 10시간이 넘게 잠을 잔 셈이다. 가벼운 몸으로 세수를 하고 그저께 먹었던 국수가 생각나 시장통에 들어가 국수집에 들렸다. 마침 이번에는 아들이 국수를 주물러 가락을 만드는 중이고 그것을 아버지가 코치를 하는 중이다. 아마 대 물림으로 하려는 모양이다.


아들이 만든 국수 가락을 어머니 인 듯한 여인이 받아들고 끓고 있는 국에 그것을 넣었다가 내게 퍼준다. 이번에는 좀 더 끓인 듯, 덜 익은 맛이 적다. 맛있게 먹고 나서 아침을 안 먹은 두 김 교수 연구생들을 위해 국수집 옆에서 우리의 호떡 같은 것을 사서 사무실로 들어 왔다. 사무실에서 나도 한 조각을 입에 넣으니 밍밍한 맛이 그런대로 씹을수록 제 맛이 난다.


오전 내 컴퓨터에서 이 메일을 보내고 정리하다 점심이 되어 회족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나는 한 제자를 쫒아 은행에 갔다. 아담하게 생긴 은행 여직원의 안내를 받아 돈을 저축하고 카드를 만드니 이제 명실상부한 중국인이 된 기분이다. 사무실에 돌아오니 어느 30대 초반 정도의 참한 조선족 여자가 한 명 있는데 김 교수에게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이란다. 나는 여기 와서 맨 조선족만 만나게 되는 통에 아직 중국에 온 실감이 덜 들 정도다. 그녀와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침 그녀가 일본 교토에서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 교수가 퇴근하며 그녀와 날 연결시켜 줬다. 내일부터 그녀에게 중국어를 배우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어도 당연히 잘 하기에 나는 아예 일본어까지 그녀에게 배우기로 하고 나는 운동을 그녀에게 배워 준다고 하니 좋다고 한다. 그리고 5월 초쯤에는 일본교토에서 가이드도 하곤 하는 그녀의 친구가 티벳 여행과 장백산 여행을 위해서 건너 올 예정이라며 같이 움직일 것을 권해 받으니 정말이지 모든 일이 믿을 수 없이 꼭 맞게 나를 위해서 미리 각본이 짜여진 것만 같다. 이래저래 중국에서의 생활이 잘 풀리고 있고 바빠질 전망이다.


숙소로 돌아와 이리 저리 한국 생각을 하며 눈을 부쳤다. 몸은 여기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한국에 있나보다. 변화를 위해 한국을 떠나 왔지만 마음은 늘 길들여져 있던 공간을 맴돌 뿐이니 사람은 결국 아무리 뛰쳐나가려도 그 쳇바퀴를 벗어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북경 아파트 촌의 새벽.

 

 타왕류 역 근처.

 

 교정에 핀 목련.

 

 스페인 작가의 작품. 실제 사람에게 입힌 옷도.

 

 넙적한 국수. 넙적한 밀가루 반죽을 칼로 기술적으로 썬 모습.

 

 양고기 볶음인지 쇠고기 볶음인지.

 

 무슨 고기인데....북경 시내 한 복판의 중국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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