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영상 : https://youtu.be/dI-k4eXjEls
제목 : 최고의 표백제
본문 : 히 9:11-14
날짜 : 2024. 11. 3 주일오전예배
요즘 마트에 가보면 다양한 종류의 표백제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빨랫비누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흰옷의 때는 잘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빨래판에 열심히 비벼서 빨래를 하셨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지금도 어릴 적 사진들을 보면 흰옷이나 밝은 계열의 옷은 입지 않고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제품의 세제를 비롯해 묵은때까지 깨끗하게 하는 표백제까지 판매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세탁기의 세탁기능도 다양해서 옷감의 종류에 따라 기능을 설정할 수 있어서 정말 편합니다.
이렇게 좋은 세제와 표백제 그리고 좋은 세탁기로도 깨끗하게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만일 우리의 마음을 깨끗게 할 수 있는 세제나 세탁기가 있었다면 세상에는 범죄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우크라이나나 팔레스타인에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세상은 정말 평화롭고 살기 좋았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는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적대적인 상황이고 모든 대화가 단절된 상황이라 유사시에 조그만 사고로도 전쟁이 터질 것만 같은 시기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미움과 증오의 감정이 자리 잡으면 그것은 곧 폭력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폭력은 곧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11에 보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8절에서는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의 근원은 바로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때문에 내가 행위로 죄를 짓지 않았을지라도 그 마음속에 이미 죄가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책망을 받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비록 행위로는 율법을 지킴으로 죄를 범하지 않았지만 그 마음속에는 온갖 악독한 생각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외식하는 자들 또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율법의 행위를 통해 열심히 깨끗해지려고 노력했지만 정작 그들의 마음은 깨끗하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1. 제사장을 세우심
하나님께서는 왜 직접 나타나셔서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제사장을 세우셨을까요?
출애굽기 19:2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오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오시면 우리는 그 죄 때문에 죽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죽지 않게 하시려고, 그리고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사장을 세우신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중보자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장에게 나아가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죄인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신 권위로 죄 사함을 선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사장 제도는 완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사장 조차도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했습니다.
출애굽기 19:22절에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일지라도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짐승의 피와 재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할 짐승을 잡은 피와 그 짐승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친 뒤 남은 재를 제사장이 우리에게 뿌림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깨끗하게 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를 속죄할 때마다 대속할 짐승을 제사장에게 끌고 가서 자신의 죄 대신 짐승의 피를 흘리고 번제물로 바쳐야 했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피를 흘리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대속 제물을 보면서 자신의 지은 죄를 하나님께 통회하며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두 번, 세 번, 계속 반복되면서 죄에 대한 경각심은 사라지고 무뎌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어도 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하나님께 진심으로 통회하고 회개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면 된다는 자기합리화를 시키며 여전히 죄악 속에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말라기 1: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죽하셨으면 차라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제물을 드리지 못하게 누가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아닌 짐승의 피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피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사랑하시는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친히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보혈의 피를 흘려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직전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졌다”고 누가복음 23:4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혈의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제사장 외에는 들어갈 수 없었던 성소에 단번에 들어가셨고,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예수님처럼 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은혜는 주의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죄를 이길 능력과 권세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인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없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해도 저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계획과 방법을 통해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너무 완악하여 결국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보혈의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해결해 주셨습니다. 세상의 어떤 표백제보다 더 깨끗하게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고 완벽하게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든 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해서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죄를 극복하거나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고,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죄를 이길 능력과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충만히 받을 때 죄에 대한 생각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빛이 이를 때 어둠이 물러감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임하시면 죄는 우리에게서 멀리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것은 내 안에 성령님이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은혜 안에 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늘 은혜 안에 거하시며 승리하시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